2024년 4월 18일 (목)
(백) 부활 제3주간 목요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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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이 주교에게 - 영적 지도자들의 거의 전반적인 결함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 / 가톨릭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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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찬 [jesus_maria] 쪽지 캡슐

2020-11-17 ㅣ No.142229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자비의 하느님, 오늘도 저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며 주님의 구속사업의 도구가 되게하시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하소서.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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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세상과 모든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넘치기를 기도드립니다 ]

 

 

 

옷타비오 신부를 통해 사제에게 주신 예수님의 메시지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에서/ 1999.10.30 교회인가/ 가톨릭출판사)

 




영적 지도자들의 거의 전반적인 결함


이미 다루었던 주제로 돌아가 보자. 바로 영적 지도자들의 거의 전반적인 결함에 대한 것이다. 그 원인들은 무엇이겠느냐? 주된 몇 가지만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1) 상당수 목자들의 사목적 감각 결여

2) 신학교와 각종 수도원 등 모든 교회 기관에 침투한 물질주의.

3) 교부학, 금욕주의 및 신비 신학적 교양의 결여

4) 심각한 내적 생활의 결여와 그 필연적인 결과로 나타나는 영혼 지도력 결여. 이는 진리와 영적 진보에 목마른 영혼들의 명백한 요구와 이 어려운 직무를 채우도록 불려진 사제들의 마음 속에 자리한 얼음장같은 냉담이 엄연한 대조를 이루기 때문이다.


아들아, 네가 만일 어둡고 냉기 서린 집에 들어간다면 어디에서 빛과 열을 얻을 수 있겠느냐? 하느님을 향해 가기를 갈망하는 영혼이 하느님을 멀리하는 사람에게서 어떻게 도움을 얻을 수 있겠느냐?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도와 주는 사람이 없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제 자리에 멎어선 채, 걸음을 떼어 놓을 수도 없을 정도로 마비되고 있는지 모른다.


삶의 최종 목적인 영원한 구원


주교들은 교회의 우두머리로서 그들에게 맡겨진 양떼들의 영성 생활에 대한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다. 순조로운 영성 생활은 각 영혼이 속해 있는 교회 안에 하느님의 생명이 거칠 것 없이 순환되고 있음을 뜻한다. 따라서 주교에게는 그에게 맡겨진 영혼들의 가장 큰 필요를 간과해야 할 의무가 있다. 주교가 거룩한 사람이라면 지혜가 모자라지 않을 것이다. 성령께서 그의 마음에 부어 주시는 직관에 따라서 영혼들이 삶의 최종 목적인 영원한 생명을 향하여 바르게 걸어가는데 필요한 효과적인 도움을 전부 구해 주려는 열성으로 불타게 될 터이니 말이다.

그럴 때에 주교는 자기가 사목해야 하는 양떼의 결함과 그늘진 곳과 필요를 분명히 보고, 거기에 요구되는 모든 것을 마련해 주려고 최선을 다하게 될 것이다. 신자들의 가정 생활이 혼수 상태에 빠져 있음을 알아차릴 것이고, 확실한 영적 지도를 받지 못한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의무를 매우 소홀히 하는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공동체의 마비 상태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인간적이고 물질적인 이익과는 무관한 그의 큰 관심사는 아주 훌륭한 사제들을 주위에 모아들여서 훌륭한 영적 "지도자"로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런 다음 그 사제들과 더불어 교회의 진정한 쇄신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결정할 것이다. 자기가 돌보는 교회 안에는 성화의 길을 걷는 데에 필요한 것이 아무 것도 부족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주교는 한 모임의 회장일 뿐만 아니라, 이단과 오류와 부도덕으로부터 그의 교회를 보호하면서 보살피고 양육해야 하는 영적 아버지이다. 따라서 인간적인 판단은 제쳐놓고 오로지 하느님의 '뜻'만을 고려하면서, 신중하고 과감하게, 그러나 깊은 믿음과 큰 사랑을 가지고 수행해야 하는 그의 임무는 자못 큰 것이다.


아들아, 나의 뜻은 주교들이 거룩한 사람이 되고, 그들 안에 하느님이며 사람인 내 삶을 반영하며 (내가 사람이 된 것은 그 때문이니까), 공포나 두려움 없이 도끼를 들이대어 악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라면 어디랄 것 없이 뿌리째 뽑는 것에 있다. 그들이 오로지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 나라의 도래와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만 일하고자 한다면, 나의 도움을 결코 거절하지 않을 작정이다. 이는 바로 나 예수가 너희에게 날마다 청하라고 가르친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오염된 모든 단체를 철저히 소독하지 않으면 안된다. 주교가 이 일에 대해 불타는 열성을 느끼지 못한다면, 세상에서 나의 사도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사목의 중심 문제는 영혼들을 사탄에게서 빼내는 것이다


내 교회를 일찍이 본 적이 없을 만큼 짙은 어둠 속에 잠기게 한 물질주의적인 관념, 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다른 민족들까지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한 이 신앙 위기는 신앙으로 돌아올 때만 치유될 수 있다. 따라서 사제들에게나 신자들에게나 슬기롭고 현명한 사목을 펴는 것이 주교들의 임무일 것이다. 교리 교사 양성소들이 있어야 하고, '성서'와 '교부들'과 '교회 박사들'에 대한 견실한 교양을 쌓게 하는 센터도 있어야 한다. 내게 필요한 사람은 방자한 신학자들이 아니라, 사제직의 위대성과 사제다운 권한을 충분히 자각하는 지혜롭고 거룩한 사제들이다.

주교들은 이를 깨달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 일해야 하며, 이를 향해서 그들의 사목을 이끌어 가면서 지엽적인 것은 모두 제쳐 놓아야 한다.


아들아, 한 번 더 분명히 말하지만, 목자와 사제들이 영혼과 육신 - 왜냐하면 육신은 영혼의 버팀목이요, 영혼을 위해 부여된 것이니까 - 의 힘을 온통 경주해야 할 사목의 중심 문제는 사탄과 그의 패거리에게서 영혼들을 빼내어 원래의 주인인 내게 돌려 주는 일과, 마음이 곧고 깨끗한 사람들이 오류에 말려들지 않고 원수의 간계에 넘어가지 않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막는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사람들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내가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정화는 내게 봉헌한 사람들이 그들의 무분별로 말미암아 할 줄을 몰랐거나 하기를 원하지 않았던 일을 할 것이다.

네게 강복한다, 아들아. 나를 사랑하여라!

(1978년 1월 5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위기에 처한 내 신비체


내가 이제 말하려고 하는 주제에 새로운 것이 아니다. 앞에서 암시했듯이, 바로 내 교회를 휩싸고 있는 어두운 그늘들에 대한 것이다. 여기서 내가 복수꼴을 써서 그늘들이라고 말한 것은 그늘의 수가 여럿임을 뜻한다. 그 모든 그늘들은 그러나, 신앙의 위기라는 단 하나의 원인에서 나온다.

신앙은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하느님의 큰 선물이다. '구속'의 열매로서, 열려진 내 자비로운 성심으로부터 솟아나오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의 '생명'이다. 이 생명은 어둠 속을 비추는 빛이다(요한 1,4-5 참조 - 역주).

사람은 생명을, 곧 나의 신적 생명을 증가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다. 또한 이 생명을 약화시키고 불씨마저 꺼뜨려서 생명의 힘과 에너지를 모조리 다 없앨 수도 있다.


내 신비체가 위기에 처해 있다. 바야흐로 뇌우가 쏟아지려고 할 때의 땅의 모습처럼 어두운 그늘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내 교회가 위기에 처해 있는 이유는, 그 구성원들이 물질주의라는 바이스(공작물을 고정시키는 공구 - 역주)에 물려, 신앙의 내적 생명인 하느님의 생명을, 그리고 신앙과 더불어 바람과 사랑도 질식시키고 있는 데에 있다.


나는 너에게 불이 꺼져 버린 등불에 대해 말한 적이 있는데, 이는 그 안에서 은총의 신적 생명이 더 이상 순환되지 않고 고동치지도 않는, 수많은 사제들과 더욱 많은 신자들의 영혼을 가리킨다.... 사제는 말할 것도 없고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든지 불이 켜진 등불이 되어, 어둠 속에 잠긴 이 세상에 빛을 퍼뜨려야 한다. 사람이 된 하느님의 영원한 '말씀'이요, 세상의 '빛'인 나를 증거하기 위함이다.


항구하고 충실한 신앙 생활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항구하고 충실한 신앙 생활을 해야 한다.

하늘의 비추임을 받은 내 대리자가 이 문제에 대해서 최근 수년 동안 힘주어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내 대부분의 사제와 신자들은 그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오히려 비웃음과 조롱거리로 삼기 일쑤였다.


아들아, 그토록 몰지각하고 뉘우칠 줄 모르는 태도를 보면서 내가 어떻게 깊은 비통에 잠기지 않을 수 있겠느냐? 사탄이 키워 온 물질주의가 오래 전부터 인류를 더럽히며 퍼지기 시작하여, 갈수록 더 많은 영혼들 속에서 비할 데 없는 선물인 믿음, 바람, 사랑, 내적 생명 및 하느님의 은총을 꺼뜨리고 있다. 하느님의 은총이 없으면 아무도 구원될 수 없는데 말이다.

물론, 내 신비체에는 활기차게 움트는 새싹들이 있다. 많은 이들의 눈에 드러나건 드러나지 않건, 그들은 현재의 이 사막 속에서 정화되고 쇄신될 내 교회에서 풍성하게 자라날 새싹이다. 오늘날의 교회는 수풀과 뒤얽힌 덤불과 가시와 마른 나뭇가지가 많아서 착한 이들이 길을 헤치고 나가기가 매우 힘들게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재 속에서 은근히 타고 있던 불씨가 큰 불길이 되어 타오를 때가 올 것이고, 그때에는 모든 것을 살라 버릴 것이다. 그러면 인간의 어리석음과 교만과 불순결과 여타 모든 추악함의 결과들이 말끔이 사그라진 깨끗한 땅에 수많은 생명의 싹이 돋아날 것이다.

땅은 풍성하고 비옥한 동산이 되어 사람들에게 안식처를 줄 것이고, 사람들은 슬기롭고 지식이 깊어져서 하느님과 화해하고, 나와 그들 사이에도 화해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들은 '사랑' 안에서 평화롭게 살 것이다.


삶의 의미


나는 사제들과 신자들이 그들을 억눌러 숨막히게 하는 무거운 짐에서 해방되어 '빛'이요 참 '생명'인 나에게로 회두하고, 그들의 타락을 묻지 않고 사랑으로 기다리시는 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옴으로써 삶의 의미를 새로이 되찾게 되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라는지 모른다.

아들아, 그래서 너에게 말하는 것이니, 내 사제들에게 내 자비로운 마음의 고통을 알리고, 내 아버지의 '사랑'에서 떨어져 나가 멸망과 죽음의 길을 가고 있는 아들들을 보는 아버지의 고통을 알리려는 것이다.


가련한 영혼들! 내가 속량해 주었건만, 그들은 지금 술에 취한 소경처럼 어둠 속을 더듬거리며 걸어가고 있다. 그들은 창조주 하느님의 선물인 이 세상 삶은 영원한 생명을 지향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모른다. 또한 이 세상 삶은 짧고 덧없는 것이어서 낫을 한 번 대면 그대로 시들어 죽고 마는 풀이나 들꽃 정도의 수명밖에 없다는 것도 모른다.

가련한 아들들! 그들은 교만과 거만과 방자함 때문에 어둠 속에 잠겨서 그들 자신마저 알아보지 못할 지경이 되고 말았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에게 참된 회개의 은총을 얻어 주어야 한다. 한 번 더 말하거니와, 회개해야 할 사람이 많이 있다.


기도하고, 다른 이들에게도 기도를 청하며, 고난과 어려움도 봉헌하여라. 각자의 삶 속에 산재한 고통을 믿음으로 감수하고 아낌없이 봉헌하면, 그것이야말로 은총과 자비의 누룩이 된다.

그러나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다. 이 시간을 유익하게 쓰지 않는다면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믿음과 형제적 사랑으로 너와 일치해 있는 사람들과 너에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너는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1975년 9월 25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내 신비체의 어두운 그늘들


 아들아, 몸의 모든 지체는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그 몸의 보존과 성장이라는 유일한 목적을 향하여 나아간다.

 내 신비체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지체가 합당하게 이 신비체의 지고선(至高善)을 지향해야 하는데, 그 지고선은 바로 이 신비체를 이루는 모든 지체들의 구원이다.

 이 지체들이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고 선이나 악을 원할 수 있는 자유와 지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모두가 공동선을 지향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된다. 그러나 실정은 그렇지 않다. 많은 지체들이 유혹과 속임수에 넘어가서 그들이 이루고 있는 몸의 조화를 깨뜨리고, 고집스럽게 악을 추구함으로써 그들 자신과 다른 모든 지체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다. 게다가 그런 지체들이 사제일 경우, 그들 자신이나 그리스도 공동체 전체에 헤아릴 수 없이 큰 손상을 입혀서 조화로운 단합을 파괴한다.

 그러므로 내 교회의 모든 사제들은 용기를 가지고 모든 사람의 공동선을 지향해야 한다. 그들은 예외 없이 모두 이 위대한 목적을 위해서 부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교회에서는 목적을 이것 저것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어느 지체에게나 목적은 단지 하나뿐이니 말이다. 하지만, 내 사제들에게는 그 목적이 아주 특별한 모양을 단지 하나이니, 바로 영혼 구원, 영혼 구원, 영혼 구원인 것이다!

 사제 가운데서 꼴찌인 사제 - 여기서 꼴찌라는 말은 하나의 표현 방식이다. 꼴찌가 첫째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마태 20, 16 - 역주). 꼴찌이면서도 첫째인 아르스의 거룩한 주임사제처럼 말이다 - 가 내 아버지 대전에서 미사 성제 때에 나와 하나 되어 그 자신을 제물로 바치면서 삶을 살아간다면, 그 사제는 늘 그렇게 하지는 못하는 다수의 고위 성직자들보다 더 위대한 것이다.

 내 신비체에는 자만과 교만과 음란으로 심하게 병든 지체들이 많다. 사제직을 하나의 직업으로 여기면서 영혼 구원보다는 돈벌이에 더 급급한 사제들도 많다.

 또 자기의 "수완"을, 곧 약음을 자랑으로 여기는 사제들도 많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수완이 좋다는 것은 거짓말을 잘하는 기술이기 십상이고, 이는 바로 사탄의 간교한 기술인 것이다.

 너희는 단순하고 진실하게 말해야 한다.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할 것은 "아니오"라고 해야 한다(마태 5, 37 참조 - 역주). 진리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효력이 있는 것은 그들의 말이 아니다


 내 교회에는 그들 자신을 위해서 강론하는 사제들이 있다. 멋진 말을 찾고 우아한 말투를 쓰는 등 여러 가지 방식으로 청중의 주의를 그들 자신에게 쏠리게 하려고 애쓰는 사제들이다.

 사실, 내 '말'은 그 자체로 효력이 있다. 그러나 효력이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내 '말'이지 그들의 말이 아니다! 내 말에 대해서는 미리 읽고 묵상하고 소화한 후 겸손하고 단순하게 선포해야 한다.

 내 신비체에는 병균에 감염된 부위가 있고, 곪은 상처들이 있다.

 신학교들 속에는 장차 사제가 될 사람들을 오염시키는 고약한 자들이 있다. 누가 그 큰 폐단을 정확히 평가할 수 있겠느냐?

 어떤 병원이나 공동체 안에 전염병이 돌면 사람들은 황급히 조사를 한다든가 환자를 격리시키면서 즉각적이고 강력한 조처로 치유책을 마련한다. 그러나 내 신비체에는 훨씬 더 심각한 병증이 나타나고 있는데도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그저 그러려니 하고 있을 뿐이다. 용납 할 수 없는 공포와 두려움 때문에......

 영혼들을 멸망으로 이끄는 악의 확산을 허용하는 것은 사랑이나 애덕이 아니다.

 게다가, 사람들은 하느님의 '자비'만 과용(過用)하고 있다. '자비'와 '정의'는 공존하는 것인데도 마치 그렇지 않기나 한 것처럼....

 책임을 맡고 있는 사람은 진행 중인 악을 정지시키기 위하여 올바른 조처를 취할 때, 그 결과를 염려해서는 안된다.

 아들아, 다음은 학교의 종교 교육 문제인데, 이 매우 까다로운 임무를 아무 책임감 없이 수행하는 숱한 사제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해야 하겠느냐?

 최상의 방식으로 그 임무를 수행하는, 매우 교양 있고 자각적인 사제들이 없지 않다는 것에는 나도 동감이다. 그러나 이처럼 훌륭한 사제들 옆에는 경박하고 자각이 없고 심지어 타락한 사제들이 참으로 많이 있는 것이다! 이런 사제들은 윤리적으로나 영적으로나 도움이 필요한 젊은이들에게 선 대신 엄청난 악을 행해 왔고 지금도 하고 있는 것이다.....


사제 고유의 복장


 사제복에 대한 규정은 하늘의 뜻을 따른 것이었다. 내 사제들은 세상 속에 살면서도 세상과 별도로 분리되었던 것이다.

 나는 내 사제들이 평신도들과 구별되기를 바란다. 그들의 삶이 더 완전한 유형의 삶이라는 점에서 뿐만 아니라, 그들 고유의 복장에 의해서 외적으로도 구별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렇지 못한 실정이니) 항간의 물의를 일으키는 일과 해로운 폐단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죄를 지을 기회가 증가함으로써 죄가 얼마나 많아지고 있는지 모른다!

 이를 법으로 제정할 권한이 있음과 동시에 그 법을 존중하게 할 의무도 있는 사람들이, 용납할 수 없도록 너무나 관대한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 그렇게 할 경우, 성가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쉽고 안락하고 불쾌함이 없는 삶을 약속한 적이 없다.

 그들은 혹시 반발을 두려워하기 때문이겠느냐? 그러나 규율의 해이는 더 큰 해이를 초래할 따름이다.

 국가 공무원이나 군 조직의 종사자들도 제복을 입는다. 그런데 내 사제들 중에는 사제복이 부끄러워서 규정을 어기고 속인들과 멋부리기 경쟁을 하는 이들이 많다.

 아들아, 이 때문에 나는 여간 괴롭지 않다! 작은 일에 충실하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큰일에 충실할 수 있겠느냐?(루가 16, 10 참조 - 역주)

 다음으로, 허다한 사제들이 성사를 집전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해야 하겠느냐?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영대도 걸치지 않고 셔츠 바람으로 고해소에 들어가는 사제들도 있다.... 또 외관상 거룩해 보이더라도 쓸데없기 십상인 활동에 빠져 기도할 시간이 없을 만큼 바쁜 사제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해야 하겠느냐?

 쓸데없는 활동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렇게 분주한 활동 속에는 그들의 영혼도 나의 현존도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없는 곳에는 영적 풍성함도 없지 않겠느냐? 그럼에도 부도덕하고 외설적인 영화를 보러 갈 시간은 있는 사제들이 참으로 많다. 자기 나름대로 판단을 하려면 우선 알아야 하기 때문이라는 핑계로 그렇게 하는데, 그런 정당화는 사탄에게서 오는 것이다.

 거룩한 사제는 결코 그런 부도덕한 짓을 하지 않는다. 그래야 영혼들에게 지도와 조언을 주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지 않겠느냐?


순종의 의무


 이와 같은 것이 우리네 실정이다.

 그러나 더욱 고약한 것이 있다. 아들아, 교계 제도적 교회를 세운 것은 나인데, 시대가 달라졌으니 모든 것이 달라져야 한다는 말을 감히 입에 담을 수 있겠느냐?

 내 교회에는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달라질 수 없는 확고한 점들이 있으니, 권위의 원칙과 순종의 의무도 그 안에 포함된다.

 권위를 행사하는 방법은 달라질 수 있지만 권위 자체는 폐지될 수 없는 것이다.

 고위층 사람들에게 필요한 너그러움을 결코 나약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관대함은 확고함을 배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확고함을 요구한다.

 아들아, 내 교회를 괴롭히는 여러 악들 가운데 일부를 내가 이렇게 드러내고자 한 까닭이 무엇이겠느냐?

 내 사제들이 그들의 책임에 직면하게 하려는 것이다. 깊이 반성하고 참으로 거룩한 생활을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니 말이다.

 나는 사제들을 사랑하기 때무에 회개하기를 바란다. 그들은 그들의 행위가 때때로 많은 영혼들에게 걸려 넘어지는 돌이 되고 멸망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정의'는 완전히 무시한 채 그분의 '자비'만 믿고 그분의 '사랑'을 남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아들아, 내가 여러 번 말했지만, 붕괴가 이미 진행 중이다. 내 모든 사제들과 신자들이 진지하게 기도와 회개의 생활로 돌아올 때만 아버지의 분노를 풀어 드릴 수 있고 그분 '정의'의 당연하고 필연적인 결과를 멈추게 할 수 있을 뿐이다. 하기야 '정의'도 언제나 '사랑'에 의해서 행사되는 것이지만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고, 기도하고, 보상하여라. 네 사랑으로 내 교회에 만연한 모든 악을 보상해 다오.


악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선도 아주 많이 있다


 사실, 내 교회에는 악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선도 아주 많이 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교회는 불행하다! 그러나 나는 의인들을 위해서 온 것이 아니다. 의인들에게는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죄인들을 위해서 왔고, 그래서 그들을 원한다(마르 2, 17참조 - 역주). 구원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영혼들을 멸망시키는 원인이 되는 수많은 상처들 중 몇 가지를 지적해 본 것이다.

 사람은 지옥에 가지 않는다고 말하거나, 지옥을 부정하거나, 하느님께서 당신 자비에 호소하는 사람을 지옥에 보내실 리가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단과 오류가 퍼져 있다고 해서 지옥이 그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사제들을 포함해서 회개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지옥을 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신비체


아들아, 나는 모든 사람을 향한 내 교회의 활동을 사목으로 간주한다.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그리스도교 원리를 자진해서 굳건히 믿고 따르게 하려는 활동이니 말이다.

이 활동을 추진하고 지도하는 일은 엄밀히 말해서 교계 제도에 속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착한 평신도들의 정당하고 필요한 협력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나는 효과적인 사목 활동에 유익한 가르침을 이미 준 바 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세상의 소금이다(마태 5, 13-14 참조 - 역주)라고 말한 것은 그 때문이다. 나는 또 사람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6 - 역주)고도 했고, 또 너희는 밀가루 반죽을 부풀리는 누룩(마태 13, 33 참조; 루가 13, 20-21 참조; 갈라 5, 9 참조 - 역주)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만일 어떤 사제가 초자연적인 빛으로 빛나지 않는다면, 은총의 빛이 그 영혼을 투명하게 해서 누구든지 (위선이 아니라 충실성과 단순함이 들어 있는) 그 안을 볼 수 있을 정도가 되지 않는다면, 그의 활동이 결실을 맺지 못한다는 것을 그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다.


나 예수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 33 - 역주). 그러나 그것은 잠재적인 승리이다. 모든 것이 내게 주어졌고 모든 것이 나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나의 완전한 승리는 세상 종말의 '최후 심판' 때라야 비로소 이루어질 것이다. 그 때에 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 앞에서, 하늘과 땅 앞에서, 나의 완전한 승리를 나타내 보일 것이다.


사람이 된 하느님인 나는 내 신비체를, 곧 나와 하나인 내 교회를 실현했고 앞으로도 실현할 작정이다. 내 완전한 승리를 늦춘 진정한 이유는 이것이니, 그 완전한 승리에 내 신비체를 참여시키고자 했다는 것이다.

'머리'와 '몸'은 오직 하나일 뿐이다. 내 완전한 승리가 나의 '부활' - '승천'과 더불어서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이상히 여길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것은 그들이 내 '강생의 신비'를 별로 잘 이해하지 못한 까닭이다.


갈바리아에서


나 예수는 인성과 깊이 결합하여 인성의 해방과 승리를 위해서 나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쳤다. 나는 나의 인성을 현세적이고 영원한 생명의 인간적이고도 신적인 모든 사건과 결합시켰다. 따라서 신비로운 몸이지만 나의 참 몸인 교회는 나를 따라 갈바리아를 올라가야 나를 따라 영광에 들어갈 수 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하는 것이다!"(마태 16,24 참조 - 역주) 그런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른다는 것은 응당 갈바리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겠느냐?


내가 강생과 수난과 죽음의 신비로 벌였던 싸움은 그 강도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세상 끝날까지 계속될 싸움이다. 그러나 원수가 다음 공세를 펼 때처럼, 일찍이 본 적이 없어서 거의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맹렬한 격전의 때도 있을 터인데, 그것이 이미 시작된 중이기도 하다.

그러니 영세자들에게 사탄과 세속과 육신이라는 호전적인 원수들과 언제나 싸움 중인 교회의 실상을 이해하도록 해야 하지 않겠느냐?


사목은 영혼들이 그리스도교 원리를 따르고, 하느님과 하느님의 법과 진리, 하느님의 신비들을 자진해서 받아들이도록 이끌어 가야 한다.

근본적인 전제도 없이 단지 조직만으로 이루어진 사목은 아무 소용이 없다! 드러난 사실들이 이 점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투쟁과 순례의 여정


너희가 후원하는 단체들은 메말라 가고 있고, 너희의 영화관들은 독을 퍼뜨리는 도구이며, 너희의 모임들에서는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과 그리스도인답지 않은 말을 쓰는 경우가 꽤 많이 있다.

많은 단체들이 무너졌다. 이른바 제도적 사목이라는 것도 좌초 상태에 있다. 헛된 희망이라도 품어보려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니, 물질주의적인 인생관만이 영적 빈혈증으로 심하게 앓고 있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국건히 뿌리박게 되었기 때문이다.


청소년 남녀 혼합 단체들도 이름만 그리스도교 단체일 뿐 실상은 이교도 집단이다. 지나친 자유와 유행을 따른 단정치 못한 복장, 육정을 자극하는 독서와 영화의 해로운 영향으로 그들 자신을 다스릴 수도 없으니 말이다.

이러한 것이 제도적 사목의 결함이니, 인생에 대한 근본적인 통찰력이 없기 때문에 자기 제어력도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사탄과 그 동맹자들과 맞서서 끊임없이 투쟁하는 민병대와 같은 것으로 이해되어야 하고, 또한 순례의 여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올바르게 살던 시절에는 이 단체들도 그 나름의 효과가 있었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이교도가 되어 버린 오늘날에는 전통적인 단체들이 흔히 악을 저지르는 기회가 되곤 한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1976년 6월 9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

 

주님, 모든 연옥영혼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고,
특히 전세계로 퍼진 코르나19로 죽은 모든이에게 자비를 베풀어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아멘.

세계 곳곳에서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의 한숨과 기도를 들어주시고, 국민들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지도자들이 회개하여 주님 품으로 돌아오게 하소서. 아멘.

성령의 불길이 한반도에서 전세계로 퍼져나가길 기도드립니다. 아멘!

 

*~*~*~*~*~*~*~*~*~*~*~*~*~*~*~*~*~*~*~*~*~* 

“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http://예수.kr ,  http://마리아.한국)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자비의 예수님, 양점상 마리아와 장한상 요셉과 장가브리엘과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에게 구원의 은총 속에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교회와 교황님과 사제와 수도자와 온 세상의 모든 이들과 태아에게도 은총과 자비를 베푸소서. 온 세상과 우리 나라에도 사랑과 평화와 축복이 가득하게 이끌어주소서. 성모 마리아님과 배필이신 성 요셉과 성인의 통공 안의 모든 가족들은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이 모든 것을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1,3)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1,3) 

♥장한상요셉, 양점상마리아, 장가브리엘,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들 (성인의 통공)♥ 

♥안토니오 비오, 릿다, 미카엘, 이 땅의 모든 사람들 (성인의 통공) 

미사신청 : 11월 1일~3일, 11월 7일, 11월 9일, 11월 30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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