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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55] 그리스도 왕 대축일의 유래와 의미

69 오규철 [kcoh] 2005-11-26

 그리스도 왕 대축일의 유래와 의미

 

  오늘은 그리스도 왕의 의미를 성대히 기리는 축일입니다. 이는 구세사의 특수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이심을 경축하고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왕직(봉사직)에 참여하게 되었음을 기뻐하며 세상이 그리스도왕의 통치로 인하여 새롭게 되도록 기원하는 축일입니다. 교황 비오 11세는 당대에 흥기하던 무신론과 세속주의를 경계하고 왕이신 그리스도의 통치권이 개인과 가정과 사회 및 전 우주에 두루 미치고 있음을 강조하는 뜻에서 1925년에 연중 마지막 주일을 '그리스도 왕 대축일'로 제정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어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고 왕으로서 영광을 받으셨으므로 그리스도 왕 대축일은 예수승천 대축일과 겹치는 면이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기념하는 축제는 두 개의 사건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오셨음을 기념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세상의 끝에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고대하는 희망의 사건입니다. 우리는 그 중간 어디쯤에서 두 가지 사건의 핵심인 "우리 주님은 왕이시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네가 유다인의 왕인가?"(요한 18,33b)

 총독 빌라도가 주님께 묻는 말입니다. 왕이라고 답하기만 하면 큰 일 입니다. 왜냐면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스스로 "왕"이라고 답한다면 이는 황제의 대리자인 총독을 부인하는 것이요, 황제를 거스르는 반역에 해당하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그 벌이 무엇인지는 가히 짐작이 될 것입니다. 이 두려운 현장에서 주님의 대답은 문제의 핵심에 도달합니다.

 

 "그것은 네 말이냐?"(요한 18,34)

 자신이 스스로 왕이라 하지 않았는데, 예수님을 '왕'이라고 심문하는 빌라도에게 되묻고 있는 것입니다. 사전에 이미 그런 고발이 들어왔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 복음서에는 이런 직접적 언급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다만 병행하는 다른 구절은 명백하게 주님이 '왕'이라 자칭했다고 고발하고 있습니다(루가 23,2b). 이런 정황으로, 본래 주님을 고발하는 사람들이 주님을 '왕'이라 말했다고 고발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왕'의 호칭에 관계돼서는 그것이 "사형에 처할 만한 일"(요한 18,31b)이 됨을 고발자는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위급한 이 정황에서 주님은 적극적으로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내 왕국은 이 세상 것이 아니다."(요한 18,36a)

 이 말은 두 가지 상반된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스스로 '왕'이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그 왕이 아니다'는 부인입니다. 말하자면 세상의 왕들과 권력이나 왕권의 다툼을 할 그런 모습은 아니라는 것(요한 18,36b)입니다. 빌라도나 현실적인 왕국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이 말씀은 대단히 이해하기 곤란한 변명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주님의 '자기주장'은 꺾이고 십자가형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미 "없애기로 작정한" 유다인들과 대사제들의 이 작전(?)은 성공한 듯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성공하는 일이 아님을 그리스도인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그렇게 평가된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권모술수가 자행되는 이 세상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만큼 주님 부활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결정적 사건이 된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로 '주님의 말씀들'이 되살아났습니다. 주님의 부활로, 이전에 사셨던 구체적 현장이 소중해졌습니다. 왜냐면 그것은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어' 몸소 보여주신 구체적 계시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하느님 나라는 저 세상에서 이루어질 '어떤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완성될 하느님 계획이었습니다.

 

 주님은, 하느님을 떠나있는 죄인들에게 먼저 다가가시고자 했습니다. 그들을 단죄하시기보다는 오히려 '회개하고 되돌아오는 이를 기꺼이 품에 안으시는'(루가 15,11-32) 자비로우신 분이셨습니다. 초대하며 기다리시는 분, '가라지를 뽑지 않으시면서도 농사를 지으시는'(마태 13,24-30) 그분이야말로 우리가 하느님으로 부르는 그분이셨습니다. 주님은 이 하느님을 보여주시기 위해 친히 사람이 되시고, 사람과 함께, 특히 죄인들과 어울리시는 현장에 기꺼이 나서셨습니다. 그 현장에서 이루어진 것은 회개와 믿음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이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미 이렇게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 왕국은 이미, 여기저기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겨자씨와 같이 시작되었지만 공중의 새들이 깃들일 만큼 완성될 그 나라, 그분이 다시 오실 때에는 완성될 것이라는 분명한 이 예고가, 지금 현장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희망이요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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