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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19년 12월 7일 (토)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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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전교 주일)] (마태 28,16-20)

184 김종업 [rlawhddjq] 2019-10-20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전교 주일)] (마태  28,16-20)

 

 

 

 

오늘은 ‘전교 주일’이다. 교회는 전교 사업에 종사하는 선교사와 전교 지역의 교회를 돕고자 1926년부터 해마다 10월 마지막 주일의 앞 주일을 ‘전교 주일’로 정하여, 신자들에게 교회 본연의 사명인 선교에 대한 의식을 일깨우고 있다. 오늘의 특별 헌금은 교황청 전교회로 보내 전 세계 전교 지역의 교회를 돕는 데 쓴다.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으로 모든 민족들이 밀려드는 환시를 본다. (이사 2,1-5)
1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환시로 받은 말씀.
2 세월이 흐른 뒤에 이러한 일이 이루어지리라.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은 모든 산들 위에 굳게 세워지고  언덕들보다 높이 솟아오르리라. 모든 민족들이 그리로 밀려들고
3 수많은 백성들이 모여 오면서 말하리라. “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되리라.” 이는 시온에서 가르침이 나오고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
4 그분께서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시고  수많은 백성들 사이에 심판관이 되시리라.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
5 야곱 집안아, 자,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

 


 

화답송  시편 98(97),1.2-3ㄱㄴ.3ㄷㄹ-4.5-6(◎ 2 참조)
◎ 주님은 민족들의 눈앞에 당신 정의를 드러내셨네.
○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그분이 기적들을 일으키셨네. 그분의 오른손이, 거룩한 그 팔이 승리를 가져오셨네. ◎
○ 주님은 당신 구원을 알리셨네. 민족들의 눈앞에, 당신 정의를 드러내셨네. 이스라엘 집안을 위하여, 당신 자애와 진실을 기억하셨네. ◎
○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 주님께 환성 올려라, 온 세상아. 즐거워하며 환호하여라, 찬미 노래 불러라. ◎
○ 비파 타며 주님께 찬미 노래 불러라. 비파에 가락 맞춰 노래 불러라. 쇠 나팔 뿔 나팔 소리에 맞춰, 임금이신 주님 앞에서 환성 올려라. ◎

 


 

바오로 사도는,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로마 10,9-18)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9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0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11 성경도 “그를 믿는 이는 누구나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하고 말합니다.
12 유다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으로서, 당신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13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4 그런데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15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16 그러나 모든 사람이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사야도 “주님, 저희가 전한 말을 누가 믿었습니까?” 하고 말합니다.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18 그러나 나는 묻습니다. 그들이 들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까? 물론 들었습니다.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그들의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갔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으라고 하시고, 세상 끝 날까지 함께 있겠다고 하신다. (마태  28,16-20)
그때에 16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17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18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제1독서 (이사2,1-5)

 

 

 

수많은 백성들이 모여 오면서 말하리라.  " 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의 집으로!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되리라."  이는 시온에서 가르침이 나오고,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 (3)

 

 

 

앞선 2절에서는 세말에 모든 민족들이 주님의 집(성전)으로 모여드는 영광된 미래를 예언하였다. 이제 본절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날에 수많은 백성들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을 예언한다.

 

 

 

그 가운데 본문에서는 주님의 통치를 받으러 모여드는 사람들이 아직 관망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동일한 여정을 떠나자고 촉구하는 내용이 직접화법으로 소개된다.

 

여기에서 '자'(오라)에 해당하는 '레쿠'(leku)'걷다' 라는 의미의 동사 '알라크'(alak)의 명령형으로서, 적극적으로 주님 신앙을 받아들이라는 강력한 요청의 의미를 지닌다.

 

 

 

아울러 '야곱의 하느님의 집으로' 에 해당하는 원문인 '엘 뻬트 엘로헤 야아코브'(el beth elohe yaqob ; to the house of the God of Jacob)에는 동사가 없다.   다시말해서 본문의 동사는 앞 문장에 나오며, '우리가 ~ 올라가자' (let us go up) 로 번역된 '웨나알레'(yenaalle)이다.

 

 

 

따라서 본문은 실질적으로 야곱의 하느님의 집으로 올라가자는 촉구이며,  여기서 '야곱의 하느님의 전'은 앞서 나온 '주님의 산' 과 동일한 곳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주님의 산' 이 바로 '야곱의 하느님의 전' 임을 드러내는 것은 그들이 받을 축복이 본래 이스라엘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을 근거로 세워진 신약의 교회는 구약의 성도들의 신앙과 결코 다른 것이 아니다. 바로 성조들이 섬겼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만들었던 성전에 임재하신 하느님을 신약의 교회도 섬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르게 여겨지는 것은 구약의 선민인 이스라엘 자손들이 구원사의 점진적 전개 과정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폐쇄적으로 배타적인 선민 의식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분명 민족중에서 하느님의 소유로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 자신만의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부르시면서 그들을 민족 중 사제의 나라로 삼으셨다고 밝히셨다.(탈출19,5.6) 이것은 결국 그들만의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천하만민을 중재하는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이다.

 

 

 

즉 그들은 자신들이 사제의 나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 자체에 자신들만의 구원이 아니라 이방인들, 곧 천하만민의 구원이 전제되어 있음을 깨달아야 했다.

 

이것은 그들의 조상이며, 거룩한 민족 공동체와 예배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아브라함을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과정에서부터 구체적으로 표명된 것이기도 하다.(창세12,1-3)

 

 

 

이같은 측면에서 세상 만민, 모든 민족들이 하느님의 성전에 나아가  하느님을 섬기며 하느님의 통치를 받는다는 본문의 내용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대가 이르렀음을 선포하는 것이지만, 전혀 새로운 것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도리어 이스라엘의 실패와 허물, 하느님의 구원사에 대한 오해와 왜곡을 바로 잡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되리라.'

 

 

 

주님의 성전에 오르기 전까지 이방인들은 주님의 가르침과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았지만, 그 산에 오른 후로는 주님의 가르침을 받으며 살 것이다.

 

 

 

여기에서 '당신의 길' 에 해당하는 '밋데라카이우'(mydderakaiu)의 원형 '떼레크'(derek)는  원래 여러 사람들이 오랜 시간 동안 밟아서 만들어진 탄탄한 길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본문에서는 3인칭 단수 소유격 접미어가 붙어 하느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위해 이상적으로 정해 놓으신 삶의 방식을 의미한다.

 

 

 

주님께서는 당신과 상관없이 육신의 욕망에 이끌려 살아왔던 이방인들 중에서도 새롭게 그분 은총의 통치 아래 들어온 자들을, 당신 백성들이 이전부터 지켰던 삶의 방식으로 가르치실 것이란 사실이 예언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그 결과는 주님의 산으로 올라온 자들이 주님의 길로 걷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분의 길' 에 해당하는 '뻬오레호타이우'(beorehothaiu)의 원형 '오라흐'(orah)'떼레크'(derek)보다 약간 작은 길을 의미한다.(창세49,17)

 

 

 

본문에서는 '~안에' 라는 의미를 지닌 전치사 '뻬'(be)가 접두되어, 새롭게 주님의 백성된 자들이 그분의 길 안에서 살 것이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이것은 신약의 빛 아래 비추어 이해하면, 그들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 주님의 뜻을 알게 되고, 성령의 인도를 통해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임을 나타낸 것이 된다.(예레31,34 ; 요한14,26)

 

 

 

'이는 시온에서 가르침이 나오고,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

 

 

 

본문은 이유의 접속사 '키'(ki)로 시작되는 문장으로서, 주님의 통치 아래로 모여든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그분의 가르침을 받고 그분의 길 안에서 거닐 수 있는 것인지, 그 근본적인 이유를 보여준다.

 

또한 본문은 '가르침'(율법)'주님의 말씀' 이 대응을 이루고, '시온에서 ~나오고' '예루살렘에서 ~나오기'가 대응을 이루는 평행 대구 구조의 문장이다.

 

 

 

여기서 그 이유는 '가르침'과 '주님의 말씀' 이 '시온' 즉 '예루살렘' 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으로 제시된다. '가르침'(율법)에 해당하는 단어는 '토라'(torah)이며 기본적으로 가르침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에는 관사가 부착되어 있지 않는데, 이것은 구약의 모든 율법을 포함하여 주님께서 당신 백성의 거룩한 삶을 위해 그들에게 계시해 주신 모든 뜻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말씀' 에 해당하는 '따바르'(dabar) 역시 주님의 계시를 가리킨다. 주님은 그분 계시의 말씀, 그분의 백성들이 분명히 분별할 수 있는 율법을 근거로 해서 그분에게 모여든 모든 사람들을 가르치실 것이 예언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명확히 계시된 주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분이 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그 '가르침'(율법)'말씀' 이 '시온' 즉 '예루살렘' 에서 나온다는 것은 주님의 임재와 현존이 있는 곳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나올 것이라는 의미 더불어, 복음 전파가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될 것을 암시한다. 이러한 예언은 사도행전에서 그대로 구현되었다.

 

 

 

실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머물러 약속하신 성령을 받았으며 바로 그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 전파를 시작하였다.(사도2장)

 

당시 16개국에서 모여든 디아스포라 유대인들경건한 이방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전파된 복음을 각기 자기 나라 말로 들었으며, 그때부터 복음이 만방에 전해지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사실상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음의 빚진 자들이며, 이스라엘이라는 원 올리브나무에 접붙혀져 그 진액을 먹고 성장한 자들이다.(로마11,17.24)

 

 

 

본문에서 이사야는 이 일이 이루어지기 700 여년 이전에 이미 하느님의 계시로 이런 일을 내다보며 이것을 예언하고 있다.

 

이것은 하느님의 구원사가 우연이나 계획없이 아무렇게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철저한 계획과 작정에 따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되어 나아감 선명하게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연중 제29주일 복음 (마태28,16-20)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18ㄴ~20)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에 해당하는 '파사 엑수시아 엔 우라노 카이 에피 테스 게스' (pasa eksousia en ourano kai epi tes ges; all authority in heaven and on earth)에서 '하늘과 땅의'로 번역된 '엔 우라노 카이 에피 테스 게스'(en ourano kai tes ges)'하늘 안에 그리고 땅 위에'로 직역되는데, '하느님께서 통치하시는 모든 영역'을 말한다.

 

 

 

그리고 '권한'에 해당하는 '엑수시아'(eksousia)는 신약에서 '권세', '권능', '권리', '힘', '자유함'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중보자(중재자)로서의 권한'이 강조된다.

 

또한 '나는 ~받았다'에 해당하는 '에도테 모이'(edothe moi; was given to me)에서 '에도테'(edothe)'주다'는 뜻을 지닌 '디도미'(didomi) 동사의 직설법 부정과거 수동태 3인칭 단수로서 '그것이 주어졌다'는 뜻이다.

 

 

 

여기서 이 동사가 수동태로 쓰인 것은 성부 하느님에 의해 주어진 것임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동사가 부정(不定) 과거형으로 쓰인 것은 예수님께서 받은 권한이 단번에 받은 것임을 나타낸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육화(강생) 이전에도 성자로서 성부 하느님과 마찬가지로 구원과 심판의 권한을 가지셨다. 그리고 이 땅에서도 죽은 자를 살리시고 병자를 고치시며, 자연계와 영계를 제어하는 권한을 나타내보이기도 하셨다.

 

 

 

그러나 그 권한은 신성(神性)을 지니신 그리스도께서 근본적으로 지니셨던 권한에 비하면 제한적이셨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마침내 십자가상 구속(대속) 사업을 완수하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잠시 성부 하느님께 맡겨 드렸던 본래의 권한을 다시 받아 회복하신 것이다.

 

 

 

그래서 구속 사업과 부활 이후에는 성부 하느님께서 오직 구속 사업을 완수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과 심판의 권한을 행사하기로 하셨다(요한5,20~22.30).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에게 주어진 그 권한을 가지고, 마태오 복음 28장 19절에서 제자들에게 선교 명령을 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실 영역인 하느님의 나라는 선교를 통하지 않고서는 확장되고 완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너희는 가서'로 번역된 '포류텐테스'(poreuthentes; go)복수 2인칭 명령 분사이며, '너희'는 직접적으로 승천 직전에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을 지칭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주님을 따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지칭한다(사도1,8참조).

 

 

 

그리고 제자로 삼아야 할 대상은 '모든 민족'이다. 여기서 '민족'으로 번역된 '에트네'(ethne)'에트노스'(ethnos; nations)의 목적격 복수로서 제자를 삼는 대상이다.

 

또한 '제자로 삼아'에 해당하는 '마테튜사테'(matheteusate; make disciples;  teach)'마테튜오'(matheteuo)의 복수 2인칭 명령형 동사이다.

 

 

 

이 동사는 '너희는 가서'에 해당하는 '포류텐테스'(poreuthentes), '세례를 주고'해당하는 '밥티존테스'(baptizontes), '가르쳐'에 해당하는 '디다스콘테스'(didaskontes)세 개의 분사에 둘러싸여 있다.

 

 

 

원문의 뜻은 '제자로 삼는 일''가는 것''세례를 주는 것''가르치는 것'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지상 명령의 궁극적인 핵심을 보여 주는데, '제자로 삼는 일'가장 중요한 중심 주제이며, 나머지는 이에 수반되는 것임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세례를 주고'에 해당하는 '밥티존테스'(baptizontes; baptizing)현재 분사인데, 현재형이라는 점에서 세례가 계속적으로 행해져야 함을 가리킨다.

 

이것은 한 개인에게 반복적으로 주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계속적으로 행해져야 할 것임을 말하고 있는데, 세례가 바로 제자로 삼는 수단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한편, '밥티존테스'(baptizontes) 기본형인 '밥티조'(baptizo)본래 '담그다'는 뜻을 지닌 '밥토'(bapto)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동사가 '세례를 받다'(사도1,5)는 세례 의식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일 때에는 '담그다''씻다'(루카11,38참조)는 두 가지 의미가 다 들어가 있다.

 

 

 

먼저 이 동사를 '담그다'는 의미로 볼 때, '세례'몸을 물에 담그는 의식을 나타내며, 영적으로 믿는 이들이 세례 성사를 통해 예수님의 죽으심과 묻히심과  부활하심에 함께 참여한다는 뜻이 강조된다(루카12,50; 로마6,3).

 

또한 이 동사를 '씻다'는 뜻으로 보면, '세례''죄의 씻음', '죄의 용서'라는 의미가 강조된다고 볼 수 있다(사도2,38; 22,16).

 

 

 

실제로 세례 성사는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뜻과 더불어 죄사함의 이중적인 의미가지고 있으며, 또한 이 세례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 곧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져야 함이 분명하게 계시되고 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삼위일체 하느님 가운데 한 분이심을 명확하게 하셨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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