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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동 성요한 성당] 사순 제 1 주일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시다.

3262 최성기 [henchoi] 2020-03-01

오늘 복음 말씀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신 이야기이다. 마태오가 전해 준다. 마태오 복음서의 내용을 주석과 함께 살펴보자. 주석은 뉴 컬리지 빌 바이블 컴멘터리  (New Collegeville Bible Commentary) 마태오 복음서 (pp.26-29)를 참조하였다. 


마태오 복음 4.1-11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시다
 
  • 마태오 복음서의 첫 부분 (1장-4장)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밝히는 탄생이야기 와 세례자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생활 시작 전에 그리고 마태오 첫 부분에서 광야에서 유혹 받으시는 이야기이다. 

  • 이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평생을 걸쳐서 지속적으로 받으셨을 법한 유혹들을(히브 4.15)  하나의 에피소드로 정리하고 있다. 또한 유혹이 일어난 광야라는 장소는 이스라엘이 광야를 떠돌아 다니던 시기를 떠올리게 한다.  모세에게 불평하고 하느님을 시험하며 광야의 시간을 충실하게 보내지 못했던 이스라엘 백성과는 달리,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에 한결 같은 성실함을 보여주신다. 사십일 밤 낮을 단식하셨다는 것은 모세 (신명 9.18,)와 엘리야 (열왕 전 19.8)를 연상시킨다. 산이라는 모티브 역시 모세가 하느님을 시나이 산에서 뵈었던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마태오는 산의 모티브를 예수님을 율법의 권위 있는 해설자로 부각시키는 장면에서 자주 사용한다 (5.1-8.1, 15.29-31, 17.1-8, 28.16-20) 

  • 마태오 복음서의 첫 3장에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의 정체성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독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예수님의 정체에 대한 세 가지 근본적 의심을  유혹자가 드러낸다.  “만일 네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는 관용구의 기능은 독자로 하여금 하느님의 사랑 받는 아들로서 예수님의 모습을 어떤 것인지 묻게 만들고, 하느님의 사랑 받는 아들을 추종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님이 처했던 이유혹들에 대해  어떻게 응답할 것인지 질문하고 있다.  이 세 질문에 대한 응답은 하느님께 충실하게 중심을 두고 사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밝혀주는 핵심을 깨닫게 한다. 

  • 첫 유혹은 자신의 배고픔을 채우려는 것에 대한 유혹이다(3절). 예수님께서는 신명기 8장 3절의 말씀을 인용하신다.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그리고 이어 나오는 이야기들을 통해서 예수님을 배고픈 이를 돌보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자신의 행동을 통해서 보여주신다. 그들을 육체적인 배고픔 뿐 아니라 영적인 배고픔도 돌보아 주신다 (5.1-7.29, 14.31-21, 15.32-39, 26.26-30).

  • 두 번째 유혹은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증명하기 위해서 자신의 힘을 과시해 보라는 유혹이다. 악마는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로 데려가서 하느님께서 구해주신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예수님께 뛰어 내리라고 이야기 한다. 악마는 시편 91장을 인용해서 하느님께서 천사를 보내시어 사랑하는 사람들이 악마에 의해 쓰러지는 일이 없도록 보호하시라는 구절을 든다. 예수님께서는 신명기 6.16절을 인용하시면서 악마의 이 말에 대응한다.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복음서가 계속되면서 예수님께서는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으로 충실하게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신다. 사람들의 요구를 들어주시고 그들을 치유하시고 힘을 북돋아 주신다. 힘을 과시해서 당신을 믿게 하시지 않으시고, 사람의 육을 취하신 하느님으로서 역설적인 방법으로 당신을 믿게 하신다.

  • 세 번째 유혹은 우상에 빠져 권력을 잘못 사용하는 것에 대한 유혹이다(8절-9절). 예수님의 수난 예고를 거부한 베드로(16.21-23)에게 “사탄아 물러가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은 응답을 듣게 되는 순간이 바로 이런 유혹에 빠져 있는 순간이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신명기 6.13절의 말씀을 인용하신다. “주, 너의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진정한 힘과 예배는 오로지 하느님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느님을 “경배하다” 라는 말, προσκυνήσεις 프로스쿠네세이스는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였다고 할 때 쓴 말 그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여자들이 경배하였다고 한 말과 같은 단어이다.

  • 마귀가 떠나가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나지만 (11) 마태오 복음 사가는 이런 유혹이 마지막까지 예수님을 괴롭혔음을 보여준다. 예수님 마지막 날에도 이런 유혹들이 변형되어 나온다.  "하느님을 신뢰한다고 하니, 하느님께서 저자가 마음에 드시면 지금 구해 내 보시라지.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하였으니 말이야."(마태 27.43)  

  • 천사의 시중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랑하시는 이들을 시험이 아무리 혹독해도 보호해 주시고 당신의 힘으로 감싸 주심을 드러내 준다.


생각거리 
        
오늘 독서는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이브가 유혹받는 장면이고 복음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유혹받는 장면이다.  독서와 복음은 우리가 어디에 있던 유혹은 우리와 함께 한다고 말한다. 유혹은 하느님이 만들어 주신 에덴 동산에도, 성전에서도, 광야에서도, 산에서도 있었다. 그가 누구든지,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태초의 인간이든지,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이든지, 유혹이 있었음을 이야기 한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도, 우리 자신에게도 유혹은 존재한다. 유혹이 있는 이유? 우리의 정체성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가 유혹을 식별해 나아가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누군인지,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 어떤 삶의 태도를 선택해야 하는지 알게 하는 기능이 유혹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나의 유혹 극복이 내 자신의 정체성을, 부모로서, 남편과 아내로서, 신앙인으로서 모습을 굳건히 설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기를 다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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