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3일 (화)
(백) 부활 제4주간 화요일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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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이 주교와 사제에게 - 교리상의 대혼란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 / 가톨릭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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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찬 [jesus_maria] 쪽지 캡슐

2020-11-18 ㅣ No.142251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자비의 하느님, 오늘도 저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며 주님의 구속사업의 도구가 되게하시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하소서.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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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세상과 모든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넘치기를 기도드립니다 ]

 

 

 

옷타비오 신부를 통해 사제에게 주신 예수님의 메시지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에서/ 1999.10.30 교회인가/ 가톨릭출판사)

 




교리상의 대혼란


교리상의 대혼란이라고 말했거니와, 과연 이만저만한 혼란이 아니다!

나는 또 너에게 성경의 진리를 부정하거나 잘못 해석하여, 계시된 진리를 개인적으로 자유로이 해석하는 프로테스탄트적 원칙이 이제는 거의 일반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데 대해서 몇 마디 언급한 적도 있다. 그래서 이제는 그리스도인이나 비그리스도인이나 그 머리 수만큼 교사가 있을 지경이 된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이치에 맞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 오히려 현재의 실정이 아니겠느냐?


묵인되고 있는  또 하나의 고약한 원칙은 '계시'를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이해하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민족마다 문화 수준에 따라 성격이 다양한 역사적 시기에 부합하는 요구가 있으니, '계시'를 그러한 요구에 맞추어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만 보아도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얼마나 엄청난 혼란을 일으키며 키워 갈 수 있는지를 충분히 알 수 있다. 영원한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인간의) 주관적인 진리 - 죄로 말미암아 상처 입고, 그 자신의 격정에 좌지우지되며, 특히 지옥, 곧 거짓의 어두운 세력에 속아넘어가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내맡겨진 진리가 (판을 치고) 있으니 말이다.


일체가 뒤죽박죽이니....


'진리'를 변질시킨 결과에 대해서는 어떤 예증(例證)이나 설명을 할 필요가 없다. 일체가 뒤죽박죽이고, 일체가 큰 혼란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실례(實例)를 들어 본다면 얼마든지 많이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아담과 하와는 역사적인 인물이 아니어서 실제로 (세상에) 살지 않았으며 하느님께 불순종의 무서운 죄를 범한 장본인도 아니라는 것, 따라서 그들은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상상이 만들어 낸 신화적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것의 결과는 어떤 인간 정신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큰 범위에 걸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사실, (그들을 그렇게 역사 속에서) 싹 지워 버리는 것은 모든 것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즉,

- 지극히 거룩하신 내 어머니의 '동정성'과 '원죄 없으신 잉태'를 부정하고,

- 나의 '신성' 자체를 의문에 붙여서 부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 신성을 부정하면 구원의 성사인 교회도 동시에 부정하게 되고, 성서들을 통해서 참여하게 되는 하느님의 생명인 은총의 신비도 부정하게 된다. 성사들도 기껏해야 상징으로만 받아들이고, 마찬가지로 미사 성제도 상징이라고 일컫게 된다.


교리의 붕괴가 진행 중이니 그 내리닫는 속도가 계속 빨라지면서 하느님께서 인류를 위하여 친히 교회에 맡기신 거룩한 위탁물인 '계시'의 유산도 온통 그 추락 속에 휘말려 함께 떨어진다. 이 유산은 사람들이 하느님께 아무리 감사해도 결코 충분치 않을 만큼 놀라운 선물이건마는!


사람마다 자기 자신을 교사라 여기면서 오직 홀로 참되고 위대한 '스승'인 나 예수의 진정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숱한 파멸은 어디서 오는 것이겠느냐? 그 근원은 언제나 같은 것이니, 바로 교만이다!

그런데 교만을 제어하며 굴복시킨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어루만지며 키운 사람들도 있다...... 그 때문에 신앙의 위기가 온 것이다. 어둠을 뜻하는 이 신앙의 위기는 내적이고 개인적인 사실로 머물러 있지 않고 외부로도 영향을 미쳐 다른 사람들도 말려들게 하는 것이다.


실상 성사들의 효과를 믿지 않는 사람은 고해성사를 받으러 가지 않게 되고, 설명을 요구하는 사람에게는 하느님께 직접 고백하면 충분하다고, 그러면 다 해결된다고 대답한다...  사람들은 이른바 "공동체의 고백"이면 충분하고도 남는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고, 상당한 간격을 두고 고해성사를 받으라고 권고할 지경이 되었다.... 이것이 현실이 되고 말아서, 견진이나 성체성사를 받을 준비를 하던 사람들이 첫 영성체를 하는 날에도 미리 고해성사를 받지 않고 이 성사들을 받은 경우가 드물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몇 년이나 고해성사를 받지 않고서도 아무 거리낌없이 거룩한 성체를 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느냐? 또 몇 년이고 몇 년이고 고해성사를 받지 않고 지내는 사제들은 얼마나 많겠는냐?

오! 아들아, 이것이야말로 감추어져 있으나 실제적인 상처이다. 그런데 이 죄의 상처들과 다른 많은 악행들 앞에서 사람들은, 공적이건 사적이건 쇄신에 대해 언급한 '공의회' 문헌을 이용하면서 스스로를 변호한다..... 그러니 공의회가 말하는 교회 쇄신을 그런 식으로밖에 알아듣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겠느냐?


진행되고 있는 교회 파괴 공작


새롭게 한다는 것은 다시 만든다는 뜻이다. 그런데 다수의 사람들이 볼 때, 교회 쇄신은 날마다 체계적으로 일사불란하게 모든 것을 파괴하는 작용이 되고 있다. 이 파괴를 계획하고 창안한 자는 인간이 존재하기 전부터 있었던 자이다. 이와 같이 내 교회를 파괴하려고 진행되고 있는 공작(工作)이 한 번 더 증명된 것이다. 이 대대적인 공작에 추기경과 주교와 남녀 봉헌자들이 열성을 가지고 가담하고 있다. 그런데 외관상 진실해 보이는 그 열성이 사실은 거짓 열성인 것이다!


아들아, 하지만 내가 추기경과 주교와 사제 등에 대해서 말할 때에 그 모두를 일반화시키고자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여라. 별도로 유보된 사람들이 언제나 있기 마련이니 말이다. 사실, 그 수가 항상 한정되어 있긴 하지만, 착한 사제들과 착한 주교와 추기경들이 없지 않은 것이다!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죄라는 눈사태가 멀리로 치워지도록 기도하고, 보상하여라. 그것이 온 인류를 휩쓸면서 내 성심과 나와 너희의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에 상처를 입히고 있다.

(1978년 11월 6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교회와 윤리와 전례상의 대혼란


이제 교리와 윤리와 전례상의 대혼란에 대해서 말할 때가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진작 네게 말했어야 하지만 미처 기회가 없었던 참이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바꿀 것을 주장했다. 그것도 '공의회'를 역행하는 방향으로 바꿀 것을 주장했다. 왜냐하면, 일어난 사건들의 실체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너는 "실체"(substantia)라는 낱말의 뜻을 잘 알고 있는데.... 그것은 모든 개연적 사건 속에 내재하는 요체이다. 그런즉 공의회와 반대 방향으로 행동하기를 원한 자들은 그들의 의도를 온전히 감추고, 겉으로는 오히려 모든 것을 공의회 (정신)에 따라 개혁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할 필요가 있었다. 그 결과 공의회가 열렬히 원하고 권고한 영적 쇄신이 실제로는 '계시'와 전체적인 '구속'이라는 위대한 유산을 와해시키는 활동이 되고 만 것이다.


따라서 매우 많은 신학적 오류와 교의적 오류와 윤리적 오류가 더없이 음흉한 구실을 달고 나타났고, 그런 오류에 의거해서 '성서'에 실질적인 손상을 입혔으니, 확인된 수많은 이단 사설(邪說) 가운데 몇 가지만 수용해도 성서 자체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기에 족할 지경이 되었다. 성서가 일단 그렇게 치명타를 입게 되면 필연적으로 '복음'과 그 모든 내용도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교리상의 대혼란이 있을 뿐, 성서적이거나 신학적인 진리를 새롭게 제시하는 설명이나 발견은 없다.

하지만 이 점에 대해서는 단지 하나의 메시지가 아니라 긴 논문이 필요할 것이다. 허다한 신학자들의 입에서 나온 모든 오류와 이단의 실체 및 그 수효에 대해서 더 상세히 논해야 할 터이니 말이다.


진리와 정의가 거짓과 위선보다 우세하리라


이 교리적 혼란은 생각과 말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극도에 달해 있다. 사람들은 자유가 마치 악이든 진리이든 오류이든 그 무엇을 위해서나 아무 구분 없이 써도 좋은 물건처럼 여기는 것이다.

새로운 내 교회에서는 이와 같이 자유의 오용이 없어져야 한다. 영혼들을 구원의 심오한 계획으로부터 멀리로 끌고 가려는 이단의 확산을 금하는 것은 자유를 억누르는 것이 아니다. 아니고 말고! 그것은 다만 자유라는 선물을 올바로 사용하도록 하려는 것뿐이니, 자유라는 이름으로 죽음의 병균을 퍼뜨리고자 하는 자들을 엄중하게 벌하며 금지시키는 것은 악한 처사가 아니다. 이단은 육신 생명보다 훨씬 더 귀중한 영혼 생명에 죽음을 가져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가 되어야 사람들이 마침내 선과 진리에 마음과 영혼을 열기로 결심할 것이며, 그들이 몸담고 있는 부끄러운 처지를 자각하게 되겠느냐? 그들은 자유를 운위하지만, 마음과 영혼과 육신이 사탄의 억압이라는 가장 혹독한 억압에 속박되어 있다.

새로운 내 교회에서는 인간의 품위를 떨어뜨려 악의 세력에 굴욕적으로 예속시킬 목적으로 (하느님의 선물인) 자유를 악용하는 자에 대해서 징계 처분을 되살려야 할 것이다.

이 메시지를 읽으면 성전의 사제들을 본떠서 옷을 찢으면서 격분에 싸여, 이는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이라고 외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상관없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진리'와 '정의'가 거짓과 위선보다 우세하다는 점이다.


많은 사제들의 생각에는 이제 죄라는 것이 없다!


아들아, 대혼란이, 오 그렇다, 내 교회의 '법'에 관한 대혼란이 일어났다. 그래서 오늘날 내 사제들 가운데 많은 이들의 생각에는 이제 죄라는 것이 없다! 생명을 낳건 죽이건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적인 정기 간행물과 신문을 열심히 탐독하는 용공(容共)분자인 사제들 중에는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고, 일부 주교들도 그렇다.

그런 자들에게는 무죄한 어린이들을 수없이 많이 학살하게 하는 (낙태)법 제정도 정당하게 보이는 것이다....... 이는 하느님 대전에서 마땅히 징벌을 받아야 할 일이건만, 그들은 아마 그들 자신이 생명을 잃게 될 때라야 생각을 바꿀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인간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을 것이다.


아들아, 이는 말할 것도 없이 대혼란이다! 주교들마저 인간의 모든 법 가운데서 가장 악독한 법을, 육정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사랑 - 이 사랑은 새롭고 오랜 하느님의 '법' 전체를 포괄하는 지고(至高)의 '법'이다 - 을 혼동한 이 법을 반기는 듯한 기색으로 받아들여 윤리적 범주에서 더없이 역겨운 양보를 함으로써 이 위대한 (사랑의) 계명을 비하시켰으며, 합법적인 것과 불법적인 것, 선과 악을 뒤섞어서 애매한 데라곤 도무지 없는 내 '계명'과 '교훈'의 뚜렷한 투명성과 반대 방향으로 가려고 했으니 말이다.

이것이 대혼란이 아니라면 달리 무엇이 대혼란이겠느냐?

아들아, 네가 피곤해 보이니, 내일 다시 시작하자. 이제 네게 강복한다.

(1978년 11월 15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영적 지도자들의 거의 전반적인 결함


이미 다루었던 주제로 돌아가 보자. 바로 영적 지도자들의 거의 전반적인 결함에 대한 것이다. 그 원인들은 무엇이겠느냐? 주된 몇 가지만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1) 상당수 목자들의 사목적 감각 결여

2) 신학교와 각종 수도원 등 모든 교회 기관에 침투한 물질주의.

3) 교부학, 금욕주의 및 신비 신학적 교양의 결여

4) 심각한 내적 생활의 결여와 그 필연적인 결과로 나타나는 영혼 지도력 결여. 이는 진리와 영적 진보에 목마른 영혼들의 명백한 요구와 이 어려운 직무를 채우도록 불려진 사제들의 마음 속에 자리한 얼음장같은 냉담이 엄연한 대조를 이루기 때문이다.


아들아, 네가 만일 어둡고 냉기 서린 집에 들어간다면 어디에서 빛과 열을 얻을 수 있겠느냐? 하느님을 향해 가기를 갈망하는 영혼이 하느님을 멀리하는 사람에게서 어떻게 도움을 얻을 수 있겠느냐?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도와 주는 사람이 없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제 자리에 멎어선 채, 걸음을 떼어 놓을 수도 없을 정도로 마비되고 있는지 모른다.


삶의 최종 목적인 영원한 구원


주교들은 교회의 우두머리로서 그들에게 맡겨진 양떼들의 영성 생활에 대한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다. 순조로운 영성 생활은 각 영혼이 속해 있는 교회 안에 하느님의 생명이 거칠 것 없이 순환되고 있음을 뜻한다. 따라서 주교에게는 그에게 맡겨진 영혼들의 가장 큰 필요를 간과해야 할 의무가 있다. 주교가 거룩한 사람이라면 지혜가 모자라지 않을 것이다. 성령께서 그의 마음에 부어 주시는 직관에 따라서 영혼들이 삶의 최종 목적인 영원한 생명을 향하여 바르게 걸어가는데 필요한 효과적인 도움을 전부 구해 주려는 열성으로 불타게 될 터이니 말이다.

그럴 때에 주교는 자기가 사목해야 하는 양떼의 결함과 그늘진 곳과 필요를 분명히 보고, 거기에 요구되는 모든 것을 마련해 주려고 최선을 다하게 될 것이다. 신자들의 가정 생활이 혼수 상태에 빠져 있음을 알아차릴 것이고, 확실한 영적 지도를 받지 못한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의무를 매우 소홀히 하는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공동체의 마비 상태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인간적이고 물질적인 이익과는 무관한 그의 큰 관심사는 아주 훌륭한 사제들을 주위에 모아들여서 훌륭한 영적 "지도자"로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런 다음 그 사제들과 더불어 교회의 진정한 쇄신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결정할 것이다. 자기가 돌보는 교회 안에는 성화의 길을 걷는 데에 필요한 것이 아무 것도 부족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주교는 한 모임의 회장일 뿐만 아니라, 이단과 오류와 부도덕으로부터 그의 교회를 보호하면서 보살피고 양육해야 하는 영적 아버지이다. 따라서 인간적인 판단은 제쳐놓고 오로지 하느님의 '뜻'만을 고려하면서, 신중하고 과감하게, 그러나 깊은 믿음과 큰 사랑을 가지고 수행해야 하는 그의 임무는 자못 큰 것이다.


아들아, 나의 뜻은 주교들이 거룩한 사람이 되고, 그들 안에 하느님이며 사람인 내 삶을 반영하며 (내가 사람이 된 것은 그 때문이니까), 공포나 두려움 없이 도끼를 들이대어 악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라면 어디랄 것 없이 뿌리째 뽑는 것에 있다. 그들이 오로지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 나라의 도래와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만 일하고자 한다면, 나의 도움을 결코 거절하지 않을 작정이다. 이는 바로 나 예수가 너희에게 날마다 청하라고 가르친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오염된 모든 단체를 철저히 소독하지 않으면 안된다. 주교가 이 일에 대해 불타는 열성을 느끼지 못한다면, 세상에서 나의 사도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사목의 중심 문제는 영혼들을 사탄에게서 빼내는 것이다


내 교회를 일찍이 본 적이 없을 만큼 짙은 어둠 속에 잠기게 한 물질주의적인 관념, 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다른 민족들까지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한 이 신앙 위기는 신앙으로 돌아올 때만 치유될 수 있다. 따라서 사제들에게나 신자들에게나 슬기롭고 현명한 사목을 펴는 것이 주교들의 임무일 것이다. 교리 교사 양성소들이 있어야 하고, '성서'와 '교부들'과 '교회 박사들'에 대한 견실한 교양을 쌓게 하는 센터도 있어야 한다. 내게 필요한 사람은 방자한 신학자들이 아니라, 사제직의 위대성과 사제다운 권한을 충분히 자각하는 지혜롭고 거룩한 사제들이다.

주교들은 이를 깨달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 일해야 하며, 이를 향해서 그들의 사목을 이끌어 가면서 지엽적인 것은 모두 제쳐 놓아야 한다.


아들아, 한 번 더 분명히 말하지만, 목자와 사제들이 영혼과 육신 - 왜냐하면 육신은 영혼의 버팀목이요, 영혼을 위해 부여된 것이니까 - 의 힘을 온통 경주해야 할 사목의 중심 문제는 사탄과 그의 패거리에게서 영혼들을 빼내어 원래의 주인인 내게 돌려 주는 일과, 마음이 곧고 깨끗한 사람들이 오류에 말려들지 않고 원수의 간계에 넘어가지 않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막는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사람들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내가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정화는 내게 봉헌한 사람들이 그들의 무분별로 말미암아 할 줄을 몰랐거나 하기를 원하지 않았던 일을 할 것이다.

네게 강복한다, 아들아. 나를 사랑하여라!

(1978년 1월 5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위기에 처한 내 신비체


내가 이제 말하려고 하는 주제에 새로운 것이 아니다. 앞에서 암시했듯이, 바로 내 교회를 휩싸고 있는 어두운 그늘들에 대한 것이다. 여기서 내가 복수꼴을 써서 그늘들이라고 말한 것은 그늘의 수가 여럿임을 뜻한다. 그 모든 그늘들은 그러나, 신앙의 위기라는 단 하나의 원인에서 나온다.

신앙은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하느님의 큰 선물이다. '구속'의 열매로서, 열려진 내 자비로운 성심으로부터 솟아나오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의 '생명'이다. 이 생명은 어둠 속을 비추는 빛이다(요한 1,4-5 참조 - 역주).

사람은 생명을, 곧 나의 신적 생명을 증가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다. 또한 이 생명을 약화시키고 불씨마저 꺼뜨려서 생명의 힘과 에너지를 모조리 다 없앨 수도 있다.


내 신비체가 위기에 처해 있다. 바야흐로 뇌우가 쏟아지려고 할 때의 땅의 모습처럼 어두운 그늘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내 교회가 위기에 처해 있는 이유는, 그 구성원들이 물질주의라는 바이스(공작물을 고정시키는 공구 - 역주)에 물려, 신앙의 내적 생명인 하느님의 생명을, 그리고 신앙과 더불어 바람과 사랑도 질식시키고 있는 데에 있다.


나는 너에게 불이 꺼져 버린 등불에 대해 말한 적이 있는데, 이는 그 안에서 은총의 신적 생명이 더 이상 순환되지 않고 고동치지도 않는, 수많은 사제들과 더욱 많은 신자들의 영혼을 가리킨다.... 사제는 말할 것도 없고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든지 불이 켜진 등불이 되어, 어둠 속에 잠긴 이 세상에 빛을 퍼뜨려야 한다. 사람이 된 하느님의 영원한 '말씀'이요, 세상의 '빛'인 나를 증거하기 위함이다.


항구하고 충실한 신앙 생활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항구하고 충실한 신앙 생활을 해야 한다.

하늘의 비추임을 받은 내 대리자가 이 문제에 대해서 최근 수년 동안 힘주어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내 대부분의 사제와 신자들은 그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오히려 비웃음과 조롱거리로 삼기 일쑤였다.


아들아, 그토록 몰지각하고 뉘우칠 줄 모르는 태도를 보면서 내가 어떻게 깊은 비통에 잠기지 않을 수 있겠느냐? 사탄이 키워 온 물질주의가 오래 전부터 인류를 더럽히며 퍼지기 시작하여, 갈수록 더 많은 영혼들 속에서 비할 데 없는 선물인 믿음, 바람, 사랑, 내적 생명 및 하느님의 은총을 꺼뜨리고 있다. 하느님의 은총이 없으면 아무도 구원될 수 없는데 말이다.

물론, 내 신비체에는 활기차게 움트는 새싹들이 있다. 많은 이들의 눈에 드러나건 드러나지 않건, 그들은 현재의 이 사막 속에서 정화되고 쇄신될 내 교회에서 풍성하게 자라날 새싹이다. 오늘날의 교회는 수풀과 뒤얽힌 덤불과 가시와 마른 나뭇가지가 많아서 착한 이들이 길을 헤치고 나가기가 매우 힘들게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재 속에서 은근히 타고 있던 불씨가 큰 불길이 되어 타오를 때가 올 것이고, 그때에는 모든 것을 살라 버릴 것이다. 그러면 인간의 어리석음과 교만과 불순결과 여타 모든 추악함의 결과들이 말끔이 사그라진 깨끗한 땅에 수많은 생명의 싹이 돋아날 것이다.

땅은 풍성하고 비옥한 동산이 되어 사람들에게 안식처를 줄 것이고, 사람들은 슬기롭고 지식이 깊어져서 하느님과 화해하고, 나와 그들 사이에도 화해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들은 '사랑' 안에서 평화롭게 살 것이다.


삶의 의미


나는 사제들과 신자들이 그들을 억눌러 숨막히게 하는 무거운 짐에서 해방되어 '빛'이요 참 '생명'인 나에게로 회두하고, 그들의 타락을 묻지 않고 사랑으로 기다리시는 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옴으로써 삶의 의미를 새로이 되찾게 되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라는지 모른다.

아들아, 그래서 너에게 말하는 것이니, 내 사제들에게 내 자비로운 마음의 고통을 알리고, 내 아버지의 '사랑'에서 떨어져 나가 멸망과 죽음의 길을 가고 있는 아들들을 보는 아버지의 고통을 알리려는 것이다.


가련한 영혼들! 내가 속량해 주었건만, 그들은 지금 술에 취한 소경처럼 어둠 속을 더듬거리며 걸어가고 있다. 그들은 창조주 하느님의 선물인 이 세상 삶은 영원한 생명을 지향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모른다. 또한 이 세상 삶은 짧고 덧없는 것이어서 낫을 한 번 대면 그대로 시들어 죽고 마는 풀이나 들꽃 정도의 수명밖에 없다는 것도 모른다.

가련한 아들들! 그들은 교만과 거만과 방자함 때문에 어둠 속에 잠겨서 그들 자신마저 알아보지 못할 지경이 되고 말았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에게 참된 회개의 은총을 얻어 주어야 한다. 한 번 더 말하거니와, 회개해야 할 사람이 많이 있다.


기도하고, 다른 이들에게도 기도를 청하며, 고난과 어려움도 봉헌하여라. 각자의 삶 속에 산재한 고통을 믿음으로 감수하고 아낌없이 봉헌하면, 그것이야말로 은총과 자비의 누룩이 된다.

그러나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다. 이 시간을 유익하게 쓰지 않는다면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믿음과 형제적 사랑으로 너와 일치해 있는 사람들과 너에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너는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1975년 9월 25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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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모든 연옥영혼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고,
특히 전세계로 퍼진 코르나19로 죽은 모든이에게 자비를 베풀어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아멘.

세계 곳곳에서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의 한숨과 기도를 들어주시고, 국민들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지도자들이 회개하여 주님 품으로 돌아오게 하소서. 아멘.

성령의 불길이 한반도에서 전세계로 퍼져나가길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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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http://예수.kr ,  http://마리아.한국)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자비의 예수님, 양점상 마리아와 장한상 요셉과 장가브리엘과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에게 구원의 은총 속에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교회와 교황님과 사제와 수도자와 온 세상의 모든 이들과 태아에게도 은총과 자비를 베푸소서. 온 세상과 우리 나라에도 사랑과 평화와 축복이 가득하게 이끌어주소서. 성모 마리아님과 배필이신 성 요셉과 성인의 통공 안의 모든 가족들은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이 모든 것을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1,3)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1,3) 

♥장한상요셉, 양점상마리아, 장가브리엘,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들 (성인의 통공)♥ 

♥안토니오 비오, 릿다, 미카엘, 이 땅의 모든 사람들 (성인의 통공) 

미사신청 : 11월 1일~3일, 11월 7일, 11월 9일, 11월 30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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