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GOOD NEWS

창4동성당 검색
메뉴

검색

검색 닫기

검색

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19일 (금)부활 제3주간 금요일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창4동성당
[연중 제24주일] 회개 (루카 15,1-32)

178 김종업 [rlawhddjq] 2019-09-15

 

 [연중 제24주일] 회개 (루카 15,1-32)

 

 

주님께서는 수송아지 상을 만들어 제사 지내는 백성에게 진노를 터뜨리시다가 모세의 애원을 들으시고 재앙을 거두신다. (탈출 32,7-11.13-14)
그 무렵 7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어서 내려가거라. 네가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너의 백성이 타락하였다.
8 저들은 내가 명령한 길에서 빨리도 벗어나, 자기들을 위하여 수송아지 상을 부어 만들어 놓고서는, 그것에 절하고 제사 지내며, ‘이스라엘아, 이분이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너의 신이시다.’ 하고 말한다.”
9 주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 백성을 보니, 참으로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
10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마라. 그들에게 내 진노를 터뜨려 그들을 삼켜 버리게 하겠다. 그리고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11 그러자 모세가 주 그의 하느님께 애원하였다. “주님, 어찌하여 당신께서는 큰 힘과 강한 손으로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당신의 백성에게 진노를 터뜨리십니까?
13 당신 자신을 걸고, ‘너희 후손들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약속한 이 땅을 모두 너희 후손들에게 주어, 상속 재산으로 길이 차지하게 하겠다.’ 하며 맹세하신 당신의 종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을 기억해 주십시오.”
14 그러자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내리겠다고 하신 재앙을 거두셨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예수님을 박해한 죄인임에도, 사도의 직무를 맡기신 하느님께 찬미를 드린다. (1티모 1,12-17)
사랑하는 그대여, 나는 12 나를 굳세게 해 주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분께서는 나를 성실한 사람으로 여기시어 나에게 직무를 맡기셨습니다.
13 나는 전에 그분을 모독하고 박해하고 학대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믿음이 없어서 모르고 한 일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14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우리 주님의 은총이 넘쳐흘렀습니다.
15 이 말은 확실하여 그대로 받아들일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죄인입니다.
16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먼저 나를 당신의 한없는 인내로 대해 주시어,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고 당신을 믿게 될 사람들에게  본보기로 삼고자 하신 것입니다.
17 영원한 임금이시며 불사불멸하시고  눈에 보이지 않으시며 한 분뿐이신 하느님께  영예와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기뻐한다고 하시며 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드신다. (루카 15,1-32)
그때에 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2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4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5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6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8 또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 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9 그러다가 그것을 찾으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1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11 예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다.
12 그런데 작은아들이, ‘아버지, 재산 가운데에서  저에게 돌아올 몫을 주십시오.’ 하고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가산을 나누어 주었다.
13 며칠 뒤에 작은아들은 자기 것을 모두 챙겨서 먼 고장으로 떠났다. 그러고는 그곳에서 방종한 생활을 하며 자기 재산을 허비하였다.
14 모든 것을 탕진하였을 즈음 그 고장에 심한 기근이 들어, 그가 곤궁에 허덕이기 시작하였다.
15 그래서 그 고장 주민을 찾아가서 매달렸다. 그 주민은 그를 자기 소유의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
16 그는 돼지들이 먹는 열매 꼬투리로라도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아무도 주지 않았다.
17 그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팔이꾼들은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에서 굶어 죽는구나.
18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19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20 그리하여 그는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21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22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일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24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즐거운 잔치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25 그때에 큰아들은 들에 나가 있었다. 그가 집에 가까이 이르러 노래하며 춤추는 소리를 들었다.
26 그래서 하인 하나를 불러 무슨 일이냐고 묻자,
27 하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아우님이 오셨습니다. 아우님이 몸성히 돌아오셨다고 하여 아버님이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28 큰아들은 화가 나서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 그를 타이르자, 29 그가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30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
31 그러자 아버지가 그에게 일렀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32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연중 제24주일 제1독서 (탈출32,7-11.13-14)

 

주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내가 이 백성들을 보니, 참으로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마라. 그들에게 내 진노를 터뜨려 그들을 삼켜 버리게 하겠다. 그리고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9-10)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

 

 

 

'뻣뻣한'이라고 번역된 '케셰'(qesheh)는 아마 농경 문화의 배경에서 생겨난 말일 것이다. 이것은 '멍에를 지우는 데 대한 황소의 반항적인 반발'을 의미하는 말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말이 성경에서는 '뻔뻔스럽고'(shameless), '오만(거만)한'(insolent), '완고한'(harden) 상태를 가리키는 관용어로 널리 사용되었다(신명9,6; 2역대30,8; 느헤9,16; 사도7,51).

 

하느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집센 모습이 마치 멍에를 쓰지 않으려고 버티는 미련한 소와 같다는 말이다.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마라' 

 

 

'나를 말리지 마라'로 번역된 '한니하 리'(hanniha li; leave me alone)에서 '한니하'(hanniha; '말리지 마라','하게 하라')원형은 '누아흐'(nuah)인데, '내려앉다','멈추어 서다'(민수10,36), '쉬다'(탈출20,11), '휴식을 취하다',  '편안히 쉬다'(이사23,12) 등의 뜻이 있다.

 

본문에서는 사역형으로 사용되어 '편히 쉬게 하다','홀로 쉬게 하다'(이사28,12)라는 의미이며, 명령형으로 사용된 것을 감안해서 '나를 홀로 있게 하여라'(let me alone)라는 뜻으로 번역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모든 관계를 끊어버리겠다는 절교선언(絶交宣言) 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선택한 백성을 노예생활하던 이집트 땅에서 해방시켜 인도하시고  이들을 통해 인류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려는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으나 하느님을 떠나 우상숭배에 빠진 완고하고 사악한 백성에게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이제 그 관계를 끊어버리고 내치시겠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하느님의 이 약속은 이미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다(창세12,2). 그런데 이 약속이 아브라함이 아닌 모세에게 다시 주어지고 있다.

모세에게 주신 이 약속은 단지 그가 아브라함의 후손이기 때문에 계약의 상속자라는 자격이 있다는 이유로 주신 말씀이 아니다.

 

오히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하면서 당신의 뜻을 거역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진멸하시고, 모세를 제2의 아브라함으로 삼아 그의 후손들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시겠다는 뜻을 밝히신 것이다.

 

 

연중 제24주일 제1독서 복음 (루카15,1-32)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2)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이유예수님께서 부정한 자 혹은 율법과는 상관이 없는 자들로 여겨지던 사람들을 받아들이며, 그들과 함께 식사를 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애초에 초대를 받은 사람들이었지만 한결같이 거부하므로(루카14,18~20), 그들은 단 한 명도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다고 말씀하셨다(루카14,24).

 

그래서 대신에 하느님 나라의 잔치와는 상관없이 보이는 사람들, 세리와 죄인들이 그 잔치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당신 가르침 속에서 뿐만 아니라 죄인들과 세리들, 가난하고 소외받는 자들과 식사를 즐기셨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자랑하는 율법과 거리가 먼 이들을 받아들이고 음식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당시 종교 지도자였던 기득권 세력의 강한 반발이 예상되는 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이 일을 서슴지 않고 강행하신 이유당신께서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사명을 분명히 아셨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신 것은 하느님 나라의 잔치를 선취하는 행위로 이해되어야 한다(루카14장).

 

여기서 '받아들이고'로 번역된 '프로스데케타이'(prosdechetai; receives; welcomes)의 원형 '프로스데코마이'(prosdechomai) 어떤 사람의 가치를 인정하며 긴밀한 관계를 갖는 것을 의미한다(로마16,2; 필리2,29).

'프로스데케타이'(prosdechetai)도움을 얻거나 존경하기 때문에 맞아들이는 적극적인 의미가 있다.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을 대하실 때, 마치 유대인들이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대하듯 하신 것이다.

경멸받으며 기피되던 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이러한 파격적 행동은 당시의 사람들, 특히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이해되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일컬어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요, 먹보요 술꾼이라고 비아냥거린 것이다(루카7,34).

 

유대인에게 있어서 '함께 식사하는 행위'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같은 부류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세리들과 함께 식사를 하신 것은 그들과 같은 부류가 되었다는 사실을 뜻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고, 또한 사람들 중에서도 경멸받는 사람이 되셨던 것이다(필리2,7).

하지만 잃어버린 자들인 세리들과 죄인들이 초청을 받아들여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할 자들이 분명하기에, 예수님의 이러한 태도는 당당했던 것이다.

 

그래서 루카 복음 15장 6절과 10절'잃은 한 마리 양의 비유' '잃은 은전 한 닢의 비유'의 결론이 되어서, 잃어버린 한 사람의 영혼이라도 그가 하느님께로 돌아올 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를 보여 준다.

이런 기쁨은 한 명의 죄인이라도 찾고 찾으시는 하느님의 끊임없는 사랑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발견할 때까지 찾으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죄인들을 마침내 하느님께로 돌이키는 것이다. 그 돌아온 죄인들로 말미암아 하늘에서는 반드시 놀라운 기쁨이 생겨난다.

루카 복음 15장 10절'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는 표현은 죄인의 회개가 하느님께 속한 천사들도 기뻐할 정도로 너무도 중요한 사건임을 나타낸다.

 

 

 

 

우리의 회개를 기뻐하신다ㅡ.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사랑은 당신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심으로써 그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시는 이 큰 사건을 위해 하느님께서는 오랜 세월 동안 그에 대한 준비를 하셨습니다.

   이스라엘과 맺으신 옛 계약의 예식과 희생제사, 표상과 상징들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집중돼 있으며 모세와 그 후계자들 그리고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예고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인간 구원 계획은 당신과 본질이 같은 성자(聖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심으로써 결정적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하느님께서 구원하신다'라는 의미입니다. 이 이름은 예수님의 신원(身元)과 사명을 동시에 나타냅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나자렛에 사는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타나 `두려워하지 말라. 마리아 너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 아기는 위대한 분이 되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조상 다윗의 왕위를 주시어 야곱의 후손을 영원히 다스리는 왕이 되겠고 그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루가 1,30-33)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심은 하느님께서 일찍이 예언자 나단을 통해 인류에게 주신 약속의 실현입니다.

 

`잃었던 아들' 비유 이야기ㅡ.

  예수님은 `잃었던 아들'에 관한 비유 이야기(루카 15,11-32)를 통해 못난 자식이라도 애지중지 아끼는 하느님아버지의 한없는 사랑을 알려주셨습니다.    하느님은 작은 아들의 방탕이나 큰아들의 불만에 찬 반항, 그리고 세상의 체면도 아랑곳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예수님의 절대적 신뢰와 순종은 예수님이 아버지의 `친아들'이심을 입증합니다. 하느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시는 덕분에 우리도 하느님을 감히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됐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서에 기록된 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셨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에서 나옵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의 제물로”(1요한 4,10)보내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셨습니다.”(2코린 5,19)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자유롭게 당신 몸을 바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미리 말씀하신 대로 십자가에 모 박혀, 가신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애야,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부활은 십자가 죽음을 완성하는 사건이기 때문에 죄와 죽음에 대한 최종 승리, 인간을 위한 해방을 가져왔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영광스러운 능력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 생명을 얻어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의 부활을 믿고 받아들임으로써 다시는 죽음이 없는 새 생명에 대한 희망을 안고 예수께서 보여주신 인간으로서의 삶을 누리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부활 사건은 우리 믿음의 바탕이며 신앙생활의 중심이 되는 사실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여러 차례 나타나시어 사도들에게 성령의 힘으로 여러 사명을 주신 다음 40일이 되는 날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늘에 올리시어 당신 오른편에 앉으셨다”(에페 1,20)는 것은 당신의 사명을 완수하셨다는 것과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로서 `아버지의 완전한 영광'안으로 들어갔다는 것, 그리고 세상 만물을 다스리며 인간을 구원하는 모든 주권이 하느님 아버지와 함께 그분께도 주어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사가는 자기가 복음서를 쓴 목적을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20,31) 하고 말했습니다. 기도합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0 12 0

추천  0 반대  0

TAG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로그인후 등록 가능합니다.

0 / 500

이미지첨부 등록

더보기
리스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