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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5주일] 새 계명(요한13,31-33ㄱ.34-35)

161 김종업 [rlawhddjq] 2019-05-19

 

 

 [부활 제5주일] 새 계명(요한13,31-33ㄱ.34-35)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교회마다 원로들을 임명하고, 단식하며 기도한 뒤에, 주님께 그들을 의탁하고 안티오키아로 간다. (사도 14,21ㄴ-27)
그 무렵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21 리스트라와 이코니온으로 갔다가  이어서 안티오키아로 돌아갔다.
22 그들은 제자들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고 계속 믿음에 충실하라고 격려하면서,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23 그리고 교회마다 제자들을 위하여 원로들을 임명하고, 단식하며 기도한 뒤에, 그들이 믿게 된 주님께 그들을 의탁하였다.
24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피시디아를 가로질러 팜필리아에 다다라,
25 페르게에서 말씀을 전하고서 아탈리아로 내려갔다.
26 거기에서 배를 타고 안티오키아로 갔다. 바로 그곳에서 그들은 선교 활동을 위하여 하느님의 은총에 맡겨졌었는데, 이제 그들이 그 일을 완수한 것이다.
27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교회 신자들을 불러,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과  또 다른 민족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신 것을 보고하였다.


요한 사도는, 어좌에 앉으신 분이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고 하시는 소리를 듣는다. (묵시21,1-5ㄴ)
나 요한은 1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첫 번째 하늘과 첫 번째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없었습니다.
2 그리고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처럼 차리고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3 그때에 나는 어좌에서 울려오는 큰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4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5 그리고 어좌에 앉아 계신 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시며,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다. (요한13,31-33ㄱ.34-35)
 31 유다가 나간 뒤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32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33 얘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34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바오로와 바르나바

 부활 제5주일 제1독서 (사도14,21ㄴ-27)

 

그들은 제자들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고 계속 믿음에 충실하라고 격려하면서,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22)

 

'힘을 북돋아 주고'로 번역된 '에피스테리존테스'(episterizontes)의 원형 '에피스테리조'(episterizo) 더욱 굳게하고 강화하며 더욱 확실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사도행전에서만 4회 쓰였는데(사도15,32 .41; 18,23), 모두가 사람의 마음과 교회의 신앙심을 확고하게 한다는 의미로 쓰였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그들이 복음을 전한 리스트라와 이코니온과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의 제자들의 신앙이, 행여 유다인들의 박해와 핍박과 이전 삶의 유혹으로 흔들리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의 마음으로, 그들의 신앙을 더욱 확고하게 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던 것이다.

이런 일들은 몇 마디 격려로 되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마음을 합심해서 기도하는 과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을 것이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환난을 겪어야만 했다. 그리고 이 환난은 그들만이 아니라 복음을 전수받고 믿기 시작한 성도들에게도 닥치는 것이다.

따라서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은 점점 증가하는 박해로 인해 믿음을 버릴 소지가 다분했던 것이다. 그러기에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믿는 이들에게는 필연적으로 환난이 따르며, 그러한 환난을 믿음과 인내로 극복해야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음을 가르쳐 그들로 하여금 믿음에 굳게 서도록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에는 '데이'(dei)라는 단어가 쓰였는데, 이것은 '~해야 한다'(must)라는 필연성을 나타내는 동사이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는 것이 필연적인 일이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그런데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는 것바오로 당시의 성도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만이 아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고자 하는 모든 세대의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 세상은 하느님의 원수인 마귀들이 공중을 다스리는 지배자들로서, 지금도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는 불신자들안에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에페2,1참 조).

따라서 세상의 풍조에 따라살면서 악한 영들의 지배를 받고 있는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께 속한 사람들을 미워하기 때문에, 성도들은 그로 말미암아 세상에서 환난을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성도들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때 이상하게 여기거나 환난 때문에 신앙을 저버려서는 안된다.

 

만약 우리가 환난이 두려워 신앙을 버린다면, 하느님의 나라에는 결코 들어갈 수 없다.

로마서 8장 17절에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라고 계시한다.

또한 로마서 8장 18절에서는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계시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때문에 환난을 당할 때, 우리를 위해 대신 수고 수난하신 주님의 십자가상 고난과 장차 주어질 놀라운 천상 영광을 바라보며, 더욱 믿음을 굳게 가져야 한다.




사랑하는 이들끼리는 서로 선물을 주고받곤 합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사랑하면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 주게 되는데, 그 선물이 상대를 살리고 영광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선물하시는 당신의 생명은 ‘성령’이시며, 성령께서 곧 ‘하느님의 영광’이 되십니다.
요르단강에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느님께서 아드님께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이것이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영광스럽게 하시는 방식입니다.

아드님께서는 아버지의 뜻대로 세상을 위하여 당신 피를 흘리심으로써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순종으로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 하시며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는 당신 성령을 통하여 아드님을 죽음에서 부활시키심으로써 아드님을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통한 이 삼위일체 신비가 모든 이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교회를 위하여 당신 생명과 같은 성령을 선물하시어 교회를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교회는 “서로 사랑하여라.”라는 말씀을 실천하며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합니다.
이웃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가장 큰 사랑입니다. 이웃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교회를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부활의 성령을 또 보내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는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됩니다. 하느님과 이웃을 영광스럽게 하는 사람만이 하느님과 이웃에게서 영광을 받습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영원에서 영원으로 

 

옛날에 어머니 말을 무척이나 듣지 않는 청개구리가 있었습니다. 어머니 청개구리는 아들 때문에 너무도 상심하여 급기야 병이 들었습니다. 죽음을 앞둔 어머니는 아들을 불러 "내가 죽고 나면 냇가에 묻어 다오." 하고 유언을 남겼습니다. 늘 거꾸로만 하던 아들 청개구리라 그랬던 것이지요. 그런데 아들 청개구리는 어머니의 마지막 부탁이라 말씀대로 냇가에 묻었습니다. 그래서 청개구리는 비만 오면 무덤이 떠내려갈까 봐 '개굴개굴' 우는 것이랍니다. 너무도 잘 아는 '효'에 관한 우리나라의 설화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길어온 이야기 또 하나. 온몸에 심한 화상을 입은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키울 수 없어서 고아원에 맡겼습니다. 고아원에서 서럽게 자란 아들은 아버지를 원망하며 자수성가를 했답니다. 혼자 시골에서 근근이 생활하던 아버지는 아들이 보고 싶어서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를 구박했고, 화상으로 일그러진 아버지를 창피해했습니다. 외롭게 살던 아버지가 위독하게 되어 동네 사람들이 아들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아버지의 유언이 있었습니다. "제발 화장만은 하지 말아 달라."고. 아들은 그 유언마저 뿌리치고 화장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내게 잘해 준 것이 뭐 있다고 때마다 찾아와 벌초하는 수고를 하게 하느냐고. 아버지를 화장한 뒤 아들은 유품을 정리하다가 아버지의 일기장을 발견했습니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쓴 편지를 읽으면서 어릴 적 자신의 불장난으로 집에 불이 났고, 아버지가 자신을 껴안고 나오면서 화상을 입었다는 것, 아버지한테는 아내를 구하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되었으며 화상을 입은 아버지가 자신을 키울 수 없어 고아원에 맡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통곡했습니다. 아버지를 평생 원망한 것도 모자라 유언도 듣지 않은 때 늦은 후회! 아버지는 뜨거운 것이 싫었습니다.
청개구리는 늦게라도 유언의 참뜻을 깨닫고 무덤을 옮길 수 있었지만 이 아들의 아버지는 이미 재가 되어 사라졌기에 돌이킬 수 없는 아픔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또 하나의 이야기를 압니다. 온 세상이 다 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이야기는 바로 오늘의 복음으로, 수난과 죽음을 앞둔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후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5)고 당부하신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제대로 사랑하는 능력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창세 2,23)고 기뻐하던 아담은 금지된 나무 열매를 먹고는 그 책임을 여자에게 돌리고, 그 아들 카인은 동생을 죽이는, 사랑의 역사라기보다는 죄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의 대주제는 여전히 죄와 전쟁으로 점철된 역사 위에, 그리고 역사 속에 면면히 흐르는 '사랑'입니다. 하느님은 인류에 대한 사랑을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배신만 하는 이스라엘을 두고도 하느님의 외침은 이러했습니다. "에프라임아, 내가 어찌 너를 내버리겠느냐? 이스라엘아, 내가 어찌 너를 저버리겠느냐?"(호세 11,8) 인간에 대한 이런 하느님의 사랑은 예수님을 통해 확실히 드러났습니다. 사랑을 수없이 말하지만 제대로 사랑할 줄 모르는 우리에게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떠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요한 13,34) 그렇게 사랑하라고.

 

제자들은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면서 희로애락을 나누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들을 어떻게 돌보고 인내하고 가꾸셨는지를 살아 계실 때는 채 깨닫지 못했지만 돌아가신 뒤에 깨달았습니다. 스승님이 그들을 사랑한 것처럼 그렇게 사랑하라는 소명을….

그분은 무지하고 말귀 못 알아듣는 그들을 참고 기다리셨습니다.
그분은 성가시게 구는 군중들에게 친절하셨습니다.
그분은 더 많이 배우고 가진 것이 많은 학자들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시기하지 않고
마귀를 쫓아내고 병을 고쳐주면서도 뽐내지 않았으며 보잘것없는 사람들한테도 무례하지 않았습니다.
오천 명의 배고픔을 채워주시면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았으며
겟세마니에서 죽도록 힘들 때 함께 기도하지 않은 제자들에게 성내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에게 앙심을 품지 않았습니다.
성전에서 장사하는 일을 기뻐하지 않았고,
철부지 어린이 같은 이들에게 드러내시는 하느님의 일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분은 간음한 여인의 모든 허물을 덮어주고
당신의 죽음 앞에 도망갈 제자들을 믿고
그들이 당신의 길을 따르리라 바라며 유언을 남기고
모든 수난을 견디어 냈습니다.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13장에 비추어 볼 때 예수님 방식대로 사랑하는 것은 이러했습니다. 유언의 뜻을 파악하지 못하고 내 방식대로 하다가 나중에 통곡하는 일이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정 세라피아 수녀(포교성베네딕도수녀회 대구수녀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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