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관련

우리의 영원한 귀감, 영성의 대가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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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엽 [simjy] 쪽지 캡슐

2005-02-14 ㅣ No.203

우리의 영원한 귀감, 영성의 대가들 (2)
1. 생애와 인품
사울이라고도 불리는 바오로는 히브리 전통을 충실히 고수하던 벤야민 지파의 유다인 집안 출신으로 길리기아의 다르소에서 태어났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부친의 상속으로 로마 시민권을 지니게 되었는데, 그것은 훗날 선교 활동하는데 유용한 것이었으며 특히 로마 황제에게 직접 상소할 수 있는 권리를 갖도록 했다.

그는 당대의 명성 높던 랍비 가므리엘 1세 문하에서 히브리 교육을 받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유학한다. 그곳에서 성서에 관한 정규 교육을 거쳤으며 바리사이파 교육 방침에 따라 토라를 철저히 익혔다. 또한 랍비 관습을 쫓아 육체 노동을 배워 실천하였다. 가죽 다루는 기술을 포함한 천막 짜는 기술을 배웠던 그는 사도가 된 후에도 신자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몸소 일하며 필요한 것을 마련하였다.

예수님의 생애동안 바오로가 그분을 직접 상봉했다는 역사적 흔적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사도행전은 그가 그리스도교와 첫 대면하던 장면을 예루살렘에서 스테파노의 순교의 피로 기록하고 있다(사도7, 54-8, 1 참조). 그가 당시에 얼마나 광신적 유다교인이었으며 반 그리스도교적 박해자였는지 스스로 이렇게 고백한다. 좬나는 하느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였습니다. 아니, 아예 없애버리려고까지 하였습니다좭(갈라1, 13). 그의 박해 활동은 다마스커스까지 확장되어 갔다. 그가 그곳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일생 최대의 사건이 일어났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만나고 체험한 것이다. 그는 그 계기로 좬그리스도께 사로잡힌좭(필립3, 12) 사람이 되면서 전혀 다른 인생관, 신앙관을 갖게 되었다. 그를 사로잡은 것은 위로부터 내려진 어떤 위협적 위력, 번개처럼 그를 땅에 내동댕이친 그런 물리적 힘이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운 사랑, 형언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뜨거운 사랑의 발견이었다. 결국 박해자가 박해받는 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만 것이다. 그 사랑은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려하면서(갈라 1, 18 참조) 만민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한다. 그는 세 차례의 선교 여행에서 온갖 곤경과 여러 차례의 죽음의 위기를 겪었으나 좥이방인의 사도좦라 불릴 만큼 성령이 이끄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 담대하게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었다.

2. 영성사 안에서 바오로의 위치

오늘의 영성신학에서 영성은 좥성삼위의 친교에 참여좦이고, 영성생활이란 좥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성삼위의 신비로운 삶을 사는 것좦이라 정의한다. 이러한 정의의 골격을 처음으로 형성한 이가 바오로이다(에페 2, 18; 2고린 13, 13 참조).

첫 복음서인 마르꼬 복음서가 기록되었을 무렵(약 70년경)은 바오로가 쓴 서간들이 널리 알려진 다음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그분의 복음에 관하여 최초로 글을 써서 파급한 이가 바오로인 셈이다. 다양한 교회 공동체들의 생활 현장에 깊이 개입하고 체험한 그는 그 현장을 직접 현실감 있게 증언해 준다. 복음사가들이 예수님의 역사적 과거의 사실을 증언하는데 비해 바오로는 새로 세워진 교회들 안에서 신령한 방법으로 현존하시면서 활동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드러내는 데 주력한다. 즉 그는 복음사가들과 달리 성령을 통해 활동하시는 좥교회의 예수님좦을 증거한다. 우리는 바오로 안에서 다른 어느 그리스도인에게서 찾을 수 없는 뛰어난 창의성을 보게 된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복음적 토대를 다양한 사회 및 교회의 여건에 따른 문화와 생활의 구체적 정황에 접합시킬 줄 알았다. 따라서 그의 신학과 영성은 추상적이거나 비현실적 이론이 아니었고 그리스도인 생활에 생동감있게 대응하는 구체적인 답변이었다.

바오로는 그리스도교 역사상 가장 극적으로 그리스도를 체험한 위대한 회심자였다. 광신적 바리사이파 사람으로서 그리스도교에 혹독한 박해까지 서슴치 않았던 그가 모든 정열을 쏟아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고 복음 선포에 목숨 바쳐 헌신하는 사람으로 바뀐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 성령의 놀라운 은총으로 가능한 것이었다.

3. 바오로 영성

바오로의 서간 안에 나타나는 그의 신학과 영성은 심오하고 광범위하여 전반적으로 고찰하기란 어려운 일이기에 그의 영성의 일부 기본적 측면만을 살펴 보기로 한다. 3-1 성령 안에 새로워진 인간

바오로는 자주 좥낡은 인간좦과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좥새로운 인간좦을 대칭시키면서 그의 가르침을 전개해 나간다. 이것은 삶의 여정에서 겪은 체험으로서 그의 영성의 주요 기반이다. 이 세상의 타락은 역사 안에 죄를 일으킨 아담의 첫 범죄에서 그 근원을 갖는다. 이 악의 힘은 모든 이에게 죽음의 왕국을 펼친다(로마 5, 17-18 참조). 한편 생명의 원리와 근원은 새 아담, 부활한 그리스도이시다(1고린 16, 22 참조). 세례성사를 통해 그리스도인이 된 인간안에 성령의 현존은 그리스도와 존재론적 친밀관계를 이루도록 한다. 이로써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아들이 되고 그분과 공동 상속자가 되어 새로운 창조물이 된다. 이 새 사람은 그리스도를 입고 쇄신되어 그리스도의 삶을 함께 살고 그리스도가 머리이신 신비체의 부분을 이룬다. 바오로의 서간에 자주 쓰이는 좥예수 그리스도 안에좦라는 말은 그리스도와의 생활의 친밀성을 표현하는 것이다.

3-2 육과 영

바오로에 의하면 좥육(flesh)좦은 영혼(soul)에 반대되는 몸(body)이 아니다. 좥육좦이라는 말은 좥영(spirit)좦, 좥그리스도의 영좦, 좥하느님의 영좦에 정반대 되는 것으로서 살아있는 몸이 아니라 생명의 숨결을 빼앗긴 존재로서 시체에 불과하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전제된다. 그것은 하느님과 원수지게 하는 그 무엇을 가르치고자 한다(로마8, 7-8).

바오로는 영혼과 몸을 이분(二分)하는 희랍적 이원론 사고에는 관심이 없다. 유다교적인 사고의 사실 주의에 충실했던 그는 언제나 인간을 전체적으로 보았다. 그에게 몸이란 영성과 반대되는 인간 생명의 물질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분리되지 않는 물질적인 동시에 영적인 인간 생명의 유기적 통합으로 여긴다. 구원이 이루어지는 영원한 생명은 몸으로부터 해방이 아니라 몸의 부활이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그는 인간의 몸을 그리스도의 지체, 성령의 성전이라고 일컫는다.

한편 영은 초월적인 것으로서 하느님 생명의 살아있는 숨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은총으로 그리고 믿음과 세례로 그분과 맺는 일치의 결과로 주어지는 영은 인간 존재의 깊숙한 곳 인간의 삶 전체에 생기를 주며 그곳에 침투하고 일치하여 영적인 결실을 맺게 한다. 바오로에게 영은 인간이 살도록 불리는 총체적인 새로운 삶이다. 반면에 육은 그러한 신적인 영에 살지 않는 인간의 삶이다. 이 삶은 죽음을 피해 운명지어져 있을 뿐 아니라 이미 진행되고 있는 죽음 자체이다.

이러한 것들을 고려하면서 우리는 바오로가 구별한 육과 영의 이중성을 희랍적 사고나 영지주의의 이원론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육이 인간의 육체적 본성과 공통적인 것은 아무것도 지니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려서는 안된다. 바오로는 드물기는 하지만 좥육좦이란 단어를 써야 할 곳에 유사한 의미로 좥몸좦이란 말을 사용하는 경우(로마 7, 24; 1고린 9, 27; 로마 8, 10∼11 참조)가 있기 때문이다.

3-3 율법과 은총

바오로는 율법과 성령 혹은 율법과 은총을 대칭시키며, 성령을 따라 사는 그리스도인은 율법이 아닌 은총의 지배를 받는 사람임을 강조한다(갈라 5, 18; 로마 6,14 참조).

바오로에 의하면 율법이란 십계명에서부터 옛 계약 전체에 분포되어 있는 광범위한 내용을 포함한다. 그는 인간이 그러한 율법을 수행함으로써 의롭게 된다는 것을 반대하여 이렇게 선언한다. 좬율법을 지키는 것으로는 아무도 하느님 대전에 의로워질 수 없습니다. 율법은 사람이 의화되는 것이 율법을 지키는 데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데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좭(갈라 2, 16)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 안에서 은총에 의한 죄인의 의화는 단순히 외적, 법률적인 것이 아니며 하느님의 의로움을 전가하는 것(imputation)도 아니다(로마 4장 참조). 그것은 인간이 성령에 의해 변화(transformation)되는 것이다(로마 5, 17∼21 참조).

율법은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후견인 역할을 하는 것이고(갈라 3, 24 참조), 율법의 목적이며 종점은 결국 그리스도(로마 10, 4 참조)이시다. 그러므로 율법에 대한 은총의 대립은 폐지가 아니라 완성으로서 초월성 안에서 해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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