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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향유 (요한복음 12장 1- 8)

218 김종업 [rlawhddjq] 2020-04-06

2020. 04. 06. 성주간월요일

공동번역성서사용

  마리아의 향유

 

(요한복음 12장 1- 8)

예수께서는 과월절을 엿새 앞두고 베다니아로 가셨는데 그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신 라자로가 사는 고장이었다. 2 거기에서는 예수를 영접하는 만찬회가 베풀어졌는데 라자로는 손님들 사이에 끼어 예수와 함께 식탁에 앉아 있었고 마르타는 시중을 들고 있었다. 3 그 때 마리아가 매우 값진 순 나르드 향유 한 근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그러자 온 집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 찼다. 4 예수의 제자로서 장차 예수를 배반할 가리옷 사람 유다가 5 '이 향유를 팔았더면 삼백 데나리온은 받았을 것이고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었을 터인데 이게 무슨 짓인가하고 투덜거렸다. 6 유다는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가 도둑이어서 이런 말을 한 것이다그는 돈주머니를 맡아 가지고 거기 들어 있는 것을 늘 꺼내 쓰곤 하였다. 7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내 장례일을 위하여 하는 일이니 이 여자 일에 참견하지 말라. 8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지만 나는 언제나 함께 있지는 않을 것이다.' 아멘

 

과월절 어린 양으로 죽으셔서 영적 이스라엘이라는 교회라는 하느님에 장자들을 살려내시는 예수님에 구원사역이 오늘본문에서부터 이제 본격적으로 실제화되어서 나타나는 거에요 오늘 본문은 마리아의 향유 도유사건이에요

많은 이들이 이 마리아의 도유사건을 마리아의 헌신으로만 그렇게 보고 있는거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오늘 본문은 3백 데나리온이나 되는 비싼 향유 옥합을 깬 마리아를 본받아서 우리도 우리에 가장 귀한 것을 주께 혹은 교회에 드리자 아까워하지 말고 드리자 라는 그런 선동에 소재로 자주 쓰이기도 합니다그러나 오늘 본문은 그보다 더 웅숭깊은 복음에 메세지를 담고 있는 아주 은혜로운 에피소드에요

1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과월절 엿세전에 다시 베다니아로 가셨다라고 그래요 그런데 그 베다니아를 어떻게 소개하는가 하면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자로가 있는 곳 이라고 소개를 합니다그리고 7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것은 내 장례일을 위하여 하는 일이니 이 여자 일에 참견하지 말라요한은 지금 죽은 나자로가 살아나게 되어서 잔치가 벌어지게 된 것은 예수님에 죽음에 의한 것임을 넌지시 힌트를 하고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향유 옥합을 깨어서 예수님께 부은 이 마리아에 향유 도유 사건은 마리아에 헌신에 초점이 있는게 아니라 예수님에 죽으심에 초점이 있는 거에요 이 마리아에 향유 도유사건은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이 되어 있어요

마태복음 26장 마르코복음 14장 루가복음 7장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그런데 자세히 읽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4복음서에 각기 기록된 그 마리아에 이야기에 내용들이 조금씩 달라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많이 달라요 마태복음과 마르코복음에는 예수님께서 들어가신 집이 베다니아 문둥이 시몬에 집이라는 것이 명기되어 있죠 거기서 문둥이 시몬에 집이라는 것은 예전에 문둥이였다가 예수님에게 고침받은 시몬에 집 이런 뜻이에요 그 사람이 아직도 문둥이라면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세리였던 마태가 나중에 예수님에 제자가 된 후에도 세리 마태 이렇게 부르는 것처럼 문둥이 시몬 이렇게 부르는 거에요

그런데 우리가 오늘 읽은 그 요한복음 본문에는 그 잔치가 벌어지는 집이 누구에 집인지가 기록이 되어 있지 않아요 언뜻 보아서는 나자로가 예수님 옆에 앉아 있고 또 마르타가 여전히 분주히 참 부지런한 여자에요 여전히 분주히 집안일을 돕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나자로에 집이나 나사자로에 가까운 친척집처럼 보이기도 해요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바로 이 문둥이 시몬이 마르타에 남편일 것이다라고 이렇게 추측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거는 그렇게 중요한게 아니에요

 

그런데 루가복음에 나오는 어떤 여인에 향유도유사건은 장소도 베다니아가 아니구요 그를 초청한 이도 어떤 예의없는 바리세인이에요 그는 예수님이 들어오셨는데 발씻을 물도 드리지 않았다’ 그러죠 그러니까 나중에 예수님이 너는 내가 들어왔을 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지만 저 여인은 저렇게 귀한 향유를 나에게 부었다라고 말씀하시잖아요 여인이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는 것을 예수님이 허락하시자 그 바리세인이 뭐라 그러냐 하면 이가 만일 예언자였더라면 저 여자가 얼마나 죄인인지 알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저 여자가 하는 행동을 허락하지 않았을 텐데 하고 믿음 없는 이야기를 합니다그리고 루가 복음에서는 그 여자가 죄인으로 등장을 하죠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나중에 여자여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말이에요 그러니까 어디로 보나 루가복음에 그 여자는 나자로에 동생 마리아는 아니에요 그리고 그 루가복음에 향유 도유 사건은 예수님 공생애 기간 중간에 일어났던 사건인데 나머지 세복음서에 마리아에 향유 塗油事件은 예수님에 공생애 마지막 일주일 기간동안에 일어났던 사건이죠

그러니까 향유 도유사건은 예수님에 공생애 기간동안에 적어도 두번 이상 일어났던 이야기인 거고 마태복음 마르코복음 요한복음에 기록된 마리아의 향유 도유사건과 루가복음에 그 죄인이였던 어떤 여자에 향유 도유사건은 완전히 다른 사건인 거에요 塗油가 무슨 말인가 하면 바를 자에요 그래서 기름 자해서 도유라고 하는 거에요 길게 풀어쓸려니까 너무 길어서 그냥 향유 도유사건이라고 그러는 거에요 그런데 마태복음 마르코복음 요한복음에 그 마리아에 향유 도유사건도 그 내용이 조금씩 달라요

마태복음과 마르코복음에는 이 마리아에 향유 도유사건이 과월절 이틀 전으로 기록되어 있어요 그리고 요한복음은 보다시피 과월절 엿새 전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어떤게 맞는 거에요

(마태복음 26장 2. 6) 2'너희가 알다시피 이제 이틀만 있으면 과월절이 되는데 그 때에는 사람의 아들이 잡혀 가 십자가형을 받게 될 것이다하고 말씀하셨다. 6절 예수께서는 베다니아에 있는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셨는데 그렇죠

(마르코복음 14장 1과월절 이틀 전 곧 무교절 이틀 전이었다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어떻게 하면 몰래 예수를 잡아 죽일까 하고 궁리하였다.

예수께서 베다니이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여기서는 이 사건의 배경이 이렇게 과월절 이틀 전이에요

반면에 오늘 본문이 이러합니다 (12장 1예수께서는 과월절을 엿새 앞두고 베다니아로 가셨는데 그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신 라자로가 사는 고장이었다이런걸 가지고 봐라 성경 자체도 이렇게 엉켜 있지 않냐 그러니까 성경에 역사성 이런건 다 갖다 잊어버리고 그 안에 들어있는 교훈이나 잘 채득을 해서 예수를 쫓는 훌륭한 사람이 되자라고 그렇게 공격을 해요

예수님께서 베다니아 문둥이 시몬에 집에 가신 것은 과월절 엿세 전이 맞아요 그런데 왜 마태오와 마르코는 과월절 틀전이라는 것을 그 사건 바로 앞에 궂이 삽입을 해 넣었는가 마태오와 마르코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요 과월절 이틀전에 있었던 바로 그 공회에 결정 예수를 죽여 버리자라는 그 공회의 결정에 있었어요 그러니까 마태오와 마르코는 과월절 이틀전에 있었던 그 사건을 먼저 기록을 하고 그걸 강조하는 거니까 먼저 기록을 하고 베다니아에서에 마리아의 향유 도유사건을 회고식으로 간략하게 그 이야기 아래에 붙여서 기록하고 있는 거에요 그런데 성경을 이렇게 보면은 그게 분간이 잘 안가요 그냥 같은 이야기인거 같이 보인단 말이죠

왜냐하면 그러한 음모를 배태케 한 사건이 바로 베다니아에서 죽은 나자로를 살려내신 사건이였고 나자로를 살리자 마자 저놈 죽이자라 그랬단 말이에요

사람들이 예수를 다 쫓아갈지도 모르니까 죽이자 그렇죠 그러고 바로 그 베다니아에 문둥이 시몬에 집에서 유다가 예수님에 책망을 듣자마자 나가서 팔아버렸단 말이죠 그렇게 때문에 과월절 이틀 전에 그 예수님을 죽이려는 유대 지도자들에 그 음모에 매개체인 마리아 향유 도유사건을 거기다가 붙여서 기록을 한 거에요

 

잘 보면 이 마리아에 향유도유사건 앞이나 뒤에 마태오와 마르코가 아주 잘 쓰는 단어 그 후에  이라든지 이미디어틀리라는 그 단어가 나오지 않는 것을 알 수가 있어요 그 말은 마태오와 마르코가 그 사건들을그러니까 마리아에 향유 도유사건과 그 공회에 음모 그 사건마리아의 향유 도유 사건은 과월절 엿세전에 있었던 거고 공회의 음모는 이틀전에 있었던 거잖아요 그것을 시간적인 순서로 기록을 하고 있지 않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거에요

그러니까 만약에 그 이야기들이 시간적 순서로 연결이 된 것이라면 마태오와 마르코는 그들에 글쓰기 습관상 반드시 이나 이미디어틀리를 거기다가 넣었을 거란 말입니다 그런데 그 단어를 일체 쓰지 않아요 그들이 즐겨 쓰는 단어를 거기에 일체 쓰지 않고 그냥 과월절 이틀전에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일려고 음모를 꾸몄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그 아래에다가 회고식으로 향유 도유사건을 이렇게 붙이고 있다 말입니다

정리를 하면 요한복음에 요한은 베다니아에서의 그 잔치를 시간적인 순서대로 과월절 엿세 전이라고 시간적인 순서대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고마태오와 마르코는 그 베다니아에서에 예수님에 그 책망이 유다에 마음에 사무쳐서 그로 하여금 대제사장들에게 즉시 가서 거래를 하게 만들었음을 밝히고자 그 잔치에서 야기된 그 사건을 중심으로 기록을 하고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과월절 이틀전에 그 잔치에서 유다가 예수님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고 나가가지고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았단 말이에요 그 결과 과월절 이틀전에 공회 회원들이 모여서 그래 죽이자 라는 그런 결론이 도달이 됐잖아요 그러니까 고 이야기를 먼저 강조를 하고 요 이야기가 어디서부터 이렇게 나오게 된것인지를 알려 주기 위해서 시간적 순서를 배제하고 그냥 거기다가 회고식으로 이렇게 붙여 놓은 거에요 그러니까 전혀 자유주의 신학자들이나 이런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성경이 자체내에서 모순을 갖고 있거나 자체내에서 엉켜 있는게 아니란 말이에요 오히려 잘 보면은 성경은 기가 막히게 그렇게 상호 보완을 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어요

 

그러면 이제 본문 주해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1절과 2절보세요

예수께서는 과월절을 엿새 앞두고 베다니아로 가셨는데 그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신 라자로가 사는 고장이었다. 2 거기에서는 예수를 영접하는 만찬회가 베풀어졌는데 라자로는 손님들 사이에 끼어 예수와 함께 식탁에 앉아 있었고 마르타는 시중을 들고 있었다. (요한12,1-2)

1절에는 나자로 죽음 살아남 이라는 단어가 나오고 2절에는 예수와 함께 앉다라는 어구가 나와요 죽음과 살아남 함께 앉음 하면 생각나는 구절이 있죠

에베소서 2장 5절 볼까요 잘못을 저지르고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려 주셨습니다.

똑같은 단어들이거든요 죄와 허물로 죽었던 나자로가 하느님에 은혜로 살아나서 예수님과 함께 앉아 있는 그 그림은 바로 이 에베소서에서 기술되고 있는 복음에 이야기인 거에요 그런데 구원이 무엇을 근거로 발생하게 되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 주된 메세지인 거에요

본문 7절로 한번 가볼께요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내 장례일을 위하여 하는 일이니 이 여자 일에 참견하지 말라.

(마태복음보세요 26장 12-13절 12 이 여자가 내 몸에 향유를 부은 것은 나의 장례를 위하여 한 것이다. 13 나는 분명히 말한다온 세상 어디든지 이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알려져서 사람들이 기억하게 될 것이다하고 말씀하셨다.

(마르코복음 한번 볼까요 14장 8-9이 여자는 내 장례를 위하여 미리 내 몸에 향유를 부은 것이니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것이다. 9 나는 분명히 말한다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알려져서 사람들이 기억하게 될 것이다하고 말씀하셨다.

보시다시피 성경은 죽은 나자로가 살아난 사건은 예수님에 죽음 예수님에 장사지냄에 의해서 일어난 것임을 보여주기 위해서 마리아의 향유 두도유사건을 기록하고 있다라는 것을 알수 있어요 이 여자가 나에게 기름을 붓는건 나에 죽음을 준비하는 거야라고 계속 반복해서 이야기하시잖아요

그런데 마르코복음과 마태오복음에는 마치 뱀 다리(蛇足)처럼 붙어 있는게 있어요 그 마리아에 향유 도유사건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어디에서든지 함께 전하여 져서 저를 기념할 것이다 그래요

여러분은 분명 복음을 전해 듣고 예수를 믿게 되신 분들이 맞습니까 아니 어느날 그냥 뽕하고 예수를 믿게 된 거에요 복음을 전해 들으셨죠 그때 마리아에 얘기 들으셨어요 저는 못들었는데어떤 사람이 기특하게도 그 마리아의 이야기까지 함께 해줬죠 허허 그러면 여러분은 지금 누구에게 복음을 전할때 이 마리아의 이야기를 함께 전하고 계세요 그러면 지금 이게 무슨 말이에요 마태복음 마르코복음에 사족처럼 붙어 있는 이 이야기,

마리아에 이 향유 도유사건이 예수 그리스도에 죽으심과 살아남 그리고 하느님 우편에 앉으심 등에 그 복음에 이야기를 그대로 담고 있는 사건이라는 이야기에요 그러니까 쉬운 말로 이 마리아의 향유 도유사건 이콜 복음 이런 뜻이에요 그래서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는 바로 이 이야기가 복음에 함의되어 같이 전해진다라는 그런 뜻이란 말입니다

 

먼저 히브리 사람들이 어떤 때에 사람에 기름을 붓는지 한번 보자구요

히브리 사람들은 집을 방문한 손님에게 발을 딱아주고 그러니까 從 중에서도 가장 낮은 지위에 있는 종이 발을 딱아요 손님에 발을 딱고 냄새가 나기 때문에 향유를 조금 발라줘요 그때 바르는 향유는 올리브유 제일 싼 올리브유 정도라 그래요 그래서① 손님이 올때 그렇게 기름을 붓습니다루가복음 7장 44절에 보면 나오죠 또 두 번째로 왕이 즉위를 할 때에 기름을 부어요 사무엘상 10장에 나와요 열왕기하 9장에도 나오고 또 세 번째로 거룩하게 하는 고대적 예식에 측면에서 기름을 부여요 이렇게 성별할 때구별할 때 예식에 측면에서 기름을 붓습니다 창세기 28장에 나오죠 네번째로 제사장에 의식적 성별을 위해서 기름을 부어요 제사장 그리고 ⑤ 다섯번째로 예언자를 세울때 기름을 붓고 다 아시는 거죠 여섯번째로 장래식때 시신위에 부어서 발라요 냄새나지 말라고 향유를 발라요 지금 마리아에 의해 주님에게 부어진 기름은 위에 모든 것을 아우르는 그런 기름이에요 주님은 스스로 그 기름이 자신에 장사를 준비하는 기름이라고 말씀하셨죠 그도 그럴 것이 그때에 상황은 유대지도자들과 바리세인들이 당신을 죽이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던 그런 죽음에 음침한 골짜기 같은 시간이였어요 그래서 이 기름이 바로 내 장례를 장사를 준비하는 기름이다라고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그때 그 시체에 바르는 향유가 그에게 부어진 거에요 그러나 그 기름은 장사를 준비하는 기름만이 아니였어요 그것은 구약성경에 잘 나타나 있어요 지금 이 문둥이 시몬에 집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마치 곁에서 이렇게 지켜보기나 한 것처럼 누군가가 이 사건이 일어나기 천년전에 시를 쓰는데 아주 기가막히게 그 상황을 묘사를 해요 다름아닌 다윗이에요 잘 아시는 시편 23편 보세요

야훼는 나의 목자아쉬울 것 없어라푸른 풀밭에 누워 놀게 하시고 물가로 이끌어 쉬게 하시니 지쳤던 이 몸에 생기가 넘친다그 이름 목자이시니 인도하시는 길언제나 곧은길이요, 4 나 비록 음산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내 곁에 주님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어라막대기와 지팡이로 인도하시니 걱정할 것 없어라. 5 원수들 보라는 듯 상을 차려 주시고기름부어 내 머리에 발라 주시니내 잔이 넘치옵니다. 6 한평생 은총과 복에 겨워 사는 이 몸영원히 주님 집에 거하리이다.

이것은 다윗의 시에요 그러나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시기도 한 것입니다 지금 주님의 상황을 잘 그려보세요 주님은 지금 당신을 죽이려고 하는 유대인들을 피해서 죽음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고 계세요 그 앞에 계속 예수님이 유대인들에 의해서 살해 협박을 받죠 도망 다니신다 말이에요 죽음에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고 계세요

그러나 주님은 아버지께서 시키신 일이 있기 때문에 그 전에 죽어도 안되고 그 후에 죽으셔도 안되요 아버지가 정하신 때에 정확하게 십자가를 지셔야 되요 하느님은 그대까지 하느님에 지팡이와 막대기로 주님을 보호하시는 거에요 그 상황에 원수에 목전에서 잔치가 벌어지는 거에요 지금

 

그러한 죽음에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고 있는 예수님에게 잔치가 벌어지고 있단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상을 베푸셨다 그러죠 시편 23편에거기서 상이라는 것은 賞狀이 아니라 밥상이에요 잔치상에 식탁을 이야기하는 거에요 슐한이라는 단어죠 그 슐한 이라는 단어는 잔치상에 식탁 그런까 잔치를 열어주시는 거에요 그리고 그 머리에 기름이 부어지고 있어요 주께서 내게 기름을 부었다 그러잖아요 상을 배푸시고 어떠세요 시편 23편과 오늘 본문에 이야기가 정확하게 겹쳐지죠

그러니까 베다니 문둥이 시몬에 집에서 열리는 그 잔치는 원수의 목전에서 하나님이 베푸시는 승리의 잔치인 것이에요 왜냐하면 그 잔치가 나자로가 죽었다가 살아난 것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잔치니까 승리에 잔치인 것이며 예수님께 부어지는 그 기름은 아이러니칼 하게도 그 승리를 위한 그 장사 지냄에 기름이였던 거에요 그런데 성경은 그 기름을 가리켜셔요 기쁨의 기름즐거움에 기름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이사야서 61장 1-4주 야훼의 영을 내려 주시며 야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고 나를 보내시며 이르셨다. '억눌린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라찢긴 마음을 싸매 주고포로들에게 해방을 알려라옥에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선포하여라. 2 야훼께서 우리를 반겨 주실 해우리 하느님께서 원수갚으실 날이 이르렀다고 선포하여라슬퍼하는 모든 사람을 위로하여라. 3 시온에서 슬퍼하는 사람에게 희망을 주어라재를 뒤집어썼던 사람에게 빛나는 관을 씌워 주어라상복을 입었던 몸에 기쁨의 기름을 발라 주어라침울한 마음에서 찬양이 울려 퍼지게 하여라그들을 이름하여 '정의의 느티나무 숲이라 하여라야훼가 자기의 자랑거리로 손수 심은 것, 4 그들은 옛 성터를 재건하고 오래 전에 허물어진 폐허를 다시 세우리라무너진 도시들을 새로 세우고 그 옛날 선조 때 헐린 집들을 신축하리라.

 

지금 예수님께 부어진 그 기름을 이사야가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아게 자유를 주며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게 하는 길음이라고 그래요 그러면서 그 기름을 샤숀세멘 기쁨의 기름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시편 45편 7-8당신은 정의를 사랑하고악을 미워하시기에 하느님당신의 하느님께서 즐거움의 기름을 다른 사람 제쳐 놓고 당신에게 부으셨습니다몰약과 침향과 육계 향기로 당신 옷들이 향내를 피우고 상아궁에서 들리는 거문고 소리도 흥겹습니다.

몰약과 침향과 이건 뭐할때 쓰는 거에요 이건 장래지낼 때 쓰는 거에요 여기서도 몰약과 침향등에 그 장사용품과 함께 왕에게 부어지는 그 기름을 가리켜 즐거움에 기름이라 그래요 장사지내는 자에게 부어지는 기름이 어떻게 즐거움의 기름이 되고 기쁨의 기름이 될까요 한군데 더 볼까요

(시편 133편 1-3) 1 이다지도 좋을까이렇게 즐거울까형제들 모두 모여 한데 사는 일! 2 아론의 머리에서 수염 타고 흐르는옷깃으로 흘러 내리는 향긋한 기름 같구나. 3 헤르몬산에서 시온산 줄기를 타고 굽이굽이 내리는 이슬 같구나그 곳은 야훼께서 복을 내린 곳그 복은 영생이로다.

이 곳에서는 영생을 얻은 하늘에 형제자매들이 동거하고 성별된 이유를 아론과 같은 어떤 제사장이 보배로운 기름을 머리에 부음으로 일어나게 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죠 그러니까 대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머리에 기름이 부어지게 됨으로 말미암아 그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자체가 그 머리와 하나가 되고 성별이 되어서 동거를 하게 되는 일이 일어나게 되었다라는 말이에요

따라서 지금 잔치집에서 마리아에 의해 예수님께 부어지는 향유는 예수님에 장사를 준비하는 기름이기도 하지만 예수님이 왕으로 제사장으로 구별된 분이심을 증명하는 즐거움에 기름이기도 한 거에요 물론 그 즐거움은 하느님에 즐거움을 이야기하는 거에요 예수님은 당신에 죽으심으로 하느님에 언약을 완성하시고 그분에 대제사장이심과 왕이심을 증명해 내시는 거에요 예수님에 죽음이 그에 왕되심과 제사장 되심을 증명하는 거고 그에 왕의 직분과 제사장의 직분을 충실히 수행하는 거란 말입니다 이것이 십자가란 말이에요

그래서 그 장사지내는 기름을 기쁨에 기름 즐거움에 기름이라고도 성경이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그게 바로 복음에 비밀이며 복음에 페러독스인 거에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그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마리아가 예수님과 똑같은 길을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어요 마리아는 300데나리온이나 되는 향유를 예수님께 부었어요 300 데나리온은 한 데나리온이 노동자의 하루치 월급이니까 1년치 노동자의 1년치 임금에 해당하는 돈이에요 요즘 돈으로 환산을 하면 2-3만불 정도 되는 거에요 향유 그렇게 비싼 향유에요 한병에 2-3만불 되는거 그걸 갖다가 목을 친거죠 깼다 그러니까 아주 박살을 낸거라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게 아니라 주둥이를 짜른 거에요 밀봉이 되어 있거든요 향유는 향이 나가면 안되니까 그래서 그걸 붓기 위해서는 주둥이를 깨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거를 갖다 부어 버리는 거에요 그 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몽땅 부었어요 그렇게해서 마리아는 사람들에게 비난을 당하고 조롱을 당하게 되죠 너 그 비싼걸 왜 갖다 다 부었니 물론 유다가 주동이 되서 조롱을 하고 비난을 하긴 하지만 모든 이들이 거기에 동조한다구요

그 비싼 거를 팔아가지고 가난한 사람들 도와주면 될걸 너 왜 거기다 갖다 부었어라고 그렇게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는 모습으로 등장을 하는 거에요 예수님에 그 죽음에 음침한 골짜기에 마리아가 동참을 하게 되는 거에요 사람들로 부터 비난을 받고 조롱을 받고 버려짐으로 말미암아그런데 모두가 그녀를 비난하고 있는데 그 원수들에 목전에서 예수님이 하느님이 그에 편을 들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지 말어라라고 이야기하는 거에요

그녀가 한 일을 잘한거다라고 이야기해주신 다니깐요 예수님께서 죽음의 음침한 골자기를 지난 그녀에게 주님에 원수들에 목전에서 그녀를 위한 잔치를 베푸시고 그녀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시는 형국이죠 시편 23편이 마리아에 삶에서 그대로 또 나타나고 있는 거에요 마리아에 머리에는 어떻게 기름이 부어졌죠 그녀가 머리를 풀어서 그 기름을 예수님에 발에다가 발르므로 말미암아 그녀에 머리에 기름이 발라진 거에요 그러니까 이런 거에요 마리아는 예수님께 감사에 표시와 존경에 표시로 그리고 절대 순종에 표시로 그 발 앞에 꿇어앉아서 자기에 머리를 풀고 그 머리를 이용해서 향유를 발랐어요 마리아는 그냥 감사해서 기뻐서 그리고 그분께 나는 이런 분이라면 내 삶을 전부 맡기고 이분께 나를 복종시키고 이분에 삶에 내 삶을 의지할 거야 라는 의미에서 기름을 붓고 머리를 풀어 헤치고 기름을 발랐는데 그게 결국 자신에 머리에 즐거움에 기름이 발라지는 격이 된 거에요

 

구약에서 머리를 푼다는건 나는 부정한 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에요 여자가 머리를 푼다는 것은 민수기 5장에서 봤잖아요 그리고 누군가의 발 앞에 꿇어 앉는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절대 복종을 상징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해서 부정한 자들에 모든 부정함을 품어 앉고 부정한 자에 모습으로 십자가를 진 예수님에 모습으로 마리아가 등장하는 거에요 머리를 풀어 해치고 예수님에 발아래 그 하느님에 발아래 꿇어 앉았다라는 것은 그에게 영광과 승리에 기름이 부어지고 성별이 되는 거에요

고린도전서 11장 15절에 보면 여자의 긴 머리는 오히려 자랑이 되지 않습니까 여자의 긴 머리카락은 그 머리를 가리워 주는 구실을 하는 것입니다여자에게 있어서 머리는 가장 영광스러운 거에요 자기에 영광을 내가 순종하고자 하는 그 하느님에 가장 낮은 발 앞에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걸 자기 否認이라고 하는 거에요

자기에 가장 소중한 것들을 전부 비우시고 자기에 영광마져도 비우신 채로 가장 비천하고 비참한 모습으로 죽어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그녀가 그대로 담고 있는 거에요 그러나 주님께서 그러한 마리아의 편을 들어주심으로 말미암아 원수에 목전에서 잔치가 벌어진 격이 된 거에요

원수들은 세상 권세잡은 자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였고 자기들이 이겼다라고 생각했는데 하느님이 예수에 팔을 들어줘 버렸잖아요 그게 원수에 목전에서 잔치를 베푼 거란 말입니다 그에게 승리에 기름을 부은 거란 말이에요 바로 그 모습이 마리아에 모습에 그대로 나타나 있잖아요 그래서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는 바로 이 여자에 이야기가 함께 전해질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바로 그 여자의 이야기가 담고 있는게 복음이니

그 마리아의 헌신은 예수님에 헌신이였던 거에요 뿐만 아니라 그 삶은 시편 23편의 기자인 다윗의 삶이기도 했고 아울러 그 삶은 우리 성도에 삶이기도 한 거에요 그래서 바로 우리에 성도에 삶이 복음이여야 된다 라고도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입으로 삶으로 복음을 전하는 거다 라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우리는 여기서 아주 중요한 메세지를 발견할 수 있어요 그건 다름아닌 성도에 헌신이라는 것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어떤 것을 하나님 쓰시라고 하나님께 드리는게 아니라 내 드리는게 아니라 예수님에 죽음에 동참하는 거라는 사실이에요 여러분 이거는 아주 중요한 거에요

마리아가 300 데나리온이나 되는 향유를 예수님께 부은 것은 헌신이요 헌금이요 다른 말로 하면 봉사라고도 할 수 있는 거에요 그러나 그에 헌신이 주님께 칭찬을 받은 것은 그가 부은 향유가 값비싼 것이여서도 아니고 하나도 남김없이 몽땅 부어서도 아니에요 마리아가 예수에 삶과 죽음에 동참하는 모습으로 진정한 헌신이란 이런 것이다 하고 헌신에 참 모습을 보여 주었기 때문에 그러는 거에요

자신에 영광과 소유를 모두 부인하고 다 내려 놓고 그것을 이용하여 오로지 주님에 영광만을 드러내고 있단 말입니다 발을 딱으므로 말미암아마찬가지로 우리가 헌실을 하고 헌금을 하고 봉사를 하고 선교를 하는 것은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예수에 죽음을 이해하고 있고 나도 그 죽음에 동참하기를 원한다는 우리에 신앙고백적 차원에서 드려져야 되는 거에요

참다운 헌신은 내가 주님께 무언가 도움이 될 것을 보태드립니다 라는 차원에 것이 아니라 주님에 은혜로 내가 하나님께 받쳐지는 내 자신이 하나님께 바쳐지는 아주 엄청나고 영광스러운 사건인 거에요 주님이 하느님 아버지께 순종하셔서 하느님이 기뻐 받으시는 순종에 재물로 바쳐지신 그 하늘에 제사에 우리가 깍두기로 참여하게 되는게 바로 헌신이며 헌금이며 봉사며 구제이며 예배이며 선교인 거에요

 

신약성경에 보면 성전에 헌금궤에 두렙돈을 넣은 과부에 이야기가 나와요 그 두 렙돈은 아주 보잘것 없는 금액이였어요 그러니까 한 데나리온에 128분에 그러니까 뭐 1000원도 안되는거 같해요 보니까 한 데나리온에 노동자 하루 임금에 128분에 1이니까 그런데 그거는 그 과부에 전재산이였어요 그 과부가 그 전 재산을 헌금함에 넣는데 예수님이 그 과부를 칭찬하신단 말이에요

마르코복음 12장 41절 보세요 41 예수께서 헌금궤 맞은편에 앉아서 사람들이 헌금궤에 돈을 넣는 것을 바라보고 계셨다그 때 부자들은 여럿이 와서 많은 돈을 넣었는데 42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은 와서 겨우 렙톤 두 개를 넣었다이것은 동전 한 닢 값어치의 돈이었다.

이거는 로마 사람들에 마르코가 이 로마에 있는 교회에게 마르코복음을 써서 보낸거라서 로마에 화폐 단위를 굳이 집어 넣은 거에요

43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불러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저 가난한 과부가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은 돈을 헌금궤에 넣었다. 44 다른 사람들은 다 넉넉한 데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구차하면서도 있는 것을 다 털어 넣었으니 생활비를 모두 바친 셈이다.'

이거를 어떻게 이해하시겠어요 예수님이 지금 니 재산이 얼마든 간에 전부 바치는게 잘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건가요 그렇게 해서 진짜 전부 바친 사람들 있었죠 신앙촌 ....그 사람들은 거기 들어가 갖고 화폐 단위를 달리 사용하여 생활을 했다 그래요 그러니까 시중에서 배추 한포기가 천원이잖아요 그런데 거기에서는 10원에 주는 거에요 그러니까 거기서는 한 500원만 있으면 1년을 충분히 사는 거에요 그런데 그들이 그 돈을 갖고 세상이 나오면 하루도 못하는 거에요 그렇게 해서 못나가게 한 것입니다 머리좋죠 교주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에요 이 말은 그렇게 전 재산을 다 갖다 바쳐야 하느님이 칭찬하신다 그런 말이 아니에요

그렇다면 주님이 그걸 알고 계셨다면 그 여자가 전 재산을 헌금함에 다 넣을려고 할때 손을 부여잡고 얘야 니 마음을 알겠으니 도로 가져가서 식구들 빵이나 사갖고 들어가라 그게 예수님 답지 않아요 그거 넣는걸 빤히 다 보시고 그 여자가 그걸 다 넣자 칭찬하셨단 말이에요 그 여자는 어떻게 되던지 말던지이제 그 여자는 당장 집에 가면 굶어 죽어야 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매몰차게도 아주 잘했다 라고 칭찬을 하셨어요

하느님이 정말 우리에 돈이 필요해서 우리에게 헌금을 요구하시는 걸까요 그래서 당신 백성들에 처지와 상황은 아랑곳 하지 않으시고 그렇게 과분한 헌금까지 칭찬하시는 것입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짜야돼 그러시는 거에요 아닙니다

(시편 50편 7-23절 보세요)

7 '들어라내 백성아내가 말하리라이스라엘아내가 너의 죄상을 밝히리라나 하느님너희의 하느님은 너희가 바친 제물을 두고 탓하지 않는다너희는 거르지 않고 내 앞에 번제를 드렸다. 9 나는 너희 집 소를 앗아 가지 않으며너희 우리에서 염소를 앗아 가지 아니하리라. 10 숲 속의 뭇 짐승이 다 내 것이요 산 위의 많은 가축들이 다 내 것이 아니냐 11 공중의 저 새들도 다 내 마음에 새겨져 있고들에서 우굴거리는 생명들도 다 내 손안에 있다. 12 이 땅이 내 것이요 땅에 가득한 것도 내 것인데내가 배고픈들 너희에게 달라고 하겠느냐 13 내가 쇠고기를 먹겠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14 사람이 하느님에게 바칠 제물은 감사하는 마음이요사람이 지킬 것은 지존하신 분에게 서원한 것을 갚는 일이다. 15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나를 불러라구해 주리라너는 나에게 영광을 돌려라'. 16 하느님께서 악인들에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어찌 감히 나의 법도를 말하고 내 계약을 입에 담느냐 17 나의 훈계를 지겹게 여기며 내 말을 귓전으로 흘리는 자들아, 18 도둑을 만나면 한통속이 되고 음탕한 자들과 함께 어울리는 자들아, 19 입으로는 죄악의 말을 쏟아 놓으며 혀로는 모함하는 소리만 하는 자들아, 20 형제를 그 면전에서 헐뜯고 친동생의 허물을 들추어내는 자들아, 21 너희가 그런 짓을 하는데도 내가 말이 없을 줄 알았더냐 나를 너희와 같은 줄로 알았더냐 내가 밝히는 너희의 죄상을 보아라. 22 하느님을 모른 체하는 자들아알아 두어라내가 너희를 찢겠으나 구해 줄 자 없으리라. 23 감사하는 마음을 제물로 바치는 자나를 높이 받드는 자이니올바르게 사는 자에게 내가 하느님의 구원을 보여 주리라'.

나를 불러라지 나에게 이것저것 바쳐라가 아닌 것입니다 나는 니 숫소 필요없어 무슨 뭐 니가 송아지 태우는거 구수해가지고 맨날 그거 태우라고 그러는줄 아니 내가 무슨 숫소에 고기를 먹니 염소에 피를 먹니 내가 그거 왜 달라고 하겠어 라고 이야기하시잖아요 그러면 왜 하느님은 우리에게 제물을 바치시라고 한 것일까요 왜 헌금을 하라고 그러죠 어차피 유용하게 쓰지도 않을 거면서,

(신명기 12장 5-6절 보세요) 5 너희는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당신의 이름을 붙이시고 당신께서 계시는 곳으로 삼으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가운데서 고르신 그 곳을 찾아 그리로 가야 한다. 6 너희의 번제물과 친교제물과 십일조와 흔들어 바치는 예물과 서원 제물과 자원제물과 소와 양의 맏배를 그리로 가져다 바쳐야 한다.

여기 보면 십일조 헌금 꼭해라 그러죠 어디서는 내가 그거 정말 필요해서 하라는 건줄 알어 그래놓고 어디서는 또 꼭 해라 그래요 그러면 전재산을 바친 과부를 칭찬하신 예수님에 이야기가 무슨 메세지를 담고 있는 것인지 한번 보겠습니다.

성경에 보면 전 교인이 두렙돈을 바친 과부처럼 전 재산을 전부 교회 앞에다가 내어 놓고 필요한 만큼 나누어 쓴 그런 교회가 있었어요 어디죠 사도행전 4장에 초대교회 32-35절 보세요

32 그 많은 신도들이 다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 33 사도들은 놀라운 기적을 나타내며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신도들은 모두 하느님의 크신 축복을 받았다. 34 그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을 팔아서 그 돈을 35 사도들 앞에 가져다 놓고 저마다 쓸 만큼 나누어 받았기 때문이다.

 

마리아가 자기에 향유를 깨어서 예수님에 발을 닥은것처럼 모든 교인들이 사도들에 발아래에다가 자기에 가장 소중한 것들 자기에 영광들을 갖다가 내려 놨어요 그리고 그것을 필요에 따라 나누어 썼어요 그랬더니 가난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라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우리도 어디 아파트 큰거 하나 사갖고 전부 거기에 같이 모여서 살까요 그럼 재미있을거 같해요 부부싸움도 못하고 그렇게 살라는 건가요 그 이야기하는거 아니에요 여러분 성경이 굳이 이러한 초대교회에 모습을 기록해 놓은건,

후대 교회들이 이 세상에서 이러한 삶을 살아야 한다라는 것을 교훈하기 위함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단들에 속임에 속지 마세요

성령이 처음 교회에게 임하시고 교회라는 것이 오순절날 처음 생겼을때 이러한 일이 있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거에요 그것은 교회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하나에 도구로 쓰였던 거지 그러한 것이 이 땅에 지역교회에 바람직한 모습임을 보여주는게 아니에요 이 모습은 구약에 어떤 약속이 성취된 모습인 거에요

신명기 15장 4절 보세요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너희에게 유산으로 주시어 상속받게 하신 땅에 틀림없이 복을 내려 주실 것이다그러니 너희 가운데 가난한 사람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전부 지키고 행하면 그리고 야훼 말씀만 들으면 복을 받고 그 중에 가난한 자가 없을 것이다 라는 말을 해요 그러나 유사 이래로 가난한 사람이 없었던 적이 있었나요 그 어떤 때에도 가난한 자가 없었던 때는 없었어요 오늘 본문에도 나오죠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거라 그러죠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요한복음 12장 8절 보세요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지만 나는 언제나 함께 있지는 않을 것이다.'

 

왜 그럴까요 왜 가난한 자들은 항상 이 역사와 함께 존재해야 될까요 이 세상에 야훼의 말씀만 듣고 또 그 분이 명하는 것을 다 지켜 행할 수 있는 자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에 가난한 자는 없어질 수 없다라는 거에요 그래서 가난한 자는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라는 거에요 그러니까 사회주의는 에초에 방법이 틀린 거에요 계급을 타파하고 사회를 개혁하면 가난한 사람들이 없어질 것이다라고 착각들을 하는데 그들은 방법이 틀린 거에요 가난한 사람이 없어지도록 하려면 우리가 하느님에 말씀을 완벽하게 지켜 내야 되요 그래야 가난한 사람이 없어져요 사회를 개혁하고 계급을 타파해봐야 여전히 가난한 사람은 생겨요 아니 더 생기죠 북한 보세요 그 전에는 절대 이 세상에서 가난이 사라질 수가 없어요

그런데 어떻게 사도행전에는 가난한 자가 하나도 없는 그런 공동체가 생겨났죠 누군가가 야훼에 말씀만 듣고 그 말씀을 다 지켜 행했다라는 증거죠 누굽니까 예수 그리스도죠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에 율법 지킴과 그에 순종과 그에 십자가에 의해 정말 신명기 15장 4절에서 약속된 그 공동체가 이 땅에 생겨났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거에요

사실 그러한 공동체는 하느님 나라에 공동체지 이 땅에서는 존재할 수가 없는 거에요 그런데 우리 교회에게 하느님 나라가 어떤 것인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그 순종과 율법 지킴과 십자가가 어떤 걸 만들어 냈는지를 잠깐 보여주기 위해서 초대 교회때 잠시 그런 공동체가 등장하는 것 뿐이에요 그 이후에 없어졌어요 그리고 몇년이나 갔는지도 몰라요 이건요 잠시 있다 사라졌을 거에요 인간들은 육신을 입고 있기 때문에 절대 자기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 것을 오래 지속하여 행할 수 없어요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에 율법 지킴과 십자가에 공로가 하느님에 복을 받은 새로운 공동체인 교회를 탄생케 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사도행전에 모든 것을 다 내어 놓고 공유하는 가난한 자가 없는 공동체가 잠시 나타났다 사라진 거에요 그들은 자발적이며 감사함으로 그리고 기쁨으로 하느님 앞에 헌금을 드렸어요 심지어 초대교회중에 마게도니아 교회는 정말 극한에 가난 속에서도 제발 헌금을 좀 하게 해달라고 사도바오로에게 빌었어요 에걸을 했습니다 도대체 그 놈의 헌금이 뭐길래 나 헌금좀 하게 해달라고 그 가난한 마케도니아 교회 교인들이 우리도 동참하게 해달라고 사도 바오로에게 에걸복걸 했다니깐요 고린도후서 8장 1절 보세요

형제 여러분우리는 하느님께서 마케도니아 여러 교회에 얼마나 큰 은총을 내려 주셨는지를 여러분에게 알려 드립니다. 2 그들은 환난을 만나 큰 시련을 당하면서도 오히려 기쁨에 넘쳤고 극심한 가난에 쪼들리면서도 많은 희사를 했습니다. 3 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그들은 제 푼수대로만 희사한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희사까지도 했습니다. 4 그리고 부디 자기들에게도 성도들을 구제하는 일에 참여하는 특전을 달라고 자진해서 간청해 왔습니다. 5 우리가 기대도 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났습니다그들은 먼저 주님께 그들 자신을 바치고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우리에게도 헌신하였습니다.

여기 아주 중요한 단어가 나와요 헌금은 자신을 주께 드리는 것이다라는 것이 여기에 명확히 나오고 있죠

당시 구약에 능통했던 초대교회 사람들은요 성령이 임하시자 우리가 하느님께 무엇을 드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라는 것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어요그 전에는 몰랐어요 자기들이 종교행위하고 재물드리면 하느님이 기뻐하실 줄 알았는데 성령이 임하시고 구약이 깨달아지자 교회가 성경을 이해하기를 아 우리는 절대 하느님 앞에 제물이나 우리에 힘이나 우리에 업적이나 이런 걸 올려 드릴 수 없는 존재구나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구요

이사야서 1장 10-11절 보세요 10 소돔 고관들아야훼의 말씀을 들어 보아라고모라 백성들아우리 하느님의 법에 귀를 기울여 보아라. 11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무엇하러 이 많은 제물들을 나에게 바치느냐 나 이제 수양의 번제물에는 물렸고 살진 짐승의 기름기에는 지쳤다황소와 어린 양과 수염소의 피는 보기도 싫다.

아하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재물을 바치라고 하시고 제사를 지내라고 하셨는데.... 그게 어떤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하느님에게 기쁨이 되지 않는 것이구나를 알았단 말이에요 말라기 1장 6-10절 보세요

아들은 아비를 어렵게 알고 종은 주인을 어렵게 아는 법인데 나를 아비로 어렵게 아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나를 주인으로 어렵게 아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나 만군의 야훼가 너희 사제들에게 말 하였다너희 사제라는 것들은 내 이름을 함부로 부르고 있다.' 그랬더니너희는 뻔뻔스럽게도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하느님 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다니요당치도 않습니다.' 7 너희는 제단 위에 더러운 빵을 바치면서도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제단을 더럽히다니요당치도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야훼의 젯상쯤이야 아무러면 어떠냐고 하는구나. 8 눈이 먼 짐승을 제단에 바치면서도 잘못이 없다는 말이냐 절뚝거리거나 병든 짐승을 바치면서도 잘못이 없다는 말이냐 그런 것을 너희 고관에게 바쳐 보아라나 만군의 야훼가 말한다그러고도 융성한 대접을 받을 것 같으냐그 따위를 바치면서 긍휼을 빈다고 너희를 곱게 보아 주겠느냐 만군의 야훼가 말한다. 10 너희는 내 제단에 공연히 불을 피운다그러지 못하도록 아예 문을 닫아 걸었으면 좋겠구나너희가 하는 짓이 나는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다만군의 야훼가 말한다너희가 바치는 제물이 나는 조금도 달갑지 않다.

안받는다라는 거에요 너희들이 삶이 함의되지 않은 그런 재물 내가 안받는다라는 거에요 형식적으로 나한테 와가지고 뜰만 밟고 가지 말아라라고 이야기하는 거에요 토해 내 쳐버리겠다는 거에요 제사의 재물이라는 것은 나 자신을 상징하는 거에요 나의 죄가 제물에 전가 되어서 그 재물이 불에 타 하느님께 열납이 됨으로 해서 나에 죄가 용서를 받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사실은 그 제물은 나를 상징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내가 제물을 바치고 헌금을 한다라는 것은 하느님이 열납할 만한 나를 드리는 것을 상징하는 거에요 사실은요 그런데 하느님에 법을 지키지도 않고 하느님에 말씀에 관심도 없으면서 그져 형식적으로 드리는 제물은 하느님이 토하여 내치시겠다라는 거에요 그러니까 자격없는 제물은 하느님 앞에 열납이 되어질 수 없다라는 말인 거에요

 

물론 구약에 제물은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나를 대신한 점도 없고 흠도 없는 대속물을 상징하는 거죠 그래서 이렇게 제물과 죄인에 머리에 제사장이 안수를 하고 죄인에 죄가 제물에게 전가가 되었다라고 치고 이 제물을 태워 버린 거잖아요 그거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 죄를 대신하여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상징으로 모형으로 보여준거란 말이에요

그러나 하느님이 대신 받아주실 수 있는 제물은 적어도 하느님이 보시기에 정말 점도 없고 흠도 없는 나에게 상응하는 그런 제물이여야 되죠 나하고 송아지가 비교가 안되잖아요 그러니까 송아지가 내 죄를 대신할 수 없는 거에요 그게 히브리서에 논리 아닙니까

제사는 단지 예수 그리스도에 십자가와 그분에 사역을 우리에게 설명해 주기 위해 우리에게 잠시 주었던 거란 말이에요 그런데 이 땅에 태어나는 나와 상응하는 인간 중에도 하느님에 마음에 흡족할 만한 재물로서의 의인이 하나도 없죠 그렇다면 나를 대신할 제물은 누가 되어야 되요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란 말이에요 하느님이신 그 분그러니까 구약에 제사 제물중에 하느님이 진심으로 기뻐하시는 제물은 단 하나도 없었던 거에요 사실은요 단 하나도 없었던 거에요

 

그런데 하느님에 아들 예수께서 나를 품에 앉으시고 하느님이 원하는 계명을 전부 지켜내시고 신명기 15장에 그 언약을 지켜 내시고 나를 대신하여 아니 나와 함께 나를 품어 안으시고 당신에 몸을 제물로 하느님께 제사로 드리셨어요 하느님은 유일하게 그 제물만을 기뻐 받으신 거에요 하느님께서 요구하시는 제물에 자격을 유일하게 통과한 제물이 예수였기 때문에 그 제물만 유일하게 받으신 거에요 그리고 하느님은 그 예수 안에서 예수와 함께 드려진 제물들 교회 바로 우리를 제물로 받으신게 된 거에요 우리를 우리가 예수 안에서 하느님께 제물로 바쳐진 거에요

그 말은 우리가 예수 안에서 하느님께 열납되어지는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진짜 제물이 되었다라는 의미인 거에요 그렇게 구약에 제물이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였다면 신약에 헌금은 이미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거란 말이에요 따라서 지금 우리가 헌금을 하는건 나를 품에 앉고 하느님께 제물로 드려진 예수 그리스도에 십자가를 온전히 믿고 그러므로 말미암아 내가 하느님께 드려진 온전한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제물이 되었다라는 것을 믿고 그것을 의지하고 있는 자들에 아름다운 신앙고백이 바로 헌금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신앙고백이 없는 사람은 헌금을 할 수가 없어요 헌금을 가져오는 족족 하느님으로부터 욕만 먹죠 내가 돈 필요해서 너한테 돈가져 오래는줄 아니 가져가 이놈아 구약에 나오잖아요 그래서 제가 복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분들은 여러분 헌금하지 마십시오라고 이야기하는 거에요 헌금하면서 하느님께 욕먹으니까

 

그러나 내가 예수 안에서 하느님께 온전히 드려진 자 구약에 그 점도 없고 흠도 없는 하느님이 열납할 만한 제물이 되었다 그런 자격이 있는 자가 되었다라는 것을 믿는 자는 이미 오신 그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내가 하느님께 드려진 자가 되었으므로 나를 드리는 행위로 헌금을 하는 거에요 그래서 마케도이나 사람들이 헌금 하지 마 그랬더니 죽어도 해야 되 그러고 그 가난한데 그걸 쪼개갖고 다 내버린 거에요 그 극한에 가난에 처해있던 사람들이 그들이 갖고 있던 걸 그렇게 헌금을 하여 예루살렘 교회를 도울려고 했다는건 내 목숨을 하느님 앞에 내어 놓은 것입니다 나를 내어 놓은 거에요 감히 내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나를 내놔 예수님 안에서 내가 하느님께 나를 드릴 수 있는 자가 되었다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런 자들만 헌금할 수 있는 거에요

그래서 그들은 그냥 자기에 분수에 지나치게 자꾸 하고 싶은 거에요 자꾸 드리는 거에요 봉사 선교 구제 예배 다 마찬가지인 거에요 내가 이 일을 해서 교회를 돕고 하느님에 일을 돕는게 아니라 내가 하느님에 일을 어떻게 도와 내가 하는 일은 하느님께 방해만 될 뿐인데 그런데 예수 안에서 내가 하느님께 받아들여 졌다고 하니까 내가 선교도 할 수 있는 거에요 기쁘게 내가 봉사도 하는 거에요 그리고 내가 착하게도 살아볼려고 노력하는 거에요

나는 하느님 앞에서 절대 선한 삶을 살수 없는자인데 하느님이 나를 선하다 받아주셨으므로 내가 그렇게 살 수 있는 자격이 되었으므로 선하게 사는 것이지이렇게 선하게 살고 헌금을 많이 하고 봉사를 많이 하면 하느님이 나에게 어떤 것으로 보답해 주겠지 그건 하느님 앞에 전혀 카운트가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정확히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은 교회에서 아무일도 하지 마세요 우리가 하는 일은 하느님 앞에 죄가 될 뿐이에요

집 팔아서 교회에 헌금하고 하느님 왜 열배로 안튀겨 주세요 그러다가 그냥 목메달아 죽고 그런 사람들 여럿 있어요 그런 바보같은 짓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미리 론을 해서 십일조를 내요 그렇게 해 놓으면 하느님이 부담스러워서 몇배로 튀겨 주실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게 확실하다면 제가 제일 투자하겠죠 여기저기서 꿔서라도 그게 확실하다면 천만에 말씀이에요

헌금이라는 건 우리 자신을 드리는 것 주님 앞에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적인 관점으로 볼땐 우리가 한 만큼 손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드리지 못해서 안달복달 하는 것이 바로 헌신이며 헌금인 것입니다 그것을 잘 이해하셔야 되는 거에요

 

오늘 본문에 마리아가 바로 그러한 예수에 죽음을 근거로 한 복음을 이해한 자에 모형으로 등장하는 거에요 예수에 죽음안에서 자신이 온전히 하느님께 바쳐진 존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300 데나리온이 아니라 3천 데나리온 짜리 향유라도 기쁘게 드리는 거에요 그분이 받아 주시기만 한다면 나를 드려 버리는 거에요

나는 도저히 하느님에 일에 동참할 수 없는 자였는데 예수님에 공로로 나에 물질과 나에 힘과 나에 시간과 나에 지식이 하느님께 드려지고 하느님에 의해 쓰여질 수 있다라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것이 헌신과 헌금에 정신인 거에요

하느님께서 예수 안에서 나를 받으시고 나에게 허락하신 그 영생이라는 복락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이다라는 것을 내가 알기 때문에 이 땅에서는 나와 나에 속한 모든 것을 하느님께 기쁘게 드리는 거에요 그래서 나에 모든 소유인 300 데나리온 짜리 향유와 나의 가장 큰 영광인 내 머리카락으로 예수에 영광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게 성도인 거에요 그리고 그게 또 예수에 삶이였구요 자기를 비워 하느님에 영광을 위해 목숨까지 끊어 버렸잖아요 그게 복음인 거에요 그렇게 해서 우리가 탄생된 거란 말입니다.

그렇게 하느님에 영광을 위해서 나와 나에게 속한 모든 것을 하느님 앞에 초개처럼 내려 놓는 걸 자기 부인이라고 하는 거에요 물론 잘 안되죠 그렇기 때문에 그 자기 부인에 삶을 목적으로 하여 우리가 열심히 분투하는 거에요 실수할 수 있어요 또 남에게 사기도 치고 도둑질도 하면서 자기 유익을 구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느님께 뚜들겨 맞고 다시 또 가는 거에요 아니구나 이것으로 절대 내가 행복할 수 없구나 라고 가는 거에요

 

왜 우리가 착하게 선하게 살려 그래요 그렇게 살면 하느님이 구원해 주실 것이다라는 기대에서가 아니라 이미 예수 안에서 선한 나를 하느님이 받아 주셨기 때문에 감사해서 나를 드리는 거죠 예배 왜 우리가 예배에 나오죠 하나님은 도저히 나를 받아주실 수 없는 분이고 내가 하느님 면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라는 것은 그건 말도 안되는건데 하느님이 나를 받아주시고 내 안에 들어오셔서 내가 지성소가 되었으므로 내가 그게 너무 너무나 감사해 갖고 목숨걸고 오지 말라 그러는데도 계속 예배에 자꾸 나오는 거에요 그런데 예배를 밥먹듯 빼먹는 사람들은 뭐에요 복음을 올바로 이해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느님께 나를 드리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지 어떻게 그 일이 가능해 졌는지를 아직 깊이 모르는 거에요 그러니까 그렇게 예배를 경홀히 여기는 거죠

그러나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에 죽으심에 근거하지 않은 선한일 헌신 헌금 구제 봉사 선교 등은 반드시 자기 자랑을 낳게 되고 분명 그것으로 교회안에 문제가 생겨요 따라서 여러분은 겉으로 피상적으로 들어난 헌금에 양이라든지 헌신에 모습이라든지 선하게 보이는 도덕적 윤리적 그런 삶 또 봉사 선교 예배 겉만 번드르르한 그런 것에 속으시면 안되요 그게 다가 아니란 말입니다 예수에 죽으심에 근거하지 않은 그런 선한 행위들이 얼마든지 교회안에 있어요.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에 죽음을 알지 못하고그분에 삶에 의미를 알지 못하고그분에 십자가에 의미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줍지 않게 행동하는 선한 행위에는 항상 자기 자신에 목적이 개입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것은 성경이 악이라고 하는 거에요 선은 내가 나에 욕심과 나에 배를 위해 살던 삶에서 돌이켜서 나를 부인하고 진정으로 내 이웃과 하느님을 위해 살기 위해서 행하는 모든 행위를 이야기하는 거에요 거기에는 계산도 있을 수없고 자랑도 있을 수 없고 교만은 더더욱 있을 수도 없는 거죠

따라서 오늘 본문에 마리아의 행위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장 귀한 것을 드려서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가장 큰 영광인 그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에 발을 딲은 나를 드리는 자기 부인에 행위였던 거에요 그게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삶이였고 하느님에 지혜가 담긴 복음이였기 때문에 그녀의 행위가 오늘날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함께 기념되고 전해지고 있는 거에요

우리는 어때요 우리는 복음을 알고 있다고 하면서도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마리아와 대조되어 등장하고 있는 가롯 유다와 같은 사고방식으로 이 세상 것들을 목적으로 삼아서 예수님을 이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유다의 주장이 뭐에요 예수님에 죽음에는 관심도 없고 오로지 죽지 말고 살아서 내 인생에 유익이 되어줘죠 왜 그 비싼걸 예수에 죽음에다가 허비를 해 팔아서 세상에 유익이 되게 해 그게 유다에 주장 아닙니까

 

만약에 오늘날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 예수에 죽음과 부활하심에는 전혀 관심도 없고 그분을 이용하여 나에 인생에 유익만을 얻으려 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도둑놈들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죠 유다는 도둑이였다 성당에 나와서 하느님 이름 부르면서 이 세상에서에 나의 삶에 유익을 좀 보태주세요 라고 외치는 자들은 도둑놈이다 그러는 거에요 성경이요

주님은 우리에게 영생이라는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큰 축복을 주셨어요 그래서 우리는 그것만으로도 나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해 야훼는 나의 목자아쉬울 것 없어라.’ 에요 이미 그 큰 복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어때요 야훼는 나의 목자’ 이신데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해 아니에요 그 영생이 뭔지 안다면 야훼는 나의 목자아쉬울 것 없어라가 우리에 신앙고백이 돼야 해요 그 신앙고백과 함께 내가 하느님 앞에 드려지는 것이 헌금이고 헌신이며 봉사이고 선교이고 예배이고 선한 삶인 거에요

만일 아직까지 그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그로 말미암은 복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계시지 못하다면 절대 헌신이란 말 입밖에 내지 마세요 그리고 헌금도 뒤로 미루세요 봉사 구제 선교 예배 마찬가지에요 먼저 복음을 이해하세요 그리고 자기를 부인하십시오 때가 되면 우리들 삶 속에서 자랑없는 자발적인 헌신과 자발적인 헌금과 자발적인 봉사와 자발적인 선교 자발적인 선한 행위가 자연스럽게 격발되어 나올 거에요 그 전까지는 복음을 열심히 배우세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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