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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5월 7일 (화)부활 제6주간 화요일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하계동 메아리
"자유로운 죄인"--하계동 메아리 제 698호

23 고창록 [peterkauh] 2006-02-19

 

[연중 제7주일]

 

 “자유로운 죄인으로…”

마르 2,1-12

 

 

병을 얻은 사람이 그 병의 치료를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고 고소해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가 누구이든 당사자보다 더 안타까운 마음이 되어 치료에 도움이 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병이 커지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확인하고 주변에 알려 치료를 위해 가능한 방법과 도움을 찾고 주는 것 또한 서로에게 위로와 보람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의 죄 또한 그렇지 않겠는지요.


 

죄인은 하루라도 빨리 죄를 자각하고 오늘 독서의 화답송처럼 “저를 고쳐 주소서. 당신께 죄를 얻었나이다”라고 고함으로써 병을 치유하기 위한 노력과 같이 하느님께 용서를 구하는 노력에 진력하고 서로가 그렇게 하도록 돕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없겠지요. 다행스럽게도 구약성서에서 뚜렷이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용서해주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자비로우심입니다. 예언자 느헤미야는 “하느님은 어떤 죄도 용서하시는 분”(9,17)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 용서의 조건은 변화무쌍한 인간적 편견에 있지 않으며, 오직 한 가지, 죄인들의 회개입니다(에제 18,23).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병을 죄의 결과로 인식하고 있던 유다인들 앞에서 중풍으로 고생하는 한 환자를 치유해 주실 뿐만 아니라, 질병의 근원인 죄까지도 용서해 주십니다.

하느님께서 용서해 주시면 인간의 죄는 해소되고 죄책감까지도 불필요한 것이 됩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아드님인 예수를 통해 행하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죄를 용서해 주실 수 있는 예수님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구원의 삶을 살게 하시는 사랑의 하느님이시니까요.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서 당신의 생명을 송두리째 내어 주셨습니다(마태 26,28). 당신 자신을 제물로 봉헌함으로써 하느님과 인간을 화해시키셨습니다(로마 5,10; 2코린 5,18-20). 부활하신
주님
은 당신 제자들에게 용서를 선포하시고, 당신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을 맡겨 주셨습니다(요한 20,23; 마태 16,19).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오직 이처럼 무한한 자비와 사랑 그 자체이신 주님을 조건 없이 신뢰하고 자신의 삶을 봉헌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중풍에 걸린 환자를 예수님께 인도하기 위해 예수님 처소의 지붕을 뚫고 예수님 앞에 환자를 운반한 이웃들의 태도가 아니겠는지요. 이는 지난 주에 당시의 불법 무례를 무릅쓰고 예수님께 자신의 치유를 청한 나병환자의 태도와 함께 우리가 주님을 향해 갖추어야 할 오직 한 가지, 바로 확고한 믿음이 아니겠습니까! “스

 

                               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전례와 교리]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다음 주)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음식이란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이었습니다(신명 8,3; 마태 15,32; 마르 8,3).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단식이란, 자신이 하느님께 종속되어 있음을 드러내는 신심행위로서 ‘마음을 겸허하게 갖는 것’으로 이행되었으며, 금욕주의적인 것으로 인식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탄식하거나(1사무 31,13), 이런저런 은총을 청하거나(2사무 12,16; 요엘2, 12-17), 개인적 또는 집단적 용서(1열왕 21,27; 요나 3,5.7)와 신적인 빛을 간청하기 위한(다니 10,3.12) 목적으로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단식을 실천하였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공적인 사명을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단식하심으로써 하느님께 대한 온전한 신뢰와 철저한 자아 포기를 실천해 보이셨습니다(마태 4,2; 탈출 34,28 참조).이처럼 단식의 본질적 의미를 완성하신 예수님께서는 단식을 단순히 외적인 치레에 집착하여 실행함으로써 본질적인 의미를 흐리게 하는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에게, 이제 당신의 현존하심이 구약의 모든 종교적 행위들을 완성시키는 것임을 가르치십니다.

위선적이고 형식적인 틀 속에서의 비본질적인 단식행위에서 벗어나 예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의 삶이 본질의 완성임을 확인 시키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라는 말이 함축하고 있는 종교적 의미가 살아납니다. 즉 당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자주 의례적인 단식을 했음에도 예수님의 제자들은 단식을 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바로 혼인잔치(메시아의 도래)가 거행될 때 신랑(메시아 인 예수님)의 친구들은 잔치의 즐거움을 신랑과 함께 즐겨야 하기에 단식 할 수 없다는 예수님의 비유담으로 천명됩니다. 
 

이는 바로 우리에게 요식적인 신심행위에 얽매여 근본정신을 잃어버리는 인간적 어리석음에 빠져 있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주신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자신이 항상 우리의 마음속에 현존하시는 주님의 실체를 망각한 체 어떤 과시적 치레나 특정의식에 얽매여 소위 “보여주기 위한 신앙”에 빠져있지 않은지 되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구역과 본당 소식]

 


온 가족이 손잡고 이웃과 함께

성당으로 가는 '가족미사의 날'! 


일요일엔 우리 흩어지지 말아요!

                                 온 가족이 손잡고 이웃과 함께 성당으로,

                                 할머니 할아버지 댁으로! 

                          

                                 구원은 사랑 속에 있어요.

 


사회와 세대의 분화 추세 속에서 우리 가족들은 평일은 평일대로 주말엔 주말대로 뿔뿔이 흩어집니다.  이젠 다시 하나 되는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까지도 우리는 오랫동안 주일마다 가족들이 흩어져 미사에 참례해 왔습니다. 또래끼리의 색다른 분위기를 위해, 또는 미사 진행의 편의를 위해….


그러나 우리 가족들의 결속을 원하시는 주님께서 이젠 주일에 온 가족이 함께 손잡고 미사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실 것 같습니다.


그 시작이 어느 날이 되든지 그 날은 가족들이 함께 손잡고 주님 성전에 모여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며 우리 가정의 화목과 평화, 그리고 주님을 모신 화목한 가정의 모습을 함께 그려볼 것입니다.


또한 우리 이웃 형제자매의 가족들과 사랑을 나누기 원하시는 주님의 뜻을 되새기며 인사하고 함께 손잡을 것입니다.


주님의 뜻에 따라, 특별히 우리 가정의 평화와 행복이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시고, 그 실천적인 과정으로써 가정 기도문을 직접 작성해 나누어 주시고 매일 밤 아홉시마다. 전 신자 가정을 위해 기도와 강복을 주시는 본당 신부님의 애쓰심에 감사드립니다.


곧 시작될 가족미사의 날, 우리는 그동안의 가정 기도와 성가정을 위한 노력의 성과도 헤아려 볼 것이며, 기쁨과 고통을 함께 나누며 주님 안에서 참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이웃의 얘기도 들어 볼 것입니다.


몇 시의 미사에 참여 하든 그 날은 가족과 함께, 이웃과 함께, 다정히 손잡고 성당으로 오십시오.


하계동 모든 교우 가정의 행복을 기원하며, 이 가족미사의 축제에 곧 여러분을 초대하겠습니다.

  

                              

                                                                                       사목협의회 홍보분과 가정분과

 

 

 

 

[영적 먹거리]      

 

오늘의 묵상

 


이것은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을 두고,

계시로 받은 말씀이다.

마지막 때에, 주님의 성전이 서 있는 산이

모든 산 가운데서 으뜸가는 산이 될 것이며,

모든 언덕보다 높이 솟을 것이니,

모든 민족이 물밀듯 그리로 모여들 것이다.

백성들이 오면서 이르기를

“자, 가자. 우리 모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이 계신 성전으로 어서 올라가자.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님의 길을 가르치실 것이니,

주님께서 가르치시는 길을 따르자” 할 것이다.

율법이 시온에서 나오며,

주님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온다.

                                                                             이사야서 2:1-3


               


                       


                                   구원의 방주

 


유다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시온산을 거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모든 사람이 몰려 와서

거기서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이 말씀을 오늘의 신자들에게 그대로 적용하여

교회로 나와야만 구원 받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만이 구원의 장소일 수는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특히 유다 백성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이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삶의 터전에서 신앙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신앙인으로서 교회에 열심히 나가야 하지만

신앙 공동체로서 교회만이 구원의 방주는 아닙니다.

교회와 가정과 직장 등 모든 삶의 터전에서

신앙을 지킬 때 구원에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열리라

                                                                                                                                                                                   

                                                                                                                                            제1독서: 이사 43,18-19.21-22.24ㄴ-25

 

 


                            

                                   지나간 일을 생각하지 말라.

                                   흘러간 일에 마음을 묶어 두지 말라.

                                   보아라, 내가 이제 새 일을 시작하였다.

                                   이미 싹이 돋았는데 그것이 보이지 않느냐?

                                   내가 사막에 큰 길을 내리라.

                                   광야에 강을 트리라.

                                   내가 친히 손으로 빚은 나의 백성이

                                   나를 찬양하고 기리리라.

                                     

                                   야곱아, 너는 나를 찾지 않았다.

                                   이스라엘아, 

                                   너는 나에게 정성을 쏟지 않았다.

                                   도리어 너는 죄를 지어

                                   나의 화를 돋구었고

                                   불의를 저질러

                                   나의 속을 썩였다.

                                

                                   네 죄악을 씻어

                                   내 위신을 세워야겠다.

                                   이 일을 나밖에

                                   누가 하겠느냐?

 

                                   너의 죄를 나의 기억에서

                                   말끔히 씻어 버리리라.


                                                          (하느님 감사합니다.)

 

 

 


                                             ❍
오늘의 명언

 

                              

                물처럼 온유하되 강하여라.

                지상의 모든 자연 통로를

                기름을 바르듯 감싸고 흐르는

                물처럼 부드러워라.

                              

                그리고 홀연히 일어서서

                세상을 바꿀 만큼

                강하여라.

 

                                                                    

 

                                                           - 브렌다 피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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