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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분교리 일분묵상
죽음은 삶의 최종 평가

56 하계동성당 [hagye] 2007-09-29

 

죽음은 삶의 최종 평가

     몸이 편찮은 신자들에게 병자성사나 환자를 위한 기도를 할 때 그들의 얼굴 모습을 보면 가족과 이웃에게 지금까지 어떤 마음과 태도로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왔는지 조금은 느낄 수가 있습니다. 얼굴에 환한 미소를 담고 있는 분들은 적어도 좋은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오신 것 같고, 몸이 불편해서 그렇기는 하지만, 밝은 미소 없이 양미간에 주름이 깊이 패인 분들은 ‘주변 사람들과 불편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오셨구나’ 하는 짐작을 하게 됩니다. 특히 임종에 가까운 환자의 마지막 모습은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모습과 같다고 합니다. 아마도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떠날 때도 이 세상에서 살 때 지녔던 마음들을 그대로 가지고 떠나는가 봅니다.

   오늘 복음(루카 16,19-31)은 가난한 라자로는 죽어서 아브라함 할아버지 품으로 가고, 반대로 부자는 저승으로 가서 겪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큰 구렁을 사이에 두고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는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물을 찍어 자신의 혀를 식혀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들 사이에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은 부자에게 살아 있을 때 인색하고 자비를 베풀지도 않고 살아온 그의 삶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에 대해 부자는 자신과 똑같은 처지를 당하지 않기 위해 라자로를 자기 다섯 형제들에게 보내 달라고 아브라함에게 부탁을 합니다. 그 부자는 회개를 이 세상이 아니라 저세상에서 한 것이었습니다.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듯이 죽을 때의 모습도 다르다고 합니다. 삶의 흔적들이 보여 주는 진실은 죽음의 과정에서 잘 드러난다고 합니다. 생각해 보면 죽어 가는 모습은 살아온 모습의 반영이고 요약일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복음에서 나온 부자 역시 살아 있을 때 모습을 갖고 주님으로부터 셈을 받은 것입니다.

   죽음이 언제 어디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든지 그리고 어디에서든지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죽음은 삶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 안에 있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자신의 죽음은 자신이 살아온 나날들을 통해 주님에게서 평가를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마태 25,31-46).

   죽음을 바르게 맞이하고자 한다면 바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 평화로운 죽음을 바란다면 살아 있을 때 자신의 삶 안에서 평화로운 마음을 지니며 살아야 합니다. 기쁘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면 평소에 기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죽음은 자신의 삶을 결산하는 인생의 마지막 장이기 때문입니다. 먼지는 전에 있던 흙으로 되돌아가고 목숨은 그것을 주신 하느님께 되돌아가는(코헬 12,7) 존재가 바로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정원순 토마스 데 아퀴노 수사 신부·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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