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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나해-03)

160 전창문 [cmjun] 2003-10-19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나해-03)

                                              2003. 10 19

 

   10월은 전교의 달이며 특히 오늘은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는 날로 모든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실천할 것을 다짐하는 주일입니다. 주님은 승천하시기에 앞서 제자들에게 "당신들은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라"고 하시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 선교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따라서 오늘 선교의 의무를 부여받고 있는 우리가 복음선포에 얼마나 열과 성을 다해왔는지 반성해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미국의 훠드 회사라고 하면 자동차 업계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만큼 큰 굴지의 자동차 회사입니다. 이 회사의 자동차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을 점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회사가 이렇게 발전하게 된 데는 다음과 같은 숨은 이야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훠드 회사의 사장은 어느 날 출근 시간에 자기 회사 제품이 아닌 타사 자동차 회사의 새 차를 사서 타고 출근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회사의 중역들이 깜짝 놀라며 이구동성으로 "아니 사장님께서 어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사장님이 우리 회사의 자동차를 타지 않으시고, 다른 회사의 자동차를 사서 타고 출근을 하시다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라고 항의했습니다. 바로 그때 훠드 사장은 거기에 모인 간부와 사원들을 똑바로 보면서, "여러분이 언제 한 번이라도 우리 회사가 만든 차의 우수성에 대해 내게 선전한 일이 있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선전하지 않은 차를, 우리 회사의 우수성을 선전하지 않는 그런 차를 사서 탈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하고 말했습니다. 이런 사장의 말에 아무도 말을 못했고, 모두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기 회사 자동차의 우수성을 선전하지 않은 무관심을 반성했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훠드 회사에서는 중역, 사원, 종업원 전부가 Ford 차의 선전을 담당했습니다. 그리고 차의 성능도 물론 좋았지만 사원들의 선전 결과로 오늘날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자동차 회사를 이룬 동기가 됐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광고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T.V을 볼 때마다 광고요, 신문 잡지를 읽을 때마다 광고를 접하게 됩니다. 그런가하면 길거리를 걸으면 우리를 유혹하는 광고가 즐비합니다. 이처럼 광고는 우리 삶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광고는 소비자를 유혹하고 우리의 호주머니를 열게 하여 물건을 구매하게 합니다. 당장은 필요치 않더라도 어떤 필요를 느낄 때, 우리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광고를 떠올리게 하여 그 상품을 구매하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광고가 지닌 마력입니다.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광고하지 않을 때, 즉 전교하지 않을 때 더욱 확장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선전하지 않는데 어떻게 가톨릭이 참 종교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다른 이들이 믿겠습니까? 사도 바오로께서는 디모테오에게 보낸 두 번째의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전하고 끝까지 참고 기다리면서 사람들을 책망하고 훈계하고 격려하십시오" 또 코린토인들에게는 "내가 기쁜 소식을 전한다고 해서 그것이 내게 자랑거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만일 내가 기쁜 소식을 전하지 않는다면 내게 앙화가 미칠 것입니다."(ICor 9,16) 라고 말씀하심으로 선교 의무에 대해 강조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선교에 대한 우리의 자세는 어떠합니까? 간혹 우리는 생각하기를 선교는 성직자나 수도자 그리고 특정한 평신도만이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례 성사를 받을 때 누구나 주님께로부터 전교의 의무를 부여받았고, 굳게 서약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너무나 전교에 소극적이었음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복음을 받아들인 지 219년이 됩니다만 가톨릭 교회의 교세는 불과 430만 명입니다. 그런데 우리 보다 100년이나 뒤떨어진 개신교의 교세는 믿을 수 있는 숫자인지는 모르지만 자기들 주장에 의하면 1500만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런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우리의 전교열이 너무나도 소극적이었다는 것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개신교는 여러 교파를 합해서 그렇고, 그리고 외적인 양보다 내적인 질이 더 중요하다는 말로 자위할 수는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과연 천주교 신자들이 개신교 신자들보다 더 복음적으로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다시 말해 여러분이 주변의 개신교 신자들보다도 더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분이 얼마나 될 지 궁금합니다.

 

   오늘 전교주일을 맞이해서 왜 우리가 전교를 해야 하느냐는 것보다 우리가 전교를 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간단히 지적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전교하지 않는 첫 번째 이유이자 제일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믿음에 대한 기쁨을 간직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는 믿음이, 텔레비죤, 자가용, 스포츠나 각종 오락 같은 취미나 생활 용품이 주는 기쁨만큼도 못하다면, 우리가 어떻게 남에게 전할 수 있겠습니까?  

 

   둘째, 우리가 전교하지 않는 이유는, 교리에 대해서, 성경에 대해서, 너무나 모르기 때문입니다. 알아야 면장도 한다는 말이 있듯이 하느님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남에게 전할 수가 있습니까? 우리는 배워서 신앙의 소중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셋째 우리가 주님의 복음 정신에 따라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 사람들 가운데는 권하는데도 듣지 않는 사람도 있기도 하지만, 우리가 신앙 생활의 모범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신자들의 나쁜 표양 때문에 나오지 않는 사람도 꽤 있습니다. 권하는데도 듣지 않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 아니지만, 우리의 나쁜 표양 때문에 신앙을 거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책임입니다.

 

   오늘 전교주일을 지내면서 우리 자신이 신앙의 기쁨과 보람을 갖는 삶이 되고, 그러기 위해 우리는 하느님 말씀인 성경을 더욱 가까이 하도록 노력하고 이웃들에게 모범 된 신앙을 사는 신앙인이 되어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을 인도할 수 있도록 굳게 다짐하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비신자들에게 신앙을 전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요 책임입니다. 계속적으로 여러분이 신앙의 씨를 뿌리면 언젠가는 하느님께서 거두실 것입니다. 많이 뿌린 사람은 나중에 많은 수확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 수확은 바로 우리 구원을 위한 현세적 공로를 쌓는 행위입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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