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관련

정통 신학 박사이자 출중한 영성 안내자 - 십자가의 성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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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엽 [simjy] 쪽지 캡슐

2005-02-14 ㅣ No.235

정통 신학 박사이자 출중한 영성 안내자
3. 영성사 안에서 위치 교황 요한바오로 2세는 십자가의 성 요한의 서거 400주년을 기념하면서 사목 교서 '신앙의 스승'(1990, 12, 14)을 발표하였다. 젊은 사제 때 로마에서 '십자가의 성 요한에 의한 신앙'이란 주제로 교의 신학 박사 논문을 썼던 교황은 그의 사목 교서에서 성인의 신학 사상과 영성을 깊이 분석하며 높이 기린다.
교황은 십자가의 성 요한이 서거한지 400 여년이 지났지만 오 늘도 여전히 교회의 정통 신학의 박사이며 신앙의 스승이고 출중한 영성 안내자임을 재확인하고 있다. 영성사 안에서 십자가의 성 요한의 위치와 교회 생활에 기여한 공헌을 살펴보자.

1) 십자가의 성 요한이 살고 활동하던 때(1542~1591)는 스페인과 유럽 그리고 신세계 아메리카에서 창조적이고 강한 종교 중심의 시대였으며 가톨릭 교회의 개혁과 복음적 확장의 시대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교회가 많은 도전을 받으며 내.외적 분쟁과 내부의 분열을 겪어야 하던 시대였다.

따라서 교회는 시대의 요청에 긴급히 응답하면서 막중한 임무를 수행해야만 했다. 무엇보다 교회의 내적 쇄신을 위해 트리엔트 공의회를 열어야 했고 신대륙 아메리카를 복음화해야 했으며 유럽은 재 복음화 되어야 했다. 십자가의 요한의 생애와 활동은 그러한 역사적 상황 안에서 전개된다.

2) 십자가의 성 요한은 교부들과 신학자들 그리고 여러 영성 저자들의 영향을 받았으나 그의 신학 사상과 영성은 독특성을 지닌다. 그는 살라망카 대학에서 도미니코회 교수들로부터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을 중심으로 교육을 받았으나 부정(否定) 신학파 니싸의 그레고리오와 위 디오니시오의 서적들과 아우구스티노, 그레고리오 1세 대 교황의 작품들도 읽었다. 그리고 그에게 영향을 준 다른 작가들은 성 베르나르도, 에카르트, 루이스브룩, 타울러, 오수나 그리고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등이다.

그의 신학과 영성은 그들의 작품이나 사상을 비판 없이 모방하거나 혼합적으로 모아 체계화한 것이 아니다. 그의 작품은 고유한 특성을 지니며 충만한 생명력이 넘쳐흐른다. 작크 마리뗑은 십자가의 요한의 독특성을 이렇게 표현한다. "우리는 아퀴노의 성 토마스를 남에게 전할 수 있는 최고의 지식을 지닌 큰 학자로 여기는 것처럼 십자가의 성 요한을 남에게 전할 수 없는 최고의 지식을 지닌 큰 학자로 여긴다"

그의 작품은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자신의 체험을 해설하며 기록한 것으로서 무엇보다도 성서의 말씀에 입각하여 반추하며 교회의 가르침에 온전히 순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1926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교회박사'로 선포되었다.

그의 신학의 근본 원리는 하느님은 모든 것이고 피조물은 무(無)라는 것이다. 성성은 하느님과의 완전한 일치에 있고 여기에 이르기 위해서는 영혼과 육체가 지닌 모든 기능과 능력이 강하게 철저한 정화를 거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가르멜의 산길'과 '어둔 밤'은 외적 감각의 능동적 정화에서 최고 기능의 수동적 정화에 이르는 전체적인 정화 과정을 추구한다. 그리고 '사랑의 산 불꽃'과 '영혼의 노래'는 변형일치 상태에 있는 영적 생활의 완성을 묘사한다. 일치에 이르는 완전한 길은 영혼이 신앙에 의해 나아가므로 '밤'인 것이다.

3) 십자가의 성 요한은 훌륭한 시인이기도 했다. 매우 엄격한 평론가로 이름 난 메넨데스 이 펠라요는 1881년 스페인의 한림원에 초대되어 연설하면서 십자가의 성 요한의 시를 ''스페인의 어느 시 보다도 뛰어나다''고 평가하였다.

그는 남의 것을 모방하여 썼거나 기교를 부리지 않았으며 초자연적 은총의 영감을 받아 자연스럽게 시의 형태에 아무런 구애됨이 없이 쓴 것이다. 성인의 저서의 핵심은 그의 시에서 찾을 수 있다.

서정 시적 기질과 초자연적 감수성이 풍부했던 그는 피조물이 표현하고 은은히 들려주는 절묘한 말의 뜻을 누구보다도 깊이 파악하고 있었다. 시란 사람의 마음에서 자연히 솟아 나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이어서, 흔히 말로 다 표현할 길 없는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시의 선율은 형언할 수 없는 체험과 상황을 표현하도록 하는 신비로운 힘이 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요한이 신비스런 체험을 한 후 그것을 시로 표현했던 것은 누를 수 없던 그의 천성적 기질의 충동에서였다. 그가 시를 쓴 것은 문학작품을 남기려는 의도를 가졌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느님과의 만남에서 느낀 그의 심정이 천부적 재능과 감수성을 자극하여 조화를 이루며 자연스럽게 표출된 것이다.

4) 십자가의 성 요한은 시대적으로 요청되던 카리스마를 받아 수도회 뿐 아니라, 온 교회의 쇄신에 봉사하였다. 그는 관상적 가르멜 수도 성소에 응답하여 생활하던 중 초기 회규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의지를 지닌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의 개혁 활동에 동참하였으며, 1568년 11월 28일에 남자 개혁 수도회를 아빌라의 두루엘로에서 창립하였다.

그의 모범적 삶과 출중한 영적 저서들은 당시와 그 후 역사 안에서 가르멜 수도회 뿐 아니라, 온 교회에 학문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크게 기여해 왔다. 그는 전례, 특히 미사 성제와 성체 조배,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신비 묵상, 하느님 말씀에 대한 경청, 하느님의 친교 등에 관해 가르쳤으며, 무엇보다도 시대를 초월한 관상기도의 스승이다. 실로 그는 하느님과의 합일을 위한 정화의 길의 권위 있는 안내자이다.

5) 십자가의 요한의 저서들이 오늘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로부터 읽히고 있으며 연구되고 있다. 그의 저서들은 역사 안에서 아빌라의 데레사의 것만큼 그리 널리 알려지거나 읽혀지지 않았다. 그의 책이 1618년 스페인의 알칼라에서 처음으로 출판된 후 이태리, 프랑스 등 일부지역에서 간행되었지만, 별로 알려지거나 보급되지 못했고, 19세기에 와서 점점 그 본래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다시 출판되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 그의 가르침과 영성의 진가가 차츰 교회 안팎으로 널리 알려졌고, 다행히 오늘 매우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 - 신학자, 시인, 철학자, 심리학자, 타 종파의 사람들과 타종교인들 - 로부터 읽혀지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성인은 하느님의 진리와 인간의 초월적인 성소에 모든 이가 해당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것은 많은 이들로부터 그의 작품을 통해 공감을 얻고 있다. 어떤 이는 그의 시의 아름다움 때문에, 어떤 이는 그의 깊은 신비체험에 대한 매력 때문에, 또 어떤 이는 그의 문학 안에 나타나는 인문주의 사상에 대한 호감으로 그의 저서들을 읽으며,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그의 가르침에 동화된다. 이 같은 하느님의 진리의 위대한 증거자에 의해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분의 교회는 오늘 많은 타종파 및 타종교의 사람들로부터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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