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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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부리는 사람 비유의 핵심은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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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연 [fisherpeter] 쪽지 캡슐

2021-01-27 ㅣ No.144049

 

오늘 복음은 다들 아시다시피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의 상세하고 깊은 뜻을 가슴으로는 잘 알 수가 없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이미 복음에서 그 비유의 뜻이 무엇인지 해설을 달아놓은 특이한 경우입니다. 보통은 다른 비유는 그냥 비유의 예시만 있지 설명이 나오지 않습니다. 독특한 부분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 환호송을 보면 아주 명쾌한 답을 하나 알 수가 있습니다. 씨앗은 하느님의 말씀, 씨 뿌리는 이는 그리스도이시니 그분을 찾는 사람은 모두 영원히 살리라.

 

이 내용을 숙지하면 오늘 복음은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가 있는 복음입니다. 개별적인 내용은 성경의 내용을 참조하면 될 겁니다. 저는 포괄적으로 개괄적으로 한번 복음을 묵상하고 싶습니다. 일단 복음의 전체적인 틀은 씨를 뿌리는 사람의 씨앗의 특징은 똑같습니다.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씨앗 자체가 그리스도의 말씀이시니 그렇습니다. 씨앗 자체가 불량일 조건은 없다는 것입니다.

 

씨앗은 완전무결한 씨앗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전제를 깔고 묵상을 하는 것과 그냥 묵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를 거라고 봅니다. 이런 전제를 제시해야만 오늘 복음이 더 잘 이해되리라고 봅니다. 밭의 상황에 따라서 씨가 잘 자라는지 잘 자라지 않는지 하는 변수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전적으로 밭의 상황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근데 조건이 몇 가지로 나누어지지만 두 조건으로 양분하면 좋은 땅이냐 좋지 못한 땅이냐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 20절에 보면 그러나 말씀이 좋은 땅에 뿌려진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다.”라고 나옵니다. 그럼 이 이전에 나온 땅은 다 좋지 못하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그러나라는 역접의 접속사를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설명하는 예수님의 말씀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받아들여 몇 배의 몇 배의 열매를 맺는다고 나옵니다. 결국 밭은 여러 경우가 있지만 좋은 밭이라는 것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좋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느냐 맺지 않느냐의 관건은 말씀을 듣기만 해선 안 되고 듣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것은 모든 밭에 적용이 됩니다. 다만, 길 가에 떨어진 것을 제외하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단순화시키면 이렇게 됩니다. 말씀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사람과 흘리지 않는 사람 이렇게 나누어볼 수가 있습니다. 흘리지 않는 것만으로 좋은 밭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 말씀에 뿌리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 뿌리가 약하면 씨앗이 자라 싹이 틀 수가 없을 겁니다. 그 뿌리가 바로 말씀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마음 바탕이 될 것입니다. 어쩌면 오늘 복음의 딜레마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단순한 비근한 예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천국을 사모하고 신앙생활을 하지만 각자 한 개인 개인의 면모를 살펴보면 사실 복음에 보면 엄연히 천국이 어떤 곳이고 또 누구나 가야 하는 곳이라는 걸 알지만 실상은 그런 천국이 복음에 누누이 언급되어 있어도 실제 천국이 있다고 확신하는 정도도 사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이처럼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것, 즉 말씀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마음 자세도 이처럼 정도의 차이가 있을 겁니다.  바로 이게 복음에 나오는 밭이라는 토양의 조건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무리 씨가 좋아도 토양이 척박한 곳에서는 싹이 잘 자라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씨가 잘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토양을 비옥하게 가꾸어야 할 것입니다. 그 방법이 무엇이 있을지가 참으로 어려운 숙제일 것 같습니다.

 

저는 척박한 땅을 비옥한 토양으로 만드는 데에는 특효 처방약 같은 비법은 없을 거라고 봅니다. 제가 생각하는 비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또 인내가 필요할 겁니다. 우리의 마음 바탕에는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원죄의 속성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원죄로 인해서 파생되어 생긴 죄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죄를 씻기 위해 안간힘을 다 쏟아야 할 겁니다. 옷에 비유를 한다면 그 죄는 원래 깨끗한 옷이였는데 주변의 환경으로 인해 옷이 더러워져서 생긴 것입니다. 더러운 옷을 세제로 씻어내야 하듯이 그 세제 역할을 하는 게 바로 말씀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무리 좋은 세제라도 옷에 묻은 때가 묵은 때이면 쉽게 때를 제거할 수가 없습니다. 워낙 묵은 때가 강력하기 때문에 세제가 아무리 좋아도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처럼 묵은 때를 씻어내기에는 숨이 막힐 정도로 힘이 들 거라는 사실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입니다.

 

결국 우리는 바로 묵은 때를 제거하는 방법이 바로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좋은 밭이 되는 조건이 될 겁니다. 그러면 당연히 말씀이 깨끗한 환경에서 잘 받아들여져 몇 배의 결실이 맺어질 거라고 봅니다. 묵은 때를 제거하는 방법은 여러 차례 세탁을 해야 할 겁니다. 여러 차례 세탁이 바로 무엇과 상통할 것 같습니까? 바로 돌같이 무딘 우리의 마음을 하느님 말씀으로 계속 우리의 마음에 씨를 계속 뿌려야 할 것입니다. 이 씨가 계속 뿌려진다면 언젠가는 죄로 얼룩진 마음의 얼룩이 지워지거나 옅어질 날이 올 겁니다. 그러는 데 걸리는 시간이 결코 짧지 않다는 것입니다.

 

저는 모르긴 몰라도 그 시간은 우리가 숨이 멎을 때까지 계속 해야 할 거라고 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의 핵심은 저의 짧은 소견으로는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말씀을 읽고 읽고 또 읽고 또 읽으면 언젠가는 우리의 마음 밭이 비옥한 마음 밭이 될 수 있다는 뜻이 오늘 복음의 숨겨진 뚯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성경적인 지식을 떠나서 언어적인 제 감각으로는 이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전하려고 하시는 깊은 뜻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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