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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시로 본 하느님

7 한덕수 [hahnds] 2004-10-29


RAFFAELLO Sanzio, 에제키엘이 본 환시, 1518, Oil on wood, 40 x 30 cm, Galleria Palatina (Palazzo Pitti), Florence


이민족의 땅에 하느님의 영광이


그 순간 북쪽에서 폭풍이 불어 오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구름이 막 밀려 오는데 번갯불이 번쩍이어 사방이 환해졌다. 그 한가운데에는 불이 있고 그 속에서 놋쇠 같은 것이 빛났다. 또 그 한가운데는 짐승 모양이면서 사람의 모습을 갖춘 것이 넷 있었는데 각각 얼굴이 넷이요 날개도 넷이었다. … 그 얼굴 생김새로 말하면, 넷 다 사람 얼굴인데 오른쪽에는 사자얼굴이 있었고 왼쪽에는 소 얼굴이 있었다. 또 넷 다 독수리 얼굴도 하고 있었다. …그 동물들 한가운데 활활 타는 숯불 같은 모양이 보였는데 그것이 마치 횃불처럼 그 동물들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 불은 번쩍번쩍 빛났고, 그 불에서 번개가 튀어 나왔다. …그 짐승들을 바라보자니까, 그 네 짐승 옆 땅바닥에 바퀴가 하나씩 있는 게 보였다. …그 바퀴에는 짐승의 기운이 올라 있어서 짐승들이 움직이면 바퀴들도 움직이고 짐승들이 멈추면, 바퀴들도 멈추었다. 그 네 바퀴마다 불쑥 솟은 데가 있고 그 둘레에는 눈이 하나 가득 박혀 있었다. 짐승들이 땅에서 떠오르면, 바퀴들도 함께 떠올랐다. 그 짐승들의 머리 위에는 창공 같은 덮개가 수정같이 환히 빛나며 머리 위에 펼쳐져 있었다. 그 창공 밑에서 짐승들은 날개가 서로 맞닿게 두 날개를 펴고 나머지 두 날개로는 몸을 가리우고 있었다. 짐승들이 나느라고 날개를 치면 그 날개 치는 소리가 큰 물소리 같았고 전능하신 분의 음성 같았으며 싸움터에서 나는 고함소리처럼 요란하였다. 그러다가 멈출 때에는 날개를 접었다. 머리 위에 있는 덮개 위에서 소리가 나면 날개를 접었다. 머리 위 덮개 위에는 청옥 같은 것으로 된 옥좌같이 보이는 것이 있었다. 높이 옥좌 같은 것 위에는 사람 같은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은 허리 위는 놋쇠 같아 안팎이 불처럼 환했고, 허리 아래는 사방으로 뻗는 불빛처럼 보였다. 사방으로 뻗는 그 불빛은 비 오는 날 구름에 나타나는 무지개처럼 보였다. 마치 야훼의 영광처럼 보였다. 그것을 보고 땅에 엎드리자, 말소리가 들려 왔다. (에제키엘 1,4-28)


에제키엘은 “하늘이 열리면서… 하느님께서 보여 주시는 환시를” 보는데 그 내용은 다른 예언자들이 보고 말해 왔던 어떤 것보다 더욱 환상적이다. 이 환시는 이후 유다교의 신비주의에 큰 영향을 끼쳐, 하늘의 세계가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한 갖가지 추측을 불러일으키게도 하였다. 그래서 유다교의 랍비들은 이 단락을 공적으로 봉독하는 것을 금하였다.

이민족의 땅에 살던 에제키엘은 폭풍 속에서 빛에 휩싸여 북쪽에서 내려오는 ‘어좌 수레’를 본다. 짐승과 사람의 모습을 섞은 듯한 발과 날개들을 가진 존재 넷이 거대한 “수정 같은 궁창 모양의 것”을 든 채 그 수레를 이끄는데, 그 수레에는 눈까지 달린 바퀴들이 이중으로 달려 있다. 그래서 그 수레는 어디로든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그 “궁창 모양의 것” 위에는 어좌 같은 것이 있고, 거기에는 “사람처럼 보이는 형상”이 앉았는데, 마치 “주님 영광의 형상처럼 보였다.” 주님의 영광이 신비한 ‘어좌 수레’를 타고 바빌론 땅에 있는 예언자에게 나타난 것이다.

바빌론은 유다인들이 보기에 종교적으로 부정한 땅이다. 성전에서 주님을 찬양하던 노래를 부를 수조차 없는 더러운 곳이다(우리 어찌 남의 나라 낯선 땅에서 야훼의 노래를 부르랴! <시편 137,4>). 그러한 곳에 하느님 영광의 모습이 나타난다는 것은, 특히 사제인 에제키엘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사건이다. 하느님의 영광은 성막이나 성전의 지성소에만 현존할 수 있었다. 그런데 불결한 땅에 사는 유배자에게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유다인들은 주님을 시온 산에 정주하시는 자기들의 ‘민족 신’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분은 어떠한 인간적 또는 장소적 제약에 얽매이지 않으시는 절대적으로 자유로우신 분, 우주의 지배자이다. 이로써 하나의 역설적인 사실이 드러난다. 하느님이 선택하신 민족은 멸망의 길에 들어섰다. 그러나 선택된 백성의 종말이 곧 주님이 펼치시는 지배의 끝을 뜻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당신 영광의 모습을 바빌론 땅에 나타내심으로써, 이제 당시 세계의 중심인 바빌론을 통하여, 또 그 통치자 느부갓네살을 통하여 세계의 역사를 이끄시겠다는, 그리고 그 너머로 완전히 새로운 가능성을 펼치시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신다. 그런데 에제키엘은 다른 예언자들과는 달리 주님 영광의 모습만을 본다. 그것을 본 것만으로도 그는 땅에 쓰러지고 만다. 만물의 지배자 하느님은 어떤 인간도 근접할 수 없는 지고하신 분이다.

에제키엘이 환시를 본 것은 조용히 개인적인 지복을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환시는 하나의 도구일 따름이다. 영광스러우신 하느님을 위하여 봉사하게 만드는 도구다. 사실 에제키엘은 사제이면서도 사제 직분을 수행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제 그보다 책임이 휠씬 더 큰 하느님의 사자로서 부름을 받는다. 하느님은 “너 사람아!”하고 부르신다(2,1). 이 부름에는 흙으로 빚어진 인간의 나약성과 무상성이 함께 울린다. 에제키엘은 인간의 본보기로서 하느님과 대화하고, 인간의 모든 실존적 제한성을 지닌 체 그분에게 예언자로 부름을 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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