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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음 나눔의 공동체(서울역 인근)로 봉사활동 후기

39 반포성당 [bpcatholic] 2005-08-17

한마음 나눔의 공동체(서울역 인근)로 봉사활동 후기

 

   8월 12일(토) 반포성당 가정사목위원회 주관의 봉사활동을 다녀 왔습니다. 봉사활동처는 서울역에서 노숙자 대상으로 무료급식 한다는 한마음 나눔의 공동체!

  이번 행사에 참가한 가족은 우리(김대현 방지거) 가족 3명 이외에 이규진 요셉 가족 4명, 김길량씨 (이주은 비비안나) 가족 4명, 김재근씨(박명희 데레사) 가족 4명. 그리고 양명희 레지나 가족 2명 등 총 17명이었습니다.

   마침 공동체가 새로 터전을 마련하여 이전한 이후 처음 배식을 준비하는 중이었는데 우리가 갔던 새 터전은 이전의 좁고 어두침침했던 지하 공간에 비하면 훨씬 봉사하기 좋은 환경이 마련된 셈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당초 우리 일행은 음식을 준비해서 배식까지 할 각오로 갔는데 우리 일행에 맡겨진 작업은 식사 준비까지 이었고 배식은 다른 성당의 형제분들 30분이 따로 와서 담당하기로 하였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배식 대상이 노숙자이기 때문에 무료 급식이라 하더라도 상대방이 밑바닥 인생인지라 여간 노련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식사 준비 그 자체만 가지고도 작업량이 엄청났습니다. 즉 900명 분 기준의 밥과 국 그리고 반찬에다가 야식(?) 용 빵을 만들고 분류하고 배식 준비하는 일이 우리에게 떨어졌는데 사무장님의 간결하고도 요령있는 지시에 따라 모두들 일사분란하게 맡은 일을 해 냈습니다

      일은 주로 자매님들 몫이 많아, 밥통 세척, 김치 썰기, 반찬 만들기, 쌀 씻어 밥 짓기 등이 주된 작업이었고 형제님들은 쌀 푸대 나르기, 밥푸기, 국푸기 등 힘좀 쓰는 작업을 주로 하였고 아이들은 수저정리, 빵 나누기, 청소 등을 담당하여 모두들 한 몫을 단단히 하여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전 작업을 마치고 노숙자 먹는 음식과 같은 식단(밥, 김치국, 콩나물 무침, 김치)으로 점심을 먹었는데 반찬 투정하는 아이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맛이 좋았고 , 밥 하고 생긴 누룽지 어느 과자에 비할 수 없는 훌륭한 간식이 되었습니다.

   비록 배식하는 장소(서울역 지하도) 까지 따라가 보지는 못해 아쉬웠지만 매주 이 엄청난 일을 당연한 듯이 해 내는 사무장님 이하 여러 봉사자들의 노고에 하루나마 동참할 수 있어 뿌듯한 하루이었고 다음달에도 다시 꼭 오리라 다짐하면서 봉사활동을 마쳤습니다.

     참고로 반포성당에서는 매월 2째 일요일에 한마음 나눔 공동체에 봉사활동 갑니다. 동참하실 가족은 박낙용 임마뉴엘 가정사목분과장님(016-9388-1077)이나 윤은경 요세피나 자매님(011-238-6239)께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봉사활동 그 자체도 보람있지만 가족 모두 참여하는 기회인지라 아이들 인성교육에도 무척 도움이 되며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묵묵히 봉사하는 분들이 많아 이 사회가 그나마 유지되고 있다는  소박한 진리를 깨닫게 되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사진으로 보는 한마음 나눔 공동체 봉사활동

1. 이번 행사 참가자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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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출발에 앞서 신부님 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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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마음 나눔의 공동체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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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여기는 한마음 공동체가 이전하기 전 머물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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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봉사 시작하기 전 기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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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공동체 내의 성모님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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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봉사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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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이 접시는 25개씩 900명분을 준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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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밥통도 깨끗이 청소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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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이 많은 김치가 필요할 줄이야...

썰고 썰고 썰어도 끝나지 않는 김치 서는 작업. 엄마나 많은 김치를 썰어야 하는가? 900명분, 한국 사람은 대통려이든 거지든 김치를 먹너야 한다는 간단한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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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의자와 식통 닦기는 초등학생들의 전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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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밥 푸는 작업 이거 보통 일이 아닙디다. 900명분의 밥을 푸자니 큰 짬밥통 3개를 가즉 채워야 끝납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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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숫갈 정리 역시 아이들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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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이건 김칫국 끓이기 위한 김치! 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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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노숙자 식단과 같은 식단으로 점심을... 
     자원 봉사도 식후경 , 간당한 반찬인데도 밥맛은 꿀맛이었지요. 노동 후 먹는 음식이라 더욱 맛있눈 듯... 아이들도 반찬 투정하는 애들 하나도 없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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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식사후 로사리오 기도를 성모님께 바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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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이번에는 노숙자들에게 나누어 줄 빵을 정리하는 작업

    큰 빵은 먹기 좋게 나누고 달콤한 빵과 일반 빵을 섞어 봉지에 담아내는 작업이었는데 이 역시 아이들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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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국 퍼담기도 보통 일이 아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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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마무리 정리 및 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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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누룽지는 열심히 일한 봉사자들에 대한 보너스.

    이 누룽지 눌려서 떼내느라 본의 아니게 누룽지에 땀방울로 간을 맞추었으니 아마 보통 누룽지 보다 맛있을 걸...   사실 만들래서 만든게 아니라 빨리 밥솥을 씻어 다시 밥을 하자니 밥솥을 달구어 손을 데어 가며 누룽지를 만든 것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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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열심히 봉사한 학생들에게는 봉사한 만큼 봉사점수 인정서를 줍니다. 점수 많이 받으려면 저녁 늦게 까지 남아 봉사해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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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음 나눔의 공동체 관련 기사

서울역 지하도의 거지대장
2005/06/09 오후 9:50 | 아름다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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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5회 우정선행상 본상 박대성

화요일과 수요일. 저녁 6시 반쯤이면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지하도 한 켠에 웅크리고 자리를 잡는다. 낮 동안 도시 밖으로 뿔뿔이 흩어졌다가, 사람들이 빠져나간 도심으로 모여드는 사람들. 길 위의 사람들, 노숙인들이다. 저녁 끼니를 때우고 잠을 청하러 다시 서울역으로 모여드는 것이다. “아직 추워요. 오늘도 제법 바람이 부니 따뜻한 국물이 최고죠. 배부르고 등이 따뜻한 것이 사는 것 아닙니까. 제가 어릴 적에 배를 많이 곯아봐서 누구보다도 저분들의 아픔을 공감합니다.”
저녁 7시. 대우빌딩 건너편, 연세재단빌딩 아래로 1.4톤짜리 밥차가 멈추어 선다. 제일 먼저 차에서 내리는 사람. 깡마른 체격에 한 쪽 팔이 불편해 보인다. ‘거지대장’이다. 지하도 입구에서 기다리던 봉사자들이 아는 채를 하고는 부지런히 식사를 나른다. 일사불란하다. 오늘 메뉴는 '오징어국밥'. 밥솥과 국냄비에서 벌써부터 맛있는 냄새가 솔솔 난다. 드디어 7시 반. 차례차례 노숙자들이 줄을 서고 배식이 시작된다. 박씨도 낯이 익은 노숙인들에게 인사를 나누며 노숙인들에게‘많이 먹으라’는 말을 건넨다.
“요즘에는 사람이 늘어 700인분에 가까운 식사를 준비해 옵니다. 경기가 더 어려워져서 노숙인이 계속 늘고 있습니다. 가까운 서울역, 종로, 영등포 부근뿐만 아니라 지하철이 닿는 곳에 계시는 분들은 어디서나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낮에는 무료급식을 하는 곳이 많은 편인데, 저녁에는 급식을 하는 곳이 많지 않기 때문이지요. 저녁을 든든하게 먹어두어야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잘 수 있으니까요.”
몇 가지 안되는 반찬이지만 노숙인들은 지하철 출구 등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저녁을 먹기 시작한다. 이렇게 저녁 한 끼에 소요되는 쌀의 양은 20kg짜리 6포대, 대략 120kg 가량. 부식은 여러 곳에서 도와주는 형편. 연락을 받고 달려가면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제공해 준다. 박씨를 가리켜‘거지 대장’이라는 이유도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이곳저곳 가리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요청해 붙은 별명. 인근 우림시장과 가락시장 등에서 후원자들의 제보가 오면 봉고차를 끌고 가 남김없이 실어 온다. 그래서 그의 사무실 벽에는 후원받은 쌀과 부식 등 각종 식재료로 발 디딜 틈이 없이 비좁다.

3살 무렵, 뜨거운 국에 화상을 입고 오른쪽 팔이 모두 화상을 입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오랫동안 한 쪽 팔을 거의 쓸 수 없었다. “소년가장이었습니다. 부산에서 동생 둘을 데리고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하며 살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초등학교 졸업하고 17살이 되어서 서울로 무작정 상경을 했습니다. 그 때 배를 채우기 위해 구두닦이, 껌팔이, 신문팔이 등 안 해본 것이 없습니다.”그는 배고픈 고통을 알기에 나중에 돈을 벌면 꼭 못 먹고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 봉사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리고 악착같이 돈을 모았고, 어느새 잘나가는 핸드백 생산업체 사장님이 되었다. 하지만 끼니를 거르며 살아왔던 기억들과 남을 도우며 살겠다던 자신과의 ‘약속’이 늘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었다. “어느 날 성당에서 한 신부님이 옷장을 열어 보이시며‘이 옷장에 있는 옷은 모두 내 옷이 아니고, 남의 옷을 빼앗아 지금 옷장에 보관해 둔 것이다. 세상 모든 것들은 모두 남의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에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많은 것들이 모두 어려운 이웃들의 것이라고 생각을 하니, 전부 돌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길로 박씨는 사재를 털어 매일 100 인분의 김밥을 싸들고 서울역 인근의 노숙자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봉사의 범위를 넓혀 99년부터는 '나눔의 집'을 만들고 본격적으로 배고픈 사람들을 위한 무료 급식을 하기 시작했다. 원래 상봉동에 있던 '나눔의 집'이 계약 만료가 되자 자신의 아파트를 저당 잡혀 지금의 망우동으로 옮기기까지 했다. ‘나눔의 집’은 독거노인과 지역 거주 노인들을 위한 무료 급식소. 박씨는 이 곳에서 자원 봉사자들과 함께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100 여명의 노인들에게 식사를 제공한다. “혼자서 꾸려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원봉사자들 분이 많아서 일손은 부족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원망을 많이 했던 가족들도 지금은 열성적으로 거들고 있구요.”

점심식사가 마무리 되자 그는 인근에 있는 '노숙자 쉼터'로 또 달려간다. 작년에는 쉼터 운영을 제대로 하기 위해 나이 쉰이 넘어 명지대 사회복지과에 다니면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받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행려인들을 찾아 야간순회활동을 하며 건강상담과 의료기관 등을 알선합니다. 경제활동을 충분히 할 수 있는 분들도 간혹 있어요. 아직 노숙생활이 익숙치 않은 분들이 계시거든요. 요즘은 이삼십 대의 젊은 노숙인들도 늘어나는데, 6개월 정도 쉼터에서 쉬면서 프로그램을 통해 돕고 싶습니다. 지금 좀 더 낳은 시설을 위해 건물을 신축하고 있어요.”“매일 같이 오시던 분이 보이지 않으면 걱정이 됩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몸이 아파 어디 추운 곳에 누워 계신지. 그런데 어느 날‘저 취직했습니다. 그동안 먹여주신 밥값입니다.’라고 말하며, 주머니에 꼬깃꼬깃 돈을 넣어줄 때가 있었어요. 보람도 보람이지만, 그만 기뻐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어쩌면 오늘 오신 많은 분들 중에 또 그런 분이 계실 지도 모릅니다.”그나마 희망을 찾아 떠나는 노숙자들이 있어 이 일을 포기 못한다는 박대성 씨. “어쩔 수 없이 잠시 길 위에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어차피 이 길이 저의 길이니까 저도 함께 걸어갈 것입니다.”
http://kr.blog.yahoo.com/abuygi/1243446.html


주님께 받은 것을 되돌려드립니다

    차가운 바람이 발걸음을 재촉한다. 옷깃을 여미고 더러는 손에 든 짐이 버거운 듯 종종걸음으로 서울역 앞을 지나는 사람들은 한쪽에 웅크리고 있는 노숙자들 곁을 그저 스쳐가기만 한다.
    언제부터인지 노숙자란 말이 더 이상 낯설게 들리지 않는다. 이젠 길에서 이들을 만나도 화들짝 놀라거나 흘금흘금 뒤돌아보지 않는다. 그만큼 눈에 익숙한 풍경이 되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무감각해진 탓일까.

    권혁노 프란치스코 씨(54세)는 노숙자들을 위한 무료 배식과 진료, 상담을 해주는 ‘한마음 나눔의 공동체’의 대표를 맡고 있다. 지금은 작지만 튼실한 중소기업의 사장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는 그도, 한때 사회생활에 실패하고 집을 나와 이리저리 떠돌던 시절이 있었기에 노숙자들에 대한 마음이 남다르다.
    “그때 돈으로 20원 하는 국수 한 그릇을 사먹고 하루종일 굶은 날도 많았어요. 처음엔 이 친구 저 친구 찾아다니며 하룻밤씩 동냥 잠을 자기도 했는데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요. 눈치가 보인다 싶으면 나와 다른 곳을 찾아가고, 그렇게 7개월을 떠돌아다녔습니다.”진정한 나눔에 대해 늘 생각해 왔다는 그는 자신이 다니는 서울 대치2동성당에서 빈첸시오회를 처음 만들기도 했다. 교구에서 사회사업부장도 맡고 있던 그는 올해 1월 빈첸시오회가 없어지면서 회원들의 결속력을 다지기 위한 사업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지도신부와 상의하여 실직자, 노숙자들을 위한 이 ‘한마음 나눔의 공동체’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먼저 공동체의 문을 열 장소를 여기저기 물색해 보았지만 처음 생각만큼 여의치 않았다. 그러면서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교구 사회사업부장직도 그만두게 되었고 일은 점점 어려워져만 갔다. 하지만 이왕 시작한 일이니 끝까지 추진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활동해온 김세준 안드레아 형제와 이계련 데레사 자매가 그에게 힘을 보태주었다.
    서울역 광장 맞은편 후암동으로 넘어가는 길에 작고 허름한 식당 하나를 인수하여 ‘한마음 나눔의 공동체’ 간판을 내건 것이 지난해 8월, 보금자리는 정했지만 밥솥이며 국솥, 그릇에서부터 국자, 주걱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것은 끝이 없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 주님의 섭리는 참 놀랍습니다. 어찌 그렇게 부족한 그만큼씩 반드시 채워지는지. 김치가 떨어지면 김치를 담궈주시겠다는 분이 나타나고, 쌀이 떨어지면 쌀을 주시겠다는 후원자가 생기곤 했으니까요.”그는 이 ‘한마음 나눔의 공동체’의 일말고도 양로원, 지체장애인의 집, 소년의 집 등 열 군데 정도의 시설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느라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어 식구들에게 ‘왕따’가 된 지 오래다. 오죽하면 나가서 살라는 소리까지도 들었을까.
    어린 시절, 감리교 권사였던 어머니 영향으로 개신교회에 다녔다는 그는 지금의 아내를 만나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자신보다 먼저 성당에 다니기 시작한 아내가 교리 공부를 한다고 저녁 늦게 들어오면 구박도 참 많이 했단다. 하지만 아내의 끈질긴 권유는 결국 그를 성당으로 이끌어 1984년 세례를 받게 하였다.
    신앙을 가진 뒤부터 가장 달라진 것이 있다면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근 20년 동안 사업을 해왔으니 그 동안 크고 작은 실패를 겪고 부도도 여러 번 맞았는데, 아무리 적은 금액이라도 부도가 나면 안절부절못했던 마음이 세례를 받은 뒤에는 돈을 어디 맡겨놓은 것처럼 안심이 되더란다. 믿는 구석이라면 하느님 한 분뿐인데. 그때 ‘내 삶이지만 내 맘대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그때부터 자신이 받은 것을 돌려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처음에는 아주 적은 금액이지만 물질적인 후원을 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러다 돈만 비죽 내미는 것이 미안스러워 후원하는 곳을 방문하기 시작한 것이 이제는 일주일에 한 군데씩만 가도 일년이 후딱 지나가 버린다.
    IMF를 맞으면서 다른 중소기업들이 다 그랬듯이 그도 경제적인 어려움을 많이 겪었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시설 방문과 후원만큼은 계속했다. 얼마 전 그는 대금 대신 인수한 집 한 채를 친구가 가지고 있던 시골 땅 1800평과 맞바꾸어 근처 성모영보수녀회에 기증했다. 자기 대신 좋은 일에 써달라고.
    “오른손이 하는 일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셨는데 이렇게 알려져서 어떡하냐.”며 내내 곤욕스러워하던 그도 더 많은 사람이 ‘한마음 나눔의 공동체’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말에 조심스레 자신을 보여준다. 그리고 자신보다는 대가도 바라지 않고 이곳에서 의료봉사와 배식을 위해 애써주는 의사, 간호사, 수녀님 들과 봉사자들의 수고를 꼭 밝혀달라고 당부한다.
    환하게 밝혀진 서울역과 고층빌딩의 불빛이 휘황찬란하다.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는 더 어둡다고 했던가. 권혁노 프란치스코 씨는 오늘도 그 그림자들을 위해 따뜻한 밥 한끼를 짓는다.

취재 / 신진숙(경향잡지 기자)

한마음 나눔의 공동체 02-319-1221, 1222 지로번호 7645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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