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관련

성당의 중심은 감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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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엽 [simjy] 쪽지 캡슐

2002-01-01 ㅣ No.19

성당중심감실?

서울교구 중림동 본당 옛제대와 감실

[질문]

 

신부님께서는 이전에 제대에 대한 중요성을 이야기하시면서 성당의 중심은 제대이므로 성당 안에 들어설 때 제대를 향해 인사하는 것이 옳다는 뜻의 글을 쓰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많은 본당에서는 제대가 아닌 감실을 향해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옳은지 알기 위해 본당신부님께 여쭈었더니, 전례 중에는 제대가 중심이 되는 것이지만 전례를 드리지 않을 때에는 감실이 중심이 된다는 요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당의 중심이 때에 따라 변한다는 말이 어쩐지 수긍이 가지 않습니다.

이에 대한 신부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답변]

 

제대와 감실의 싸움?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성당들 구조는 대부분 비슷합니다. 즉, 감실이 제대 뒤 성당 벽 중앙에 놓여 있거나 아니면 제대 왼쪽이나 오른쪽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언젠가 한 본당 수녀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이 수녀님이 계신 성당은 감실이 제대 바로 뒤 성당 벽에 놓여 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제의방에서 나와 제대와 감실 사이를 지나가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제대에 등돌린 채 감실에 인사하려다 보니 갑자기 "성당의 중심은 제대이다"라고 교육받았던 생각이 나더랍니다.

그래서 다시 몸을 돌려 감실을 뒤로 한 채 제대를 향해 인사를 하고 그냥 지나치려는데 왠지 감실 안에 모셔진 예수님께 죄스런 마음이 들어 다시 몸을 돌려 감실을 향해서 인사를 하고서야 그 사이를 빠져 나왔다고 합니다.

마침 본당신부님이 성당 안에 들어오셨다가 그 광경을 보시고는 수녀님을 불러 그 까닭을 묻기에 사실대로 이야기하니 그 본당신부님 왈, "수녀님, 전례중에는 물론 제대가 중심이 되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아무 전례도 거행되지 않으니까 당연히 예수님이 계신 감실이 중심이 아니겠어요?" 하시더랍니다.

 

신학원에서 저한테 "성당의 중심은 제대이다"라고 단단히 교육받은 그 수녀님, 본당신부님 말씀을 거역하기도 쉽지 않은 일, 그래서 그 다음부터 감실과 제대 사이의 지름길을 포기하고 제대 앞으로 지나가기로 결심하셨답니다.

제대 바로 뒤에 감실이 있으니, 제대에다 절한 것인지 아니면 감실에다 절한 것인지 본당신부님은 알 수 없을 것이요, 또 한 번으로 제대와 감실 모두에 인사한 격이니 일석이조가 아니냐며 웃으시던 그 수녀님이 생각납니다.

제대와 감실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서로 다투고 있는 것은 분명 아닐진대, 오늘날 각 성당에서는 신자들이 제대와 감실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 일을 자주 볼 수 있음은 무슨 까닭일까요?

감실에 관한 간단한 역사

 

제대와 감실 사이에 이러한 쓸데없는 오해가 생겨난 까닭을 알려면 먼저 감실이 성당을 어떻게 점령(?)해 왔는지 그 역사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교회가 생겨난 아주 이른 때부터 미사중에 축성한 빵을 보존하는 관습이 존재했습니다.

신앙 때문에 감옥에 갇힌 이들이나 병에 걸려 미사에 참석하지 못한 이들에게 성체를 영해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물론 이때는 지금처럼 성당이 있던 것은 아니고 예배드리기에 적당한 가정집에서 미사를 거행하였기 때문에 성당 안에 성체를 보존하는 장소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사제의 집에 성체를 보관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종교 자유를 누리게 됨에 따라 성당이 건축되었으나 성체를 보관하는 장소는 여전히 성당 안에서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7~8세기의 문헌에는 성체가 제의방에 보관되어 있음이 나타납니다.

미사중에 축성한 빵을 쉽게 보존하고 미사 밖에서 사용될 성체를 보관하기 위해서 아마도 제의방이 가장 적합한 장소였던가 봅니다.

 

그러나 중세에 접어들면서 신자들의 신심에 이상한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천사주의" 또는 "윤리적 엄격주의"라 불릴 수 있는 것으로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죄인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죄인의 몸으로 어찌 성체를 모시겠는가 하는 생각이 널리 퍼져서 미사중에 영성체를 안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 당시 미사는 라틴어로 드려졌습니다. 따라서 신자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로 드려지는 미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니 성찬례 자체보다는 대중 신심에 더 마음이 끌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또한 미사 중에 축성된 빵은 예수님의 몸이라는 믿음이 더욱 구체화되면서, 성체 안에 예수님이 현존해 계시다는, 성체는 그 자체로 예수님의 몸이라는 믿음이 신자들의 마음을 잡아당겼습니다.

 

따라서 신자들은 영성체는 하지 않고 대신 성체를 "바라보는" 영광을 갖고자 열망했습니다. 이러한 신자들의 열망은 결국 성찬 전례 때 사제가 빵과 포도주의 축성 후 신자들이 볼 수 있게 받들어 올리는 예식을 만들어 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신 성체를 성당의 가장 고귀한 자리에 모시고 싶어하여 그때까지 성당의 중심 자리에 놓여 있던 제대 위에 감실을 만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감실은 신자들의 열망에 부응하여 제대를 물리치고 성당의 중앙 자리를 차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감실에는 화려한 장식이 따름은 물론, 예수님이 계심을 알리기 위해 언제나 빨간 등을 켜두는 관행도 나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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