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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대축일]진리의 영(요한 16,12-15)

165 김종업 [rlawhddjq] 2019-06-16

 

[삼위일체 대축일]진리의 영(요한 16,12-15)

 

잠언의 저자는, 하느님의 지혜는 한처음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태어났다고 한다. (잠언 8,22-31)
하느님의 지혜가 이렇게 말하였다.22 “주님께서는 그 옛날 모든 일을 하시기 전에  당신의 첫 작품으로 나를 지으셨다.
23 나는 한처음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영원에서부터 모습이 갖추어졌다.
24 심연이 생기기 전에, 물 많은 샘들이 생기기 전에 나는 태어났다.
25 산들이 자리 잡기 전에, 언덕들이 생기기 전에 나는 태어났다.
26 그분께서 땅과 들을, 누리의 첫 흙을 만드시기 전이다.
27 그분께서 하늘을 세우실 때, 심연 위에 테두리를 정하실 때 나 거기 있었다.
28 그분께서 위의 구름을 굳히시고 심연의 샘들을 솟구치게 하실 때,
29 물이 그분의 명령을 어기지 않도록 바다에 경계를 두실 때, 그분께서 땅의 기초를 놓으실 때
30 나는 그분 곁에서 사랑받는 아이였다. 나는 날마다 그분께 즐거움이었고 언제나 그분 앞에서 뛰놀았다.
31 나는 그분께서 지으신 땅 위에서 뛰놀며 사람들을 내 기쁨으로 삼았다.”


 바오로 사도는, 믿음 덕분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은총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로마 5,1-5)
형제 여러분, 1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2 믿음 덕분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서 있는 이 은총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3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4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5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우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라고 하신다. (요한 16,12-15)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13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14 그분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15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삼위일체 대축일 제1독서 (잠언8,22-31) 

 

잠언 1장 8절에서 9장 18절까지교훈 모음이며, 삶에 대한 일종의 '지혜시'라고 할 수 있다. 이 지혜시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지혜의 기원과 지혜의 의인화(잠언1,20-33)이고, 또 다른 하나는 다양한 교훈들(악인들과 낯선 여인들, 게으름과 간음에 대한 경고 등등: 잠언1,8-19; 2,1-9,18)이다. 다양한 주제가 거론되는 것으로 보아, 이 부분은 일관된 제작 과정을 거치지 않고,  여러 시대와 상황, 장소, 사건 속에서 점진적으로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부분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잠언1장 7절에서 "주님을 경외함은 지식의 근원"이라고 고백하던 지혜의 근원을 잠언 9장 10절에서 반복되고, 잠언 31장 30절에서도 다시 언급됨으로써 일종의 '수미(首尾) 상관적 구조(inclusio)'를 형성하면서 다시 한번 고백하여 강조한다는 점이다.  

 

잠언 1~9장에서도 특별히 잠언1장 2~7절은 책 전체를 요약하고 있는데, 잠언을 일종의 '교육서'로 제시되며, "주님을 경외함은 지식의 근원"(잠언1,7)임을 대주제로 천명한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참된 지혜이며 '행복의 시작'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잠언 8~9장에서는 "숙녀 지혜"가 등장하는데, 지혜의 여성적 의인화가 이 부분의 핵심이며그녀는 창조때 하느님의 협력자로서 활동하였다고 소개된다. 잠언에 나타난 특이한 점은 지혜를 의인화하고 있는 것이다.

 

잠언 1장 20절~33절과 8장~9장에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는데, 여기에서 지혜사람들을 향해 소리치는 여인으로 의인화되어 있다. 이렇게 지혜를 여성으로 의인화하는 것은 지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여성 명사이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여성 지혜는 마치 하느님의 말씀과 동일한 기능을 하는 것처럼 표현되는데, 그녀는 자신의 언어로 사람들을 인도하고 안내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하여 그녀는 말씀의 선포자, 예언자적 임무를 수행하는 이로(잠언1,20-33), 그리고 하느님과 피조물의 중개자로(잠언8장) 소개된다.

 

이제 잠언의 또 다른 신학적 주제인 "창조와 지혜"가 잠언 8장에서 거론된다. 위에서 언급된 의인화된 지혜 하느님의 속성과도 연결된다. 왜냐하면 잠언 8장 22-26절을 보면, 이 지혜는 태초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하느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실 때 이미 거기에 있었고 하느님의 창조 사업을 거들었다(잠언8,27-29).

하느님께서 지혜로 세상을 만드셨다는 사상 잠언 3장 19-20절에서도 발견된다. 그렇다면 지혜는 신적 기원을 가진 존재라고 표현해도 틀린 말이 아닌 것이다. 또한 그녀는 항상 하느님의 현존안에서 기뻐하며, 새 세계 어디에서나 뛰놀고, 사람들 안에서 즐거워한다(잠언8,30-31). 

 

지혜문학의 창조 신학은 이제 이전의 창조 신학 전승과는 차별화되어 창조가 단순히 하느님 혼자만의 행위가 아니라는 사고를 수용한다. 하느님께서는 지혜와 함께 기뻐하시고 지혜를 통해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잠언8,22-31). 이처럼 지혜는 은혜를 베풀고 올바른 질서를 세우는 힘이다.

 

오늘 삼위일체 대축일을 맞이하여 제1독서 잠언에서 성부 하느님의 지혜요 말씀이신 성자 하느님을 미리 보여주고, 제2독서인 로마서 5장 1-5절에서 하느님의 사랑인 성령을 언급하며,  요한 복음 16장 12-15절에서 구약에 이미 계시된 아버지, 예수님,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이신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온전히 계시되고 있다.


 

 삼위일체 대축일 복음 (요한16,12-15)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13)

 

요한 복음 16장 13절에는 진리의 영이 오셔서 믿는 이들을 위해 하시는 두 가지 일들이 두 개의 동사로 나타나 있다.

 

첫째는, 믿는 이들을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이다.

'이끌어 주실 것이다'에 해당하는 '호데게세이'(hodegesei; he will guide)원형 '호데게오'(hodegeo)'인도하다', '지도하다', '안내하다','가르치다' 복합적인 뜻을 갖는다.

 

고전 희랍어 문헌에는 이 동사가 하늘로 가는 영혼의 여행에 관한 대목에 쓰였고, 70인역(LXX)에서는 히브리어 '나하'(naha)의 역어로 나오는데, 대개 하느님과 관련되며(탈출13,17; 15,13), 주로 시편에서 개인 생활 가운데 나타나는 하느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고백에서 쓰였다(시편23,3; 25,9).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인도하심은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통해서 절정을 이룬다(요한14,6).

또한 성령께서는 믿는 이들을 위한 친절한 안내자가 되셔서 진리로 가는 길을 보여 주신다.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 이스라엘을 자애로 인도하시고(탈출15,13), 또한 당신께 성실한 종을 의로움의 길로 인도하셨듯이(시편23,3)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믿는 모든 이들을 그리스도의 삶으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희랍어의 미래 시제가 나타내듯이 오늘도 그분께서는 믿는 이들의 삶에 내재하셔서 인도자로서의 역할을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이들은 매일 매순간 성령의 가르침과 인도 아래 있어야 하며, 성령 충만을 위한 기도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에페5,18).

이것을 역으로 말하자면, 성령 충만이 없는 사람들은 주님의 참된 진리에서 소외될 수 밖에 없음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믿는 이들에게 앞으로 올 일들 '알려 주실 것이다'는 것이다.

'알려 주실 것이다'에 해당하는 '아낭겔레이'(ananggelei; he will tell)미래 시제이며, '드러내 놓다', '선포하다', '가르치다','알리다' 등을 뜻한다.

 

우리 믿는 이들 안에 머무르시는 성령께서 매일매일 계속해서 우리 믿는 이들에게 미래 일을 가르치신다는 것은 하느님의 계획과 목적에 대해 무지한 인간의 실상을 드러냄과 동시에, 믿는 이들이 적절하게 하느님의 계획을 따라 살아야 함을 알게 한다.

 

사실은 이 동사가 문자적인 의미에서는 어떤 곳에서 돌아와서 어떤 사실을 '보고하다'이다.

이것은 성령께서 우리 믿는 이들에게 알리시는 미래의 일의 성격을 규명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말하자면, 그분께서는 전혀 새로운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라 이미 예수님을 통해 계시된 사실을 가르치신다. 따라서 '드러내놓다'(disclose)는 어휘가 적합하다.

 

성령의 역할자의로 무엇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느님께서 우리 믿는 이들에게 계시하셨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일체의 것들을 깨닫고 이해하도록 가르치시는 것이다.

누구든지 깨닫게 하시는 영인 진리의 영께 배울 때에만, 예수님을 바로 알게 되고, 하느님의 계획과 목적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으로 구별되지만 한 분이시라는 삼위일체의 교리는, 일단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삼위일체는 하느님 생명과 사랑의 움직임이기에 단순히 하느님 안에서의 신비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에게 다가오시고 당신을 계시하시며 우리를 그 신비 안으로 초대하십니다.
성경에서 거듭 말하고 있듯이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런데 참사랑이란 자신 안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향하여 열려 있는 것이고, 그에게 가서 자신을 내어 줌으로써 관계를 맺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하느님의 구원 경륜 안에서 계시된 사건, 그리스도의 육화 사건 안에서 발견합니다.

성부께서 자신을 온전히 내어 주실 때 성자께서 사람으로 태어나셨고, 사람이 되신 성자께서는 십자가상 죽음으로 당신이 성부께 받은 것을 온전히 성부께 돌려 드리십니다.
이렇게 성부와 성자 간의 완벽한 상호 증여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성취되었고, 거기에서 성령께서 우리에게 파견되십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완전한 사랑을 나눔으로써 생겨난 공통의 사랑이 성령이시며, 그 성령께서는 이제 하느님 안에 머물던 사랑의 신비를 우리에게도 나누어 주십니다. 우리도 성자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성부를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고, 성부의 생명에 참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삼위일체의 신비는 ‘나’와 ‘너’가 만나서 관계를 이루고 사랑으로 일치하면서도 결코 한 쪽에 치우치거나 개성을 포기하는 일 없이, 서로의 존중 속에 하나가 되어 결국 ‘우리’가 되는 공동체의 신비이기도 합니다.

비록 우리가 하느님의 신비를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겸손과 흠숭으로 이 신비를 경축하며, 그 신비를 우리 삶 속에서 드러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성근 사바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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