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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상복지관 자유게시판
선교본당은 가난한 이들께 다가서는 길

42 정중규 [mugeoul] 2000-12-05

선교본당이 가난한 이들께로 다가서는 길 되길

 

  몇몇 교구에서 시행하고 있는 선교본당이야말로 시대의 징표를 교회가 바르게 읽은 몸짓이요 마음씀이라 여겨진다.

  분명 선교는 교회의 본질이요 지상과제다. 더욱이 선교의 궁극 목표가 세상의 복음화라면, 그건 다름아닌 "이스라엘백성 가운데 길잃은 양들에게 가라"는 주님의 말씀에서 보듯 소외지역을 껴안는 작업일 수밖에 없다. 즉 선교는 울타리 밖의 소외된 이들을 향한 교회의 실천적 사랑인 것이다.

  하지만 이제껏 교회의 선교는 대체적으로 소극적이었다. 특히 우리 한국교회는 창립기엔 세계교회사에 보기드물만큼 능동적이었으나 1백년의 험난한 박해시대를 거치며 이른바 선교의 자유를 보장받자 오히려 아주 편한 길을 택했으니 곧 그후론 울타리만 쳐놓고 찾아오는 양들이나 받아들이는 수준이었다.

  길잃은 한 마리 어린양을 애타게 찾아나서는 ’목자다운 사랑’이나 그를 되찾고 기뻐하는 ’목자다운 기쁨’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가난한 이들의 발길은 교회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이 땅의 가난한 이들에게 교회란 그리 매력적인 존재가 되지 못한지 이미 오래 전이다.

  그런 까닭에 역설적이지만 교회내에서 가난한 이들을 볼 수 있는 곳이란 본당이 아닌 교회가 모범적으로 운영하는 대규모수용복지시설 정도이니 이처럼 가난한 이들이 대상화되어 버린 이 서글픈 현실이 나를 슬프게 한다.

  참으로 가난한 이들은 어디로 갔는가. 소외된 이들의 삶 속에선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왜 교회는 그들과 ’함께’ 살 수 없는가. 사회 속의 길잃은 어린양들을 얼싸안아야 할 교회에서, 왜 그들이 교회내에서 다시 길잃은 어린양 신세가 되어야 했을까.

  그것은 교회가 선교우월주의에 빠져 가난을 잊어버렸고 현실적으로도 가난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가 가난해져야 함은 그로 인해 더욱더 옳고 더욱더 참되고 더욱더 성스러워지기 위함이 아니라, 그로서만이 비로소 옳고 참되고 성스러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가난은 교회의 교회다움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가난을 모르는 교회, 속된 축제를 쫓고 치장과 자신을 살찌우는데만 힘을 쏟는 그런 교회는 단지 맘몬의 노예에 지나지 않는다.

  교회는 진정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 더욱 작아져야 한다. 교회는 예언자의 소리를 주의깊게 듣기 위해 더욱 여위어져야 한다. 교회는 어둠을 빛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모든 아픔에 더욱 민감해야 한다. 교회는 세상을 이끌기 위해 더한 윤리의식을 지녀야 한다. 교회는 언제나 궂은 일을 맡아 해야 하기에 온통 겉옷이 더렵혀져 있어야 한다. 가난한 이들의 슬픔과 번뇌를, 자신의 것으로 여기는 그 사랑이야말로 교회다운 마음씀이다.

  따라서 교회가 지상의 변방을 잊어버린다면 천상의 중심을 잃어버릴 것이다. 즉 교회가 생명의 밀알이 되어 울타리 밖 변방의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지 않을 때, 교회는 신원과 정체성을 상실한 채 천상의 중심이랄 수 있는 성령의 혼을 잃어버린 쭉정이가 될 것이다. 따라서 지상의 변방을 포기함은 천상의 중심을 포기함이니 그야말로 ’변방을 지켜라 중심을 차지할 것이다’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모든 면에서 제 자리를 찾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교회는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하신 주님의 말씀따라 세상의 구석진 곳을 찾아가 병을 고쳐 주는 의사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물론 교회가 중심이 아닌 변방에 설 때, 그 성과와 업적이란 보잘 것 없을지도 모르고 또 사실이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바로 거기에서 세속의 눈엔 보이지 않는 하느님 나라의 열매가 교회와 세상 안에서 풍성하게 익어갈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자신을 온전히 비워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로 다가가 인간존엄성 차원의 이해심과 연대의식으로 그들과 인격적으로 깊이 결합하면서 삶을 나누어야 할 것이다. 그럴 때 선교사의 발길이 닿는 그곳이 바로 하느님 나라가 될 것이다.

  그런 까닭에 선교본당에다 거는 나의 기대는 ’간절한 소망’ 그 자체다. 거기 교회쇄신의 열쇠를 보는 듯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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