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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홍) 2024년 4월 25일 (목)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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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0주일]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 (마르3,20-35)

107 김종업 [rlawhddjq] 2018-06-08

 

 

[연중 제10주일]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 (마르3,20-35)

 

 

주 하느님께서는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라고 하신다. (창세 3,9-15)
사람이 나무 열매를 먹은 뒤, 주 하느님께서 그를 9 부르시며, “너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10 그가 대답하였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
11 그분께서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따 먹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12 사람이 대답하였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
13 주 하느님께서 여자에게 “너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하고 물으시자, 여자가 대답하였다.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따 먹었습니다.”
14 주 하느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너는 모든 집짐승과 들짐승 가운데에서 저주를 받아  네가 사는 동안 줄곧 배로 기어 다니며 먼지를 먹으리라.
15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바오로 사도는, 이 지상 천막집이 허물어지면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영원한 집을 하늘에서 얻는다고 한다. (2코린4,13─5,1)
형제 여러분, 13 “나는 믿었다. 그러므로 말하였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똑같은 믿음의 영을 우리도 지니고 있으므로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므로 말합니다.”
14 주 예수님을 일으키신 분께서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일으키시어  여러분과 더불어 당신 앞에 세워 주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5 이 모든 것은 다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은총이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퍼져 나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16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외적 인간은 쇠퇴해 가더라도 우리의 내적 인간은 나날이 새로워집니다.
17 우리가 지금 겪는 일시적이고 가벼운 환난이  그지없이 크고 영원한 영광을 우리에게 마련해 줍니다.
18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우리가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5,1 우리의 이 지상 천막집이 허물어지면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건물 곧 사람 손으로 짓지 않은 영원한 집을  하늘에서 얻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당신의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라고 하신다. (마르3,20-3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20 집으로 가셨다. 그러자 군중이 다시 모여들어 예수님의 일행은 음식을 들 수조차 없었다.
21 그런데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22 한편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 학자들이, “그는 베엘제불이 들렸다.”고도 하고, “그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도 하였다.
23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부르셔서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떻게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24 한 나라가 갈라서면 그 나라는 버티어 내지 못한다.
25 한 집안이 갈라서면 그 집안은 버티어 내지 못할 것이다.
26 사탄도 자신을 거슬러 일어나 갈라서면 버티어 내지 못하고 끝장이 난다.
27 먼저 힘센 자를 묶어 놓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 힘센 자의 집에 들어가 재물을 털 수 없다. 묶어 놓은 뒤에야 그 집을 털 수 있다.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29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
30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사람들이 “그는 더러운 영이 들렸다.”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31 그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다. 그들은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불렀다.
32 그분 둘레에는 군중이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3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34 그리고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35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연중 제10주일 제1독서  (창세 3,9-15)

 

사람이 나무 열매를 먹은 뒤, 주 하느님께서 그를 부르시며, "너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9)

 

여기서 '부르시며'에 해당하는 '와이크라'(waiqra; and called)에서 '부르다'('카라'; qara)는 큰 소리로 '외치다'(1사무26,14; 1열왕13,12)라는 의미와 '소환하다'(욥기13,22)라는 의미도 지닌다.

즉 하느님께서는 아담이 부인할 수 없도록 분명한 목소리로 그를 소환하셨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러한 하느님의 소환은 아담과 하와 뿐 아니라 인격적 존재로 지음받은 모든 인간에게도 이루어진다.

 

또한 '물으셨다'에 해당하는 '와요메르'(wayomer; and said)에서 '묻다'('이르다';'아마르'; amar; 창세46,33)는 일반적으로 대화하는 것을 가리키나 더 나아가 '권하다'(에스테르3,4)라는 의미도 있다.

 

따라서 앞의 '부르다'가 죄에 대해 엄정하신 하느님의 공의를 부각시키는 표현이라면, '묻다'는 연약하여 죄를 지은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고 찾아와 회개할 것을 촉구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부각시키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죄는 미워하되 죄악 가운데 빠져 있는 그 인간 자체는 불쌍히 여기시고 몸소 찾아와 회개할 것을 촉구하시는 은혜가 풍성한 분이시다(이사1,18).

 

한편 '너 어디 있느냐?'에 해당하는 '아옉카'(ayekkah; where are you?)에서'어디'를 의미하는 의문 부사 '아예'(aye)에 '너'를 의미하는 접미사 '카'(ka)만을 붙인 극히 간략한 형태의 의문문이다. 그러나 길게 묻지 않고 간략하게 질문하므로 더욱 가슴 속을 깊이 파고 들며 강한 울림을 남긴다.

 

하느님께서는 다른 말씀은 모두 생략하신 채 단도직입적으로아담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만을  표면으로 끄집어 내셨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아예'(aye)가 장소를 나타내는 의문부사이지만 본절은 하느님께서 현재 아담이 있는 장소를 모르셔서 묻는 질문이 아니다. 


오히려 아담으로 하여금 어떤 형편에 처해 있으며 그것이 과연 바람직한 상태인지 반성을 촉구하는 질문이다. 

따라서 아담은 이 질문을 받자마자 자신의 죄스런 상태를 돌아보고 겸허하게 하느님 대전에 나아와 회개했어야 했다.   그러나 아담은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방문과 자신을 돌아보도록 촉구하시는 부르심에도 불구하고 회개의 기회를 놓쳐 버렸다.

 

 

 

 연중 제10주일복음 (마르3,20-35)

 

"그런데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21)

 

'예수님의 친척들'에 해당하는 '호이 파르 아우투'(hoi par autou; his family)'그에게 속한 자들' 또는 '그와 함께 한 자들'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친구들'이라고 번역할 수 있지만, 마르코 복음 3장 31절 이하의 예수님의 가족들이 예수님을 데리러 오는 문맥과의 조화를 생각하면, 이들은 '예수님의 가족들'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리고 '붙잡으러' 해당하는 '크라테사이'(kratesai; to take charge of; to lay hold on)원형 '크라테오'(krateo)'체포하다'라는 뜻이라서 (마르6,17; 12,12참조), 예수님께 대한 그의 가족들의 태도얼마나 무지하고 살벌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예수님께서 당신의 일을 이해하지 못한 그들에 대해 영적인 의미에서 가족이 될 수 없다고까지 말씀하신 반응이 더 잘 이해될 수 있다.

또한 예수님의 친척들이 보인 이런 부정적인 모습은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영적 무지와 어리석음에 빠져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는지에 대한 척도가 된다.

 

이제 예수님께 대한 평가의 하나인 '그가 미쳤다'에 대해서 알아볼 차례이다.  '예수님께서 미쳤다'에 해당하는 '엑세스테'(ekseste; He is beside himself; He is out of his mind) 원형 '엑시스테미'(eksistemi)'~의 밖으로' 라는 뜻의 전치사 '에크'(ek)'어떤 상황이나 관계 속에 있다'는 뜻의 동사 '히스테미'(histemi)의 합성어이다. 

말하자면, 이 단어는 예수님께서 현재의 상황이나 현상들에 대하여 정상적인 이해가 불가능한 상태에 있다는 뜻이다.

 

예수님께 대한 이런 단정적인 소문은 예수님의 가족들로 하여금 그를 집으로 데려가야 한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특히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미쳤다'는 말은 '마귀가 들렸다'는 뜻이었다(마르1,23). 

이 구절 이후에도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 대해 베엘제불이 들렸고,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하는 내용이 나온다(마르3,22). 

특히 마르코 복음 3장 30절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향해 '그는 더러운 영이 들렸다'고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마르코 복음 6장 1절 이하를 보면 고향 사람들도 예수님의 일에 대해서 신뢰하지 않았고, 요한 복음 7장 5절에는 예수님의 형제들(사촌들을 말함) 역시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또한 마르코 복음 3장 21절3장 31~35절의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판단하고 그를 붙들러 온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마르코 복음 3장 22~30절에서 예수님을 향해 베엘제불이 들렸다고 하는 예루살렘에서 온 율법 학자들과 예수님의 논쟁을 앞뒤에서 둘러싸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한편에서는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고 마귀를 내쫓는 기적을 행하시는 능력의 소유자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소문도 돌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예수님께서 단순히 마귀들려 미쳤다는 소문돌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멀리 예루살렘에서 온 율법학자들 뿐만 아니라(마르3,22), 그의 일을 지켜본 갈릴래아의 사람들이나(마르3,21 후반절) 심지어 자신의 친척들과 가족들까지(마르3,21 전반절)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마귀에 들려서 미친 사람 취급을 했다는 사실을 통해 볼 때, 예수님께 대한 비난에 가까운 배척과 오해, 영적 무지와 불신이 더 지배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아담과 하와가 원죄를 지은 뒤 일어난 현상은 죄에 대한 부끄러움과 두려움, 변명입니다. 우리도 죄를 지으면 ‘하느님께 벌을 받지 않을까?’ 걱정하고 두려워합니다. 이러한 두려움은 하느님을 공경하고 사랑하여 생기는 두려움과는 다릅니다. ‘죄의 두려움’은 죄인의 영혼이 파멸되고 죽어 가고 있는 사실을 느끼며 하느님의 벌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하느님께 나아가지 못하고 피합니다. 사람들 앞에서도 당당하지 못하고 주눅이 듭니다. ‘죄의 부끄러움’은 순수함에서 오는 부끄러움과 구별됩니다. 그것은 죄인의 영혼이 더럽혀진 것을 깨달으며 그것을 감추려고 숨기는 행위로 생깁니다.
‘죄인의 변명’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남에게 뒤집어씌우거나 중상모략을 하는 데까지 이릅니다. 변명하지 않고 모함을 견디어 내는 영혼은 예수님을 닮아 겸손한 사람이 됩니다. 구세주이신 예수님의 수난, 모함에 대한 침묵은 많은 사람의 구원을 위한 속죄 행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악의 세력으로 표상되는 뱀과 하와의 후손 사이에 영적 전쟁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십니다. 이것은 악의 적개심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심오한 계획으로부터 옵니다. 주 예수님을 죽음에서 일으키시어 모든 사람에게 부활의 생명을 알리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섭리에서 나옵니다.
온 인류에게 퍼진 구원의 은총으로 하느님의 영광이 세상에 넘칩니다. 악의 세력은 예수님을 마귀 우두머리로 치부합니다. 그러나 악의 세력은 새로운 인간의 시대, 내적으로 새로워져 구원을 얻는 시대, 곧 믿음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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