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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19년 12월 14일 (토)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 기념일엘리야가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신부님강론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나해)

202 양권식 [ysimeon] 2008-12-27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나해)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2008년의 마지막 주일이며 동시에 성가정 축일입니다. 교회는 신자들로 하여금 나자렛 성가정을 특별히 공경하고, 그 신심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성가정 축일을 성탄 대축일 다음 주일로 정하였습니다. 따라서 성가정 축일은 우리 모두가 예수, 마리아, 요셉의 모범적 가정을 표본으로 삼아 하느님 앞에 축복 받는 삶을 살도록 다짐하며, 우리 가정을 나자렛 성가정에 봉헌하고, 우리들 가정의 성화를 위해 특별히 기도하는 날입니다.
오늘 복음은 마리아와 요셉이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는 내용과 예언자 시메온으로부터 받은 축복과 예언 그리고 이를 지켜 본 노파 안나의 이야기, 그리고 예수님의 성장 과정을 간략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첫 아들을 낳으면 하느님께 봉헌해야 한다는 율법이 있었습니다. 아이를 성전에 봉헌하는 의식에는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는 산모의 부정함을 씻는 정결 예절과 아이를 하느님께 봉헌하는 봉헌 예절이 있습니다. 여자가 사내아이를 낳았을 경우에는 그 부정을 씻기 위하여 8일째 되는 날 아이에게 할례를 베풀어야 하며, 33일이 지나 몸이 정결해진 여인은 속죄의 제물로 양 한 마리나 비둘기 한 마리를 바쳐야 했던 것이며, 만일 가난하여 양 한 마리를 번제물로 바칠 수 없을 경우에는 비둘기 한 쌍을 바치도록 하고 있는 레위기 12장의 율법에 따르게 되어있었습니다. 이 봉헌 예절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모태를 열고 나온 맏아들은 모두 나에게 바쳐라! 사람뿐 아니라 짐승의 맏배도 나의 것이다.” 라는 출애굽기 13장에 나오는 율법의 준수인 것입니다.
어떻든 이스라엘 백성이 이와 같은 정결 예식과 봉헌 예절을 행하는 것은 산모가 무슨 부정한 행동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산모가 출산 때 흘리는 피는 생명을 뜻하며, 이 생명은 하느님의 것이므로 생명의 가치를 신성시하고 존중하기 위한 율법의 규정인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생명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마련하지도 준비하거나 계획하지 않았어도, 생명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며, 우리가 철이 난 다음에야 우리에게 생명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생명은 우리의 것이 아니며 다만 우리에게 주어진, 맡겨진 것일 따름입니다. 따라서 언젠가는 그 생명의 주인에게 되돌려져야 할 것입니다.
인간이 그 생명을 아무리 장악하려 하고 조작하려 하더라도 생명의 주인은 그 생명을 우리에게서 다시 거두실 것입니다. 생명은 영원히 우리가 붙들고 있을 우리의 것이 아니기에 언젠가는 생명을 주인에게 되돌려 드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기 예수의 부모가 예수님을 성전에서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이나 우리가 이 미사 중에 봉헌 예절을 하는 것 역시 모두 우리의 생명이 우리의 것이 아님을 고백하는 행위이며, 언젠가는 되돌려 드려야 할 것임을 고백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그 생명을 위임 받은 것이며,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가정이란 바로 이 생명이 맡겨진 장소이며, 생명을 위임 받은 자리입니다. 우리는 아기 예수가 탄생한 밤을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라 말합니다. 그 밤이 고요했던 이유는 축하객이 없어서가 아니라 엄청난 신비 앞에 마주 선 인간이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상태임을 의미합니다. 생명의 탄생, 아기의 출생은 곧 인간의 작업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이며, 바로 그 하느님의 일 앞에, 그 신비스러움 앞에 인간은 감히 입을 열 수 없었기에 고요하고 거룩한 밤이었으리라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생명을 위임 받은, 생명의 출생을 목격한 가정은 고요하고 거룩한 몸가짐을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시메온은 아기를 두 팔에 안고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주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편안히 눈을 감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구원을 제 눈으로 보았습니다. 만민에게 베푸시는 구원을 보았습니다.” 갓 출생한 아기를 팔에 안은 노인은 자신의 죽음이 편안하리라고 노래합니다. 생명을 내신 하느님을 보면서 생명을 거두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느끼고 편안히 잠들 것을 기대하며 구원을 노래하는 시메온의 노래입니다. 성직자들의 끝기도에 이 노래는 매일 반복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구세주께서는 이 세상에 오심에 있어서 한 가정을 선택하시고 그 가정을 통하여 탄생하셨습니다. 비록 누추한 말구유에서의 탄생이며, 헤로데의 폭정에 의해 죽음의 위협에 직면한 탄생이라 할지라도 요셉과 마리아의 가정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탄생하신 것입니다. 가정이란 눈에 보이는 집이나 건물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즉 벽으로 형성된 건물이 아니라 가족이 모여 살며 생활하는 정신적, 물리적 공간을 의미합니다. 서로 달리 태어난 두 사람이 한 식구가 되고, 자녀를 낳고 기르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자리를 집안 혹은 가정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집을 짓는 일이란 곧 인간을 짓는 일이며 가정을 이루는 과정은 곧 인간화의 과정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이 파괴되어 가는 현실을 우리는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생명이 신비롭게 체험되기는커녕 욕정과 욕심. 편리함을 위하여 생명을 조작합니다. 생명을 조작하는 행위는 인생을 조작하려는 행위이며 하느님을 조작하려는 행위입니다. 이러한 조작 행위는 자녀의 출산에서뿐 아니라 자녀 교육에도 계속됩니다. 마치도 컴퓨터 프로그램을 입력하듯 기계처럼 공부를 시켜 나중에는 로봇 같은 인간을 만들어 놓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대화가 끊어짐은 이미 오래이며, 각자가 자신의 삶에 급급해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세상사에 시달리며 고역스런 체험만을 몸에 담습니다.
남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안정된 미래를 확보하기 위하여, 편안한 노후를 보장받기 위해서, 마치도 먹어 보지도 못할 국을 끓이는 사람들처럼, 우리는 가정을 망가뜨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안 될 것 같은 불길함에 쫓기며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이 죄라면 그것이 바로 원죄일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살아온 한 해를 되돌아보며 내가 어찌 살았고, 내 가정은 어찌 되었는지 되돌아볼 시기입니다.
오늘 성서는 한 늙은 노파의 이야기를 전해 주고 있습니다. 그녀는 결혼해서 남편과 7년을 같이 살다가 과부가 되어 여든 네 살이 되도록 밤낮없이 단식과 기도로 하느님을 섬겨 온 사람입니다. 남편 없이 살아온 기나긴 세월, 그로 말미암아 겪어야만 했던 설움과 상처는 무척이나 깊은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아기의 출생은 그러한 그녀의 가정을 치유하고 하느님께 감사하며, 구원을 선포하게 합니다.
아기의 출생은 생명의 신비스러움을 체험하게 해주고, 죽음을 편안하게 느끼게 해줍니다. 우리의 가정 또한 비록 현실 속에서 깊은 상처를 지니고 있다 할지라도 아기의 출생이, 즉 생명의 신비 체험이 우리 가정을 치유해 줄 것입니다. 정결 예절, 봉헌 예절이 우리 가정 안에서 발생하도록 해야겠습니다. 자녀를 낳고, 자녀를 기르는 일이 어디 인간의 힘으로 가능이나 하겠습니까? 태어난 아이를 보면서, 자라는 아이를 보면서 우리의 입이 다물어질 만큼 신비로움을 느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내시고 하느님이 기르시고 하느님께서 거두시기에 이러한 엄청난 일이 거듭되고 있는 우리의 가정은 구원의 현장이며 말구유이며, 성전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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