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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성가>> 3 - 유혹과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作爲的 합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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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순태 [sunsoh] 쪽지 캡슐

2004-04-15 ㅣ No.5552

[추가 안내: 아래의 글을 읽으신 후에, 생활성가 - 作爲的 용어의 한계 및 극복을 위하여.. (클릭하세요) (바로가기 주소: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gospelbbs/-/a/5574/ ) 라는 제목의 게시글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 찬미예수님!

 

[주: 제가 찾아 본 자료 중에 제일 나은 (개신교측) 자료로 바로가기.. (바로가기 주소: http://www.carry.pe.kr/ccm.htm ) ]

 

일전에 한 청년성가대에서 "생활성가"를 미사 중에 사용하지 못하게 한 결정에 대하여 심하게 반발하는 형제님의 게시글을 읽고서는 여러 면에서 부족한 제가 참고하라는 글을 이곳에 올렸던 적이 있었습니다만 (바로가기 주소: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gospelbbs/-/a/5386/ ), 오늘은, 그 당시 뿐만이 아니고 한참 전부터 의아해 하고 있던 문제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물론 부산교구 성음악연구소장님이신 윤용선 신부님께서도 이미 이곳 게시판에서 지적하시기도 한 문제입니다.. (바로가기 주소: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gospelbbs/-/a/5379/ )

 

대부분의 일반인들이 "성가"라는 말을, "성당"을 "성스러운 장소"로 우리가 보통 알고 있듯이, "성스러운 장소에서 부르는 노래"로 추측하여 쉽게 이해하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분명히 "성가"는 이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으니, 완전히 틀린 이해는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생각을 하여도, 가톨릭 교리 및 교의를 잘 모르시는 교우님 혹은 일반인들이 이 보다 더 "성가"라는 말의 뜻을 잘 이해하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첨부한 자료에서도 그러하지만 (바로가기 주소: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gospelbbs/-/a/5552/책자2004전례연수책자[1].hwp ), 우리나라 천주교회의 "성가"에 다음의 세가지 종류가 있는 듯이 사제 및 평신도 사이에서 이제는 버젓이 회자가 되고 있습니다.

 

즉, (i) 전례성가, (ii) 복음성가, 그리고 (iii) 생활성가.

 

그 결과, "이들이 이미 다 같은 반열에 오른 "성가"이므로, "복음성가" 혹은 "생활성가"를 미사 중에 사용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을 무의식 중에 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할 것입니다. 특히 형식적 논리에 막 눈을 뜨는 20대 초반의 젊은 분들의 경우에 있어서는..  그리고,  부족한 부분만을 채우면 당연히 이들이 "성가"가 되는 줄로 그 다음 이야기가 진행이 되고요..

 

다른 나라에 비하여 매우 liberal한 우리나라의 일부 개신교회 측으로 부터 흘러 들어오는 것이 분명한 이들에 대하여, (우리나라의 천주교회에서와는 달리) 다른 나라의 가톨릭계에서는, 복음성가나 생활성가와 같은, "성가가 아닌 것을 성가로 부르고 하는 경우"는 결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추가: 또한, 우리가 말하는 찬미가들을, 우리와 같이 성가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Hymns 라고 다른 명칭으로 부르고 있고요).

 

이러한 음악들과 관련하여, 우리와 같은 똑 같은 상황에 우리보다 먼저 처하였을 것이 분명한 다른 나라에서는 이들을 결코 "성가"라고 부르지 않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이에 대하여 굳이 그 해답을 찾아 보자면, 아마도 그들의 (유럽과 미국을 포함하여) 오래된 그리스도교에 기인한 문화적 전통 때문이겠지요.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 여성들의 전통 한복 겉옷에는 바지가 아예 없기에 자매님들이 한복의 속바지 차림으로 미사에 참여하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그러한 전통 - 문화적 전통 때문이겠지요..

 

 

여러가지로 부족한 제가 생각을 해 보아도, 지금까지와 같은 이러한 막연한 수준의 통념 혹은 잘못된 추측 혹은 상식"이 지배하는 상황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방치가 되면, 우리가 "생활성가"와 관련된 여러 갈등과 오해를 해소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것 같기에, 우선 아래의 질문을 해 봅니다.

 

질문 1: 누가, 언제, 어디서, 왜, 어떠한 목적으로, "생활성가"라는 "생활" + "성가" 라는 우리의 마음을 아주 복잡하게 만드는 복합어를 만들어 퍼뜨렸가?.. 하는 질문입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이곳 성가 게시판에서 "생활성가"에 대한 여러가지 견해를 피력하고 계신 대부분의 분들도 사실은 "생활성가"라는 용어의 출처 및 생성과정을 잘 모르고 계신 것 같으며, 또 제 나름대로 열심히 국내 인터넷을 한참 뒤져 보았지만 (참고: 위의 개신교측 자료를 꼭 참고하세요..^^), "생활성가"라는 단어는 개신교측에서는 전혀 사용하는 단어가 아니기에, 아마도 개신교 측의 어떤 짓궂은 분들이 국내 가톨릭 신자들을 괴롭히기 위하여 시작한 장난(Joke)은 아닌 것으로 보여집니다.

 

[참고: 우리나라가 서양문물에 대하여 문호를 개방한 것이 주위의 중국 및 일본에 비해 100년 이상 많이 늦었고 또 우리가 매우 불행한 일제 강점기를 거쳤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여러 Science 분야에서 요즈음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좀 오래된 학문적 용어 대부분이 (청나라의) 중국학자들 그리고 그 다음은 일본학자들에 의하여 한자어로 번역된 까닭에, 그러나 중국과 일본이 우리와 다른 생활문화적 및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기에, 이들이 번역한 한자어 학술용어를 아무리 다시 읽어도 그 뜻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 줄로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수학의 선형대수학 분야에서 흔히 사용하는 "기저"라는 표현.., 영어로 "basis"라는 표현의 한자어인데.., 이 말이 도대체 무슨 뜻으로 우리말 속에서 사용되고 있는지요? 혹시 이 "기저"라는 단어를 읽으면 무슨 확실한 느낌이 오시는 분 계신지요? 음.. 평소에 거의 사용하지 않는 생소한 한자 단어의 뜻을 새로 배우기 위하여 이공계 대학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닌데, 어떻게 달리 설명하는 것 조차 힘든 이러한 문제 때문에 배우는 이공계 대학생들이 쓸데없는 고통을 느끼고 또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여야 하는 부분이 더러 있다는 것입니다.]      

 

혹시 "생활성가"라는 말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그야말로 세계 최초의 개념을 담고 있는 표현이라면, 마땅히 이 말의 후반부에 그냥 "가"가 아닌 "가"라는 말을 붙였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공히 주어져야 할 것인데.. 이런 것이 전혀 없습니다. 아니, 찾지를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나라, 예를 들어, 미국에 먼저 나타난 개념을 수입하였다면, 당연히 "생활성가"에 해당하는 영어표현이 있을 것인데, 이것에 대하여서도 저도 모르고 있고 또 다른 분들도 모르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사용 중인 용어의 뜻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이 정체불명의 표현인 "생활성가"에 대한 서로들의 견해를 주거니 받거니 하려니, 그야말로 눈 뜬 장님들이 모여 앉아서 "추상적인 코끼리 다리 만지는 일"들이 벌어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순진한 분들의 이러한 혼란을 적당한 거리에서 지켜 보면서 즐기고 있는 "사이코"들도 있는 것 같고요..

 

미국인에게 물을 수 없는 질문입니다만,

 

질문 2: 여러 분들 중에 "생활성가"의 영어표현을 정확하게 알고 계시는 분은 계신지요?

 

미국의 "Gospel Song" 이 우리 말로 번역이 될때, 글자 그대로의 번역인 "영가" 대신에, 아마도 개신교측의 누군가에 의하여 "복음성가"로, 즉 ""이라는 글자를 추가로 삽입하는, 다분히 의도적인 오역이 진행된 모양인데.., 이것도 누가 어떠한 목적으로 이러한 오역을 하였는지에 대하여 우리는 모르고 있습니다.

 

물론, 세속에 계신 몇 몇 분들이, 판매 혹은 영업 전략상,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세속적이지 않다"는 점을 세속 소비자들에 강조( 혹은 역설)하기 위하여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겠지요.. (벌써 이러한 생각 자체가 문제죠.. 아니, 버젓히 "돈벌기" 등의 세속적 삶을 하면서도 자칭 "세속적이지 않다"라니..) 그러나, 초창기에 이 ""이라는 단어를 붙여 사용하는 것에 대하여, (평신자로 구성된 개인단체의 지도신부로 부터가 아니라) 공번된 성교회 주관부서의 책임사제로 부터 공식적인 허락을 받은 분이 단 한 분이라도 계셨던지요? 이런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았으니, 혹은 돈 버는 행위 등의 세속적인 것을 위하여 "성스러운 분위기 훔치기"를 하였다는 소리를 듣게 되고, 또 세속적 이권관계가 걸려 있지 아니한 대부분의 교우님들로 부터 (자세한 내용을 알게 되고 나서 부터는) 신앙적인 것과 관련하여 심정적인 인정 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일 것입니다.

 

미국에서도 우리보다도 먼저, 소위 말하는 "Gospel Song" 등의 출현으로 인하여 이러한 혼란에 진작부터 시달렸던 때문인지, "Contemporary Christian Music" 혹은 "Contemtporary Catholic Music" 의 경우에는 아예 그냥 단순히 줄여서 CCM으로 부르는 줄로 요즈음의 미국인들도 알고 있고, 또 국내에서도 이것을 CCM 대신에 과거와 같이 무리하게 CCM으로 부르지 않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질문 3: 그런데.. 혹시 한국의 가톨릭 신자 중애 누군가가 무슨 의도를 가지고 "CCM"으로 불려야 하는 곡들을 두고서, "생활성가"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아닌지요?

 

이것을 여쭈는 이유는 첨부한 자료의 제 3강의(현정수 신부님) 제 17 - 18 쪽을 살펴 보아도 (바로가기 주소: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gospelbbs/-/a/5552/책자2004전례연수책자[1].hwp ), (i) 전례성가, (ii) 복음성가, (iii) 생활성가 등으로 크게 세 가지로 분류를 하고 있기도 하여서입니다.. 즉, 복음성가 및 생활성가가 이미 "성가"인양.. 만약에 이것이 사실이라면, 번역의 과정에서

 

CCM ==> 생활성가 ==> CCSM (즉, Contemporary Christian (or Catholic) Sacred Music)

 

으로 의미 증폭이 되어, 결국에는 "미사 중에도 CCSM을 하는 것이 무엇이 잘못 되었느냐?"는 등의 얼핏보면 그럴듯한 형식논리적 정당성을 주장하는 분들이 나오게 되는 셈이니, 상당히 곤란해지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현 신부님께서 결코 동일 선상에 놓아서는 아니되는 이러한 분류를 하시기 전에, "생활성가"에는, 연주하는 악기 등에 있어 "복음성가"와는 다른 부분이 있는 모양인지, 이미 다른 분들에 의하여 이렇게 따로 따로 불리고 있었죠..

 

또한, 개신교 측에서 "복음성가"로 부르고 있는 곡들에 대하여 가톨릭 측에서도 "복음성가"라는 명칭으로 같이 부르는 것이 싫어서 이런 부류의 노래를 "생활성가"로 부르기로 하였다는 말도 여태 들어보지를 못하였습다.

 

그러니까.. 음.., "생활성가"가 "복음성가"로 불리는 곡들과 대동소이하다면 왜 굳이 "생활성가"라는 또 하나의 생소한 단어를 만들어 우리를 혼란과 유혹에 빠지게 하였을까요?

 

"가톨릭 복음성가집"이라는 제목을 가진 책자는 오래 전부터 우리 주변에 버젓이 앉아 있습니다. 언제쯤에 "가톨릭 생활성가집"이라는 제목을 가진 책자가 출판될 것인지에 대하여 혹시 알고 계시는 분은 없으신지요?

 

단순히 수사학적인 면에서 살펴 보면, 예를 들어,

"성스러운 교회" = "교회" 혹은

"성스러워야 할 교회" = "교회" 등과 같이,

"성"(Sacred) 이라는 단어는 형용사로서 "주님을 모시고 있는 교회"라는 교회의 참모습 혹은 어떤 특징(즉, 개신교회와는 달리 항상 성체를 모시고 있는 점 그리고 성체성사를 거행하는 점)을 최대한도로 잘 강조하기 위하여 우리가 사용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이것을 보고서는, 짧은 생각 끝에.., 이런 식의 강조를 하기만 하면 혹은 형식논리를 적용하기만 하면, 극히 주관적인 것이 절대 객관화 과정을 저절로 무사 통과하여 성스러워지는 줄로 큰 착각을 하면서, "Gospel Song"을 의도적으로 "영가" 대신에 "복음성가" 등으로 오역을 한 것은 아닐까요?

 

물론 "Gospel Song"이 "복음성가"로 번역되었으니, 이에 버금가게 "생활성가"는, 예를 들어, "Life Song"으로 번역을 하면 될 것 같지만, 그러면 이러한 번역이 어떻게 미국인들에게 바르게 전달이 될 수 있는 번역일까요? 그리고, 이런식의 "수사학적 강조" 끝에

 

Gospel Song ==> 복음 ==> Gospel Sacred Song

    ???     ==> 생활 ==> Life Sacred Song

 

라고 억지 춘향 식의 의미 증폭이 일어난다면, 용어 때문에 우리를 포함한 모두를 혼란에 빠지게 되는 일이 되기에, 예를 들어, 무작정 듣기 좋아서, 혹은 어짜피 무얼 잘 모르는 교우님들의 경계심을 풀기 위하여, 이렇게 저렇게 그럴듯한 용어를 만들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볼 것도 없이 이것 또한 세속적 생각과 세속적 마음의 타락의 한 형태이기에..

 

사족일 수도 있습니다만, 우리의 경제 규모를 보아 조만간 우리의  복음성가 혹은 생활성가를 번역하여 외국으로 문화 수출(?)을 할 때를 대비하여서라도, 용어와 관련된 문제는 꼭 집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여기서 다루고 있는 신앙생활과 관련된 용어 문제는, 우리끼리 괜찮다고 하면 괜찮아지는 그러한 사소한 문제가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건 한 에피소드입니다만.., 어떤 분이 출처 불명의 단어, "생활성가"라는 표현을, "????" 혹은 "XXXX"로 표현하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서 무엇을 뜻하는지 전혀 알 수 없게 되기에, 어정쩡하게 그러면서도 적당히 ("생활??" 대신에) "생활XX" 로 표현하였더니, "폄하한다.."는 지나친 오해를 하시는 분들도 계시더군요.. 물론, 이미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진 (biased) 분들의 입장에서 이러한 표현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이었겠지만.

 

결론적으로 말씀드려, 아무나 죽고나서 인 혹은 녀가 될 수 없듯이, 아무데나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아니될 것인데.., 성교회의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생활가"라는 단어를 만들어서는 국내 가톨릭계에 유포한 분이 누구인지요? 이런 것부터 분명히 하지 않으면, 제 2의 혹은 제 3의 유사한 말장난 때문에 우리가 혼란과 유혹에 빠지고 또 고통을 입는 일들이 발생하지 않을까요? 아무리 미래가 우리의 희망이라고 하더라도, 희망사항에 도취되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대부분의 아이들을 두고서 이들이 모두 "인" 혹은 "녀"라고 누군가가 주장한다면, 누가 흔쾌히 이러한 주장에 동의해 줄 수 있겠습니까?

 

P.S. 제가 75학번이니 저 역시 통기타 세대일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복음성가의 매력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저 자신도 참으로 많이도 불렀고요.. 그런데, 70 - 80년대에 일부 개신교측 통기타 가수들 중에 미국에 유학(?)인지 무슨 명목으로 나가서는, 돈 떨어지면 국내에 잠시 들어와 귀국공연 운운하면서 생활비 만들어 미국 다시 들어가고 하던 곤란한 분들이 몇 분 있었던 것으로 기억 되는데.., 아마도 이런 분들이 소위 말하는 복음성가를 국내에 널리 퍼뜨리는 데 일조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미국 유학이 무슨 대수라고.., 세속에서 주님을 적극적으로 팔아 돈 버는 일에 "성"자를 꼭 집어 넣어야 하였던지.. 하는 씁쓸한 생각을 해 봅니다.

 

첨부파일: 책자2004전례연수책자[1].hwp(1559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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