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관련

정령(精靈) 숭배의 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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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엽 [simjy] 쪽지 캡슐

2005-02-14 ㅣ No.220

정령(精靈) 숭배의 잔재
원시 종교의 또하나의 형태인 정령숭배(Animism)는 유일신 하느님이 아닌 다른 잡종 신령이나 영혼을 숭배하는 것이다. 원시인들은 이런 신령들을 잘 위하거나 섬김으로써 생활상의 위해를 피하거나 보호를 받아서 잘 살게 된다고 믿거나 기대하였다.
그리스도교는 구약 말기 유다이즘의 유일신 사상을 그대로 받아서 교회 초기에는 유일신 하느님을 흠숭하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내적 상호관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연구하고 토론하였다. 3세기에서 5세기까지 약 300년 동안에, 1차 니케아 공의회(325), 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 에페소 공의회(431), 칼케돈 공의회(451) 등을 거치면서 삼위일체 교리가 대략 확정되었다.

사목자들이 박해를 무릅쓰고 정통신앙 교리를 확립하면서 신자들을 사목하는 동안에, 일반 신자들은 신앙에 충실하여 순교한 신앙의 영웅들을 존경하고 모범하려고 노력하여 성인 공경의 풍토를 조성하였다. 역사적으로는 교회의 전례 축제는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축제를 근간으로 하고 있으며, 개별 성인들의 축제는 종교의 자유를 획득한 4세기부터 공식화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순교자들에 대한 신심, 순례, 공경은 2세기부터 그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성모축일이나 다른 성인축일보다 먼저 순교자를 기념하는 축제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순교자를 기념하는 날짜는 순교자의 육신의 생일이 아니고, 순교한 날을 영생에 들어간 날로 생각하여 순교자의 기일을 기념하였으며, 대개의 경우는 그분의 무덤이 집회의 중심이었으므로 먼곳에서도 사람들이 모여오는 순례단이 형성되었다.

박해시대가 끝나면서 순교자 외에 박해로 인하여 옥사 또는 병사한 증거자들도 준순교자로 인정되었고, 고행자들과 동정자들과 은수자들과 탁월한 사목자들도 별세한 후에 신자 대중의 여론이 성인으로 추앙하면 공경의 대상이 되었다. 12세기까지는 시복식이나 시성식을 교회 최고 당국이 거행하지 않았지만, 그야말로 백성의 소리가 바로 하느님의 소리로 통하였다. 최초로 교황청이 시성한(973년) 이후로 차츰 시성조사 등 시성절차법이 성립되고, 시성식을 주관하는 부서로 예부성이 설립되었다(1588년).

이렇게 교회가 성인공경을 공인해주고 필요한 절차도 마련함으로써 성인공경을 장려하였지만, 한번도 성인 공경을 신자들의 의무로 규정하거나 선포한 일은 없다. 오히려 경박한 사목자나 신자들이 성인공경을 과장하는 경향을 견제하느라고 여러 번의 공의회에서 남용을 금지하고 과장을 축소하고, 성인 신심이 상업주의에 흐르는 것을 경계하였다.

중세기 중기의 성화상 논쟁을 정리한 2차 니케아 공의회(787년)에서 하느님께는 흠숭지례를 드리고, 성인들에게는 공경지례를 드리는 것이라고 확정지었다

<정하권 몬시뇰 (마산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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