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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그리스도인의 수난

23 정탁 [daegun011] 2001-08-09

  그리스도인의 수난(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은 느낌)  

 

* 성인들의 수난을 통해 우리 그리스도인의 여정이라는 것이 ’기쁨에 넘쳐 노래를 부르며 가는것만은 아님’을 기억하자.

  

얼마 전에 소화 데레사의 믿음의 시련에 대한 책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 성녀의 생애의 종말은 깊은 어둠에 싸였다가, 하느님으로부터 경탄할 만한 은혜를 받아 신비로운 상태로 들어간다. 이에 대해 성녀 자신도 표현할 길 없는 영혼의 시련이어서 다시 입에 올리는 것조차 두렵노라고 했다.  성녀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자신을 언제나 안개가 자욱 한 마을에서 태어났다고 가정해본다. 나는 햇빛이 온 세상을 비추는 아름다운 풍경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아름다운 고향을 늘 꿈꾸며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작 스럽게 나를 둘러싼 안개들이 더욱 짙어지고 영혼까지 덮어버려 영혼 안에 있었던 내 고향인 천국의 아름다운 모습까지 되찾을 수 없게 되었다. 모든 것이 사라졌다. 내가 갈망하고 있던 빛나는 천국을 기억함으로 어둠으로 싸인 마음에서 벗어나 보려 했으나 피곤만이 덮쳐들고 고통은 더욱 심해질 뿐이었다. 어둠은 죄인들의 소리를 빌려 나를 조롱하기 시작했다.  ’너는 빛을 그리워하고 있다. 아름답고 향기로운 고향을 꿈꾸고 있고 이 아름다운 것들의 창조주를 영원히 소유할 것을 꿈꾸고 있다. 너는 언젠가는 너를 둘러싸고 있는 이 안개를 벗어나 그곳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앞으로 나가보라. 더 나가보아라. 너는 네가 바라던 것이 아니라 보다 더 깊고 어두운 밤, 아무것도 없는 밤을 가져다주는 죽음을 만날 것이다. 이것을 기다리면서 기뻐하라.’"(주인장 註: 내 경험으로는 누군가가 자신을 이렇듯 조롱하는 느낌은 믿음의 시련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일반적인 일인 것 같다. 또 한편으로는 남에게는 조롱받기 싫으면서도 ,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스스로는 자꾸만 비관적이 되어야, 스스로를 학대해야 마음이 편해짐을 자주 경험하기도 했었다)

 

"천국의 행복을 노래 할 때, 하느님의 영원한 소유를 노래할 때에도 아무 기쁨도 느끼지 않는다. 단순히 내가 믿기를 원하는 것을 노래할 뿐이 기 때문이다. 때로는 물론 나의 밤을 비춰주는 작은 빛을 만나기도 한다. 그때, 짧은 순간이지만 시련이 중단된다. 그러나 즉시 사라져버리는 이 빛에 대한 기억은 기쁨을 주기보다 나의 어둠을 더욱 짙게 해줄 뿐이다. "  9월 30일, 죽음의 날에 성녀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위안의 흔적이라곤 하나도 볼 수 없는 순수한 임종의 고통이다." 이 이야기는 깊은 감동을 준다. 함께 살았던 수녀는 시복 조사에서 데레사의 말을 이렇게 옮긴다. "만일 여러분이 내가 어떤 어둠에 빠져 있었는지 안다면‥‥ 나는 후세를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 지상의 삶이 끝나면 다음부터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나에게서 모든 것이 사라지고 사랑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성녀는 자신이 믿지 않는 것처럼 느꼈지만 사랑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 표현은 서로 상반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무서운 정화인 것이다. 이 체험은 그리스도인이 걸어가야 할 여정이다.  

다른 성인 안에서도 이와 비슷한 고백을 찾아볼 수 있다.  십자가의 성바울로는 마지막 병상에서 의미깊은 이야기를 했다. 그는 함께 살던 형제에게 이렇게 털어놓았다. "나는 깊은 밀림지대로 도망가 숨어버리고 싶었소. 저 창문에서 뛰어 내리고 싶은 강한 충동도 느꼈다오. -바로 자살에의 유혹이다-격심한 절망의 유혹까지 당했다오" 그의 이야기가 계속된다. "천상의 감미로움을 맛본 영혼은 그 다음에 모든 것을 벗어버려야 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도 완전히 저버림을 받은 것처럼 느낄때가 오는 것이오. 그때가 오면, 하느님은 나를 바라보시지도 않고, 내가 하는 것은 모두 잘못뿐이라고 분노하시는 것처럼 느끼게 되는 것이오. 아 ! 나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소. 그대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은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고통은 어떤 고통과도 비교할 수 없는 너무나 큰 고통이라는 것이오." "나는 믿음도 희망도 사랑도 없는 것처럼 느끼오. 성난 바다 한가운데에서 아무도 구원해줄 사람이 없고 손에 잡을 것도 주어지지 않는 것 같소. 하느님으로부터도 아무 빛도 없고, 좋은 생각도 떠오르지 않소. 영적생활에 대해서도 아무 이야기도 할수 없소. 모든 것이 말라버린 황폐한 산꼭대기에 홀로 서 있는가 하면 얼음 구덩이 속에 묻혀버린 듯한 느낌이 들 뿐이오. 염경기도 때에도 묵주알을 넘기는 것밖에 할 수가 없소." 성인과 함께 살던 다른 형제는 이렇게 말한다. "그분이 누워 계시던 방에 들어간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버림받은 사람이다’라고 세번이나 외치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 목소리는 하도 애절해서 누구라도 동정하지 않을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 "

물론 이러한 상황은 사람의 성격과 관계가 있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은 어려움이 닥칠 때, 좌절하게 될 때, 병중에 있을 때 심한 위기와 유혹에 시달리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성인들에게, 저버림을 당한 듯이 느껴지는 시련까지 허락하신 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질 수 있는 현실적인 상황이므로, 우리에게도 허락된다면, 이 길은 이미 십자가에 달리셨던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길이고, 바울로와 많은 성인들이 걸어간 길임을 생각해야 한다. 바울로는 디모테오에게  "모두 다 나를 버리고 갔다"라고 썼으나 즉시 덧붙여 말한다. "주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며 나에게 힘을 주셨습니다‥‥주께서 나를 사자의 입에서 구해주셨습니다. 앞으로도 나를 모든 악한 자들에게서 건져내어 구원하셔서 당신의 하늘 나라로 인도하여주실 것입니다. 그분께 영광이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2디모 4,17-18), 바울로 안에 계신 성령의 힘은 절망의 유혹도 넘어가도록 해주었다. 그러나 바울로의 생애의 마지막 15분이 빛나는 확신의 때였는지, 아니면 어둠의 순간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신비로운 인간의 길은 죽음이라는 마지막 체험의 순간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에 대한 반성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이 겪게 되는 고통을 덜어주고, 이미 어려움중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하여 깊이 숙고할 필요가 있다. 중한 병중에 있는 환자는 대개 마음을 열기가 아주 어렵다. 마음을 연다면 완전히 신뢰하는 사람에게만 할 수 있다. 우리의 사명은 사람들이 우리에 대한 신뢰를 갖게 하여, 죽음이 가까워질때 겪게 되는 믿음과 희망에 대한 시련을 잘 이겨낼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소화 데레사는 생애를 끝낼 무렵 심한 동요와 공포에 사로잡혀 동료들이 모두 두려워 할 정도였다. 그때 데레사에게서 들을 수 있었던 말은 " 임종중의 사람들을 위해서 얼마나 기도를 많이 해야 하는지! 만일 여러분이 이것을 안다면....."이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성인들의 생애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의수난과 바울로의 수난을 더욱 깊이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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