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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0년 2월 24일 (월)연중 제7주간 월요일주님,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신부님강론
연중 15 주일 (가해)

188 양권식 [ysimeon] 2008-07-12

연중 15 주일 (가해)
안녕하십니까 무더운 여름 고생이 많으시지요? 오늘을 연중 15 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일상생활에 비유하여 하느님의 나라를 설명하셨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농부가 밭에 씨 뿌리는 일에 비유하셨습니다.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렸는데, 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먹어 버렸고, 어떤 것은 돌밭에 떨어져 뿌리가 없어 말라 버렸고,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에 떨어져 숨이 막혀버렸습니다. 그러나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열매를 맺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씨앗은 하느님의 말씀이시고, 땅은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우리 마음의 상태인 것입니다. 초기 신앙인들은 이 비유 말씀을 회상하면서 그들 자신은 과연 많은 열매를 맺는 좋은 땅인지를 반성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을 잘 알아듣기 위해서는 먼저 당시 이스라엘의 농촌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농사를 지을 때 돌을 걷어내고 땅을 갈아엎은 뒤에 씨앗을 뿌리지만, 반면 이스라엘에서는 먼저 씨를 뿌리고 나서 돌을 걷어 내거나 땅을 손질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씨가 뿌려진 땅이 길바닥이 될 수도 있고, 돌밭이 될 수도 있고, 가시덤불이 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땅을 먼저 손질하고 씨를 뿌리는 것이 아니라 씨를 먼저 뿌리고 나서 땅을 손질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길바닥이란 사람들이 밭을 가로질러 다니는 바람에 생겨난 길을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길은 딱딱하기 마련이었고, 씨앗이 발에 밟히거나 공중의 새들이 날아와 그 씨앗을 먹어 버릴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말씀이 마음에 새겨들지 못하고 잊혀져 버리는 경우를 말합니다. 둘째로 돌밭에 떨어진 경우는 말씀이 마음에 담겨 있긴 하지만 뿌리를 내리지 못한 경우를 말합니다. 그런 자들은 환난이나 박해 같은 어려움 혹은 유혹이 닥쳤을 때 곧 넘어지고 말 것입니다. 셋째로 가시덤불에 떨어진 경우는 말씀을 듣긴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 경우를 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은 말씀을 듣고 깨달은 사람을 말하는데, 그런 사람은 백 배 혹은 예순 배 혹은 서른 배의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이야기는 예수님 공생활 말기에 하신 말씀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의 공생활은 몰이해와 비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당신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이 하나 둘씩 떠나고 당신이 행하시는 하느님 나라 운동이 환영 받지 못하는 상황을 맞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지만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사사건건 예수님께 시비를 걸었습니다. 심지어 제자들도 예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지는 못했습니다. 남겨진 사람은 열두 제자들과 몇몇 여인들뿐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의 활동을 중단해야 하지 않느냐는 절망의 이야기가 들려왔고, 그것에 대한 대답으로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이야기를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은 절망의 끝자락에 서 계신 예수님께서 들려주시는 당신의 바람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절망의 현실에서 당신의 꿈과 희망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농부는 자신이 뿌린 씨가 잘 자라 많은 소출을 거두기를 바라는 희망으로 씨앗을 뿌립니다. 그런데 농부의 바람과 달리 어떤 씨앗들은 길에, 돌밭에, 그리고 가시덤불 속에 떨어져 자라지 못합니다. 그런 씨앗들을 보는 농부의 마음은 안타까웠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농부는 희망을 거두지 않습니다. 농부는 이 씨앗이 잘 자랄 것을 믿고 있습니다. 홍수가 들기도 하고 가뭄이 들기도 하고, 또 모진 바람이 불고 병충해가 있어도 농부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농부는 이 씨앗이 자라나 하늘의 뜻에 따라 열매 맺으리라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물론, 잘 자라지 못하는 씨앗들이 있겠지만, 많은 씨앗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백 배, 예순 배, 서른 배의 열매를 맺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꿈이며 희망이었던 것입니다.
농부의 이 희망이 바로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말씀을 못 알아듣고 심지어 비난하고 박해하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들을 귀가 있어 당신의 말씀을 따를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십니다. 말씀을 듣는 사람들 중에는 분명 당신의 뜻을,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깨닫지 못하더라도 당신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체험한 후에는 깨달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십니다. 이 희망이, 힘든 공생활 걸어가실 수 있는 힘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희망의 힘으로 오늘도 복음의 씨를 뿌리십니다.
나치 독일이 유대인들을 학살 할 때에 시장에서 한 노인이 빈 책상을 앞에 두고 앉아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여기 이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것을 사 가세요!" 그러자 지나가던 사람이 물었습니다. "아니, 노인장! 아무것도 팔 것이 없지 않소?" 그러자 노인은 그 사람에게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나는 희망을 팔고 있소. 우리를 죽이는 것은 나치독일의 폭력이 아니라 나치독일의 폭력이 만드는 절망입니다. 죽음을 넘어선 희망이야 말로 우리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희망을 사가시면 반드시 희망대로 이루어집니다."라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들이 지니고 살아야 할 것은 희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씨 뿌리는 농부의 비유를 통하여 절망의 나락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시는 당신의 의연함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농부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농부는 땅이 농부를 배반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땅은 가장 흔하고 보잘것없어 보인다 할지라도 모든 쓰레기를 다 받아들이면서도 인간에게 한없이 너그러웠습니다. 아무리 세월이 흉흉하고 팍팍하다할 지라도 곡식을 내는 세상의 이치는 변함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이보다 더 확실한 믿음은 없습니다. 언젠가 땅이 있어서 농사를 짓는 다는 늙은 농부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수입을 얻기는 커녕 수고비도 나오지 않는 그래서 매우 비효율적일 것 같은 농사를 왜 짖느냐는 아들의 만류에 오랜 농사일로 자식들을 키우고 이제 지친 아버지 농부가 땅을 바라보고 하시는 말씀이었답니다.
요한 23세 교황 <말씀이 나의 두 손에>란 글에서,"나는 매일 몇 톨씩의 씨앗이라도 뿌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때가 되면 누군가는 거두게 될 테니까." 라고 적고 있습니다. 농부의 마음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 8장 24절에서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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