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동성당 게시판

경축 /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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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엽 [simjy] 쪽지 캡슐

2006-02-22 ㅣ No.5154

 

교황 베네딕토 16세 성하께서는 2006년 2월 22일 서울대교구장이며 평양교구장 서리인 정진석 대주교님을 추기경으로 임명하셨습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는 2006년 3월 26일 바티칸에서 추기경 서임 축하 미사를 주례하실 것이며,  한국에서는 2006년 4월 25일 명동성당에서 추기경서임 축하 미사를 봉헌할 예정입니다.

정진석(鄭鎭奭, Cheong Jinsuk) 니콜라오 추기경 약력

1931년

12월 7일 출생

[ 학 력 ]

 

1961년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졸업

1968년~70년

로마 우르바노대학교 대학원 졸업

 

동대학원 교회법 석사 취득

2000년 4월 18일

서강대학교 명예 법학박사 학위 취득

[ 약 력 ]

 

1961년 3월 18일

사제수품

1961년

서울대교구 중림동본당 보좌신부

1961~67년

성신고등학교 교사

1962~64년

서울대교구 법원 공증관 겸임

1964~65년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총무

1965~67년

서울대교구 대주교 비서, 상서국장

1967~68년

성신고등학교 부교장

1970년 6월 25일

청주교구장 임명

1970년 10월 3일

주교 수품, 청주교구장 착좌

1970~99년 7월 20일

재단법인 청주교구 천주교회 유지재단 이사장

1983~현재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교회법위원회 위원장

1987~93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총무

1993~96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부의장

1996년~99년10월 11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1998년 5월 30일

서울대교구장 임명

1998년 6월 29일

서울대교구장 착좌

1999년 7월 8일 ~ 현재

재단법인 천주교 서울대교구 유지재단 이사장

1999년~2002년 12월 5일

학교법인 가톨릭 학원 이사장

1998년 8월 19일 ~ 현재

재단법인 평화방송 이사

2004년10월 4일 ~ 현재

학교법인 가톨릭 학원 이사장

2004년10월 13일 ~ 현재

한국외방선교회 총재

2006년 2월 22일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아시아 특별위원회 위원 / 추기경 임명

천주교 서울대교구 정진석 대주교 추기경 서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월 22일(수),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니콜라오 대주교(74)를 추기경으로 임명했다. 정진석 추기경은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께서 서임하신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한국의 두 번째 추기경이 됐다. 1931년 서울에서 출생한 정진석 추기경은 1961년 사제서품 후 중림동 성당, 성신고등학교 교사,부교장, 서울대교구 교구장 비서,상서국장을 역임했다.

이후 로마 우르바노대학교 대학원에서 교회법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귀국 후 1970년 주교서품을 받고

청주교구장에 착좌했다. 1795년부터 1999년까지 주교회의 상임위원을 역임했으며 1983년부터 현재까지 주교회의 교회법위원회 위원장,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주교회의 의장직을 맡았다.

1998년 5월 제 13대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되었으며 평양교구 교구장 서리를 겸임하고 있다.

 

저서로는 ‘교회법 해설’ ‘목동의 노래’ ‘우주를 알면 하느님이 보인다’ ‘구세주 예수의 선구자 세례자 요한’ ‘민족 해방의 영도자 모세’ 등이 있다.

 

  서울대교구 염수정(廉洙政) 주교는 감사메시지에서 “한국교회, 나아가 아시아 교회의 새 시대를 이끌어 나갈 새 추기경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 드린다”며 기쁨을 표했다. 또한 “새 추기경의 탄생은 교회쇄신, 타종교와 일치와 화합을 통해 평화와 정의와 사랑에 더 정진하라는 메시지”라며 “새 추기경을 위해 마음을 모아 기도와 희생을 봉헌하자”고 말했다.

 

추기경은 교회의 교계제도에서 교황 다음 가는 성직자 지위를 말한다. 새 추기경은 서임되는 즉시 추기경단 특별법에 따라 교황 선거권을 포함한 모든 권리를 가진다. 2006년 2월 21일 현재 추기경

총수는 178명이고, 교황 선출권을 가진 80세 미만의 추기경은 110명이다.


  추기경을 뜻하는 영어 카르디날(Cardinal)은

라틴어 까르디날리스(Cardinalis)에서 왔는데, 이 명칭은 ‘주춧돌, 문의 돌쩌귀’라는 뜻의 까르도(Cardo)에서 나온 것이다. 돌쩌귀가 없으면

문을 여닫을 수 없듯이 추기경은 교회의 최고

목자인 교황의 주요 협력자이며 중요한 조언자로서의 역할을 한다. 추기경들은 추기경단(Collegium cardinalium)을 구성하여 합의체적으로 또는 개별적으로 교황을 보필한다.

추기경단의 합의체적인 보필은 전통적인 추기경회의(Consistorium)를 통해, 개별적인 보필은

교황청이나 바티칸 시국의 다양한 기구의 직무를 통하거나 개별 교회의 목자로서 수행한다.


모든 추기경들은 바티칸에 상주하든 하지 않던 간에 추기경들도 모두 바티칸시국의 시민권을 가지며, 교황과 마찬가지로 세계 어디서나 교구장의 허가 없이도 고백성사를 줄 수 있다.

또 추기경으로 서임되면 주교 문장 양옆의 술이 5단이 된다.


  추기경은 붉은 수단을 입어 ‘홍의주교(紅衣主敎)’로도 불리며, 추기경의 선발은 교황의 자유롭고 고유한 권한에 속한다. 성직자들이 평상복으로 입는 수단은 발목까지 오는 긴 옷이다.

수단은 성직자의 지위에 따라 그 색깔이 다른데, 사제는 검정색이나 흰색을, 주교는 진홍색을, 추기경은 적색을, 교황은 항상 흰옷을 입는다. 로만 칼러에 앞이 트인 옷으로 30-40개의 단추가 달려 있다. 수단이란 말은 ‘밑에까지 내려오는 옷’이란 뜻의 프랑스어(soutane)에서 유래되었다.

정진석 추기경의 삶과 신앙

 

 정진석 추기경은 1931년 12월 서울 수표동에서 태어났다.

명동성당에서 유아 세례를 받았고, 계성초등학교 4학년 때

견진성사를 받았다. 정 추기경은 친가,외가 모두 독실한 가톨릭 집안이다.


어려서부터 성당에서 복사(服事, 미사 등을 거행할 때 집전하는 사제를 도와 의식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보조하는

사람)를 하다 자연스럽게 성소(聖召)의 싹이 텄다.


  중앙 중학교 2학년 때 광복을 맞은 정 추기경은 당시 극도로 혼란스러운 사회 상황에서 “하느님은 안 계시다, 영혼은 없다”라는 무신론, 유물론에 물들게 된다. 그러던 1947년 사순절 때 명동성당에서 윤형준 신부의 사순절 특강을 듣게 된다.

‘영혼의 존재, 하느님의 존재’를 주제로 한 6주간의 강의를 들은 당시 중학교 4학년의 정 추기경은 사제의 삶을 생각하게 된다.


  그는 한국전쟁이 일어나던 해인 1950년 서울大 공대(화학공학과)에 입학, 발명가의 꿈을 키웠다. 그러나 인간이 발명해 낸 문명의 이기들이 생명을 파괴하는 현실에서 발명가 대신 사제의 길을 택하게 된다.


  1961년 사제서품 후 중림동 성당, 성신고등학교 교사,부교장, 서울대교구 교구장 비서,상서국장을 역임했다. 이후 로마 우르바노대학교 대학원에서 교회법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귀국 후 1970년 주교서품을 받고 청주교구장에 착좌했다.

1795년부터 1999년까지 주교회의 상임위원을 역임했으며 1983년부터 현재까지 주교회의 교회법위원회 위원장,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주교회의 의장직을 맡았다. 1998년 5월 제 13대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되었으며 평양교구 교구장 서리를 겸임하고 있다.


  1970년 39세로 최연소 주교수품을 받은 정 추기경이 사목표어로 설정한 사목표어로 설정한 ‘모든 이에게 모든 것’(Omnibus Omnia)은 사도 바오로의 서한(1코린 9,22)에서 선택한 것으로서 교구장의 사목

지침을 밝힌 것이다.


  라틴어로 Omnibus Omnia는 ‘모든 것을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을 모든 것으로 모든이에게’, ‘모든 것이 모든이에게’ 등 여러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 말은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사용한 말이다.
  “약한 이들을 얻으려고 약한 이들에게는 약한 사람

처럼 되었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1코린 9,22).


  ‘주교로서 모든 사람을 대등하게, 나와 같은 사람으로서 맞이하겠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내놓겠다. 내가 가진 시간, 생명, 사랑, 능력, 정성 모든 것을 다 주겠다’는 뜻으로 Omnibus Omnia라고 정했다고 한다.

 

  사제생활 45년간 가장 감동적이고 보람 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정 추기경이 청주교구 2대 주교로 임명된 것은 1970년. 초대 교구장은 미국 메리놀회 주교님이셨다. 부임당시 한국 신부님이 6명, 미국 메리놀회 신부님이 20명, 본당이 22개였다.

청주교구에 부임한 정 추기경은 그날부터 하느님께 ‘청주교구에 사제를 100명 주십시오’

라는 청원기도를 드린다. 그로부터 28년 후인 1998년 6월 27일,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되어 청주교구를 떠나게 됐는데, 6월 23일 사제서품식을 통해 청주교구의 사제는 106명이 된다.

1961년 3월 18일 명동성당 사제서품식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엎드려 성인호칭기도를

드렸던 순간도 잊지 못할 순간이다. 그당시 한국 천주교 신자수가 1%가 채 안됐는데 기도중에 그는 ‘한국의 가톨릭 신자수가 10%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드렸다. 그 기도는 지난 2000년에 신자수 10%로 이뤄졌다. 그는 요즘 다시 2020년까지 신자 20%가 되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드리고 있다.

  
  그는 생명의 존엄성보다 당장의 경제적 이득과 편리함을 우선시 하는 현실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왔다. 생명에 관한 정 추기경의 입장은 한결같다. 생명을 물질로 보고 인간의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한결같이 ‘생명존중 우선’을 말한다.

작년 10월 5일 생명위원회를 발족한 것도 같은 의미이다.

 

  그는 평양교구장 서리로서 북한 교회 재건에 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러한 관심의 결과로 황인국 몬시뇰을 평양 교구장대리로 임명해 평양교구 재건에 관한 구체적인 준비와 활동을 하게 했다.

현재 황인국 몬시뇰을 중심으로 2007년 평양교구설정 80주년 준비와 함께 교구민 2세, 3세 중에서 성직자 수도자 찾기에 나서고 있다. 또한 정 추기경은 북한에서 어렵게 신앙을 지켜가고 있는 신자들을 위한 관심과 기도도 함께 하고 있다.


  지난 1월, 서울대교구 조규만 주교의 임명 소식을 들은 정 추기경은 “하느님께서 한국교회를 축복하여 성장하게 하시고, 서울대교구에서 의정부교구가 분가된 후에도 세 번째 주교를 임명해주셨다”며 이것은 “한국이 한국교회의 선교뿐 아니라 동북아, 나아가 아시아 선교의 큰 책임을 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서울대교구는 이번 새 추기경의 탄생으로 한국교회의 역할이 더 분명해 졌으며 교회쇄신, 타종교와 일치와 화합을 통해 평화와 정의와 사랑에 더 정진하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이고 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06년 3월 25일에는 새 추기경님들과 함께 추기경 서임 축하 미사를 주례한다. 한국에서의 추기경 서임 경축미사는 4월 25일 명동성당에서 봉헌된다.

추기경 서임 감사 메시지

 

 

 우리 한국 천주 교회와 국민들이 갈망하던 추기경이 드디어 탄생했습니다.

천주교 서울 대교구 사제단과 신자들을 대표해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번의 추기경 임명은  단순히 교회의 기쁨이 아니라 한국 국민 전체의 경사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가톨릭교회, 나아가 아시아 가톨릭교회의 새 시대를 이끌어 나갈 정진석 추기경을 우리에게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한국 천주 교회에 추기경을 임명해주신 베네딕토 16세 교황성하께 감사드리고 그동안 추기경의 탄생을 열망하며 기도해주신 신자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새 추기경이 발표된 오늘은 교회력으로는 베드로 사도좌 축일입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베드로 사도좌 축일을 화합과 일치의 축제로 지냈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4세기 이후에는 동서방 교회가 분열되는 등 이천년동안 끊임없이 타종교와 갈등을 겪으며 살아왔습니다.


   오늘 새 추기경의 탄생은 교회쇄신과

타종교와 일치와 화합을 통해 평화와 정의와 사랑에 더 정진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이제 서울대교구는 한국 교회뿐 아니라 아시아 그리고 세계교회의 큰 몫을 담당하라고 하는 상징으로 책임감을 느끼며 더 열심히 봉사하고 헌신할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앞으로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아시아 가톨릭 교회의 중심교구로 더 열심히 봉사할 것입니다. 새로 임명되신 정진석 추기경께서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며 진리에 충실하여, 누구도 소외되는 일 없는 값진 세상을 이끌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마음을 모아 기도와 희생을 봉헌해야 하겠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우리도 새 추기경을 중심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고, 교회의 보편적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기도하고 진실과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6년 2월 22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염수정 주교

 


 

신임 정진석 추기경은 오늘 저녁 8시, 추기경으로 임명된 직후 최선을 다해 임무를 수행하겠다며
국민들의 많은 성원을 당부했습니다. 김혜영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신임 정진석 추기경은 추기경을 상징하는 진홍색 수단을 입고 김수환 추기경과 함께 서울 명동성당 주교관 앞에 나와 취재진을 맞았습니다. 정진석 추기경은 자신의 추기경 임명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린다면서, 아울러 모든 영광을 국민들에게 돌렸습니다.

 

▶ 인서트 1
(하느님께서 우리나라를 축복해주셔서 또 한 사람의 추기경이 탄생하도록 이끌어주셨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성원이 이루어주신 덕분으로 오늘의 영광이 우리에게 주어졌다고 봅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추기경으로 임명되기까지 함께 애써 준 모든 이에게 감사한다고 말하고, 국민들의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 인서트 2
(작게는 천주교회 안에 여러 교우들,

성직자 여러분들, 수도자 여러분들이 저를 밀어주시고 또 우리나라 전체에 선익이 이뤄지는 방향으로 조그마한 기여라도 할 수 있게 되도록 국민 여러분께서 적극적으로 편달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특히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차지하는 자리, 무엇보다도 한국 천주교회가 세계 교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높아진 것이 자신의 추기경 임명에 큰 역할을 해줬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김수환 추기경은 정진석 추기경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한국 천주교회의 기쁜 경사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추기경을 준 교황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PBC NEWS 김혜영입니다.  출처 : 평화방송

 

한국의 새 추기경 탄생을 축하한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경사이며, 온 국민이 축하할 일이다.
베네딕토 16세 교황 성하께서 한국에 추기경을 추가로 임명한 것은, 숱한 고난 속에서 한국민과 한국교회가 이룩한 공헌에 대한 인정이다. 또한 한국교회가 인류애의 증진과 세계 평화에 더욱 크게 이바지하기를 바라는 하느님의 뜻이다. 새로 임명된 추기경께 축하를 드리며, 한국 교회의 발전과 한반도 평화를 위하여 열과 성을 다해 주기를 바란다. 한국교회에 무궁한 영광과 하느님의 은총이 있기를 기원한다.                       2006. 2. 22.  김대중(토마스 모어)  

 

노무현 대통령은 오늘 오후 정진석 새 추기경에게 황인성 시민사회수석을 보내 축하난을 전달하고 추기경 서임을 축하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정진석 대주교가 새로운 추기경으로 서임된 것은 한국 천주교의 경사"라며 "한국 천주교의 위상을 알려줬다는 점에서 종교를 떠나 축하한다"는 뜻을 전달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어 "국민통합과 민족의 화해 일치를 위해 기도를 부탁드린다"며 "하느님의 은총이 있으시길 기대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한편 청와대 관계자는 노무현 대통령이 오늘 오후 '에밀 폴 체릭' 교황청 대사로부터 정진석 대주교의 추기경 서임 사실을 전달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끝)

      출처 : 평화방송

추 기 경


한자  樞機卿  / 라틴어  cardinalis  / 영어  cardinal  / 독일어  Kardinal 

  

가톨릭 교회의 교계제도에 있어서 교황 다음 가는 성직자 지위를 말한다.

5세기 때부터 이 명칭이 나타나는데, 교회의 중추라는 의미로 일반적으로 사용되었으나 차차 로마 교회만이 배타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당시 로마에는 25개의 주요한 성당이 있었는데 이러한 성당을 추기성당(樞機聖堂)이라고 불렀고, 각 성당의 수석사제를 추기경이라고 호칭하였다.

6세기경에는 로마 인근의 7개 교구주교들이 교황을 보좌하게 하였고, 8세기부터는 이들도 추기경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라테란 성당에서 교황이 예절을 집전할 때 돕거나 또는 교황을 대리하여 예절을 집전하였다.

 

  이 추기경들은 1059년 니콜라오(Nicolaus) 2세에 의하여 교황 선출권을 갖게 됨으로써 기타 주교들보다 월등한 권위를 가졌고, 14세기부터는 총대주교보다 상위의 권위를 가졌다.

그러나 1439년 에우제니오(Eugenius) 4세에 의하여 총대주교들이 우선적으로 추기경에 임명되었다. 13세기에서 15세기까지 추기경의 수는 대개 30명 내외로 인정하지 않다가, 식스토(Sixus) 5세는 1586년 칙서 을 통하여 로마 근교 교구장 명의를 받은 6명의 주교 추기경 50명의 일반 지역교회 대주교로 구성되는 사제추기경, 14명의 부제명칭을 받은 부제 추기경 등 모두 3계층 70명으로 한정하였다. 이들 3계층은 신품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다만 교회의 명의로만 그렇게 구별된 것뿐이다.

그 뒤 요한(Joannes) 23세는 70명 정원제도를 1962년 교서 에 의해 폐지하고, 사제였던 부제계층의 추기경들도 주교서품을 받도록 함으로써 모든 추기경들은 주교직에 오르게 되었다. 1965년 바오로(Paulus) 6세는 교서 을 통하여 동방 총대 주교들도 주교 추기경으로 추기경단에 포함시켰다.

 

우리나라에서는 1969년 김수환(金壽煥) 주교가 사제 추기경으로 선임되었다. 로마 본주교에 의하여 전세계에서 자유로이 선출되는 추기경들은 교황청의 여러 의회에 배속되어 교황의 왕자로서 전하(殿下)의 존칭으로 호칭된다. 로마에 거주하는 추기경들은 물론이고 바티칸시국(市國)밖에 거주하는 추기경들도 모두 바티칸시국의 시민들이다.

 

[출처 : 가톨릭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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