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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5월 26일 (일)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청소년 주일)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라.
5분교리
미사의 재발견(회개-기도)

25 수유1동성당 [suyu1] 2008-04-19

 
 

 사진설명/08년3월29일 세례식
 
부활하신 예수님은 성령을 통해서 미사에 현존하시면서 우리를 회개로 부르신다. 우리는 그 부르심에 응답함으로써 회개의 삶을 살아간다. 회개는 우리의 마음과 삶이 수직적으로는 하느님께 확장되고, 수평적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확장되는 것을 뜻한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나는 그분의 사랑을 받는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힘과 용기를 얻는 것 그리고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있음을 깨닫고 그들을 형제와 자매로 대하는 것이 회개다.
 
  이런 회개의 삶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기도 생활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미사 때 회개하겠다고 결심을 하더라도 평소에 기도하지 않으면 그 결심은 오래가지 못한다. 아무리 훌륭한 결심도 기도가 밑받침되어야 행동으로 옮겨질 수 있다. 인간의 변화는 매우 더디기 때문에 자칫하면 인내심을 잃고 변화를 위한 노력 자체를 포기할 수 있다. 기도할 때 더디게 변화되는 자신을 인내로써 견딜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기도는 회개를 실현하는 데에 밑거름이 된다고 하겠다. 

   예수님도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서 꾸준히 기도하셨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하라’고 가르치시면서(루가 18,1-8), 당신 스스로도 밤늦게 홀로 한적한 곳에 가셔서, 혹은 이른 아침 제자들이 아직 잠자고 있을 때 홀로 기도하셨다. 식사할 틈도 없이 매우 바쁘게 사셨지만 자주 홀로 계시면서 아버지 하느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으셨다. 바로 이 기도가 그분 삶의 원동력이었다. 예수님께 기도가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면, 그분을 따르는 신앙인에게도 기도가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기도는 신앙의 호흡으로서 기도할 때에 믿음이 생기를 얻게 되고, 세상의 온갖 유혹에 저항할 힘을 얻으며, 증오와 폭력과 같은 부정적인 경향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기도하지 않게 되면 신앙은 서서히 시들어가고 따라서 세상의 유혹과 부정적인 경향을 거슬러 싸울 힘을 잃게 된다.
 
   이렇게 기도는 회개의 삶에 본질적인 요소이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신자들은 기도 생활을 소홀히 하고 있다. 사람과의 관계도 만남을 통해서 돈독해지듯 하느님과의 관계도 기도를 통해서 돈독해진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주 만나서 정겹게 대화를 나눈다. 하느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하느님을 믿고 사랑한다면, 자주 기도 하면서 그분을 만나 그분과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난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은 믿는데, 기도는 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사람은 사랑한다고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서 대화하기를 꺼려하는 것과 같다. 또 어떤 신자들은 주일 미사에 참석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기도는 거의 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영적인 귀가 닫히고 마음이 메말라서 미사에서 아무 것도 얻지도 느끼지도 못한다. 평소에 기도하면서 미사에 참예할 때 비로소 미사를 통해 들려오는 주님의 말씀이 들리고 마음에 와 닿게 된다. 그리고 다시 기도를 통해서 그 말씀을 마음속에 새겨두고 조금씩 실천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첫째, 기도는 규칙적으로 해야 한다. 기도하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날 때에만 기도하는 사람은 예외적으로 기도하는 사람이고, 아마도 얼마 가지 않아 기도를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충동적으로 기도할 것이 아니라 시간을 정해 놓고, 예를 들어서 하루 일과가 시작되기 전인 아침과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기도를 드리는 것이 유익하다. 삼 시 세끼를 제때에 챙겨 먹을 때 육신의 건강을 유지하며 활동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거르지 않고 매일 매일 따로 시간을 내어 규칙적으로 기도할 때 영혼의 건강, 즉 하느님과의 굳건한 신뢰 관계를 유지하고 돈독하게 할 수 있다. 이렇게 규칙적으로 기도하다 보면 기도의 맛을 느낄 수 있다. 기도는 기도를 함으로써 배우게 된다.


    둘째, 기도는 꾸준히 해야 한다. 요즘에는 즉각적이고 짜릿한 것을 너무 좋아하는 경향이 강해져서 기도를 할 때도 즉각적으로 짜릿한 느낌이 오기를 갈망한다. 아무런 느낌이나 감정이 없으면 실망해서 기도하기를 그만두는 사람들이 많다. 이렇게 되면 곤란하다. 콩에 물을 주면서 콩나물을 기르는데, 물을 줄 때마다 그 물은 밑으로 다 새나지만 물은 조금씩 콩을 적셔서 콩나물이 자라게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느낌 없는 기도라고 해도 그것은 신앙의 성장에 도움을 준다. “기도에서 직접 위로와 빛 등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기도는 시간 낭비처럼 생각될 만큼 무미건조할 때가 많다. 그러나 기도를 오래 궐(闕)한 생활과 무미건조한 것 같은 기도이지만 줄곧 행한 생활과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마음이 메말라진다. 후자의 경우에는 마음이 젖어 있다. 확실히 기도는 비록 얻는 것이 없어 보여도 믿음의 삶의 힘이다. 마음이 넓어지고 사랑의 힘이 생긴다. 하느님은 무언중에 기도를 통하여 당신을 열어 주시는가 보다.”(김수환 추기경,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 사람과 사람, 1999, 282쪽). 

   비록 무미건조한 기도라도, 분심과 졸음, 혼란과 지루함이 섞인 기도라도 꾸준히 바치게 되면 하느님이 당신의 현존을 우리에게 감지하게 해주신다. 사람에게 안기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지 못할지라도, 위로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지라도, 누군가의 얼굴에 가득한 미소를 보지 못할 지라도 하느님은 내 곁에서 사랑의 눈길로 나를 보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셋째, 내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시면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청하라고 하셨다(마태 6,10). 그분 스스로도 늘 그렇게 기도하셨고, 심지어는 수난과 죽음을 앞두고도 그렇게 하셨다.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마르 14,36) 하느님은 수난의 잔이 비켜가는 길을 허락하지 않고 당신이 원하시는 바대로 예수님이 수난을 겪게 하셨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인류를 죄와 죽음의 세력에서 구하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당장 눈앞의 즐거움이 아니라 궁극적인 행복을 원하시고, 나만이 아니라 모두가 행복하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때로는 나의 뜻과는 다른 것을 이루신다. 또한 하느님은 우리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우리가 원치 않는 고통을 주시기도 한다. 

    미국에 수잔 앤더슨이란 여인은 눈 수술을 받다 실명했다. 그때부터 남편은 아내의 직장 출퇴근을 도와주었다. 얼마 후 남편이 말했다. “여보! 계속 이럴 수 없으니 내일부터는 혼자 출근해요." 그 충격적인 말을 듣고 수잔은 남편에게 큰 배신감을 느꼈다. 그때부터 그녀는 이를 악물고 혼자 출퇴근했다. 여러 번 넘어지며 서러워 눈물도 흘렸지만 점차 출퇴근이 익숙해졌다. 그렇게 보름쯤 지날 무렵, 그녀가 버스를 탔을 때 운전기사가 무심코 말했다. “부인은 좋겠어요. 좋은 남편을 두셔서요. 매일 한 결 같이 부인을 살펴주시네요." 알고 보니 남편은 매일 아내가 버스를 타면 같이 타 뒷자리에 앉으며 아내의 출퇴근길을 말없이 등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느님은 결코 우리에게서 사랑의 눈길을 거두지 않으신다. 단지 우리가 홀로 설 수 있도록, 우리가 좀 더 강건하게 되도록 훈련시키기 위해서 멀어진 느낌을 주실 뿐이다. 비록 내 뜻과 원의가 채워지지 않아서 실망스럽더라도 그 분이 내 등 뒤에서 사랑의 눈길로 나를 지켜보신다는 것을 의심치 말아야 할 것이다. 

   넷째, 역경과 시련을 당할수록 기도를 중단하지 말고 더욱 열심히 해야 한다. 어려움이 너무 크면 기도도 소용없다고 낙담하면서 기도를 그만두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예수님은 엄청난 수난과 처참한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겟세마니에서 간절하게 아버지 하느님께 기도하셨다(마태 26,36-43). 그리고 그 기도를 통해서 수난과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얻으셨다. 기도를 마치신 후의 예수님의 모습은 달라져 있었다. 더 이상 탄식하거나 떨지도 않았고 용감하게 수난의 길을 향해 나아가셨다. “일어나 가자. 보라, 나를 팔아넘길 자가 가까이 왔다.”(마태 26,46) 예수님의 경우에서 보듯이 기도가 요술 방망이처럼 어려움과 고통을 순식간에 없애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려움을 견딜 힘, 다시 말해서 자신이 져야할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있는 힘을 준다. 역경과 시련을 당해서 더욱 열심히 기도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안정되고, 때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해결책을 얻을 수도 있다.

   예수님은 미사 중에 우리에게 다가 오시면서 우리 각자를 새로운 삶에로, 회개로 부르신다. 하느님 아버지의 극진한 사랑과 풍성한 자비를 깨닫고 받아들여 우리 자신도 사랑과 자비로 충만한 사람이 되라고 부르시는 것이다. 기도는 이런 회개로의 부르심이 생생하게 우리 마음 안에 머물면서 실천에 옮기도록 도와준다. 규칙적이고 꾸준한 기도를 통해 미사 중에 들었던 회개의 부르심을 실천에 옮길 때 우리 자신이 진정 행복해질 수 있다. 또한 그 행복을 이웃에게 전함으로써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게 된다. 나 한 사람의 변화가 교회 공동체를 새롭게 하는 길이고, 새롭게 된 교회를 통해서 세상은 조금씩 변화될 것이다.

<생활성서> 2008년 5월호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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