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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분교리 일분묵상
가장 용기 있는 것과 가장 겸손한 것

51 하계동성당 [hagye] 2007-07-28

 

가장 용기 있는 것과 가장 겸손한 것

 

   6·25전란으로 피난 갔던 정부가 탈환한 수도 서울로 환도하면서 가진 기념식에서 맥아더 장군은 연설을 했다. 그 연설 말미에 “나는 인간이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겸손한 기도로 내 메시지를 끝내기로 하겠다”고 하면서 ‘주님의 기도’로 그의 메시지를 마무리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맥아더 장군이 말한 ‘인간이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겸손한 기도’란 바로 ‘주님의 기도’였던 것이다.

 

   ‘주님의 기도’에는 ‘저희’에게 잘못한 사람을 ‘저희’ 주체로 먼저 용서해 주라고 한다. 그래야 내가 지은 죄로써 하느님께 진 빚의 탕감을 간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전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용서(容恕)! ‘용(容)’은 ‘받아들임’의 뜻이다. ‘서(恕)’는 ‘如’와 ‘心’이 합쳐져 이루어진 글자이듯이 너의 마음을 내 마음처럼 헤아리는 것이다.

 

   받아들임은 작은 것이기에 가능하고 큰 것이기에 힘든 게 아니라 받아들이려는 마음의 크고 작음, 그리고 마음의 비움 상태에 따라 정해진다. 작은 마음은 작은 것조차 받아들이기 어렵다. 설령 받아들인다 해도 마음에 정을 쪼아 각인하고, “… 살뜰히 못 잊는데 / 어쩌면 생각이 떠나지요?”라는 시구처럼 그것으로부터 자유스러워지지 못한다. 그러나 큰마음이나 빈 마음은 그 어느 것도 받아들일 수 있다. 받아들인 순간 그것들과 함께 받아들였다는 마음마저 사라진다. 그래서 진정한 용서란 잊음이 아니라 내 마음마저 함께 사라짐이다.

 

   종종 한이 맺혀 생긴 병으로 찾아오는 환자를 만난다. 소위 ‘울화병’이라는 것이다. 흔히 외향과 내향은 의식의 면과 무의식의 면에서 반대로 되어 내향성의 사람은 내심으로는 외향성을 품게 마련이기 때문에, 이 병의 환자는 때로 용서를 못한 채 울화통을 터뜨리거나 혹은 곧잘 자기공격성의 엉뚱한 일을 저지르기도 한다. 이 병의 환자는 증오로 용서 못하기보다는 오히려 미련과 집념의 감정에서 헤어날 수 없어서 용서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용서는 너를 받아들임이면서 아울러 나를 받아들임인데, 용서로써 나를 받아들임은 너를 받아들임보다 힘들기 때문에, 용서를 못한 채 한이 쌓이고 고여 ‘울화병’이 되는 것이다.

 

   너는 물론 나까지 받아들임이 용서인 까닭에 용서는 세상에서 가장 큰 용기다. 용서는 ‘참 평화로의 회귀’요 ‘관계의 복원’인 까닭에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것이다. 그리고 용서를 간구하는 기도야말로 ‘인간이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겸손한 기도’이다.

 

   님이시여,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소서.

 

 

● 신재용 프란치스코·해성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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