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관련

미사 때 이루어지는 동작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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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엽 [simjy] 쪽지 캡슐

2002-01-01 ㅣ No.23

미사 때 이루어지는 동작의 의미

[질문]

 

갓 신자 생활을 시작한 한 신자가 미사 때 이루어지는 동작들 하나하나의 의미가 무엇인지 제게 물어 왔을 때, 신자 생활을 꽤 오래 한 저 역시 그 의미도 모른 채 그저 습관적으로 신자들의 동작을 따라 하고, 신부님이 행하시는 동작들에 대해서도 그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살아 왔음을 알았을 때 참 부끄럽게 생각하였습니다.

미사 때 행하는 동작들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답변]

 

인간이 천사와 같은 순수한 영적 존재라면 자신의 마음을 상대방에게 영적으로 직접 전달할 수 있을 터이지만, 불행히도 인간은 그러하지 못합니다.

말과 몸짓을 통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의사를 상대에게 직접 전하기가 힘듦을 깨달은 인류는 끊임없이 각 지역과 문화에 따라 언어적 표현과 행위적 표현(몸짓)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언어 습관과 문화가 온 인류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데에 있습니다.

인사하는 방식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는 고개를 숙이거나 허리를 숙이는 방식을 사용하는 반면 서양에서는 볼에 입맞추거나 악수를 함으로써 반가움을 드러냅니다.

같은 지역, 같은 문화권에 속해 있다 하더라도 시대에 따라 몸짓과 언어의 의미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조선 시대 때의 인사 방식과 지금의 인사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서양에서 발전한 전례

 

잘 아시다시피 그리스도교는 지금의 이스라엘, 곧 팔레스티나에서 시작하여 서양에서 발전하였기 때문에 전례 역시 그 시대, 그 지방의 문화적 요소들을 받아들였습니다. 전례란 것이 하느님의 신비를 인간이 알아들을 수 있는 표지(상징, 언어, 동작)로 이루어졌음을 감안한다면, 각 시대의 문화적 요소들이 전례 안에 스며든다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이렇게 형성된 전례이기에 20세기 한국에 사는 우리가 현재 전례 안에서 이루어지는 동작과 말을 다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특히 중세에 들어와서 인간의 동작이 원래 뜻하던 의미 대신 상징적인 그리스도교적 해석을 덧붙였기 때문에 중세의 상징적 해석에 익숙하지 못한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기란 사실상 어려운 일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상징적 해석이 아직도 우리 주위에 남아 있다는 점인데, 여기서 저는 각 동작이 미사 안에서뿐만 아니라 전례 전반에 걸쳐 어떤 의미를 갖는지도 살펴보고자 합니다.

 

동작의 종류

 

우리 인간의 동작들이 다 똑같은 기능과 목적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전례 안에서 행해지는 동작들도 다음과 같이 여러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겠습니다.

 

첫째, 기능적 동작입니다. 즉, 어떤 일을 행하기 위해서 이루어지는 동작들입니다.

예를 들어 성작이나 손을 닦는 행위, 제대를 향해 나아가는 행렬 등이 바로 그러합니다.

 

둘째, 말과 동작을 함께 행함으로써 그 행위가 무엇을 뜻하는가를 드러내는 동작입니다. 그러한 동작으로 우리는 참회 기도 때 "제 탓이요" 하면서 가슴을 치는 동작을 들 수 있겠습니다.

 

셋째, 온전히 상징적인 동작이 있습니다. 세례 때 새로 영세받은 이에게 흰옷과 초를 주는 행위, 성찬례(미사) 때 사제가 영성체를 하기 전 성체 조각을 성혈과 섞는 행위가 바로 그러합니다.

 

이렇듯 여러 가지 전례 동작 가운데 우리는 현재 전례, 특히 미사 안에서 발견되는 동작들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만 다루고자 합니다.

 

성호(聖號)를 그음

 

성호를 긋는다는 것은 성호의 대상이 되는 물건이나 사람을 거룩하게 만드는 행위로 해석되었으니, 신자들이 성호를 긋는 동작을 하였다는 것은 2세기말의 교부 떼르뚤리아노의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떤 동작을 할 때마다, 옷을 입고 신발을 신을 때, … 일상 생활의 모든 동작마다 우리는 십자가 표시(성호)를 긋는다."

성호 긋는 동작은 사람이나 물건 모두에 대해서 할 수 있으며, 자기 자신에 대해서 또는 다른 사람이나 물건에 대해서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이마에만 엄지손가락으로 십자를 긋는 양식이었지만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특히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부인하는 아리아니즘을 반박하기 위하여 삼위일체를 상징하고자 이마에서 심장으로 그리고 가슴 위 부분을 긋는 현대식의 성호 방식이 도입되었습니다.

이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라는 삼위일체 기도가 첨가되었습니다.

 

성당에 들어설 때 성수를 찍어 십자를 긋는 행위와, 미사 시작 때 사제가 십자를 그으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할 때 신자들도 십자를 그으며 "아멘" 하고 대답하는 것은 세례 때의 우리 신앙 고백을 다시 한번 되풀이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신앙의 핵심은 바로 성부·성자·성령께 대한 삼위일체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수(聖水)가 세례수를 상기시키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하는 말 역시 세례를 베풀 때 하는 기도문이라는 데서 이러한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복음을 읽기 전 신자들이 모두 이마와 입술, 심장(가슴)에 엄지손가락으로 십자를 긋는데, 이 역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행위라 하겠습니다.

어떤 이는 이마에 긋는 십자 성호는 복음에 대한 이해를, 입술에 긋는 십자 성호는 복음 선포를, 가슴에 긋는 십자 성호는 복음을 행동으로 옮기겠다는 것을 드러낸다고 해석하는데, 이러한 해석이 뚜렷한 역사적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위에 말한 삼위일체 신앙과 연계시켜 해석한다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해석이라고 봅니다.

 

일어섬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일어섬은 비그리스도인들과 마찬가지로 존경과 공경의 표시였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여기에 또 다른 의미를 덧붙였으니, 그것은 자신들이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갖는 자유를, 종살이에서 벗어난 자유인임을, 동시에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함을 드러내는 표지였습니다.

때문에 제1차 니체아 공의회(325년)는 부활의 기쁨을 드러내는 주일과 파스카 시기(부활시기)에 무릎을 꿇지 말고 서서 예배를 보도록 의무화시켰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은 이보다 훨씬 전인 2세기말의 교부(敎父) 떼르뚤리아노가 주장하던 바였습니다.

 

또한 일어섬은 희망과 믿음으로 종말을 기다리는 사람의 자세이자, 사제직을 수행하는 이의 자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제직이란, 서품성사를 통해 사제가 된 이들의 직분만을 뜻하지 않고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물려받은 모든 신자를 말합니다.

 

성찬례 안에서만 그 뜻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회당에서 성서를 읽으실 때 일어서셨다는 복음의 기술(루가 4,16)을 미루어 알 수 있듯이 서 있는 동작은 하느님 말씀에 대한 경청과 존경심을 가리킵니다.

알렐루야와 더불어 시작되는 복음 낭독 때 우리 모두가 일어서는 것은 바로 사제를 통해 말씀하시는 주님께 경의를 표하기 위한 것입니다.

 

서 있는 자세는 또한 마르 11,25(여러분이 서서 기도하려고 할 때에 …)와 루가 18,11-13(바리사이와 세리에 관한 비유)에서 볼 수 있듯이 하느님께 기도하는 이의 자세이기도 합니다.

사제가 성당에 입당할 때부터 본기도를 할 때까지, 신앙고백부터 보편 지향 기도를 할 때까지, 이외 미사중에 일어서는 것은 사제와 더불어 함께 기도하기 위한 것입니다.

성 베네딕도에 의하면 수도자들은 시편을 노래할 때 서서 하였다고 합니다.

 

<김인영 신부님, 성 베네딕도 왜관 수도원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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