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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성경통독게시판
마카베오는 어떤 성경인가요?

70 지성득 [jaugustino] 2011-12-27

마카베오는 어떤 책인가요?

마카베오란 성서 이름은?

마카베오는 제2경전 중에서 바룩 다음에 나오는 성서로,구약성서의 맨끝에 위치한 책입니다. 마카베오는 마따디아의 한 아들의 이름이에요. 시리아 왕 안티오쿠스 4세의 종교박해에 맞선 종교항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한 중심 인물이라서, 그의 이름을 따서 성서 이름으로 삼았던 거죠.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마카베오 하권은 유다 마카베오의 항쟁을 중심으로 엮어졌지만, 상권은 마카베오뿐만이 아니라 아버지 마따디아를 비롯하여 마카베오 사후에 종교항쟁을 함께 이끌어 갔던 형제들의 이야기도 함께 나와요. 그래서 초기의 유다 문헌에서는 마카베오 상권을 이들 가문의 이름을 따서 ‘하스모니안’이라 부르기도 했답니다.

 

 누가 썼나요?

한 사람이 마카베오 상·하를 모두 쓰지는 않았어요. 마카베오 상권은 시몬의 아들 요한에 이르기까지 하스모니안 왕조의 공식적인 역사에 관심을 보이면서 그 가문의 확립과 연속성을 보여주고 있는 내용으로 보아, 하스모니안 왕조를 적극 지지한 사람이 히브리어로 썼을 거에요. 히브리어 원본은 전해지지 않지만, 히브리 관용어가 자주 언급되거든요.

반면에 마카베오 하권은 북부 아프리카의 키레네 출신 야손이 다섯 권으로 기록해 놓은 것을 후대 사람이 요약해 놓은 책이에요. 하스모니안 왕조를 언급하면서도 시몬을 좋지 않은 관점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2마카 10,18-22; 14,17-19)을 보면, 하스모니안 왕조를 반대하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 그리스어로 썼을 거에요. 그리스어 문장 실력이 대단한 것으로 보아 해외에 거주하는 유다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답니다.

 

 언제 썼나요?

마카베오 상권은 시몬이 죽은(기원전 134년) 이후, 로마에 의해 함락되기(기원전 63년) 전에 쓰여졌을 거라고 봐요. 대략 기원전 100년경으로 추정해요. 로마를 상당히 호의적으로 표현하고 있거든요. 하권의 자료로 사용된 야손의 책은 유다 마카베오의 행적만을 전하고 있어, 늦어도 기원전 160년(유다가 전사한 해)경에는 완성되었을 거에요. 그런데 서두에 실려 있는 편지(2마카 1,9)에는 분명히 188년(= 기원전 124년)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대략 이 무렵에는 야손의 책이 요약된 형태로 꼴을 갖추었을 것으로 생각돼요.

 

 왜 썼나요?

상·하권 모두 이스라엘 역사에 깊이 개입하시는 하느님을 일깨우고자 쓰여졌어요. 많은 유다인들이 일신의 안위를 위하여 민족을 배신하거나 죽음의 위협을 느껴 우상과 이방 관습을 받아들이는 풍토에서, 신앙과 민족을 지키려 목숨을 던져 순교한 이들의 이야기를 전함으로써, 하느님께 대한 굳은 신뢰만이 이스라엘이 살 길임을 되새기게 한답니다.

 

 

 <새김과 나눔>

마카베오서 저자는 우상과 이방 관습이 범람하는 가운데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불러일으키고자 합니다. 우리도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그릇된 가치관 가운데서 하느님을 믿는 신앙으로 꿋꿋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의 신앙을 굳건히 합시다.

율법을 굳게 지켜라(1마카 1-16장)

마카베오 전쟁의 시작(1마카 1,1-2,70)

모든 사람이 왕명에 굴복하여 조상들의 종교를 버린다 해도, 자기 가문만은 하늘이 주신 율법을 지켜나가겠다고 선언한 사람은 누구인가요?(2,19-21)

 알렉산더 대왕이 퍼뜨린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아, 이스라엘에서는 할례받은 흔적을 없애는가 하면 이방인들의 풍속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설상가상으로 시리아를 다스리던 안티오쿠스 4세가 이집트군을 쳐부수고는 그 여세를 몰아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유다교를 탄압하기 시작했어요. 안식일을 지키고 할례를 하면 무조건 사형에 처했죠. 이에 많은 사람들이 왕명에 따랐지만, 마따디아는 조상들의 계약을 지키겠다면서 저항운동을 시작해요. 마따디아 이후에는 유다 마카베오를 중심으로 항쟁이 계속됩니다.

 유다 마카베오의 항쟁(1마카 3,1-9,22)

유다와 그의 형제들이 성전을 정화하고 재봉헌한 달은 언제입니까?(4,52)

 마카베오라고도 불리우는 유다는 총 지휘관이 된 후, 수적으로 열세인 상황에서도 전쟁에서의 승리는 군대의 다수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늘이 내려 주신 힘에 달려 있다는 믿음으로 용감히 싸워요. 고르기아군을 엠마오 전투에서 크게 무찌르고 나서는, 더럽혀진 성전을 정화하고 재봉헌하는 기쁨을 누려요. 이후 적들에게 포위된 갈릴래아와 길르앗의 유다인을 구출하고, 니가노르군을 쳐부수고는 로마인과 맹약을 맺어요. 하지만 결국 베레아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전사하고 맙니다.

 요나단의 항쟁(1마카 9,23-12,53)

요나단은 누구의 속임수에 넘어가 포로가 됩니까?(12,41-53)

유다가 죽은 후 기세가 꺾인 항쟁의 불길은 요나단이 그 뒤를 이음으로써 다시금 불타 올라요. 바키데스군을 크게 쳐부수고는, 데메드리오와 알렉산더의 알력을 이용하여 자신의 입지를 넓혀 나가요. 이후로도 국제정세의 흐름에 따라 슬기롭게 처신하면서, 로마와 스파르타와 동맹을 맺어요. 하지만 트리폰의 속임수에 넘어가 포로가 되고 말아요.

 시몬의 항쟁(1마카 13,1-16,24)

시몬은 로마 사람들과의 동맹을 굳히기 위해서 무엇을 선물로 보냅니까?(14,24)

 요나단이 잡힌 후 트리폰이 유다 땅을 침입하려는 것을 보고, 시몬은 온 백성을 이끌고 맞서요. 데메드리오와 동맹을 맺고, 게젤과 예루살렘 요새를 점령하는 등 개가를 올려요. 하지만 프톨레매오의 흉계에 넘어가 죽고, 그의 아들 요한이 뒤를 이어요.

 

 <새김과 나눔>

하스모니안 가문은 격변하는 국제정치 안에서 자국의 이익을 증진시켜 나갑니다. 여러 가치관이 혼재되어 있는 이 사회에서 하느님 나라를 신장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살아서나 죽어서나

(2마카 1-15장)

이집트에 사는 유다인들에게(2마카 1,1-2,32)

동굴 속에 장막과 계약궤와 분향제단을 안치한 사람은 누구입니까?(2,5))

 예루살렘과 유다 땅에 사는 유다인들이 이집트에 사는 유다인 동포들에게 두 통의 편지를 띄워, 초막절과 성전 정결 예식을 지키도록 촉구해요. 이 예식은 외세의 압력과 그에 편승한 민족의 반역자들에 의해 환난과 위기에 처했던 민족을 구해 주신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의 축제임을 강조하고 있어요. 또한 그 과정을 재미있게 전하기 위해서 야손의 기록을 요약했다고 밝히고 있어요.

 종교박해와 순교자들(2마카 3,1-7,42)

이스라엘 안에 헬레니즘을 대거 확산시킨 대사제는?(4,10)

 시몬, 야손, 메넬라오스, 리시마코스 등은 부정한 방법으로 대사제직에 올라 그리스식 생활양식을 도입하는가 하면, 조상들의 율법에 따른 제도를 폐지하고 선조 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명예로운 전통을 짓밟아요. 심지어 상대방으로부터 대사제직을 뺏기 위해 군대를 동원했다가, 안티오쿠스 군대를 불러들이는 결과를 초래해요. 안티오쿠스는 대사제 메넬라오스의 안내를 받아 성전기물을 약탈하는가 하면, 사람들에게 이교예식을 강요해요. 하지만 엘르아잘을 비롯하여 일곱 아들을 둔 어머니는 박해에 굴하지 않고, 당당히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면서 죽음을 맞아요.

 유다의 승리와 성전의 정화(2마카 8,1-10,9)

유다 마카베오와 그의 부하들은 니가노르와 교전하기 전에 무엇을 읽습니까?(8,21-23)

유다 마카베오는 유다 민족의 전통을 꾸준히 지켜온 사람들을 소집하여 군대를 결성해요. 그리고는 니가노르와 싸워서 대승을 벌여요. 그런 와중에 안티오쿠스 4세는 비참한 최후를 맞고, 유다 일행은 예루살렘 성전을 새롭게 정화해요. 그리고 해마다 이 축제를 지킬 것을 법령으로 포고해요.

 다시 시작되는 박해와 부활 신앙(2마카 10,10-15,39)

전투에서 죽은 병사들을 위해 속죄제사를 드리기 위한 모금을 한 것은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12,43-45)

 화평하게 지내기로 약속되어 있는 상태에서, 일부 도시에서 유다인들이 학살되는 사건이 벌어져요. 그러자 유다 마카베오는 군대를 조직하여 곧바로 응징하고, 전투에서 죽은 사람들을 위해 속죄예식을 드리기 위한 모금을 해요. 부활에 대한 희망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이런 희망으로 유다인들은 자신들을 끝까지 탄압하던 니가노르를 무찌를 수 있었답니다.

 <새김과 나눔>

대사제들의 싸움은 결국 외세를 끌어들이는 비극적인 결과를 낳고 맙니다.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이와 같은 일들은 없었는지 한 번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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