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 안에서 감실의 위치는?
다시 교도권의 가르침을 들어봅시다.
"신자들이 사사로이 성체께 조배를 드리며 기도를 바치기에 알맞은 경당에 성체 모시는 자리가 마련되는 것이 매우 바람직하다. 그렇게 할 수 없는 경우에는 각 성당의 구조와 지역 풍습을 감안해서 성체는 제단에 모시든지 혹 성당의 뛰어난 자리에 적절한 장식을 갖추어 모신다"(미사경본의 총지침 276, 1969년).
"성체를 모셔두는 장소는 참으로 드러나는 곳이라야 한다. 동시에 개인적 흠숭과 기도에 적합한 장소로서 신자들이 자주, 쉽게, 효과 풍부하게 성체성사에 현존하시는 주님을 개인적 경신례로 공경할 수 있는 장소를 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런 목적을 쉽게 달성하려면 성당 중앙 자리를 비켜서 소성당을 마련하면 좋겠다"(미사 없는 영성체와 성체신심 예식서 9, 1973년).
교회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개혁을 열망하는 사람들도 있고 과거의 전통에 매달리는 "수구적 전통주의자"도 존재합니다.
이 때문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헌장」에 따라 개혁된 전례서들 안에도 개혁주의자와 전통주의자들 사이의 갈등과 타협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서 위의 두 문헌의 선언 내용을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중세 이래의 전통은 예수님의 현존인 성체가 모셔진 곳이라 해서 감실을 특별한 자리를 마련하여 왔습니다.
이때문에 이미 앞에서 말한 바대로 감실은 제대를 밀어내고 성당의 주인공인 양 인식되기까지 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조가 대부분의 성직자·수도자들을 위시하여 신자들의 마음 안에 여전히 자리잡고 있는 이때, 위의 교도권의 가르침은 대단히 용기있는 선언이라 할 것입니다.
가능하면 성당 안이 아니라 따로 경당을 만들어 거기에 감실을 안치하라고 권고합니다. 파스카 신비의 장소인 제대는 감정보다는 이성에 호소하는 데 반해 감실은 예수님의 현존이라는 감상적 정서에 호소하므로 신자들의 시선을 더 끌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성당 안에 감실이 있을 때 신자들의 마음은 제대를 향하지 않습니다.
공간 확보가 어렵다거나 어떤 특별한 사정으로 경당을 마련할 수 없을 때 차선책으로 성당 안의 뛰어난 자리에 모시라고 교도권은 말하고 있습니다.
"뛰어난 자리"가 성당의 중앙 위치, 즉 제대의 존엄성을 해치는 자리가 아님은 분명합니다.
제대의 존엄성을 확보하기 위해 성체를 모실 경당을 따로 마련하라고 요청하던 교도권이, 제대의 위치를 위협(?)할 만한 중요한 자리에 감실을 배치하도록 할 리는 없지 않습니까?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뛰어난 자리"란 성당의 제대를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성체의 존엄성을 확보할 수 있는 조용하면서 기도 분위기를 돋울 수 있는 자리, 성당의 한 모퉁이 자리와 같은 곳이라고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위의 문헌에서 제대 위에 성체를 모시라는 권고는 중세 이래 내려온 관습을 인정한 것으로서, 전통주의자들과의 타협이 드러나는 장면이라 하겠습니다.
로마에 있는 4대(大) 성당(성 베드로, 성 바울로, 라떼란,성모 대성당)을 위시한 대부분의 전통적 양식의 성당에 들어가 보면 제대 외에 더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빨간 감실등은 눈에 띄지도 않지요. 성당 한쪽 구석에 소경당을 만들어 거기에 성체를 안치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로마 성당들의 구조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