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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예수 그리스도 (펌)

22 정탁 [daegun011] 2001-08-04

  

 

1. 우리를 위해 수난하신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사람이 되셨다. 신약성서에서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서 수난을 당하고 돌아가시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것이 당신의 사명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분 친히 당신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예언하셨다.

 

우리 주님의 수난은 반드시 있어야 했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의도는 가장 완전하고 적절하게 구원을 이루시는 것으로, 인간이 하느님께 대항했기에 그 보상을 완전히 할 수 있는 분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고 고통을 당하셔야만 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를 위해 예수님의 죽음과 수난이 필요했다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이 수난받으신 것은 당신의 영원한 아버지께서 원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자유로이 받아들이셨다.

 

2. 구속자이시자 중재자이신 그리스도

 

이 세상에 보내어진 예수님은 완전한 구속자였다. 하느님의 참 아들이며, 인간이기도 한 그리스도 예수님은 아버지에게 적절한 속죄행위를 드릴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

 

예수님은 우리의 중재자이시다. 하느님이며 사람이신 분이 인간을 소외와 비참에서 구제하여,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하게 해 주셨다. 수난은 하느님께서 사랑이시라는 것을 잘 드러낸 완전한 구속방법이었다.

 

초대교회는 구원의 복음을 설교할 때에 언제나 그러하였듯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빛나는 무한한 사랑을 설교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당하신 고통은, 그분이 우리를 매우 사랑하셨기 때문에 더욱 혹독한 것이었다. 무한한 동정심으로 그분은 내적 고통과 외적 고통 등 인간의 모든 고통에 참여하고자 하셨다. 십자가 안에 구원이 있고, 십자가 안에 생명이 있으며, 십자가 안에 원수를 방어할 수 있는 힘이 있다.

 

3. 예수의 반대자들

 

예수님께서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 소외된 이들의 친구가 되시고 그들의 구원을 선포하셨을 때, 그 당시 사회, 종교, 정치적으로 기득권(旣得權)을 가지고 있었던 지도층의 사람들, 즉 유다교 지도자들과 산헤드린(유다교의 최고 의결기구)과 로마 통치자들은 예수님을 위험인물로 지목하고 그분을 제거하고자 하였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가르침이 그들에게는 위험스러운 것, 당시 사회 구조를 흔드는 불순한 것, 자기네 종교의 순수성을 더럽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느님의 본 뜻이 무엇인지를 찾기보다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에 급급하였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반대와 박해에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계속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자 하셨다. 그분은 비단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에게만 기쁜 소식을 전한 것이 아니라 부자와 종교 지도자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도 기꺼이 하느님 나라에 참여할 것을 종용하셨다. 이는 그분의 구원 소식은 모든 사람을 향한 것이기 때문이며, 당신은 모든 백성의 구세주이시기 때문이다.

 

4. 그리스도의 수난과 돌아가심

 

각 복음서에서 수난은 최후만찬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곳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임박했던 당신 수난의 의미를 명백히 설명하셨지만, 그분의 제자들은 부활 후까지 그 뜻(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루가 24,25).

 

이 최후만찬은 당신이 곧 바치실 십자가의 제사를 미리 앞당겨 상징적으로 하느님께 바친 제사이다. 여기서 그분은 성체성사를 세우셨고, 이 성사를 집행할 사제직도 세우셨다. 예수님은 당신의 죽으심이 인간과 하느님 사이에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을 것이라는 것을 똑똑히 말씀하셨다(마태 26,26-28).

 

최후만찬이 끝나자 예수님은 당신 제자들과 함께 올리브 산으로 가셔서 기도하셨고, 곧 닥칠 고통에 대해 마음이 흔들리셨으나 결국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자 하셨다. "그러나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루가 22,42)라고 기도하셨다.

 

예수님은 사제들, 헤로데, 빌라도 앞에서 부당한 재판을 받으셨다. 이 재판을 받으시면서 그분은 심한 모욕을 당하셨다. 또 베드로는 그분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잡아떼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극심한 육체적 고통을 받으셨을 뿐만 아니라 고독과 처량함을 느껴야 했고, 어머니 마리아께서 한량없이 슬퍼하시는 것을 보시는 괴로움까지 겪으셨다. 그러나 우리 구원의 대사제이신 예수님은 인내와 위대한 정신을 잃지 않으셨다. 이렇게 십자가에서 죽어 가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우리가 이해해야 할 것은 인간으로 살아가는 동안 경험하는 여러 가지 고통과 비애를 예수님께서는 그대로 받아들이시고 더욱이 그것을 통해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5. 수난과 죽음의 의미

 

예수님이 받으신 수난의 결과는 영원하다. 그분의 고통을 통해서 우리는 죄의 모든 결과에서 구원을 받았으며, 영생에로 인도하는 은총과 은혜를 모두 받게 되었다. 죄가 인간 위에 군림하였고(로마 5,21), 인간을 노예화 하였다(로마 6,7). 그러나 이제 죄를 용서받고 속박에서 풀려났으며(골로 1,13-14) 사탄도 정복되었다.

 

그리스도의 돌아가심은 옛 법의 구속력을 끝냈다. 그 법은 거룩한 것이긴 하였으나 생명을 주지는 못하였다. 그 법은 죄를 피할 의무를 가르치면서도, 그렇게 할 힘을 주지는 못하였기 때문이다(로마 7,7-25). 육체의 죽음까지도 그리스도의 돌아가심으로써 정복되었다(1고린 15,54-57). 모든 죽음은 비극적 불행이 아니라 사랑의 절정이요, 새 생명의 입구가 될 수 있다.

 

예수님의 수난은 성부의 사랑을 드러내준다. 하느님 아버지는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셨다"(요한 3,16). 하느님 자신이 인간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계시다는 사실과 예수님의 고통을 통해서 하느님은 전 인류의 고통, 우리 매일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 때에 비로소 그리스도교 신앙이 싹트게 된다.

 

6. 대사제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은 새롭고 영원한 계약의 대사제이시다(히브 4,14). 그분은 공생활 중에 가르치시고, 죄를 사하시고, 성화하는 사제의 활동을 하셨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자신을 바치는 완전한 제사를 봉헌하심으로써 우리를 위해 영원한 구원을 이룩하셨으며, 이전의 계약과 사제직을 폐지하셨다(히브 9,1-10).

 

그분은 사제로서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희생제물로 기꺼이 바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사제의 활동을 하실 때에 모든 사람의 대표자로서 성부 앞에 서신 것이다.

 

그리스도의 수난은 화해의 활동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랑을 가지고 인간의 죄를 위해 속죄하셨으므로, 죄로 말미암아 조성되었던 온갖 분열과 적개심을 해소할 수 있었다.

 

죄는 인간 소외의 가장 깊은 뿌리이고, 인간을 하느님에게서 갈라 놓기 때문이다(에페 2,13). 죄는 사람들 사이에 불화와 적의를 조성하고, 개개인 안에 내적인 쓸쓸함과 비합리적인 생각을 야기하며(로마 7,23-24), 전우주와 죄인의 관계도 어색하게 하므로, 죄인은 세상 안에서 이방인이 된다(창세 3,17-19).

 

7. 그리스도를 따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속하셨으나 우리는 이 지상 생활 가운데 예수님의 구속사업을 완성시켜야 한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 신자가 되고 그리스도 신자답게 산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면 그리스도 신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여기 그 예를 적어본다.

 

예수님을 따르는 일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도록 우리를 가로막는 모든 것을 포기하는 일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것

예수님의 선포 내용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선포하는 것

예수님의 약속에 희망을 거는 것

예수님께서 소외되고 버림받은 불쌍한 이들을 위해 일하신 것처럼 우리 자신도 그들의 해방에 투신하는 일

예수님처럼 성령 안에서 성부와 친교를 나누며 기쁘게 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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