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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24일 (수)부활 제4주간 수요일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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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동 성 요한 성당: 사순 묵상] 삶을 이끄시는 하느님

3271 최성기 [henchoi] 2020-03-13

 

 

제 1 독서 창세기 37, 3-4, 12-13a, 17b-28

 

이스라엘은 요셉을 늘그막에 얻었으므로, 다른 어느 아들 보다 그를 더 사랑하였다. 그래서 그에게 긴 저고리를 입혔다. 그의 형들은 아버지가 어느 형제보다 그를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정답게 말을 건넬 수가 없었다. 

그의 형들이 아버지의 양 떼에게 풀을 뜯기러 스켐 근처로 갔을 때,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말하였다. “네 형들이 스켐 근처에서 양 떼에게 풀을 뜯기고 있느냐? 자, 내가 너를 형들에게 보내야겠다.” 요셉은 형들을 뒤따라가 도탄에서 그들을 찾아냈다.. 

그런데 그의 형들이 멀리서 그를 알아보고 그가 자기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다.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저기 저 꿈쟁이가 오는 구나. 자 이제 너 녀석을 죽여서 아무 구덩이에나 던져 놓고, 사나운 짐승이 잡아먹었다고 이야기하자. 그리고 저 녀석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 보자.” 

그러나 르우벤은 이 말을 듣고 그들의 손에서 요셉을 살려낼 속셈으로 “목숨만은 헤치지 말자.” 하고 말하였다. 르우벤이 그들에게 다시 말하였다. “피만은 흘리지 마라. 그 아이를 여기 광야에 있는 이 구덩이에 던져 버리고,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는 마라.” 르우벤은 그들의 손에서 요셉을 살려내어 아버지에게 되돌려 보낼 생각이었다. 

이윽고 요셉이 형들에게 다다르자, 그들은 그의 저고리, 곧 그가 입고 있던 긴 저고리를 벗기고 그를 잡아 구덩이 던졌다. 그것은 물이 없는 빈 구덩이였다. 

그들이 앉아 빵을 먹다가 눈을 들어보니, 길앗에서 오는 이스마엘들의 대상이 보였다. 그들은 여러 낙타에 향고무와 유향과 반일향을 싣고, 이집트로 가는 길이었다. 그때 유다가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동생을 죽이고 그 아이의 피를 덮는다고 해서, 우리에게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자 그 아이를 이스마엘 인들에게 팔아버리고 우리는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자. 그래도 그 아이는 우리의 아우이고 우리 살붙이가 아니냐?” 그러자 형제들은 그의 말을 듣기로 하였다. 

그때에 미디아 상인들이 지나가다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냈다. 그들은 요셉을 이스마엘 인들에게 은전 스무 닢에 팔아 넘겼다. 이들이 요셉을 이집트로 데리고 갔다. 

 

 

복음 마태오 21. 33-43, 45-46

 

그 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비유를 들어 보아라. 어떤 밭 임자가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포도 철이 가까워지자 그는 자기 몫의 소출을 받아오라고 소작인들에게 종들을 보냈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들을 붙잡아 하나는 매질하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였다. 주인이 다시 처음보다 더 많은 종을 보냈지만, 소작인들은 그들에게도 같은 짓을 하였다. 주인이 마침내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그러나 소작인들은 아들을 보자, ‘저자가 상속자이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그를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렸다. 그러니 포도밭 주인이 와서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그렇게 악한 자들은 가차 없이 없애 버리고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 줄 것입니다. 하고 그들이 대답하였다. 그들이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에서 이 말씀을 읽어본 적이 없느냐? ‘집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수석사제들과 바리사이인들은 이 비유들을 듣고서 자기들을 두고 하신 말씀인 것을 알아차리고 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군중이 예수님을 예언자로 여겼기 때문이다. 

 

묵상 1

 

1.  스스로 우리 마음에 지옥을 만드는 것 중에 하나가 질투이다. 오늘 제 1 독서와 복음에서는 질투와 시기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사실 질투처럼 사람을 눈멀게 하는 것은 없다. 오늘 요셉의 형제처럼 아버지의 사랑을 위해 싸우는 형제같은 모습을 우리는 많이 보이며 산다. 남보다 더 많이, 남보다 더 좋은 집에 살고 싶고, 남보다 더 인정받고 싶고, 남보다 못할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이다. 문제는 이런 것에 눈이 멀때이다. 이것이 오로지 삶을 사는 방법, 혹은 이유가 될 때 문제가 생긴다. 

카인과 아벨 이야기도 질투에서 온다. 야곱과 에사우의 이야기도 어느 면에서는 질투 이야기다. 요셉 이야기도 질투이야기이다. 그리고 반드시 딸려서 나오는 것이 폭력이다. 나의 욕심을 채우지 못하게 하는 것을 의지적으로 없애버리려는 근원적인 힘이 바로 폭력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모든 이야기의 핵심에는 질투와 폭력이라는 인간의 이런 심성을 바로 돌려놓으시는, 그리고 이스라엘 역사가 하느님의 뜻으로 가도록 바꿀 수 있는 능력이 하느님께 계시다는 점이다. 숨은 주인공은 하느님이시다는 생각이다. 

요셉 이야기에서 질투와 폭력과 고통은 크게 보면 이스라엘이 하느님께 구원받는 계기가 된다. 요셉이야기가 없었으면, 그 이야기 안에 있는 여러 가지 갈등이 없었으면, 요셉 가족이 이집트에 내려갈 일도, 하느님께서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인간의 삶, 질투 폭력도 넓게 보면 하느님 구원에 한 일부분이 될 수 있다. 

 

2. 오늘 복음에서 “집짓는 사람이 내버렸던 모퉁이의 돌이 머릿돌이 되었다고 말한다.” 내버림을 당한 시간, 요셉처럼 갖은 고초와 고난을 당한 시간, 예수님처럼 인정받지 못하고 괴롭힘을 당하는 시간, 이런 시간을 가지고도 하느님께서는 훌륭한 것을 만드실 수 있다는 고백이다. 

 

오늘 하느님께 내 삶을 맡겨드리며 고백하자. 저의 삶이 모퉁이의 돌, 버려진 돌처럼 느껴진다 하더라도, 당신께서는 이런 모퉁이 같은 돌까지도 사랑을 일구어내고, 용서를 일구어 낼 수 있음을 믿나이다. 하고 고백하는 하루가 되자. 

 

묵상 2

 

집 짓는 이들이 버렸던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이다. 

 

오늘 사순 제 2 주간 금요일 

우리는 다시 한번 하느님의 사랑에 

우리 마음을 엽니다. 

당신께서는 우리 삶의 고단함과 괴로움을 가지고도

버려진 돌 같은 우리 삶을 가지고도

당신의 자비와 사랑을 지으실 수 있음을 

다시한번 깨닫습니다.

하여 우리 삶의 한 순간 한 순간이 당신의 주신 새로운 삶을

준비하고 노래하는 시간임을 잊지 않게 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해서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의 제물로 보내주신 것입니다.

(요한 1서 4.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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