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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5월 7일 (화)부활 제6주간 화요일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하계동 메아리
"기꺼이 나의 십자가에 ...'/성주간--[하계동 메아리 705호]

31 고창록 [peterkauh] 2006-04-09

 

[주님 수난 성지주일]


              기꺼이 나의 십자가에 스스로 매달립시다.


  [이사 50,4-7]“나는 욕설을 받지 않으려고 얼굴을 가리우지 않는다.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을 줄 알고 있다.”

  [필립 2,6-11]“그리스도는 당신 자신을 낮추셨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높이                     올리셨다”

  [마르 14,1-15,47]“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외치신 절규는 우리도 우리 생애에서 자주 반복하는 아픔의 표현입니다. 어려운 시련이 부딪칠 때마다, 눈물과 슬픔이 엄습해 올 때마다, 그리고 캄캄한 절망이 우리를 뒤덮을 때마다 우리는 하느님을 원망하고 세상을 미워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 때문에 빛나는 새벽을 만나게 됩니다. 사형수를 매다는 십자가 형틀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잘 모릅니다. 기록에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시기 수백 년 전부터 중동 여러 나라에서 사용되어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형의 절차는 이렇습니다. 먼저 죄인을 심하게 고문을 해서 초주검을 만듭니다. 피가 나올 때까지 때려서 미리 반쯤 죽여 놓는데 그래야 십자가 위에서 덜 고통 받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조롱의 의미도 있습니다.


그리고는 사형수를 사형장으로 끌고 갑니다. 앞에는 죄의 내용을 적은 패를 든 자가 서고 뒤에는 십자가를 짊어진 죄인이 따르는데 그 옆에는 무장한 군인들이 지키면서 따라갑니다. 형장에 도착하면 죄인을 십자가에 누이고 좌우 손에 못 박고 두 다리는 헐겁게 묶습니다.


(예수님께는 못을 박았습니다.) 그리고 양 허벅지 사이에는 나무를 끼워서 매달릴 때 몸무게를 지탱케 해 줍니다. 그래서 미리 준비 한 말뚝에 십자가를 세우면 죄인은 매달린 채 주리고 목말라 못 견뎌서 죽는답니다. 어떤 이는 일주일 이상 산다고도 하나 예수님은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참으로 무력했습니다. 당신이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 위에서 내려와 보라고 사람들이 조롱을 했지만 주님은 내려오지 않으셨습니다.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까지도 십자가에서 내려온다면 예수를 믿겠다고 했지만 그래도 그분은 내려오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행적으로 보아 그가 구름을 타고 천상의 군대를 이끌고 오실 줄 알았으나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래서 실망했으며 예수님이 힘없이 일찍 죽자 제자들 까지도 도망쳤습니다. 도대체 자기들을 믿고 따랐던 주님이 나무에 매달렸다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요 부끄러운 일이었을 뿐입니다.


성서(신명21,23)에 보면 나무에 달린 시체는 하느님께 저주를 받은 것이라고 규정했기 때문에 이 참혹한 광경 앞에서 사람들은 넋을 잃었습니다. 아버지 하느님도 침묵만 지키셨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십자가에 매달리도록 그냥 두셨으며 처참한 고통과 죽음 속에서 신음하는 아들을 그저 지켜보고만 계셨습니다. 하느님의 능력과 힘도 세상 앞에 너무도 무기력하게만 보였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예수님을 죽음에서 건져 주지 못했습니다. 안타까운 십자가의 길에서 그를 빼내지 못했습니다. 모든 것은 거기서 허망하게 끝장이 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바로 이와 같은 허무와 절망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 밤이 걷히고 있을 때 주님은 이미 부활하시어 무덤에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이 헐레벌떡 달려왔을 때는 이미 빈 무덤이었으며 그리고 그들 생애에 결코 잊지 못할 새벽은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처럼 자신의 몸을 온전히 십자가에 매달았을 때에 주어졌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묵상해 보면 인간의 고난도 마찬가지입니다. 고통 받는 아픔 속에는 절망밖에 없으나 우리의 고통을 십자가에 매달 때에 부 활의 아침은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처럼 짊어져야지 그것을 피해서 도망간다면 인생은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고달프게 됩니다. 예를 들어 가난한 사람은 가난을 짊어지고 가야 합니다. 안 짊어지겠다고 하면 도둑이나 강도가 됩니다. 불구자는 불구의 병을 짊어져야 합니다. 짊어지면 생각보다 훨씬 가볍고 그리고 그 위에서 빛나는 은혜가 주어집니다. 만일에 그것을 계속 거부하여 불평만 한다면 그는 병이 아니라 자신의 못난 판단 때문에 평생 징징거리며 불행하게 됩니다.


세상은 묘합니다. 내가 내 십자가를 저주하면 십자가도 나를 저주하고 세상도 나를 저주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그러나 내가 내 십자가를 은혜로 바라보면 십자가도 나를 은혜로 바라보고 세상도 나를 은혜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그리고 실상 참된 축복은 십자가의 아픔을 통하지 않고는 찾아오지 않습니다. 마치 바늘과 실처럼 십자가의 아픔과 부활의 기쁨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백인대장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는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하면서 주님의 참 모습을 바라봤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또한 우리의 아름답고 인간적인 위대한 모습을 바로 그리스도처럼 십자가에 온전히 매달리는 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제 부활이 한 주일 남았습니다. 부활의 새벽은 벌써 우리 안에서 밝아오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우리의 십자가를 용기 있게 지고 믿음으로 매달리도록 합시다. 아멘.


[전례와 교리]
성주간이란?

주님 수난 성지 주일로부터

부활 대축일까지

승리와 기쁨으로 시작되고 끝나는 한 주간입니다.


성 주간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죽으심과

부활을 기념합니다.

예수님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날들에

발생한 사건들을 기념하면서 예수님의

인류를 위한 희생을 통해 가능해진

영생에 대한 우리의 희망을 다지는

것입니다. 


사순시기 가장 중요한 마지막 한 주일

을 기념합니다. 재의 수요일에 시작된

부활을 위한 영성적 준비를 마무리하는

단계로서 기도와 성찰과 하느님에

대한 흠숭과 찬양을 통해 자신의 신앙을

새롭게 다집니다.


[마태복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심

제자들에게 지시하심(마태21:2)

예루살렘에 앞서 올리브 산에

도착하시자 예수님께서는 이런

당부와 함께 두 제자를 예루살렘에

보내십니다. “먼저 고을로 들어가거라.

나귀가 새끼와 함께 묶여있는 것을

보게 될 터인데 그것들을 끌고 오너라.”

그 말씀에 따라 제자들이 나귀들을 끌고

돌아와 나귀 등에 옷을 깔아 예수님이

앉으시도록 했습니다.   


군중들의 환영과 환호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서시자 한 무리의

군중이 인사를 하며 맞이합니다. 그 중 일부는

옷을 벗어 지나가실 앞길에 펼쳐놓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깔거나 흔들며

환영합니다.


 군중들의 환호로 온 도시가 흥분에 휩싸입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호산나(우릴 구하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이여 축복을

받으소서. 하늘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21:9)




(성목요일)

예수님 제자들과 함께 하신 최후의 만찬


빠스카 축제(유월절)의 준비(성 목요일)

예수께서는 두 사도를 성 내의 누군가에게

보내시며 이렇게 알리도록 하셨습니다. “나에게

(마지막) 때가 가까이 왔다. 내가 제자들과 너의

집에서 유월절을 지내겠다.” (마태26:18) 제자들

은 예수님께서 말씀에 따라 만찬을 준비합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으심

요한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만찬 중에 제자들의 발
을 씻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스스로를 낮추시는
겸손의 이 모범은 제자들에게 신분에 관계없이
사람을 섬기고 존경하라는 가르침의 방식이었습니다.


빵과 포도주를 제자들과 나누심

제자들과의 만찬 중 예수께서는 빵을 축복하시고

나누어 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받아먹어라.

이것은 나의 몸이다.(마태26:26). 예수께서는 같은

방법으로 포도주를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습

니다. “너희 모두 이것을 딸아 마셔라. 이것은 많은

이들의 죄의 용서를 위해 내가 흘릴 계약의 피다.

(마태26:27-28)


베드로의 부인을 예고하심

만찬을 마친 다음 예수님과 제자들은
올리브 산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곧 자신을 버릴 것이라고
예고하셨는데, 베드로가 자신은 결코

예수님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우겨대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
습니다. “진실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너는 닭이 울기 전에 나를 세 번 부인

할 것이다.“(마태26:34)    


겟세마니 동산에서 고뇌하심

겟세마니 동산에서 예수께서는 홀로 따로 나가시어

기도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운명을 하느님께

맡기고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가능하시다면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마태26:39)


(성 금요일)

유다의 배반

유다는 입맞춤의 표시로써 곤봉과
검으로 무장한 군중에게 예수님의
정체를 확인 시켜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죄의 용서 대가로
자신을 희생할 것을 택하시고

평화롭게 끌려가시기를 바라고 계셨

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예고하신대로 제자

들은 달아났습니다.


모독의 죄명을 받으심

고위 제사장 카야파의 집에서 예수님

은 조롱 당하시고 뺨을 맞으셨으며,

하느님에 대한 불경한 말을 했다는

이유로 고발 당하셨습니다. 고발자들은

예수님을 처형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밖에서는 닭이 울었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안다는 사실을 세 번 부인했습니다.


본시오 빌라도 앞에서 재판 받으심

유대의 총독으로서 빌라도만이

사형언도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기에 이 재판은 불가피한

절차였습니다. 비록 빌라도는

예수님이 무고하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군중의 압력에 굴복

하여 예수님께 십자가 처형을 언도

했습니다. 


십자가의 길


골고타 언덕(해골 산)으로 가시는

도중에 예수님은 회초리를 맞으시고

조롱 당하시고 침 뱉음 당하시고

가시 왕관을 씌움 당하셨습니다.

키레네의 시몬이 예수님께 지워진

무거운 십자가의 운반을 돕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

예수께서는 두 명의 죄수들 사이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매달리셨습니다.

극심한 고통 중에도 하느님께 이

범죄자들을 용서해 주시도록 청하

십니다.


정오부터 3시까지 어둠의 장막이

대지를 덮었습니다. 요한에 따르면

그 때 예수께서는 “다 끝났다.”라고

하시며 고개 떨구시며 돌아가셨

습니다.


무덤에 묻히심

아리마태아의 요셉이 예수님을 매장하도록

빌라도의 허락을 받습니다. 요셉은

예수님을 아마포 수의에 싸서 무덤

안에 놓고 입구에 돌을 굴려 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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