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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27일 (토)부활 제4주간 토요일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신부님! 신부님! 우리신부님!
교회- 섬김과 나눔의 현장(송천오 안드레아 신부님)

71 신천동성당 [shinchon] 2008-12-18

 


 


    교회 - 섬김과 나눔의 현장
    -송천오(안드레아)|주임신부- 함께 살아가는 것은 인간의 본래적인 특성이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사회적 동물로 규정한바 있다. 오늘날과 같은 익명성의 이익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가치는 그 중요성이 날로 증가한다고 볼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인권을 옹호하고 연대성의 운동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에서“함께 살아간다”는 것은인간 실존에서 요청되는 당연한 외침이며,“전 인간 발전”이라는 궁극적인 지향을갖는다. 교회는 전통적으로“공동체”를 이야기 한다. 성경에 나타나는 공동체는 봉사와 사랑 그리고 일치로 점철된 하나의 신비를 담고 있다. 예수님은“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마태 20, 28)고 말씀하셨다. 또한 루카 복음사가는“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리고 재산과 재물을 팔아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곤 하였다.”(사도 2, 44-45)고 전한다. 교회는 그 자체로서 섬김과 나눔의 공동체인 것이다. 섬김과 나눔의 구체적인 행위는 무엇인가? 먼저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의 관계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하느님의 법인 사랑의 계명에 바탕을 두어(루카10, 27참조) 그리스도인은 한 형제요 자매라는 인식에서 섬김과 나눔의 삶을 제시한다. 서로간의 관계에 있어서 인격적인 만남을 갈망하는 것이다. 비인간화된 물질문명의 우위에서, 외적인 모습에 치중한 명분 찾기에서 그리고 약육강식의 논리에서 보다 진실하고 성실한 인간적인 만남을 요구하는 것이다. 인간의 본질이 소외되거나 변두리로 밀려날 수 없다는 순수 인간화의 지평에서 너와 나의 관계가 이해되고 수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섬김과 나눔의 정신은 하느님 백성으로서(2티모1,9) 그 가치와 존엄성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깊은 마음의 배려와 실천이 따르는 것이다. “사랑의 계명”은 섬김과 나눔이라는 교회정신을 이루는 바탕으로서 그리스도인이 잊지말아야할 가치이다. 신앙선조의 한 사람인 이벽은 그의“성교요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일꾼과 노동자, 가난한 이와 부자, 좌우 모든 사람과 서로 친근하게 사귀며, 간곡한 말씀을 진실하게 따르면 양반이나 상놈 모두가 다 평등하게 하느님의 초대를 받으리로다.” 신앙 선조들을 당시 조선사회에 팽배한 양반계급의 타락과 매관매직의 횡포를 보면서 봉건적 계급사회의 한계를 절감한다. 삶의 모순을 한탄하며 사회의변화를 도모하는 가운데 학문의 대상으로서의 천주학(天主學)이 삶의 차원인 천주교(天主敎)로 변화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들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천주교의 평등사상과 인간구원사상을 선포하면서 박해를 무릅쓰면서 진정한 섬김과 나눔의 사상을 새로운 가치관과 도덕으로 정립하고자 했다. 그리스도인은“지금, 여기에서” “주님께서는 어떤 공동체를 원하셨는가?” 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교회는 날로 새로워져야 한다는 것과 우리 자신도 매일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참된 의미의 쇄신이란 우리 가운데 계시어 한결같이 성실하시고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깨닫는 것이다. 그럼으로써“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신”(필리 2,8) 주님을 만나야 하는 것이다. 이 만남을 통해 공동체 안에서 편견으로 다른 이들을 소외시키지 않았는지, 자기만족적인 요소는 없었는지 그리고 나의 역할에 성실하였는지 묵상할 수 있다. 신앙은 추상적이거나 유토피아적 희구가 아니다. 구체적인 깨달음과 실천을 통해서만 완성되는 그리스도의 친교를 닮아내는 것이다.“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사도 2, 56-47) 순수한 관심과 이해에서 시작하는 친교는 너와 나의 구분이 아니라 서로를 이어 주는 개방된 공동체를 지향한다. 더 이상 편견과 차별이 없는 진정한 해방과 자유가 이루어지는 공동체이다. 이렇게 하느님 나라는 인간이 죽기 이전에 이미 이 세 상에서 이루어지는 섬김과 나눔이라는 친교의 공간이요 시간인 것이다. 선의를 가진 많은 사람들이 용약하여 뛰놀고, 죄인이 회개하는 참다운 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교회의 중요한 역할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경제적이고 정신적인 양면에서 깊은 시름이 있고 많은 사람이 위기를 기회로 삼는 참된 지혜와 용기를 나누면서 인간을 섬기는 교회의 정신을 잊지말아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님의 가르침을 나의 공동체에 육화시키는 노력에 더 열심해야겠다는 마음먹기 작업을 다시 시작할 때이다.
     
    -본당소식지 '생명의 샘' 말씀초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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