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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14일 (금)
(녹) 연중 제32주간 금요일 그날에 사람의 아들이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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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2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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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5-11-12 ㅣ No.186252

피정 중에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강의하신 신부님께서는 변화에는 세 가지 차원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물리적인 변화, 생물학적인 변화, 그리고 사회학적인 변화입니다. 먼저 물리적인 변화는 물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온도에 따라 물은 고체가 되기도 하고, 액체가 되기도 하며, 기체가 되기도 합니다. 본질은 같지만, 형태는 달라집니다. 생물학적인 변화는 애벌레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땅 위를 기어다니던 애벌레는 어느 순간 고치를 짓고, 그 속에서 자신을 녹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늘을 나는 나비가 됩니다.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그 안에서 새로운 존재로 태어납니다. 사회학적인 변화는 정보, 자원, 기술의 발전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정보가 독점되던 시대에서 이제는 나누고 공유하는 사회로 변화하였습니다. 자원이 소수에게 집중되던 시대에서 협력과 나눔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이제는 인공지능(AI)의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저도 그 변화를 실감합니다. 영어 강의가 실시간으로 통역되고, 화면 속 영어 자료가 즉시 한국어로 번역됩니다. 기술의 발전은 놀랍지만, 신앙 안에서의 변화는 그보다 더 깊고 본질적입니다.

 

60년 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Ecclesia est semper reformanda! (교회는 항상 쇄신되어야 한다)” 교회가 쇄신되어야 하듯, 신앙인인 우리도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 시작을 우리는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에서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야고보, 요한, 베드로를 데리고 타볼 산에 오르셨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의 얼굴과 옷이 빛으로 변했고,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대화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도 변화를 촉구하셨습니다. “너희는 잔치에 초대받으면 윗자리에 앉지 말고, 오히려 맨 아래 자리에 앉아라.” 하셨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내가 한 것처럼 너희도 그렇게 하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나를 따르려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그렇습니다. 변화의 핵심은 겸손과 희생입니다. 세상의 변화는 정보와 자원, 기술로 이루어지지만, 신앙인의 변화는 겸손과 희생으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그 길은 낮아짐의 길이요,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는 길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깊을수록 인간적인 교만은 사라지고, 겸손은 영혼의 빛으로 드러납니다.

 

토마 사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분의 상처를 직접 보고, 손으로 만져 보기 전에는 믿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고 했고, 니체는 시대의 신앙을 비판하며 신은 죽었다.”라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하느님 나라는 누군가가 대신 알려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AI가 대신 가르쳐 줄 수도 없습니다. 신앙의 길은 내비게이션으로 안내받을 수 있는 여정이 아닙니다. 스스로 묻고, 그 질문의 깊이 속에서 하느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 진리를 깨닫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찾는 사람은 바로 그렇게 끊임없이 묻고, 대화하고,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지혜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밤은 빛을 밀어내지만, 악은 지혜를 이기지 못한다. 지혜는 세상 끝에서 끝까지 힘차게 퍼져 나가며 만물을 훌륭히 통솔한다.” 지혜는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우리가 참된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하느님께 청원하고, 다짐하며, 대화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는 우리를 변화시키는 힘이며, 인간의 지혜를 하느님의 지혜로 이끌어 주는 통로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보라, 여기에 있다.’, ‘저기에 있다.’ 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 나라는 과거의 일이 아닙니다. 또한 먼 미래에 올 일도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는 지금, 여기, 우리 가운데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서 그 완성을 향해 걸어가는 순례자들입니다. 세상은 변화를 두려워하지만, 신앙인은 변화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습니다. 세상은 편리함을 추구하지만, 신앙인은 겸손과 희생 속에서 참된 평화를 찾습니다. 그 길이 바로 예수님께서 걸으신 변모의 길, 십자가의 길, 그리고 부활의 길입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변화는 모양의 변화가 아니라 마음의 변화입니다. AI의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진리는 이것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하느님과 대화할 때, 우리는 이미 하느님 나라 안에 살고 있습니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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