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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5월 4일 (토)부활 제5주간 토요일너희는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다.
부활 제 3 주일

110 류달현 [dalbong6] 2002-05-03

교우 여러분, 한주간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이제는 완연한 봄입니다. 요 며칠 동안 우리들을  기분 좋게 했던 하얀 벚꽃들이었건만, 엊그제 몰아친 비바람으로 이곳 저곳에 떨어져 흩어진 꽃잎들을 밟고 지나가노라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사쿠라처럼 잠시동안의 영광이나 칭송보다는, 소나무마냥 늘 푸르게 푸르게 피어오를 수 있는 저였으면 하고요. 소나무처럼 제 삶의 구원을 위해서라도 오늘과 내일을 성실하게 살아가야겠다는 마음가짐을 새롭게 갖게 되는 요즘이었습니다. 모쪼록 춘곤증과 괜한 피곤에서 오는 무력감을 이겨내는 한 주간이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그런 무력감에 싸여 어쩔 줄 모르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나면서 으라찻차 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보면 그야말로 침통한 표정인 채, 무척이나 무거운 발걸음으로 낙향하는 그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가서서 나란히 걸어가셨지만, 그들은 눈이 가리워져서 처음에는 그분이 누구신지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실망과 슬픔에 빠져, 모든 것을 체념한 체, 엠마오로 되돌아가려는 제자들에게 다가오셔서, "그리스도는 영광을 차지하기 전에 그런 고난을 겪어야 하는 것을 아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실망과 슬픔에 빠져, 모든 것을 포기하려는, 이제는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식의 무력감에 빠져있는, 우리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만약 진학에 실패하였거나, 제때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을 때에 그 마음을 그 누가 알아줄 수 있단 말입니까? 매일 반복되어지는 일상 생활에 권태를 느끼고, 삶의 무의미에 빠져 있을 때, 그 마음 오죽이나 하겠습니까? 신앙 생활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냉담하여졌을 때도, 의무감으로 어쩔 수 없이 성당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향해야 할 때가 없진 않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사노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우리의 좌절, 삶의 권태를 느기게 되지요.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비바람이 내리치던 지난 목요일 저녁 때처럼, 앞이 보이지 않은 어두움 속에 우리가 있었던 것과도 같이, 우리 자신이 어떤 비참함에 빠져있을 때, 극도로 고독할 때, 신앙마저 희미해졌을 때, 바로 그때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신앙, 그것이 바로 부활의 신앙이요. 오늘 복음처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도 이렇게 말을 건네십니다. '너희는 어리석기도 하다!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그렇게도 믿기가 어려우냐? 그리스도는 영광을 차지하기 전에 그런 고난을 겪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 암담했었을 그런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시면서, 예수님께서 성서 전체에서 당신에 관한 기사를 들어 설명해 주셨을 때야 비로소 제자들은 참으로 뜨거운 감동을 느꼈고, 예수님께서 함께 식탁에 앉아 빵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나누어 주셨을 때, 그제서야 그들은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렇다면 형제, 자매 여러분!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어떻게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뵐 수가 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과 그분께서 베풀어주시는 성찬을 통해서였습니다. 그야말로 열린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말씀에 귀기울이고, 그분께서 베풀어주시는 성찬에 함께 할 때 우리 역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뵐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 생활을 하는데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의 마음을 활짝 열어 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도, 실의에 빠져 어찌할 바를 몰라 낙향하려 하였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끝까지 듣고, 예수님께서 마련해주신 식탁에 함께 모여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빵을 떼어 나누어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뵐 수 있는 은총을 받게 됩니다. 그것은, 좌절과 슬픔 속에서도 이웃의 아픔을 거부하지 않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웃의 아픔을 함께 떼어 나누어 가지려고 할 때, 하느님 현존체험이라고 하는 근사한 선물을 그분께로부터 선사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을 신학적으로 예수 현존의 체험담이라 합니다. 즉 오늘 복음이 번하는 엠마오 발현 사화는 이것이 형성 전승될 무렵의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예수의 현존을 체험했는지를 전합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미사 때 예수의 현존을 체험했는 데, 구체적으로 성서를 읽고 해설할 때(말씀의 전례) 예수의 현존을 느꼈고, 이어서 공동으로 식사할 때(성찬의 전례 때) 그 현존을 알아보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따라 좀 더 자세히 풀어보면, 일상생활 한가운데서 예수의 현존을 체험하기는 어렵지만, 성서 말씀을 대할 때 그의 현존을 감지하고, 성체를 받아 모실 때 그 현존을 의식합니다. 그러나 오관으로는 알아볼 수 없는 현존이라 눈으로 보려는 순간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엠마오로의 여정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한 식탁에서의 빵의 나눔이야말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이웃 형제 자매들과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려 할 때 그것은 지름길이 될 수 있습니다. 엠마오에서 빵을 떼어 주시는 예수님의 상징적인 행위는 하느님의 뜻을 위해 자신의 목숨마저 내놓은 최후의 만찬(하느님 사랑), 나눔의 기적인 오병이어의 기적(이웃 사랑)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눈뜬장님처럼 예수님을 못 알아보던 제자들이 예수가 빵을 떼어 줄 때야 예수님을 알아보았다는 말은 하느님과 이웃 사랑의 행위 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체험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요청되는, 생활(신앙)의 부활이란, 한 식탁에서 이웃과 빵을 함께 나누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그런 부활을 말합니다. 엠마오로의 여행은 바로 그 때는 몰랐지만, 이처럼 뒤늦게 깨닫게 되는 사랑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깨닫기 위해 매일 엠마오로의 여정을 걸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의 여정인 것입니다. 자, 저와 함께 엠마오로 가보지 않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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