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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서당
[강론] 소금과 빛

69 봉천동성당 [pongchon] 2002-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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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소금과 빛  

 

 

행복선언에 뒤이어 예수님은 설교를 듣는 이들이 지녀야 할 태도에 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길거리에 내던져져 사람들의 발에 차이는 한심한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원래 소금은 맛이 변하지 않는 식품입니다. 그런데 소금이 맛을 잃다니…?

 

예로부터 이스라엘에서는 움막 형태의 화덕을 만들고, 내벽에 소금을 입혀 복사열을 사용해 빵을 구워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지나 내벽의 소금을 벗겨내면 짠맛이 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말씀은 실생활의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유다인에게 ‘산 위의 도시’란 적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산성(山城)을 의미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을 바꾸어보면 ‘산 위의 도시’란 사람들의 눈에 쉽게 노출된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등불을 켜서 됫박으로 덮어두는 사람은 없다”도 실생활을 반영합니다. 유다인의 가옥은 창문이 아주 작아 무척 답답했습니다. 사막 지대에서 모래와 먼지를 막으려면 당연한 조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등불을 끌 때는 바닥에 내려놓고 됫박을 덮었는데, 이는 안 그래도 답답한 방안에 그을음까지 들어차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등불을 막 켰다면 반드시 ‘등경 위에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같이 당시의 실생활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로써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자신의 삶에 친밀하게 비추어보고 교훈 삼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자, 빛이자, 산 위의 도시이자, 등경이다”라는 말씀은 모두 그리스도인의 자세, 혹은 교회의 역할을 암시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둠에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에게는 언제나 빛으로 삼아야 할 모델이 필요한데, 바로 그리스도인이 그런 역할을 담당해야 합니다.

 

1고린 2,1-5에서 바오로는 자기가 고린토 교회를 방문했을 때 가졌던 마음자세를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자신은 오직 하느님의 성령과 능력을 드러내려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고린토 교우들의 믿음도 자신과 같아야 했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는 ‘유식한 말’이나 ‘인간의 지혜’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제1독서인 이사 58,7-10에 보면 “너의 빛이 어둠에 떠올라 너의 어둠이 대낮같이 밝아오리라”(10절)가 나옵니다. “세상의 빛이 되라”는 하느님의 명령에 시적 감흥까지 듬뿍 배어 나오는 구절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지중해 세계에는 이른바 유토피아 사상이 팽배해 있었습니다. 비단 플라톤 외에도 아리스토텔레스, 키케로 등이 있었고, 유다 땅에서는 에세네파의 쿰란 수도원이 유토피아를 추구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역사에서는 수도회들이 유토피아, 즉 신앙인들로 이루어진 이상적인 공동체를 지향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크고 작은 수도회들을 보면서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답을 얻곤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수도회에 제한된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 전체를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빛, 곧 세상이 보고 따라야 하는 대조사회(對照社會)여야 합니다. 그것이 세상을 향한 교회의 존재 이유입니다. 그리고 교회에 속한 그리스도인들 역시 세상의 빛이어야 합니다.

만일 그 역할을 포기한다면 우리는 스스로 그리스도인임을 포기한 셈이 됩니다.

 

“너희는 세상의 어둠이다.” 예수님의 불호령! 생각만 해도 추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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