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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49]하느님의 모상

51 정재우 [bastiano] 2000-10-01

찬미 예수님.

 

우리 신앙에 관심을 가지고 알고자 하시는 모습이 참 좋습니다.

좀 길 수도 있지만 끝까지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리 그리스도교는 예로부터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에 따라 창조되어 고귀한 존엄성을 지니는 존재라는 것을 인간 이해의 핵심으로 고수하며 선포해왔습니다.

그리고 현대적 의미의 인권 또는 인간 존엄성은 바로, 하느님으로부터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다는 데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교회의 가르침은 형제님께서 인용하신 창세기 1,26-28을 토대로 합니다.

 

창세기에서, 다른 피조물들의 창조에는 단지 한 마디의 명령만이 있었지만, 인간의 창조는 "사람을 만들자"라는 결의의 표명을 통해서 더욱 의미 깊게 시작되고, 하느님께서는 그 이전보다 훨씬 진지하고 열성적으로 임하시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이것은 피조물들 가운데서 인간이 차지하는 특수한 위치를 드러냅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과의 오래고도 깊은 통교의 체험으로부터 얻은 신앙입니다.

 

여기서 인간이 하느님을 닮았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인간의 영적인 부분만이나 신체적인 부분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그의 존재 전체에 있어서 하느님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을 창조한 창조주의 모상에 따라, 전체의 모습이 지고한 품위를 지닌 그분의 살아 있는 복사품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하느님과 아주 특별한 연관성을 지닙니다.

그리고 인간은 하느님의 가장 고귀한 걸작품이며, 절정이며 동시에 완성입니다.

 

이러한 존엄성은 성서에서뿐만 아니라 인간의 모습에서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현대 세계의 사목헌장] 제1부, 제1장 전체에 걸쳐 이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된 인간의 육체는 물질세계의 정점이며, 물질세계가 창조주를 찬미하는 장(場)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육체도 마지막 날에 부활할 것으로서 존엄성을 갖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은 육체성을 초월합니다. 그 내적 품위로써 일체의 물질세계를 초월하여, 자신의 마음속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2. 인간이 만물을 초월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인간의 지성에 의거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지성은 하느님의 지혜로부터 빛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서 인간은 유형한 세계를 뛰어넘어 무형한 세계로 옮아갑니다.

 

3. 인간의 양심은 인간의 가장 은밀한 안방이고 인간이 하느님을 만나는 지성소이며,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는 곳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 행위의 가장 기본적인 기준이 되는 법을 이 양심 안에 새겨 주셨습니다.

 

4. 인간의 참된 자유는 인간 안에 새겨진 하느님의 모상을 말해 주는 표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창조주를 따르고 자유로이 완성에 이르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의 자유는 죄로 손상되어 하느님의 은총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5. 인간의 존엄성은 죽음의 신비 앞에서도 드러납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성 전체로써 당신과 영원히 결합하여, 불멸의 생명을 나누어 받도록 인간을 이미 부르셨고, 거듭 부르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그 나약함과 온갖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존귀한 존재입니다.

인간은 이 지상에서 그 자체를 위하여 하느님께서 원하신 유일한 피조물이며, 영원으로부터 하느님이 원하시고 하느님이 선택하시어, 은총과 영광에로 부름 받고 예정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유일무이하고 반복되어질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교의 구원관은 불교와 같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란 우리 말로 "구세주"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예수님을 우리의 구세주, 구원자로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고자 노력하여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지만, 우리의 구원은 우리 주님께서 내려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그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노력만으로 완성을 이루고 구원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은 그리스도교의 신앙에 맞지 않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평화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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