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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인 대축일 제1독서 (요한묵시7,2-4.9-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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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인 대축일 제1독서 (요한묵시7,2-4.9-14)
오늘은 천국에 있는 모든 성인들을 모두 합쳐서 기념하고 축하하는 날이다. 이 축일의 유래는 이러하다. 로마에는 예수님께서 강생하시기 전에 이미 여러 신들에게 바쳐진 웅대한 신전이 있었다. 고대 로마인들은 가지각색의 신들을 숭배하며, 더욱이 자신들이 정복한 다른 민족의 신까지 숭배했다. 그래서 이러한 무수한 신들에게 일일이 제사를 지낸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므로 그들은 하나의 원형 신전을 세우고 그곳에서 모든 신들을 합사(合祀)했다.
로마인의 소위 판테온(pantheon)은 이 신전을 말하는데, 현재도 남아 있어 로마를 방문하는 여행자들의 빼놓을 수 없는 관광지가 되어 있다. 로마가 가톨릭의 혜택을 받자 이 신전은 성당으로 개조 되었으며, 전에 잡신들의 상이 있는 곳에 성인들의 성상이 들어섰을 뿐 아니라 성인 순교자들의 유해가 카타콤바에서 그곳으로 옮겨졌다.
609년 5월 13일 성 보니파시오 4세 교황님이 로마의 판테온 신전을 교회에서 사용하도록 허락하시고, 성모 마리아께 봉헌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835년 그레고리오 4세 교황님이 이 성당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모든 성인들께 봉헌하시고 11월 1일을 기해 그들을 기념하는 날로 정하고 온 교회에 전파하였다. 그래서 오늘 묵시록의 7장 4절의 '인장을 받은 이들의 수가 144,000명'이라는 말씀과 묵시록 7장 9절의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권에서 나온, 아무도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라는 말씀을 묵상하게 된다.
인장(표; stigma)을 찍는다는 것은 소유물로 삼는 것을 상징하는데 (에제9,4참조), 하느님께서 당신 종들에게 인간의 능력의 한계를 넘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참아낼 수 있도록 어떤 초자연적인 힘을 주시며, 동시에 악인들이 받는 벌의 판결에서부터 보호되리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144,000 은 상징적 숫자인데, 구약의 이스라엘 12지파를 표시하는 12 와 민족들과 연관하여 충만을 의미하거나 신약의 12사도를 의미하는 12 , 그리고 하느님의 영역에 속하는 완전수 1,000 이 결합된 숫자(12x12x1000)다. 셀 수 없이 많은 백성이 하느님의 구원을 얻을 것임을 상징적으로 표시한다.
아무도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는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이 (창세15,5; 32,12) 살아 있으며, 참 이스라엘인 교회를 통해 실현됨을 말한다.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이라는 표현은 묵시록의 전형적인 표현으로서 세상에 있는 모든 백성을 가리킨다. 야자나무 가지를 들고서 어좌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은 많은 어려움을이겨내고 하늘 나라에 개선한 사람들임을 가리킨다. 구약에서 종려나무 가지를 흔든다는 것은 승전의 기쁨을 표시하기 때문이다.
모든 천사가 어좌와 원로들과 네 생물 둘레에 서 있다는 말씀이 나온다. 흰 옷을 입고 금관을 쓴 원로 24명이란 말이 묵시록 4,4절에도 나오는데, 이 사람들이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다. 천사들을 상징한다고 보는 견해, 선택 받은 사람들, 지상에서 고생하고 승리의 월계관을 쓴 위대한 사람들을 상징한다고 보는 견해, 하느님께서 재판하실 때 배심원 역할을 하면서 도와드리는 원로 천사라는 견해(다니10,9; 시편89,8; 이사24,23), 역대기 1서 25장 1~35절에서 말하는 하느님 궁전 성가대처럼 하느님 앞에서 찬양하는 24명의 선택된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견해들도 있다.
24는 12+12로서 구약의 이스라엘 12지파와 신약의 새 이스라엘의 시초인 12사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흰옷은 초월적인 것을, 어좌 혹은 옥좌는 권위를, 금관은 그들이 받을 상급을 나타낸다고 볼 때, 24원로는 천상 하느님 백성의 상징적 존재일 거라고 본다. 네 생물이란 표현이 묵시록4,14절에 나오는데, 이미 에제키엘서 1장 5~14절에 언급되어 있는 '사자, 송아지, 사람의 얼굴, 독수리처럼 생겼다.'는 말씀에서 유래한다. 이 넷은 짐승도 사람도 아닌 천사를 가리킨다.
이들이 눈들이 많다는 것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전부 다 본다는 의미이고 눈은 성령을 상징한다. 네 생물의 기능은 하느님의 옥좌 앞에서 끊임없이 창조주께 영광을 드리기 위해 창조물 중 가장 강하고 가장 고귀한 존재들을 표현한 것 같다. 교부들은 영성적으로 재해석하여 네 복음사가를 가리켰다. 마태오 복음은 예수님의 족보로 시작되므로 사람 모습, 마르코 복음은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사자후 소리로 시작하므로 사자 모습, 루카 복음은 즈가리야 사제의 제사 이야기로 시작하므로 제물로 바쳐지는 송아지 모습, 요한 복음은 한 처음에 하느님의 말씀이 저 높은 곳에서 떠돌다가 말씀에 의해서 세상이 창조되었다고 하므로 독수리 모습으로 상징된다는 것이다.
묵시록 7장 14절의 큰 환난은 도미티아누스 황제 치세 말년(A.D.81~96년)의 대박해를 암시하는 것으로 보이며, 예수님께서 종말론적인 담화에서 인용하신 다니엘서 12장 1절의 '큰 환난'을 가리킨다고 본다. 그리고 종말론적 예언의 차원에서 모든 시기의 교회가 감당해야 할 모든 투쟁과 박해를 암시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어린 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했다는 말씀이 묵시록 7장 14절의 끝에 나온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더럽혀진 생활을 깨끗이 청산하고 용서받게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즉 어린양이 겪은 시련과 고통의 결과로서 의인들이 나타난다 (이사1,18; 64,5; 즈가3,3~5참조).
묵시록에서도 흰옷 입은 사람들이란, 하느님의 자비로 용서받고 구원받은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 사람들이 자기 예복을 어린양의 피로 희게 빨았다는 것은 인류 구원 사업은 인간이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임을 말한다. 그러나 또한 무죄하신 그리스도께서 보배로운 피를 흘리시고 죽으심으로써 얻은 선(善)과 그 효과(구속 성혈의 공로)가 자동적이고 피동적인 것은 아니며, 인간이 그리스도의 피의 효과를 자기 것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도 포함된다.
오늘 우리는 모든 성인 대축일을 맞이해서 천국(개선지회; 凱旋之會; 개선한 교회; Ecclesia triumphans)의 성인 성녀들을 바라보면서 발은 땅에 딛고 있지만, 천상의 영원한 생명과 복락을 희망해야 한다. 지극히 거룩하시고 존엄하신 천주성삼께서 계시는 천국에 가지 못한다면, 우리의 믿음 생활과 지상의 나그네 삶이 무슨 가치가 있는가? 한마디로 구원 받지 못한다면, 이 땅에서 숨 쉬고 산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씀대로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이미 그 목적을 달성했으니 우리도 힘과 용기를 내어야 한다. "성인 성녀들이 인간이었고 나도 인간이기 때문에, 그들이 성인이 되었다면 나도 성인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골로3,1~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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