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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5월 26일 (일)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청소년 주일)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라.
5분교리
주님 세례 축일

21 수유1동성당 [suyu1] 2008-01-15

예수님은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물에서 나오시자 곧바로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이 비둘기처럼 예수께 내려왔습니다. 이어 하늘에서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이 공적으로 드러난 것입니다.a

     하지만 예수님 스스로는 세례를 받고서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십니다. 바꾸어 말하면 예수님은 어떤 거창한 취임사나 엄숙한 설교 말씀이 아니라 행동으로 우리에게 앞으로 당신 사명을 어떻게 수행 하실 지에 대해 가르침을 주십니다. 

     2. 그 가르침은 둘로 요약됩니다. 첫째, 예수님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요한의 선포와 요구가 옳다고 인정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요한이 선포한 대로(마르 1,4), 모든 인간은 하느님 앞에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를 해야 한다고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죄인들과 함께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당신은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분임을 드러내십니다. 그분은 죄가 없으신 분이기 때문에 세례를 받으실 때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죄를 고백하지 않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인들과 함께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고 버리시지 않으시는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그분은 죄인인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죄인들과 함께 있는 것을 꺼려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세례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은 인간 모두가 죄인으로서 회개해야 한다는 것을 행동으로 가르쳐주십니다. 그분은 죄에서 돌아서라고 촉구하시지만, 그렇다고 죄인을 냉정하게 내치지는 않으십니다. 일찍이 이사야가 예언한 대로 예수님은 “갈대가 부러졌다 하여 잘라 버리지 아니하고, 심지가 깜박거린다 하여 등불을 꺼 버리지 아니하는”(이사 42,3) 분이십니다. 앞으로 공생활에서 드러나겠지만, 그분은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보살펴주시고, 죄와 죽음의 그늘 속에서 헤매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용서와 생명을 전해주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십니다. 예수님의 이런 행동 안에서 바로 아버지 하느님은 병들고 허약한 인간을 극진히 돌보시고, 죄지은 인간에게 기꺼이 용서를 베푸시는 분으로 드러납니다. 

     3. 우리는 바로 이런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그분과 하나가 됨을 의미하고, 그것은 예수님처럼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를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즉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과 하나 됨으로써 우리 역시 하느님의 아들, 딸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그러면 하느님의 품 안에서 그분의 극진한 사랑을 받게 됩니다. 하느님은 인간처럼 사람을 가려서 내 마음에 들고, 능력 있고, 어여쁜 이들만 사랑하는 분이 아니다.

그렇지 못한 이들도 똑 같이 사랑하십니다. 마치 훌륭한 부모가 공부 잘 하고 성공하는 자식만이 아니라 그렇지 못한 자식도 아끼듯이 말입니다. 어떤 어머니는 자기 자식에 대해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공부 못하는 아이들은 건강한 것만으로도 고맙고, 공부 잘하는 아이는 신통해서 고맙고, 말썽꾸러기 아이는 그 힘찬 고집이 고맙다.”

     4. 아버지 하느님의 마음도 이렇게 폭이 넓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못났다고 자책하거나 낙담에 빠질 필요가 없습니다. 또 남들이 나를 못생겼다, 능력 없다, 돈이 없다, 자식이 없다, 이혼했다, 직업이 없다, 병들었다, 늙었다고 흉보고 욕해서 자책하거나 낙담에 빠질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느님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산다면, 어떤 처지에서든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지니고 기뻐하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마르틴 루터는 자기 책상에 라틴말로 ‘나는 세례 받았다’는 말을 새겨놓고 어려울 때마다, 자기회의와 열등감이 숨어들 때마다 이 문장을 보며 중얼거렸다고 합니다. “나는 세례 받았다!”

    유감스럽게도 루터가 가톨릭 교회에서 갈라져 나갔기는 했지만, 그의 이런 태도는 본받을 만합니다. 우리가 자신을 의심할 때마다, 열등감을 느낄 때마다, 자신을 거부할 때마다, 우리는 세례성사를 통해서 하느님으로부터 무조건 받아들여졌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자신을 긍정하게 되고, 이를 기반으로 우리 삶을 건설하고, 타인을 사랑으로 대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

     5. 주님의 세례 축일로 성탄시기가 지나고 연중시기가 시작됩니다. 축제는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일상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새로운 것이 거의 없고, 분주함과 피곤함이 계속되어 기운을 잃기가 쉽습니다. 주님의 세례 축일은 지고하신 하느님의 아들이 죄인을 구하기 위해서 기꺼이 죄인 곁으로 오셨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그러니 따분하고 지루한 일상 속에 그분이 계시면서 우리를 순간순간마다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멀고 힘든 길도 좋은 가이드, 우리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안내자와 함께 가면 마음이 든든하지요. 예수님을 그런 탁월한 인도자로 믿고서 일상의 삶을 타박타박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글/ 손희송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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