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동성당 게시판

경축 / 제265대 교황 베네딕토 16세 성하의 탄생

인쇄

심재엽 [simjy] 쪽지 캡슐

2005-04-20 ㅣ No.4719

[경축] 제265대 교황 베네딕토 16세 성하의 탄생을 축하드립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성령께서 우리에게 제265대 교황님으로 요셉 라칭거 추기경님을 보내주셨습니다.

      베네딕토 16세라는 교황명을 선택하신 새 교황님의 선출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교우 여러분들의 많은 기도와 축하의 글을 부탁드립니다.

 제 265대 교황으로 선출된 베네딕도 16세(독일, 요셉라칭거) 추기경

 

 새로 선출된 교황 베네딕도 16세가 손을 흔드는 모습

 

 새 교황 베네딕도 16세(독일, 요셉 라칭거)

독일의 요제프 라칭어 추기경이 256대 교황으로 선출됐다.

 

이날 오후 5시 50분(현지시간) 콘클라베(추기경단 비밀회의)가 이틀째 회의가 열린 시스티나 성당에서 흰 연기가 피어 올랐으며 6시4분 성베드로 대성당은 교황 선출을 알리는 종을 울렸다.

 

교황에 선출된 라칭어 추기경은 앞으로 사용하게 될 교황 명으로 베네딕트 16세를 선택했다. 베네딕트 16세는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종 이후 17일 만에 전 세계 11억 가톨릭 신자를 이끌어 나갈 새 교회 지도자가 됐다.

라칭어 추기경은 교황 선출 콘클라베가 시작되기 전부터 가장 유력한 후보 중 하나로 거론돼 왔다.

 

그는 1927년 독일에서 태어났으며 뮌헨 대주교를 거쳐 1977년에 추기경에 서임됐다. 교황청의 신앙 교리를 오랫동안 담당했으며 초보수적인 교리해석으로 가톨릭 교회에서도 '신의 로트와일러(독일산 맹견) '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강경 보수파다.

 

동성애, 이혼, 인간복제 등을 전통적 윤리에 반하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해방신학, 종교 다원주의, 여성 사제 서품 등에도 반대해 왔다.

 

그는 가톨릭이 세속주의 및 타 종교의 위협에서 벗어나 정통 원리원칙에 충실해야 한다고 주장해 보수파들에게는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고령과 보수적인 시각에 대해 반대하는 이들도 적지 않으며 특히 콘클라베 전후로 그가 10대 때 독일 나치의 청년 조직인 '히틀러 유겐트(Hitlerjugend) '에 가입한 전력이 불거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라칭어 추기경은 서거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가장 가까운 조언자 중 하나로 콘클라베 기간 동안 교황 선출 추기경단 의장을 맡아 왔다

[기사] 제265대 교황선출 관련기사

[중앙 일보] 제 265대 교황 선출관련 기사

 

 

 

  

 

◆ 제265대 교황 선출 '콘클라베' 

                       - 라칭거·마르티니 추기경 초반 우세

시기 : 18일 오후 11시30분 바티칸에서 시작

참석인원:

투표권이 있는 전 세계의 80세 미만 추기경 117명 가운데 115명 참석. (2명은 건강상 불참)

 

장소 :

바티칸 내 교황 전용 예배당인 시스티나 성당에서 첫 투표

 

방법:
교황으로 선출되기 위해서는 115명의 3분의 2인 77표 이상을 얻어야 한다.

콘클라베 첫날에는 투표가 한 차례만 실시될 예정.

선거운동이나 사전협의 없이 이뤄지는 투표

이르면 사흘 내에 결정될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다.

30차례의 투표에서도 당선자가 없으면 2명의 결선 진출자를 뽑아 단순 다수득표자를 제265대 교황으로 선출하게 된다.

진행상황:현재 보수와 개혁세력이 맞서고 있다.

[보수진영]독일의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

[진보진영]전 이탈리아 밀라노 대주교 카를로 마리아 마르티니 추기경

 

115명의 추기경 대부분은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임명.

따라서 보수파가 일단은 유리.

라칭거와 마르티니 추기경은 각각 40~50명의 지지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누구도 3분의 2의 지지를 얻지는 못하고 있다. 이 밖에 교황청 국무장관을 지낸 안젤로 소다노, 밀라노 대주교 디오니지 테타만치, 브라질의 클라디오 우메스 추기경 등도 유력한 후보다. 그러나 요한 바오로 2세를 선출한 1978년 비밀투표 때처럼
전혀 예상하지 못한 후보가 교황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 새 교황 선출 끝나면 이번엔 종소리도 울려

교황 선출 규정이 조금 달라졌다. 과거에는 콘클라베에서 교황이 선출되면 투표용지를 태워 시스티나 성당 굴뚝으로 흰 연기를 피워올리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흰 연기를 피워올린 뒤 종을 함께 울리는 것으로 바뀌었다. 연기 색깔로 인한 혼선을 피하기 위해서다.

투표에 참가하는 추기경단의 숙소도 특급호텔 수준으로 좋아졌다. 과거 추기경단은 투표장인 시스티나 성당 안에 갇혀 숙식을 해결해야 했다. 간이침대에서 잠을 잤고 욕실은 공동으로 사용했다. 식사도 외부에서 날라왔다. 대부분 고령인 추기경들이 머물기에는 매우 불편했다. 이번에는 고 요한 바오로 2세 덕분에 숙소 문제가 해결됐다. 추기경단은 성 베드로 대성당 남쪽에 위치한 5층짜리 건물 '성녀 마르타의 집(Domus Sanctae Martae)'에 머문다. '성녀 마르타의 집'은 요한 바오로 2세의 명령으로 1995년 지어졌다. 테레사 수녀의 시복식 등 바티칸에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 해외에서 방문하는 추기경들의 숙소 등으로 쓰였다. 스위트룸 108개와 싱글룸 23개를 갖춘 특급호텔 수준의 숙소다. 방 배정은 추첨으로 한다.

(바티칸 시티 AP=연합뉴스) 독일의 요제프 라칭어(78) 추기경이 19일 265대 교황에 선출됐다.

새 교황은 교황의 이름으로 베네딕토 16세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라칭어 추기경은 교황으로 선출된 뒤 성 베드로 성당의 발코니에 나와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수만명의 순례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교황으로서 첫 축복을 내렸다.

그는 "형제자매들이여, 위대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뒤를 이어 추기경들이 신의 일터에서 일하는 어리석고 보잘것 없는 나를 선출했다"며 "나는 여러분의 기도에 내 자신을 맡긴다"고 말했다.

수세기만에 첫 독일인 교황이 된 라칭어 추기경은 1981년부터 신앙교리성의 수장으로 전임 요한 바오로 2세를 보좌해왔다.

zitrone@yna.co.kr (끝) <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기사] 교황 선출에서 공개 그리고 교황 선출 후 절차

교황 선출에서 공개까지

[한국일보 2005-04-19 18:46]

 

콘클라베(추기경단 비밀회의)에서 새 교황이 선출되면 투표장인 시스티나 성당의 굴뚝 위로 흰 연기가 피어 오른다. 제265대 교황의 탄생이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새 교황이 누군지 알기 위해서는 흰 연기가 피어 오른 후 1시간 정도 더 기다려야 한다. 선출 직후 새 교황이 거쳐야 하는 바티칸의 내부절차 때문이다.

새 교황이 선출되면 추기경단의 서기관과 공증인의 임무를 맡는 교황 전례원장이 투표장으로 불려 나온다. 추기경단 의장인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이 새 교황에게 “교황직을 수락하겠습니까”하고 동의를 구한 뒤 교황 재임시 사용할 새 이름을 묻는다. 라칭거 추기경이 교황이 된 경우에는 품계나 연계가 가장 높은 추기경이 대신한다.

이어 교황 전례원장은 두 명의 의전장을 불러 증인으로 삼는다. 새 교황이 교황직을 수락했다는 것과 그가 택한 이름을 증명하는 문서를 작성하기 위해서다.

이 순간부터 새 교황은 전세계 가톨릭 교회의 수장으로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그는 새로 선출된 교황만이 들어갈 수 있는 ‘눈물의 방’에서 빨간색 추기경복을 벗고 하얀색 교황복으로 갈아입는다. ‘눈물의 방’이란 이름은 교황으로서의 막중한 책임과 앞으로 닥쳐올 인고의 시간이 이 방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의미이다. 교황복은 크기별로 대 중 소 세벌이 준비돼 있다.

새 교황은 시스티나 성당으로 돌아와 추기경들로부터 충성을 맹세하는 순명선서와 경배를 받는다. 추기경단 의장은 성 베드로 성당 중앙 발코니에 나와 ‘새 교황이 선출됐다’는 뜻의 라틴어 ‘하베무스 파팜’을 외친다. 이어 그 동안 닫쳐있던 자주빛 발코니 커튼이 열리고 새 교황은 모습을 드러내 전세계에 축복을 내린다. 즉위식은 이후 적절한 시기에 열린다.

일반 성직자가 교황으로 선출됐을 경우 새 교황이 바티칸에 도착한 후 주교로 서품되는 과정이 추가된다.
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바티칸에서 열리고 있는 콘클라베(추기경단 비밀회의)가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 흰 연기를 피워 올려 새 교황을 선출을 알린 뒤, 새 교황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걸린다.
가톨릭 신도의 영적 지도자 자리를 수락할 것인지를 확인하고, 즉위명을 선택하며, 다른 추기경들로부터 인사를 받는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라고 BBC인터넷판이 19일 밝혔다.
일단 차기 교황이 선출되면 최고령 추기경이 수락 여부를 묻는다.
그러나 요한 바오로 2세가 재직 중에 교황직을 거부하지 않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겸허히 복종하도록 `하느님은 직무의 무게에 압도당하지 않도록 교황에게 힘을 주실 것'이라는 내용 등이 담긴 규정을 만들었기 때문에 이 절차는 요식에 불과하다.
새로 선출된 교황은 이어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받는다.
과거 몇몇 교황들은 이때 콘클라베의 뜻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알고, 미리 생각해둔 즉위명을 제시하기도 했다.
지난 78년 선출된 루시아니 추기경은 전임 교황 요한 23세와 바오로 6세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이들의 즉위명을 혼용, 자신을 요한 바오로 1세로 명명했다.
즉위명을 정한 뒤, 다른 추기경들은 새 교황에게 다가가 경의와 복종의 서약을 한다.
새 교황은 또 새 교황복을 입어야 한다. 재단사는 새 교황에게 입힐 교황복을 대.중.소 3개 치수로 준비했겠지만, 끝마무리 바느질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이후 최고령 추기경은 성베드로 대성당의 발코니에 나와 라틴어로 "안눈티오 보비스 가우디움 마그눔. 하베무스 파팜(기쁜 마음으로 알린다. 새 교황이 나왔다)"라고 외치고 즉위명을 공개한다.
곧 이어 발코니의 회전문이 열리면서 새 교황이 처음으로 군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가 몇마디 강론과 함께 "우르비 에 오르비(세계 만방)"에 축복을 내리면서 교황직을 시작하게 된다.

(서울=연합뉴스)

제네바 문정식 특파원 = 새 교황 선출에 이변은 없었다.

보수적 성향의 라칭어 추기경이 '베네딕토 16세'가 된 것은 바티칸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측통들이 이미 예상했던 결과다.
이상 보다는 현실이 앞섰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콘클라베를 앞두고 한껏 부풀어올랐던 제3세계 출신, 흑인 교황에 대한 기대는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다.
추기경단의 분포를 보면 근 40%가 제3세계 출신이지만 성향을 보자면 보수파가 압도적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그 절대 다수는 요한 바오로 2세의 재위 시절에 서임된 이들이어서 그 성향을 쉽사리 짐작할 수 있다.
극단적이지 않은 보수주의의 대변자로서 라칭어 추기경은 일단 추기경단에게 적격 인물로 보였을 것이다. 대교황으로 불리는 요한 바오로 2세의 보수 노선에서 크게 벗어난 인물을 택할 가능성은 애당초 희박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진보파들의 주장에 귀기울이지 않고 해방신학, 낙태, 피임, 동성애, 인간 복제, 여성 사제서품에 분명히 반대해왔다.
라칭어 추기경과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세속주의와 상대주의, 종교 다원주의에도 경계감을 갖고 있었다. 유럽연합(EU)의 헌법에서 신에 대한 언급이 사라진 것을 생전에 요한 바오로 2세는 애석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라칭어 추기경이 콘클라베가 개최된 지 불과 이틀 만에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얻은 것은 가톨릭 교회가 세속주의와 타종교로터 오는 위협에 직면해 있다는 라칭어 추기경의 신념에 대체로 공감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라칭어 추기경은 이런 점외에도 여러모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었다.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그는 큰클라베 첫날 회의에서 이미 40-50표를 얻고 있었다는 관측이 나온 것은 다른 후보와 차별화된 몇가지 장점에서 기인한다.
라칭어 추기경이 가장 유리했던 것은 '대전(大殿)'에 가장 가깝게 있었던 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요한 바오로 2세의 재위 시절 '부교황'이라거나 '요한 바오로 3세' 등으로 불릴 만큼 실세였다.
지난 수년간 고령과 건강 악화로 요한 바오로 2세의 존재감이 차츰 퇴색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의 위상을 날로 강화되고 있었던 것이 사실. 일부에서는 진작부터 라칭어 추기경을 사실상의 교황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그가 오랫동안 2인자 자리를 유지한 것은 전임 교황의 신임이 두터운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40여 년 전 개최된 '제2차 바티칸공의회 참여하면서부터 친분을 쌓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즉위 후 몇년이 지나지 않은 지난 1981년 라칭어 추기경에 가톨릭 교리의 수호라는 중책을 맡겼다. 전임 교황의 믿음대로 그는 진보적 신앙관과 세속주의로부터 가톨릭 교리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비타협적 노선을 견지해왔다.
진보세력에게는 라칭어 추기경의 이같은 태도가 완고한 '교조주의'로 비쳐지고 는 것이 사실. 이 때문에 독일 탱크와 맹견에 비유해 '판처카르디날'이나 '신의 로트와일러'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라칭어 추기경은 '후광'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비타협적인 성향 때문에 적들도 만들었겠지만 친화력을 통해 친구를 보다 많이 만들어두었다는 것이 바티칸 관측통들의 지적이다.
풍부한 경험도 그의 장점에 속한다. 라칭어 추기경은 실제로 2인자에 걸맞은 지도력과 행정 능력을 보여주었다.
국제 정치 무대에서 다른 국가 정상들과 교류할 수 있는 능력이 교황이 갖춰야할 덕목이라면 라칭어 추기경이 단연 우위라고 볼 수 있다. 교황청에 오래 머문 만큼 이탈리아어 구사 능력도 뛰어나다.
이탈리아 언론들은 자국 출신이 라칭어 후보와 경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동구권에 넘어간 교황권이 다시 이탈리아에 넘어가는 것을 탐탁하지 않게 생각하는 추기경들이 적지 않았던 것도 라칭어 추기경으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교황을 전담 취재하는 기자들, 즉 '바티카니스티'에 따르면 이탈리아 출신의 카를로 마리아 마르티니 추기경이 진보파로부터 지지를 얻었으나 중풍을 앓고 있다는 점도 라칭어 추기경에게는 플러스가 됐을지 모른다.
라칭어 추기경의 나이도 또다른 플러스 요인이 됐을지 모른다. 라칭어 추기경이 비교적 고령이어서 재위 기간은 상대적으로 짧을 수밖에 없다.
추기경들은 젊은 후보를 선택해 2-30년을 재위할 교황을 뽑기보다는 머지 않아 새 교황을 선택하는 수고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계산을 했을지 모른다.

 

 



616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