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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교리
세례명 바꿀 수 있나요?

26 수유1동성당 [suyu1] 2008-05-03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세례명은 바꿀 수 없습니다. 교회법에는 세례명을 바꿀 수 있는 법 규정이나 절차에 관한 규정이 없습니다.

세례명과 관련한 규정은 "부모와 대부모 및 본당 사목구 주임은 그리스도교적 감정에 어울리지 아니하는 이름을 붙이지 아니하도록 보살펴야 한다"는 제855조입니다.

견진성사 때 세례명을 바꾸거나 덧붙일 수 있다고 들으신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다만, 교황은 교황직에 오르면 전통과 관습에 따라  새 이름을 정합니다. 

수도자들은 서원 때 수도자명을 새로 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황이나 수도자들도 직함에 따른 새 이름과 서원에 따른 수도자명을 정한 것이지, 본래 받았던 세례명을 바꾼 것은 아닙니다. 세례명은 그대로 남습니다.

가능한 것은 견진성사 때 본래의 세례명에 또 다른 이름을 덧붙일 수는 있으나 본래의
세례명을 바꿀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마리아'라는 세례명에 '스텔라'라를 덧붙여 '마리 스텔라'라고 부를 수는 있습니다.
 
신자들이 세례명을 바꾸게되면 세례대장, 혼인대장 등에 기록된 세례명을 일일이 수정해야 하는 교회 행정적인 불편함도 생길 것입니다.
 
세례명은 세례성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난 신자가 받은 자랑스러운 이름입니다. "세례에서 하느님의 이름은 인간을 성화시키며, 그리스도인 교회에서 부르는 자신의 이름을 세례때 받는다.
 
그것은 어떤 성인의 이름, 곧 자기의 주님께 모범적으로 충성을 다 바친 한 제자의 이름일 수 있다.  수호성인은 사랑의 모범을 보여 주며 전구를 보장해 준다. '세례명'은 그리스도교의 신비나 덕을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2156항)
 
세례명을 언제부터 붙이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3세기 중엽 이후에 태어난 아이에게 성경에 나오는 이름이나 성인들과 순교자들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관례였다는 것만을 확인할 수 있을 뿐입니다.
 
4세기 이후 그리스도교가 점차 국교로 자리 잡게 되자 신앙과 교회의 의미를 지닌 이름들이 신자들의 이름으로 지어졌습니다. 예를 들면 아타나시오(Athanasius, 불멸), 아나스타시오(Anastasius, 부활), 살루시아(Salutia, 구원)등이 있으며, 교회의 축일 등과 관련된 이름들 즉 에피파니오(Epiphanius, 주님공현), 나탈리오(Natalio, 성탄), 파스카시오(Pascasius, 부활시기)등이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교회의 이상을 의미하는 이름들로는 테오둘로(Theodulus, 하느님의 종) (... 중략)등이 있으며 그리스도교의 덕을 뜻하는 이름들로 아가페, 피데스, 스페스 도 자주 불러졌습니다. .... 중략...
 
현재 사용되는 <어른 입교 예식>에는 ' 신입 교인에게 새 이름을 처음부터 주는 풍습이 있는 비그리스도교 지역에서는 주교회의의 결정에 따라 예비 신자가 될 때에 즉시 새 이름을 줄 수 있다. 성인의 이름이나 지역 문화권에서 상응되는 이름을 줄 수 있다"(88항)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인 성녀 그리고 성경 속에 나오는 위대한 예언자(엘리야, 사무엘..) 왕 (다윗, 솔로몬...) 지도자(모세, 여호수아, 드보라... ) 사도(베드로, 바오로, 바르나바...) 등을 세례명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신자들은 세례 때에 성인들과 그리스도교적인 의미의 새 이름을 받으며, 일생을 통해 특별히 그 이름의 성인을 수호성인으로 공경하여 그 성인의 보호를 받으며 신앙인의 삶을 살게 됩니다.
 
또한 세레명은 그리스도교 신비나 덕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평생 그 성인의 삶을 본받아 따르거나 세례명이 지시하는 그리스도교적인 이상을 실천하며 더욱 그리스도교적인 삶을 살도록 하는 데 그 본질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한국 가톨릭 대사전, 제7권 4899~4900쪽 참조)
 
토마스 사도는 놀림을 당할 세례명이 아닙니다. 토마스 사도는 예수님 부활의 현장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부활의 신체적 검증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합리적이며 과학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예수님 부활과 성모님의 처녀 잉태를 잘 믿지 않는 현대인들이 토마스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토마스는 예수님 부활을 목격하고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 21,28)이라는 장엄한 신앙 고백을 통해 예수님의 신성을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이 자리에서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1, 29)라고 선포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발현을 직접 체험하는 이점이 없어도 믿는 사람들을 위한 표지판 역할을 합니다.
 
신앙인이라면 자기 세례명을 자랑스럽고 존귀하게 여기며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 참소중한 당신, 2007년 3월호, 이것이 궁금해요?의 오용호 신부님 글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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