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8일 (월)
(백)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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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2주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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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corenelia] 쪽지 캡슐

2025-12-07 ㅣ No.186713

[대림 제2주일 가해] 마태 3,1-12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선배 신부님들이 공통적으로 후배들에게 해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강론과 고해성사만 없다면 사제직은 천직이다.” 신자들이 하느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고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선포하는 일이, 또한 신자들이 고해성사를 통해 자기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회개하도록 이끄는 일이 그만큼이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저도 나름 사제로 10년 이상을 살아보니 신자들이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 저 자신이 남의 말을 듣는 일임을, 신자들이 회개하게 만드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이 저 자신이 진심으로 회개하는 일임을 깨닫게 됩니다. 어쩌다 미사 중에 다른 신부님이 하시는 강론을 들을 일이 있으면 마음을 열고 집중하기가 참으로 힘들기 때문입니다. 늘 남의 죄를 듣고 용서해주는 예수님의 입장에만 서 있다보니, 정작 저 자신의 죄를 성찰하고 인정하며 뉘우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오늘 복음에 나오는 바리사이와 사두가이들처럼 ‘종교 지도자’라는 교만과 권위의식에 갇혀 지내면서, 마음 속에 높고 단단한 성벽을 쌓아올린 탓이겠지요.

 

오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이 그런 우리에게 던지는 무겁고도 단호한 메시지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마음 속에 쌓아올린 높은 성벽이 나중에 내가 하느님 나라로 건너가지 못하게 가로막는 깊은 구렁이 되지 않게 하려면, 더 늦기 전에 그 성벽을 완전히 허물어 버리고 내 마음과 삶 속에 ‘주님의 길’을 마련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길’은 ‘일방통행’ 길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나를 구원하시려고 나에게 오시는 길인 동시에, 내가 주님의 뒤를 따라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는 구원의 길이기도 하지요. 그러니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주님의 길을 잘 닦아두면, 그분께서 보다 빠르고 수월하게 내 마음 속에 들어오시어 나를 구원으로 이끄실 수 있고, 또한 나도 엉뚱한 곳을 헤매거나 지체하지 않고 보다 빠르고 수월하게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 참된 행복과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림’(待臨)시기를 그저 가만히 앉아서 주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리기만 하는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모습으로 보내서는 안됩니다. 주님께서 태어나신 소외되고 낮은 곳에 관심을 두고, 그분께서 당신 자신과 동일시하시는 작고 약한 이들을 찾아가 적극적으로 사랑과 자비를 실천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과 나 사이에 드넓은 “구원의 고속도로”를 놓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중요한 일을 진심으로, 전력을 다해 하지 않고 남들 눈치를 보며 적당히 하려는 이들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이 바로 그런 모습입니다. 그들은 세례자 요한이 전한 회개의 메시지를 ‘내 이야기’로 여기며 귀기울여 듣지 않았습니다. 자기 잘못을 진지하게 성찰하며 뉘우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다른 많은 이들이 그렇게 하니까, 그렇게 하면 다가오는 하느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다고 하니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보험’을 들어두는 마음으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고 한 것이지요. 그런 속마음을 훤히 꿰뚫어본 요한은 그들을 ‘독사의 자식’이라고 비난합니다. 세례를 받기 위해 꼭 필요한 준비인 ‘회개’는 하지 않으면서, 세례가 주는 유익함만 누리려고 드는 계산적인 모습을 지적한 겁니다. 그런건 주님께서 우리에게 닮으라고 권하신 ‘뱀 같은 슬기로움’이 아니라, 아담과 하와를 죄짓게 만든 ‘뱀 같은 간사함’일 뿐이지요. 세례자 요한은 더 나아가 그들의 마음 속에 뿌리깊이 박혀있는 ‘선민의식’도 지적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느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신 이스라엘 민족에 속한다는 이유로, 더 나아가 그 민족들을 하느님께로 이끄는 중요한 소명을 맡았다는 이유로, 자기들이 ‘당연히’ 구원받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특별한 신분에 속하거나 대단한 소명을 받아서 구원받는 게 아니라, 자기가 받은 소명을 충실히 수행하며 하느님 백성답게 살아야 구원받는다는 것이지요. 그건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그저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가만히 있어도 구원받는 게 아닙니다. 하느님 자녀답게, 그리스도인답게 살아야 구원받습니다.

 

하느님 자녀답게, 그리스도인답게 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면서 회개를 강조합니다. 회개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회개가 무엇인지부터 분명히 알아야겠지요. 첫째, 회개는 탐욕과 집착에 사로잡혀 세상을 향하던 시선을 하느님께로 되돌리는 일입니다. 마음으로만 하느님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행동과 삶으로 그분 뜻을 실천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내가 하느님과 완전히 일치되는 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둘째, 회개는 하느님께서 나를 창조하실 때 담아주신 고유한 본성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나는 아주 작지만 하느님의 일부를 닮은 그분의 모상입니다. 그분께서 나에게만 심어주신 특별한 선함과 사랑이 내 마음과 영혼에 새겨져있지요. 그러나 자꾸만 나를 남과 비교하는 사이, 익숙하고 편하다는 이유로 죄의 어둠 속에 안주하는 사이, 그 선함과 사랑이 약해지고 자기 자신을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하루 빨리 회개해야 하는 겁니다. 셋째, 회개는 나의 잘못으로 멀어져버린 이웃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말로는 미안하다고 하면서 그 마음을 상대방에게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말로는 잘못했다고 하면서 그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 않으면, 그와 맺은 신뢰와 사랑의 관계가 깨져버리지요. 그러니 소중한 사람을 영영 잃고 나서 후회하지 않으려면 나중으로 미루지 말고 지금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이렇게 세가지 차원에서 회개를 철저히 실천해야만, 주님께서 베푸시는 성령과 불의 세례를 통해 하느님을 닮은 완전한 모습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 안에 맞아들였다고 해서 회개가 끝나는 게 아닙니다. 주님과 그분 뜻을 내 마음 안에 받아들였다면, 내 삶이 주님으로 인해, 그분께서 바라시는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하지요.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강조합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을 만나 구원에 이른 이들은 그 만남을 통해 자기 삶 전체를 변화시켰습니다. 계속적인 간음으로 자기 몸과 영혼을 더럽히던 여인은 예수님을 만난 후 그 악습을 끊어버림으로써 거룩하고 깨끗하게 변화되었습니다. 돈에 집착하여 남을 등쳐먹던 세리 자캐오는 예수님을 만난 후 탐욕을 비움으로써 가난한 이웃을 위해 자기 재산을 기꺼이 내어놓았습니다. 평생 고기 잡는 일만 생각했던 어부들은 예수님을 만난 후 그물과 배, 심지어 가족까지 버리고 그분을 따름으로써 사람을 낚는 어부, 즉 하느님의 일을 하는 참된 일꾼인 ‘사도’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나는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어떻게, 얼마나 변화되었습니까? 내가 회개를 통해 맺은 열매는 구원받기에 충분할까요?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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