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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9주일]깨어 있으라 (루카12,32-48)

173 김종업 [rlawhddjq] 2019-08-11

 

 

[연중 제19주일]깨어 있으라 (루카12,32-48)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셨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법을 따르기로 맹세하였다. 지혜서는 이러한 선조들의 역사를 소개하면서,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여전히 부르시며 영광스럽게 하신다는 사실을 역설한다. (지혜18,6-9)
해방의 날 6 밤이 저희 조상들에게는 벌써 예고되었으니, 그들이 어떠한 맹세들을 믿어야 하는지 확실히 알고, 용기를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7 그리하여 당신의 백성은 의인들의 구원과 원수들의 파멸을 기대하였습니다. 8 과연 당신께서는 저희의 적들을 처벌하신 그 방법으로, 저희를 당신께 부르시고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9 선인들의 거룩한 자녀들은 몰래 희생 제물을 바치고, 한마음으로 하느님의 법에 동의하였습니다. 그 법은 거룩한 이들이 모든 것을 다 같이, 성공도 위험도 함께 나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 벌써 조상들의 찬미가들을 불렀습니다.


믿음을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의 약속에 대해 항구하게 희망할 수 있다. 이를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서 확인할 수 있다. 아브라함은 아이를 갖지 못하는 아내 사라에게서 태어난 이사악을 하느님께 바침으로써, 많은 후손을 주시겠다는 하느님의 약속을 끝까지 믿었다. (히브 11,1-2.8-19)
형제 여러분, 1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2 사실 옛사람들은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8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장차 상속 재산으로 받을 곳을 향하여 떠나라는 부르심을 받고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떠난 것입니다.9 믿음으로써, 그는 같은 약속의 공동 상속자인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천막을 치고 머무르면서, 약속받은 땅인데도 남의 땅인 것처럼 이방인으로 살았습니다. 10 하느님께서 설계자이시며 건축가로서 튼튼한 기초를 갖추어 주신 도성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11 믿음으로써, 사라는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여인인 데다 나이까지 지났는데도 임신할 능력을 얻었습니다. 약속해 주신 분을 성실하신 분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12 그리하여 한 사람에게서, 그것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에게서 하늘의 별처럼 수가 많고 바닷가의 모래처럼 셀 수 없는 후손이 태어났습니다.13 이들은 모두 믿음 속에 죽어 갔습니다.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멀리서 그것을 보고 반겼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이 세상에서 이방인이며 나그네일 따름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14 그들은 이렇게 말함으로써 자기들이 본향을 찾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15 만일 그들이 떠나온 곳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16 그러나 실상 그들은 더 나은 곳, 바로 하늘 본향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하느님이라고 불리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도성을 마련해 주셨습니다.17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이사악을 바쳤습니다.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이 외아들을 바치려고 하였습니다. 18 그 외아들을 두고 하느님께서는 일찍이, “이사악을 통하여 후손들이 너의 이름을 물려받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19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죽은 사람까지 일으키실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사악을 하나의 상징으로 돌려받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얻으려면 항구한 인내와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충실한 종과 불충실한 종’의 비유를 통하여 말씀하신다.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인내하며 깨어 있는 충실한 종처럼, 신앙인들도 구세주께서 세상에 오실 때까지 믿음을 저버리지 않아야 한다. (루카12,32-4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2 “너희들 작은 양 떼야,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 나라를 너희에게 기꺼이 주기로 하셨다.33 너희는 가진 것을 팔아 자선을 베풀어라. 너희 자신을 위하여 해지지 않는 돈주머니와 축나지 않는 보물을 하늘에 마련하여라. 거기에는 도둑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좀이 쏠지도 못한다. 34 사실 너희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35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36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37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38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39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41 베드로가, “주님, 이 비유를 저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하고 물었다. 42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주인이 자기 집 종들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겠느냐? 43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44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45 그러나 만일 그 종이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게 오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하인들과 하녀들을 때리고 또 먹고 마시며 술에 취하기 시작하면, 46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그를 처단하여 불충실한 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그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48 그러나 주인의 뜻을 모르고서 매 맞을 짓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



 

 연중 제19주일 제2독서 (히브11,1-2.8-19)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사실 옛 사람들은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1~2)

 

히브리서 11장 1~3절 '믿음이란 무엇인가?'인지 믿음의 정의에 대한

서론적 설명이다.

 

'믿음은 ~이다'라는 표현에서 '~이다'에 해당하는 동사

'에스틴'(estin; is)은 직설법 현재 시제이다.

 

희랍어에서 현재 시제는 항구적으로 항상 그러함을 드러낸다.

 

그러니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이다'라는

사실이 시대를 초월하여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임을 나타낸다.

 

히브리서 11장에서 핵심어인 '믿음'으로 번역된 '피스티스'(pistis; faith)

고전 희랍어에서는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 혹은 신에 대하여 갖는 '신뢰'

또는 '진실성'이나  사업상의 '신용', '보증', '증명'등을 의미하여 다양하게 쓰였다.

 

원래 이 어군의 단어들은 '계약이나 약정을 존중하는 행동'을 나타냈지만,

헬레니즘 시대 회의론과 무신론이 난무하는 시기에는 '피스티스'신들의

존재와 행위에 대한 '신념'(conviction)이라는 의미를 획득하게 되었다.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라고 번역된 '엘피조메논 휘포스타시스'(elpizomenon

hypostasis)에서 우리는 '보증'으로 번역된 '휘포스타시스'(hypostasis;

substance; realization; assurance; guarantee)에 주목해야 한다.

 

이 단어는 '밑에 놓다', '기초를 두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휘피스테미'

(hyphistemi)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문자적으로는 '아래에(hypo; 휘포)

서 있는 것(stasis; 스타시스)', '토대','기초'라는 의미이다.

 

이런 뜻 외에도 '본질', '실체', '확신', '확고성', '보증'등의 다양한 의미가 있다.

 

이제 교회의 전통 안에서 이 단어의 의미가 어떻게 해석되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일부 파피루스에서 '휘포스타시스'라는 단어는 '보증'이라는 의미에서

   소유권을 입증하는 문맥에 쓰였다.

 

    이런 차원에서 본문을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권리 증서이다', 또는

   '믿음은 우리가 바라고 있는 천상의 것들을 우리의 것으로

   확실하게 보증해 주는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즉 믿음이라는 보증물을 내보일 때 천상의 것들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확실하게 누릴 수 있다는 말이다.

 

 초대 교회 몇몇 교부들은 이 단어를 '현실화'(realization)의 개념으로 보았다.

    믿음이 장래의 바라는 것들을 현실적으로 발생하게 해준다고 본 것이다.

 

③ '실체', '실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믿음이란 아직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바라는 것들을 실질적으로

    확실한 것으로 붙잡게 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초대 교회 교부인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중세 스콜라 신학의 대부인 성 토마스 아퀴나스

    주장하는 견해로서 '토대', '기초'(foundation)라고 보는 견해이다.

    말하자면, 믿음이 없으면 희망('바라는 것들')도 물거품이 되고 만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이러한 것들을 종합하면, '믿음이란 희망을 지탱해 주는 토대로서

희망하는 것이 허상으로 끝나지 않고 실제로 이루어질 것을

보증해 주는 실체'라는 의미가 된다.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이라고 번역된 '프라그마톤 엘렝코스 우 블레포메논'

(pragmaton ellengchos u bllepomenon)'눈으로 볼 수 없는 일들의 증거'

라는 뜻이다.

 

'보이지 않는'에 해당하는 '우 블레포메논'에서 '블레포메논'(bllepomenon)

'보다'(see)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블레포'(bllepo)의 수동태 분사이다.

 

따라서 '우 블레포메논'인간의 눈에는 가리워져 있어서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또한 '실체들의'로 번역된 '프라그마톤'(pragmaton)의 원형 '프라그마'

(pragma)고전 희랍어에서는 '행위', '사물', '사업', '논쟁'등의 의미로

쓰였으며, 신약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일'(사도5,4), '사실', '일'(루카1,1)

등으로 번역되었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실체들'이란 '보이지 않는 사실들'을 말한다.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의 일들이나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에 대한

하느님의 약속 등은 믿음이라는 장치를 가져야만 신뢰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확증'에 해당하는 '엘렝코스'(ellengchos)'밝히 드러내다',

'폭로하다', '납득시키다' 등을 뜻하는 동사 '엘렝코'(ellengcho)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고전 희랍어에서는 '증거', '확인'등의 의미를 지닌다.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을 겉으로 밝히 드러내주는 것, 확실하게 하는 것

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사실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는 것을 누가 못 믿는가?

합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것을 누가 못 믿는가?

그리고 관찰, 실험, 검증에 의해 과학적으로 이미 사실(fact)로

밝혀진 것들을 누가 못 믿는가?

 

그러기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는 믿음의 어두운 차원을

뛰어넘어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마치 태양이 어두운 먹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두운

먹구름 넘어 태양의 실체를 인정하는 것이 바로 믿음의 차원인 것이다.

 

'사실 옛 사람들은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2)

 

여기서 '옛 사람들'로 번역된 '호이 프레스뷔테로이'(hoi presbyteroi)에서

'프레스뷔테로이'원형 '프레스뷔테로스'(presbyteros)'늙은',

'나이 많은'을 의미하는 '프레스뷔스'(presbys) 비교급으로서

'나이가 더 많은', '노인' 또는 '장로', '원로' 라는 의미이다

(마태26,3; 사도2,19).

 

고전 희랍어에서는 처음에는 다른 이들과 비교하여 '더 늙은'(older)

이라는 뜻을 나타냈지만, 후에는 '더 존경받는'이라는 의미가 첨가되었다.

 

본절에서는 신약에서 흔히 쓰이는 '원로'의 의미가 아니라(1베드5,1), 히브리서

저자와 독자들의 공통된 조상, 즉 이스라엘의 조상들을 말한다.

 

더 구체적으로는 구약 시대의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살았던

모든 조상들'을 말한다.

 

그런데 히브리서 저자가 11장 4절 이하에서 언급하고 있는 시대별 믿음의

영웅들은 한결같이 이스라엘의 조상들이며, 동시에 그들의 믿음을 인정하고

증거하신 분은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여기서 '인정을 받았습니다'로 번역된 '예마르튀레테산'(emartyrethesan;

were well attested; were commended)'마르튀레오'(martyreo)

과거 수동태이다.

 

'마르튀레오'동사의 뜻은 '증언하다', '어떤 사실에 대한 증인이 되다',

'어떤 사람에게 유리하도록 어떤 사실을 확증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수동태로 쓰인 것은 거명된 사람들의 믿음에 대한 증인이

바로 하느님 자신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스스로 믿음이 좋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믿음이 좋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것이 사실이라고 증거하셔야만 훌륭한 신앙인이

되는 것이다.

 

속임을 당할 수도 없고 속일 수도 없는 진리의 근원이요, 진리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직접 그들의 믿음을 확증해 주셔야만 진정한 신앙인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연중 제19주일 복음 (루카12,32-48)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35~36)

 

루카 복음 12장 35절에서부터 38절까지는 깨어 주인을 기다리는 종들의 비유인데,

루카 복음 12장 35절에는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자세와 관련해서 두 가지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로, 허리에 띠를 매고 있는 모습이다.

 

'페리에조스메나이'(periezosmenai; girded about)'띠를 매다'는 뜻의

동사 '페리존뉘미'(perizonnymi)완료 수동태로서 '이미 허리에 띠가

매여져 있는 상태'를 말한다. 

 

다시 말해서 허리띠를 지금 당장 매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맬 것도 아니며,

이미 허리띠를 맨 상태에서 현재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이 입었던 겉옷은 길고, 그 통이 넓은 것이었다.

따라서 일을 할 때나 여행을 하거나 전쟁을 수행할 때에는 겉옷을

허리띠로 졸라 매야만 했다.

 

여기서 종들이 허리에 띠를 맨 이유는 문맥상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을 맞을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하느님의 백성들도 혹시라도 나태해져

방심하지 말고, 하느님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며 깨어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항상 준비하라는 의미인 것이다.

 

둘째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등불을 켜 놓은 상태로 있어야 함을 보여준다.

 

'켜 놓고'로 번역된 '카이오메노이'(kaiomenoi; burnning)

'불을 켜다' 뜻의 동사 '카이오'(kaio)현재 분사 수동태로서

'계속적으로 불이 켜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여기서 등불을 켜 놓고 있는 목적은 어두워진 이후에도 계속 일을 하며

기다리던 주인을 맞아들이기 위한 것이다(마태25,1~13).

 

따라서 본문은 주님이 언제 오실지라도,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성실히 감당하고,

항상 깨어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사람이 될 것을 교훈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있어라'에 해당하는 '에스토산'(estosan; let be)'에이미'(eimi;

be) 동사의 현재 명령형 3인칭 단수로서 '계속적으로 있어라'는 뜻이다.

 

여기서 '에이미'(eimi)동사는 '있다' 또는 '존재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어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는 상태를 계속 유지하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동사가 여기서 현재형으로 사용된 것은 이러한 상태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수님께서 언제 다시 오실 지는 아무도 모르므로, 하느님의 백성은

늘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혼인 잔치'로 번역된 '가몬'(gamon; wedding banquet)의 기본형

'가모스'(gamos)혼인 잔치 자체를 가리킨다.

 

당시 유대인들의 혼인 잔치는 주로 밤중에 이루어졌기에, 그 주인이

혼인 잔치로부터 돌아올 때는 모든 사람이 잠든 시간이 되므로, 그 종들은

잠들지 말고 깨어 있어라는 교훈을 주기에 적절한 배경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이러한 배경 설정의 이유만이 아니라, '혼인 잔치'천상에서의

기쁨과 영광의 혼인 잔치를(묵시19,9), '그 주인'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혼인 잔치의 집'하늘 옥좌를 암시함으로써, 종말론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본다. 

 

그리고 '돌아오는'으로 번역된 '아날뤼세'(analyse; he will return)의 기본형

'아날뤼오'(analyo)'풀다'는 뜻에서 발전하여 '떠나기 위해 천막을 걷거나

배의 닻줄을 푼다'는 점에서 '떠나다','출발하다'는 뜻도 갖는다.

 

여기서는 혼인 잔치 집을 떠난 것을 가리키며, 이것은 앞으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주님으로 오셔서, 온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하늘 옥좌를

떠나 내려오실 것을 상징하고 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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