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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 5. 주님공현 대축일을 보내며

193 김종업 [rlawhddjq] 2020-01-05



2020. 1. 5. 주님공현 대축일을 보내며



(마태오복음 2,1-18)

동방 박사들의 방문

1 예수님께서는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러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2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 4 헤로데는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을 모두 모아 놓고, 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5 그들이 헤로데에게 말하였다.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사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6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주요 고을 가운데 결코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 7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시간을 정확히 알아내고서는, 8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

9 그들은 임금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났다. 그러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10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11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12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

 

이집트로 피신하시다

13 박사들이 돌아간 뒤, 꿈에 주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 버리려고 한다.” 14 요셉은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15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헤로데가 아기들을 학살하다

16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크게 화를 내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보내어, 박사들에게서 정확히 알아낸 시간을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17 그리하여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18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울음소리와 애끊는 통곡 소리.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

 

예수님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죠 그리고는 헤로데의 칼을 피해서 애굽으로 피신을 하세요. 성경은 그 사건이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라는 구약의 예언 성취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2장에 나오죠 그 사건은 예수님께서 출애굽 한 이스라엘의 삶을 그대로 사실 것임을 암시하는 사건임과 동시에 율법주의와 유대주의로 자신들의 힘과 가치를 숭앙하는 이스라엘 자체를 힘의 세상인 애굽으로 선언해 버리는 거예요.

예수님이 이스라엘에서 애굽으로 가셨는데 성경은 하느님의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다고 그런단 말예요. 졸지에 유대주의의 이스라엘이 애굽이 되어 버리는 거예요. 하느님이 그걸 부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서 베들레헴 지역의 두 살 미만의 남자아이들이 모두 도륙을 당하는 일이 발생해요. 그 흐름을 보시란 말예요.

 

(마태 2:15~18) 15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16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크게 화를 내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보내어, 박사들에게서 정확히 알아낸 시간을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17 그리하여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18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울음소리와 애끊는 통곡 소리.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

 

이상하지 않으세요 하느님이 분명 요셉에게 그 자리를 피하라고 말하셨죠 그러면 그때에 다른 어미들에게도 전갈을 보내서 그 자리를 피하게 할 수는 없었을까요 왜 다른 얘들은 다 죽게 놔두세요 예수님만 살짝 들어서 애굽으로 보내신단 말입니까. 하느님께서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드신 거예요. 하느님은 성경의 독자들에게 뭔가를 교훈하시기 위해서 어린아이들을 다 죽여 버린 거예요. 그래서 그 하늘에 뜬 별이 동방박사들을 일부러 헤롯에게 데리고 간 거예요. 죽이라고요. 아니 그 별이 미쳤지, 바로 그냥 예수님 태어나신 구유로 갔으면 될걸,, 왜 헤롯에게로 동방박사들을 데리고 가서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게 하냐구요 죽이라는 겁니다.

 

여러분은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라는 호세아의 예언이 인용된 곳에 라헬의 통곡이라는 예레미아의 예언이 이어지고 있는 곳을 주의하여 보셔야 해요. 지금 성경은 바리새인으로 대표되는 이스라엘의 그 율법주의 자체를, 힘의 원리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그 애굽으로 규정을 해 버리시고 그래서 예수님을 거기서 빼내는 거예요. 예수님이 첫 번째 엑소더스를 하고 그 뒤를 따라 하느님의 백성들이 엑소더스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정작 뭐였냐면, 이스라엘의 유대주의, 율법주의였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거기 와서 죽으시는 거예요. 애굽은 바로 교회 안에 그러한 율법주의, 유대주의의 모형으로 등장했던 거지, 애굽이 쳐 죽일 놈들이 아니라니까요. 그게 우리 안에 있는 바로 그 옛 자아그 모습이란 말예요.

 

그렇게 성경은 바리사인으로 대표되는 이스라엘의 율법주의 자체를 힘의 원리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애굽으로 규정해 버리고 그곳에서 사는 모든 자들은 모두 다 죽어야 할 자들임을 어린아이들의 죽음으로 주지시키는 거예요. 다 죽어야 되는 거라는 거예요. 애굽이니까. 두 살 미만의 아이들은 어떤 선한 일이나 악한 일을 자의에 의해서 내어 놓기도 전에 죽어야 할 자로 분류가 되는 거예요. 이걸 원죄라고 해요.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은혜가 가입하지 않으면 다 죽어야 할 존재예요. 죽은 흙이니까. 나면서부터 죽어야 할 자로 분류가 되는 자들이 자라면서는 오죽하겠어요

 

그러니까 두 살 미만의 아이들이 다 죽었다는 건..거기에 사는 모든 자들은 다 죽어야 할 자들이라는 선언이란 말입니다. 마태오는 그걸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통곡하는 것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어요. 이 예레미아의 예언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대의 멸망과 관계있는 예언이죠 라마라는 곳은 남유다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갈 때 집결된 곳이에요. 베냐민 지파의 성읍이죠 여호수아 18장에 나오죠. 그 라마는 라헬의 무덤이 있는 샐사 부근이에요. 예레미아 예언자는 이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유다 백성들을 바라보면서 마치 라헬이 그 무덤 속에서 자기 자식들이 끌려가는 걸 보고 통곡하는 것으로 묘사를 한 거예요.

라헬의 두 아들이 요셉과 베냐민, 요셉의 큰 아들은 에브라임, 북이스라엘의 대표 지파가 에브라임이죠 망했잖아요 남유다는 베냐민. 라마가 또 베냐민의 땅이고, 요셉과 베냐민, 두 아들을 다 잃은 거예요. 그래서 성경이 라헬을 이스라엘의 어미라고 하는 거죠. 그렇게 이스라엘 전체가 다 멸망했다는 것은 무슨 뜻이에요 모든 인간은 다 죽어야 된다는 뜻이에요. 하느님의 백성으로 택해진 그자들도 원래 다 죽어야 된다는 그런 뜻이에요.

 

그렇게 다 죽어야 되는데, 그래서 두 살 미만의 아이들이 다 죽었는데, 라헬이 위로받기를 거절하죠 왜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건 단 한 가지 밖에 없어요. 죽은 자식이 돌아오는 것 이외에 다른 건 절대 위로가 안돼요. 그런데 예수님의 탄생을 이야기하면서 이 이야기를 하는 건.... 예수가 바로 그 죽은 아들을 살리러 왔다 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거란 말입니다. 한 아기가 와서... 죽음에 던져져야 할 하느님의 아이들을 선택하여 살려 내는 거예요. 그걸 구원이라고 해요. 그렇게 예수는 죽어야 할 죄인들을 죄에서 구원하러 오신 것이지, 이 죄악의 세상에서 그들의 일상을 풍요롭게 해 주시기 위해 오신 게 아니란 말입니다. 인간들이 원하는 그런 복을 주어서 인간들의 역사 속에서의 일상을 풍요롭게 해 주러 오신 분이 아니란 말입니다.

 

(마태1:21)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모든 백성이 아니에요. 자기 백성만. 죄에서 구원. 그게 메시아란 말예요. 그렇게 구약적 이스라엘의 율법주의를 폭로한 성경은 역사적 애굽에서 예수님을 다시 불러 내시죠 예수님께서 출애굽 이스라엘의 여정을 그대로 밟고 계시는 거예요. 예수님은 애굽에서 나오셔서 세례를 받으십니다. 이게 지금 마태복음의 흐름이에요.

세례라는 건, 애굽의 이스라엘이 죽고 가나안의 이스라엘이 새롭게 창조되는 구원의 모형이에요. 그래서 물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의식을 행하는 거죠. 그것도 하느님의 주권과 능력에 의해 성취될 새 창조의 모형이에요.

 

첫 창조 때 무대 배경이 어땠죠 수면 위에 하느님의 영이 감돌고 빛이 있으라 라는 하느님의 말씀이 떨어지자 창조가 시작됐잖아요. 예수님의 세례 현장은요 저주 받을 구약이 빠져 죽을 물이 있고,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님 자신이 계시고 직접 하늘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또 떨어져요. 그리고 그 위에 하느님의 영, 성령이 비둘기처럼 임한단 말입니다. 이게 새 창조라는 거예요. 첫 창조에서 모형 되었던,

그리고는 광야로 나가셔서 40일 시험을 받으세요. 그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께서 이제 12제자를 모으시죠. 그건 교회입니다.12제자, 하느님의 교회를 대표하는 12제자를 모아서 그들을 예수님이 하느님 나라의 도를 전하는 어떤 산으로 끌고 올라가시는 거예요. 이건 정확하게 출애굽 이스라엘의 삶을 회복시키고 완성시키며 가는 모습이에요.

 

어린 양의 피의 공로로 살아난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하여 홍해를 건너죠 그걸 바오로가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는다고 그래요. 고린도전서 102절에서, 그 홍해에서 애굽 군대가 빠져 죽었다라는 건, 애굽화된 이스라엘의 육적 자아의 죽음을 상징하는 거예요.

 

여러분 미국이 역사가 200년 밖에 안됐는데 여기 한국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요. 그런데 400년간 이스라엘이 애굽에 들어가 있었을 때, 그들의 그 정체성이 확립이 됐을 것 같으세요 애굽사람이에요. 애굽에서 태어났고, 애굽의 학문을 배웠고, 애굽의 것 먹고, 애굽에서 생활했어요. 애굽의 것을 배웠고, 애굽사람이에요.

 

그걸 저주의 바다 홍해에 빠뜨려 죽이는 거예요. 그리고는 가나안 쪽에서 봤을 때 새롭게 창조된, 하느님의 은혜로 새롭게 창조된 하느님의 백성이 살아 올라오는 걸, 세례라고 한단 말입니다. 그걸 나중에 이스라엘의 할례를 통하여 다시 확인 시켜주죠 할례와 세례는 그 정신과 내용이 똑같은 겁니다. 그런데 할례를 길갈에서 행하게 하면서 뭐라고 그래요 애굽의 수치가 굴러갔다고 그러죠. 그러니까 홍해 사건은 애굽의 수치, 이스라엘의 애굽화를 죽여 버리는 거예요. 그게 홍해예요. 그게 세례란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굳이 이스라엘을 홍해로 몰고 가신 건, 이스라엘 속에 있는 애굽을 죽여 버리기 위함이었던 거예요. 그리고는 40년 광야를 살게 하세요. 이스라엘은 그 광야에서 죽어야 할 자로 폭로가 되죠. 이게 우리의 인생입니다. 하느님의 법을 지키기는 개뿔이나 하나도 못 지키고, 이건 다 죽어야 될 자구나, 폭로되고 죽어요. 거기서 다. 그리고 새로운 2세대가 여호수아, 예수라는 인물을 앞세워서 은혜로 다시 요르단강을 가르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거예요. 그게 구원이란 말입니다. 이 과정이 마태복음에서 그대로 재현이 되고 있는 거예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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