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관련

감사와 기쁨의 축제

인쇄

심재엽 [simjy] 쪽지 캡슐

2005-02-14 ㅣ No.216

감사와 기쁨의 축제
내 안에서 구세주로 태어날때 진정한 성탄이 된다

해마다 성탄절이 다가오면 성당마다 구유를 만들어 놓는데, 이런 관습은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에게서 유래한다. 1223년 예루살렘 성지순례에서 돌아온 성인은 성탄 때 구유를 설치해 놓고서 신자들에게 좀더 실감나게 성탄의 의미를 전해주려고 했다.

이것을 기점으로 성탄 때 구유를 만들어 놓는 전통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구유를 아름답게 장식하지만 정작 그 본래의 의미는 깨닫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루가 복음에 의하면 예수께서 태어나시던 무렵에 로마 황제는 세금 징수를 위해서 호구 조사를 명했고, 이 명에 따르느라 만삭의 마리아는 요셉과 함께 그의 고향 베들레헴에 갔다. 하지만 그곳에서 여관방을 구하지 못해서 마리아는 마구간에서 해산하여 예수 아기를 구유에 눕혔다(루가 2, 1∼7).

구세주께서 세상에 오셨지만 세상에는 그분을 위한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세상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고 배척했다. 일찍이 이사야는 이를 가리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자식이라고 키웠더니 도리어 나에게 반항하는구나.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이 만들어 준 구유를 아는데 이스라엘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내 백성은 철없이 구는구나'(이사 1, 3). 요한 복음은 이 사실을 아주 간략하게 서술한다. '그분이 자기 나라에 오셨지만 백성들은 그분을 맞아 주지 않았다'(요한 1,11). 구세주 예수께서는 세상의 배척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오셨다. 번듯한 곳은 모모한 사람들이 다 차지해서 자리가 없으니까 아주 구석지고 후미진 곳에 눈에 띄지도 않게 오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라도 오셔서 세상과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하셨다. 훌륭한 부모는 자식이 불효를 하더라도 저버리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아버지 하느님께서도 당신이 사랑하시는 인간들이 거부와 반항을 일삼지만, 그들을 버리 시지 않고 당신 외아들을 보내셔서 더 큰사랑과 자비로 감싸주신다. 이 놀라운 사랑에 대해서 이사야 예언자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여인이 자기 젖먹이를 어찌 잊으랴! 자기가 낳은 아이를 어찌 가엾게 여기지 않으랴! 어미는 혹시 잊을지 몰라도 나는 결코 너를 잊지 않으리라'(이사 49,15). 세상은 자신에게 보탬과 이득이 되는 이에게만 관심과 사랑을 베풀지만 하느님은 자신에게 등을 돌리는 이들에게까지도 사랑을 포기하시지 않는다.

하느님의 사랑은 세상과 인간의 잘못과 허물보다도 훨씬 크다는 것이 바로 구세주 탄생에 담긴 뜻이고, 그러기에 성탄은 진정 우리에게 감사와 기쁨의 축제이다. 예수께서 마구간에 태어나셨다는 사실에는 세상이 구세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 외에도 또 다른 뜻이 담겨져 있다. 즉 마구간은 죄와 잘못으로 더러워진 인간을 상징한다.

자신을 정직하게 살피는 이라면 자신의 내면이 바로 마구간과 같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마구간이 가축의 오물과 그 냄새가 배여서 더럽고 악취가 풍기는 곳이듯 우리 마음 역시 미움, 질투, 욕심, 옹졸함, 아집, 독선, 거짓으로 가득 차서 고약한 냄새가 풍긴다고 하겠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런 마구간과 같이 더러운 인간에게로 오셨다. 하느님께서는 구세주를 통해서 죄와 잘못으로 인해서 더럽고 악취가 풍기는 인간을 기꺼이 받아 들이셨다.

그러기에 성탄은 진정 크나큰 기쁨의 축제인 것이다. 자신 안에 도사리고 있는 어두움과 더러움을 제대로 바라보고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어두움을 비추시는 빛으로, 더러움마저도 감싸주시는 사랑 으로 오시는 분을 진정으로 고맙고 반갑게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금세기의 마지막 성탄을 지내면서 우리 모두 2천년 전에 태어나신 예수께서 어떤 분인지를 제대로 깨달았으면 좋겠다.

그분은 인간의 배척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버리시지 않는 분이고, 죄와 잘못으로 인해서 마구간과 같이 더러워진 인간을 받아주시고 감싸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말이다. 예수님이 이런 분임을 깨닫고 우리 스스로 그분을 닮아갈 때, 그분은 비로소 내 안에서 나의 구세주로 태어나시는 것이고, 그 때가 바로 나에게 진정한 성탄이 된다.

새 천년은 2000이라는 숫자와 함께 자동적으로 오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새 천년은 자신 안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스스로 좥작은 그리스도좦가 되는 이들이 열어간다. 새날은 단지 해가 바뀌어서 새 달력을 내건다고 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아 우리 자신이 새로워질 때 밝아오는 것이다.



<손희송 신부>


94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