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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24일 (수)부활 제4주간 수요일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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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해를 마무리 하며

83 김형보 [lary] 2012-12-12

           1년에 한번 고해 영성체 하라는 판공성사 규정이 4차 라테란 공의회(1215년)에서 제정되었다는데 어린 시절 판공 때가 되면 참 걱정이 많았다. 판공때엔  고해 영성체 뿐아니라 교리찰고(시험)도 있어서 요리문답 몇장을 달달 외워서 신부님 앞에 찰고를 해야 하는데 학교엘 갔다오면 책보를 방에 던져놓고 요새 아이들은  학원을 몇군데 뛰어야 한다지만 난 아이들과 놀다 보면 요리문답은  그냥 몇번 급하게 읽어보고 신부님 앞에 가서는 더듬거리기만 하다가 혼만 나곤 했다. 물론 신부님은 다 외울 때까지 용서  없엇다. 
       그다음 고해성사 보는 일이 또 걱정이다. 고해성사에는 필요한 것이 다섯가지 있는데,  성찰. 통회. 정개. 고백. 보속 으로 우리가 다 아는 바이다. 
        성찰은 양심성찰을 말하며 지난 공의회에서는 "인간 마음 속에는 하느님이 새겨 넣은 법이 있으며 인간은  그 법으로  판단 받게 된다. 이 양심은  인간의 가장 깊은 곳,  성소이며 하느님이 이를 통해 말씀하신다."(현대 사목헌장16).  옛날 교리책에는  "양심은 인간행위의 선악을 판단하여 선을 명하고 악을 금지시키며 또한 선을 칭찬하고  악은 징계하는 하느님으로 오는 마음의 소리"  라고 하였으니  따라서 우리들은  양심대로  살아야 그것이 하느님을 따르는 것이 되고 사람들과도 잘 지낼 수 있다 하겠다.  또한 우리가  양심을 잘 살펴보면 죄를 잘 찾아낼 수도 있다.
         어릴 때 교회에는  고해성사를 위해 성찰을 돕기위한  죄의 카타로그랄까  그런 것이  있어서 판공때면 우리 미사 복사 서는 애들 끼리 (물론 이 애들 남쪽에 나와 가끔 만났는데 지금은 다 천당에 가버리고 나만 남았지만)  어쩌다 나는 그 중에 어떤 죄를 내죄로 만들어 고백하기도 했는데 그래도 신부님은 "노렌조 잘 했어요"  하시며 나를 고백소에서 내보냈는데 지금 생각하면 신부님 너무 잘못했습니다.
          또 한 번은 우리 복사하는 애들이  새벽미사 와서는 미사전에  신부님이 아끼시는 배나무가 있었는데 우리는 매일 한 개씩  몰래  따먹다 보니  나종에 몇개  안 남게되어 다 같이 고해성사를 보기로 했는데 나는 신부님이 무서워서  한 아이에게 네가 고백할때  내 이름도 말씀드리라고 대신 고백시킨 적도 있는 데 구천우 신부님 이것도 잘못했습니다.
          전 교황님,  복자 요한 바오로 2세께서  1981년 5월13일(파티마 성모발현일)   터키 청년의 흉탄을 맞고 죽음 직전까지 가셨다가 여섯시간의 대수술 끝에  살아나시자  의사들이 회복되심을  축하드린다는 말에 교황님은  "그래도 여전히 나는 죄인입니다.."  하셨다는데 정말 내가 그렇다. 나는 판공때마다  고해성사를 보기위해  양심성찰을 하면서 정말 내가 한심스럽기만 하다.   2012년  금년만 해도 도리켜 보면 삼구(세속 육신 마귀)와의 전쟁에서 지는 싸움만 해 와 하느님께 너무나 죄송스럽고 부끄럽다. 십계명중  어느 한 군데 죄를 안 진 데가 없으니 말이다. 습관적으로 범하는 죄는 또 얼마나 많은가.  신부님께 고백할 일이 나를 천근만근 무겁게 한다. 금년엔 이태석신부님 때문에 많은 눈물을 흘렸지만 눈물만 흘렸을 뿐  그분을  만분의 일도 따라 살진 못했으니 아 어떻게 해; 밤낮 내팃이요가 아니고 네탓이요만 하고  살아오지 않았나. 아 못난 노렌조야.
            또 어릴 때 이야긴데  나는 죄를 고백할 일이 너무나 부끄러워  내 딴에 내 나름대로 목소리를 바꾸어 고백했는데  "노렌조야 잘 고백했다. "하셨을 때는 기겁을 하고 쥐구멍이 어디냐 하고 나온 적도 있으니 오 오  철없던 시절이여.
            그러나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고해성사를 보고 난 후에  갖는  그 천상이 주는 평화. 그 홀가분한 마음. 그리고 천국의 기쁨을  세상의 무엇과 비교하랴이다.  그래서  옛날에 어떤 교우가  고해성사를 보러 갈 때에는   마음이 천근만근  무거웠는데  고해성사를 잘 보고 돌아올 때는  깃털처럼 가벼워 사람들에게 소리소리 지르며 기쁨을 고했다고하는  오래 전 오기선 신부님의  강논말씀이 기억납니다.
            그래서 고해성사로 죄가 사해지고 마음이 가벼워 지고 평화 기쁨이 오는 데   죄를 고백할 때의 부끄러움 쯤이야 죄의 보속으로 생각하면 된다.   어찌 그만한 보속도  안 하고 이런 댓가를 받으면 되겠는가.
            젊었을 때 난 신교처럼 고해성사가 없었으면 한 적도 있지만  물론 우리는  상등통회(지금은 완전 톤회라 하던가)를 하면 고백하기 전에 벌써 죄가 사해짐은 사실이다. 하지만 적어도 죄가 사해졌다는  표랄까  기쁨 . 평화. 홀가분한 마음은 고해성사라는 성사로서만(사죄경을 들으므로) 누리게 됨을 알면  우리에게 고해성사는 절대로 있어야 하고  그래서 나는 고해성사를 주는  신부님도 사랑하게 된다.
             김영랑 시인은  모란이 지고나면  나의 한 해는 다 간 것이라고 했던가.   내게  한 해는 성탄전  판공 고해성사를 보면  다 가게 된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성탄과 새 해를 기다리면 된다.  우리 금년에도 성탄 고해성사 잘 보고  성탄 대축일에  영성체로 예수님이 진정 내게 오시는  기쁨 누리자.
            "예수님이 천번만번 이 세상에 오셔도 내 마음에 오시지 않으면 부슨 소용이 있으랴."  어느 신부님 강논 말씀에서 내가 이 말을 들었지?  
(신성아파트 김형보노렌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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