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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묵상 나누기
역청과 송진을 바르고

10 이지연 [annasee] 2001-08-23

출애굽기 2,2에 보면 모세를 강에 내어 놓을 때 그의 어머니가 "왕골 상자에 역청과 송진을 바릅니다".  물이 새어 들어 오지 않아 아기를 무사히 살게해보려는 부모로써의 사랑이겠죠.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도 출애굽의 그 성구를 인용하여 시골에서 올라온 순진한 여주인공을 보고, 주변에 항상 여자를 끼고 사는  남자가 느끼는 묘한 감정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더군요. 결국 그는 그녀의 삶에 역청과 송진을 발라줌으로써 자신의 삶도 구원을 받지요.

 

미갈을 읽으며 그녀에겐 누가 역청과 송진을 발라 세상에 내놓았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부모도 남편도 아니었는데요.

그렇다면 스스로 역청과 송진을 구해 바를 수는 없었을까?

 안타까웠습니다.

그녀의 운명이야 어쨌건  그 책임은 고스란히 그녀의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니까요.

 

남편 다윗이 그렇게 순종하고 신뢰하는 하느님을 자신의 하느님으로 고백할 수는 없었을까?

계약궤를 모셔와 기뻐하는 그와 그 기쁨에 같이 동참하며...

그랬더라면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역청과 송진을 그녀의 삶의 바구니에 발라주셨을 텐데...

너무 비약했나요?

 

그렇게 하기에는 다윗에게 여자가 너무 많았던 것일까?

다윗에게 빈정거리는 모습을 보면 그녀는 냉정한 관찰자의 모습을 하고있습니다.

남편의 삶에 동참하는 모습이 아니라.

빈정거림은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다는 것일텐데..

 

왕궁에서 곱게자란 그녀가 천상과 천하를 다 품을 수 있는 다윗을 이해하고 신뢰하기에는 역부족이었을까?

왠지 안타까웠습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저는 기꺼이 역청과 송진을 발라주고 있는지

그래서 서로의 존재가 참을 수 없이 가벼워져 버리지 않도록....

생각하게 하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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