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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5월 7일 (화)부활 제6주간 화요일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하계동 메아리
교황 성하의 사순 담화

25 고창록 [peterkauh] 2006-03-01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마태 9, 36)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사순 시기는 자비의 샘이신 주님께 나아가는 내적 순례를 위한 특별한 시간입니다. 이 순례 동안 주님께서 친히 가난하고 메마른 우리 마음에 함께 하시며, 부활의 강렬한 기쁨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시편 저자가 말하는 “어둠의 골짜기”(시편 23,4)에서 악마가 우리를 절망에 빠뜨리거나 우리가 하는 일에 헛된 희망을 안겨줄 때에도 하느님께서는 그곳에서 우리를 지켜 주시고 힘을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기쁨과 평화와 사랑을 갈구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울부짖음을 듣고 계십니다. 여느 시대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버림받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이, 어른, 노인을 가리지 않고 괴롭히는 불행과 외로움, 폭력과 굶주림의 비참함 속에서도, 하느님께서는 어둠이 세력을 떨치도록 두지 않으십니다. 사랑하는 저의 선임자이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말씀하셨듯이, “악에는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한계”가 있으니, 그것은 곧 자비입니다(Memory and Identity, 19면 이하). 저는 이러한 생각을 염두에 두고 올해 사순 시기 담화의 주제로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마태 9,36)라는 복음 말씀을 골랐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저는 오늘날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한 가지 주제에 관하여 잠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바로 발전의 문제입니다. 지금도 그리스도께서는 연민의 ‘눈길’로 개인과 민족들을 계속하여 바라보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바라보시는 것은 하느님의 ‘계획’에 그들의 구원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계획을 위태롭게 하는 위험들을 알고 계시는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자 가엾은 마음이 드십니다. 그분은 당신의 목숨을 내어 놓아서라도 늑대들에게서 양떼를 지키고자 하십니다. 예수님의 눈길은 개인과 군중을 감싸고 당신 자신을 속죄의 희생 제물로 봉헌하시어 그들을 모두 하느님 아버지 앞에 데려다 주십니다.

 

  이러한 파스카의 진리로 밝혀진 교회는 우리가 완전한 발전을 이루어 나가려면 인류를 바라보는 우리의 ‘눈길’을 그리스도에 비추어 평가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실 사람들의 물질적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일과 그들 마음의 깊은 바람을 충족시키는 일을 따로 떼어 생각하기란 어렵습니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리의 책임이 더욱 분명해지고 절박해지고 있는 오늘날의 급변하는 세상에서 이러한 사실은 한층 더 강조되어야 합니다. 존경하는 선임자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저개발과 같은 부끄러운 문제는 인류에 대한 모욕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바오로 6세께서는 회칙 「민족들의 발전」(Populorum Progressio)에서 “생명 유지에 필요한 최저 보상도 받지 못하는 물질적 결핍”과 “지나친 자애심 때문에 윤리적 빈곤에 자신을 묶어놓은 사람들”, 그리고 “사유권과 권력의 남용, 노동자들의 착취, 부정한 상거래로 조성된 불합리한 사회 구조”를 비난하셨습니다(21항). 그러한 악에 대한 해독제로서 바오로 6세께서는 “인권 존중, 청빈에의 노력, 공동 복지를 위한 협력, 평화의 염원”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최고의 선과 그 선의 원천이요 극치이신 하느님을 인정하는 일”을 제시하셨습니다(21항). 이러한 맥락에서 바오로 6세께서는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선의의 사람들이 하느님의 선물로 받아들이는 신앙”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의 정신적 일치”를 제안하셨습니다(21항). 따라서 군중들을 바라보시는 그리스도의 ‘눈길’은 바오로 6세께서 “개인의 인간 전체와 전 인류의 완전한 발전”이라고 하신 “완전한 휴머니즘”의 참된 의미를 확인하도록 우리를 재촉합니다(42항). 이런 까닭에, 인류와 민족들의 발전을 위한 교회의 가장 큰 공헌은 단순히 물질적 수단이나 기술적 해결책을 제공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양심을 길러주시고 인간과 노동의 참된 존엄을 가르쳐 주시는 그리스도의 진리를 선포하는 데에 있습니다. 이것은 인류의 모든 문제들에 참된 응답을 줄 수 있는 문화를 증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끔찍한 빈곤의 문제 앞에서, 무관심과 이기적인 회피는 그리스도의 ‘눈길’과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교회가 기도와 더불어 사순 시기에 특별히 제안하는 단식과 자선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눈길’에 맞출 수 있는 적절한 방법입니다. 성인들의 모범과 교회 선교 활동의 오랜 역사는 가장 효과적으로 발전을 지원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소중한 지표입니다. 오늘날과 같은 세계적인 상호 의존 시대라 할지라도, 어떠한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계획도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는 것으로 표현되는 사랑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복음의 논리에 따라서 행동하는 사람들은 강생하신 하느님과 이루는 친교인 신앙을 실천하며, 그분을 본받아 이웃의 물질적․영적 요구의 짐을 기꺼이 짊어집니다. 그들은 이를 마르지 않는 신비, 무한한 정성과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신비로 여깁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전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아무 것도 베풀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압니다. 캘커타의 데레사 복자가 자주 말했듯이 가장 큰 가난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이 그리스도의 자비로운 얼굴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러한 생각이 없다면, 문명은 견고한 토대를 가질 수 없습니다.

 

  성령을 따르는 사람들 덕분에 교회 안에는 병원, 대학, 직업 교육 학교, 소규모 사업 등 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다양한 형태의 자선 활동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러한 사업은 복음 말씀에 감동받은 사람들의 참된 인도주의적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다른 형태의 사회 복지 활동들을 훨씬 능가합니다. 이러한 자선 활동들은 인류의 참된 선에 초점을 두는 세계화를 이루는 길, 따라서 참된 평화로 나아가는 길을 보여줍니다. 군중들을 보시고 가엾이 여기시는 예수님처럼, 오늘날 교회는 정치 지도자들과 경제력을 가진 이들이 모든 인간의 존엄을 존중하는 발전에 기여하도록 촉구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임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성패를 시험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은 종교의 자유입니다. 참된 종교의 자유란 단순히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기리는 자유뿐만 아니라, 사랑으로 활기를 띠는 세상을 만드는 데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뜻하기도 합니다. 참된 종교 가치의 중심적 역할, 곧 인간의 가장 깊은 관심에 응답하고, 개인적 사회적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윤리적 동기를 부여하는 역할을 인식하는 것도 이러한 노력에 포함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그리스도인들이 정치 지도자들의 정책을 평가할 때 사용하여야 할 기준입니다.

  역사상 예수님의 제자라고 자처한 이들이 저지른 과오가 많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중대한 문제들을 다루어야 할 때, 흔히 그들은 이 세상을 개선시키는 것이 먼저이고 그런 다음에 주변 사람들을 돌보아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절박한 요구들 앞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외적인 구조를 바꾸는 것이라고 믿고 싶은 유혹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는 그리스도교가 일종의 윤리주의로 전락하여 ‘행동’이 ‘신앙’을 대신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저의 전임자이신 요한 바오로 2세의 다음 지적은 적절한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교를 단지 인간적 지혜나 행복을 위한 일종의 학문으로 깎아내리려는 유혹이 있습니다. 세속화가 심화된 현대 세계에서 ‘구원의 점진적인 세속화’가 진행되고 있어서, 사람들은 인간의 선익을 위하여, 그러나 그저 수평적 차원으로 전락해버린 온전하지 못한 인간의 선익을 위하여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께서 온전한 구원을 가져다주시러 오셨음을 알고 있습니다”(「교회의 선교 사명」[Redemptoris Missio], 11항).

 

  사순 시기는 우리 앞에 이러한 온전한 구원을 제시하며, 우리를 억누르는 모든 악을 이기시는 그리스도의 승리를 바라보게 합니다. 거룩하신 스승이신 하느님을 바라보고 그분께 귀의하며 고해성사를 통하여 그분의 자비를 체험하면서 우리는 우리를 깊이 바라보시고 군중에게 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새 생명을 주시는 그분의 ‘눈길’을 발견할 것입니다. 이는 또 회의주의에 굴복하지 않는 이들에게 신뢰를 회복시켜 주어 그들 앞에 영원한 참 행복의 전망을 열어줍니다. 전 역사에 걸쳐, 심지어 증오가 만연하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주님의 사랑에 대한 빛나는 증언은 결코 부족함이 없습니다. “살아 있는 희망의 샘”(단테, 「천국편」[Paradiso], 33, 12)이신 성모님께서 우리를 당신 아드님께 이끌어 주실 수 있도록 우리의 사순 여정을 그분께 맡겨 드립니다. 특히 가난의 고통 속에서 도움과 지원과 이해를 간절하게 바라는 수많은 사람들을 성모님께 맡겨 드립니다. 이런 마음으로 저는, 여러분에게 사도로서 진심어린 축복을 보냅니다.


바티칸에서
2005년 9월 29일

교황 베네딕토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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